2006년 1월호

무, 곶감, 검은쌀 챙겨 떠난 ‘바람 여행’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입력2005-12-30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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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릿속이 복잡할 때 떠나는 여행은, 설렘보다는 절실함이다. 이곳에 살 수 없을 것이란 불안함이 엄습할 때, 우리는 대안을 찾아 떠난다. 김광화씨가 사는 마을 근처에 기업도시가 들어선다고 하자 마을이 어수선해졌다. 해결의 길은 보이지 않고 가슴이 답답해지자 그는 바닷가로 여행을 떠났다. 나머지 인생 여정을 바다에 의탁할 수 있을지 알아보러 떠난 여행. 그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무,  곶감, 검은쌀   챙겨   떠난  ‘바람 여행’

    물때를 놓쳐 옷을 적시며 통발을 건지는 이웃. 곁에서 지켜보는데도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한다.

    가을걷이 끝나고 땅이 얼기 전, 시골에서는 이맘때가 여행하기에 딱 좋은 때다. 땅이 얼고 나면 산간지역에는 언제 눈이 내릴지 모른다. 따끈한 아랫목에서 차를 마시며 눈을 바라보자면 더없이 행복하다. 하지만 길을 나섰다가 눈을 만나면 끔찍하다. 그러니 여행을 한다면 지금이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하고 싶을 때면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몸이 원하는가, 아니면 마음이 원하는가. 보통은 마음이 여행을 원한다. 몸은 먼 곳, 낯선 곳으로 가는 걸 크게 바라지 않는다. 먼 곳은 가는 과정부터 고단하다. 낯선 곳이라면 잠자리는 물론 쉴 자리조차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은 몸이 가만히 있어도 천길만길 날뛰기도 하고 하염없이 잠잠하기도 하다. 날뛰는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쉽지 않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명상이나 마음공부도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여행이 진정제가 된다. 하지만 여행을 가자면 몸이 허락해야 한다. 좀더 그럴 듯한 구실을 찾아 몸을 달래야 한다.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 먼 곳에 사는 이웃을 그리는 정. 아이들과 떨어져 부부만의 오붓한 시간….

    그러나 이런 생각만으로는 몸이 흔쾌히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면 몸이 여행을 원할 때가 있는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산짐승이 떠오른다. 산짐승은 자기 영역이 있어 그 안에서 먹이를 구한다. 그러다가 그 영역에 어떤 위협이 닥치면 새로운 곳으로 간다. 이들에게 낯선 곳은 설렘보다 절실함이리라.

    “잠이 안 와, 집이 없어진당께”



    내가 이따금 하는 여행에도 삶의 여유보다는 그 어떤 절실함이 깔려 있다. 도시를 떠나 새로운 곳에 자리잡고자 여행을 다닌 때도 그랬지만, 나름대로 뿌리내리고 산다는 지금도 그 욕구가 조금은 남아 있다. 지독한 가물이라든가 논밭이 무너지는 혹독한 자연 재해를 겪다 보면 일상이 흔들린다. 이웃과 다툼도 그렇다. 산골에서는 가까운 이웃과 부딪치면서 살아가기가 참 어렵다. ‘직장 따로 집 따로’가 아니어서 그렇다. 보기 싫은 사람을 날마다 마주보고 산다는 건 고통이다. 그럴 때는 기회가 되면 떠나고 싶어진다.

    최근에 우리 식구의 일상을 흔드는 일이 하나 생겼다. 우리가 사는 지역이 기업도시가 된다고 한다. 이름하여 ‘관광레저형’이란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실감나지 않았다. 그게 뭘 말하는지. 어디쯤에 세워지는지.

    그러다 면에서 열리는 오일장에 갔다가 시위하는 광경을 보았다. 기업도시에 편입되는 마을 사람이 ‘골프장 기업도시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산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시위꾼은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다. 한 몸 추스르기도 힘겨운 나이에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을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다. 시위대 옆에 붙었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내뱉듯이 한마디 한다.

    “잠이 안 와. 집이 없어진당께.”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관련자료를 뒤졌다. 기업도시가 되는 지역이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멀지 않다. 승용차로 10분 거리인 데다가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의 상류 지역이다. 기업도시 문제가 그냥 지나칠 내용은 아니구나 싶었다. 기업도시추진특별법을 검토하고, 환경단체의 주장과 편입될 주민의 호소문도 꼼꼼히 살폈다. 깊이 알수록 이건 아니다 싶다.

    먼저 절차에 문제가 있다. 지역 주민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을 중앙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밀어붙이기 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면은 주민이라고 해봐야 5000명 남짓이다. 여기에 2만여 명이 살 도시를 계획하고 있다. 당연히 지역 주민과 충분히 협의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도 도시 개발에 대한 기대만 늘어놓았지, 개발이 미치는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마치 대안이 다 마련된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편에서는 고향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이 안 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마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모양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나와 논을 이웃하고 농사짓는 할아버지를 만나도 농사에 대한 이야기보다 기업도시나 돈 이야기가 더 많다. 누구는 논을 몇억에 내놓았다든가, 평당 몇십만원에 팔렸다든가. 일상생활에서 들어보기 어려운 말을 쏟아낸다.

    무,  곶감, 검은쌀   챙겨   떠난  ‘바람 여행’

    골프장 기업도시를 반대하는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짚고 시위하다가 다리쉼을 하고 있다. 누가 이들을 잠 못 들게 하는가.

    우리네 일상이 달라진 것이다. 예전의 익숙하고 편한 사이가 아니라 멀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흙과 농사에 대한 관심’이 ‘부동산 개발’로 옮아가고 있다. 실제로 면 소재지에 새로운 상가가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그동안 하나도 없던 부동산 중개업소가 몇 달 사이 다섯 개가 생겼다. 그리고 여기저기 ‘부동산 투기 근절’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확실히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개발 때문에 아무리 땅값이 올라도 지역 주민은 땅을 팔고 떠나지 않으면 아무런 이득이 없다. 개발도 하기 전부터 기대 심리로 물가만 뛰니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게 아닌가.

    여기다가 기업도시의 내용을 살펴보니 골프장의 비중이 가장 높다. 아주 큰 골프장이란다. 보통 18홀 정도면 웬만한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데 이 곳은 45홀이라니 숫자로 어림잡아도 꽤 큰 것 같다. 이러한 골프장이 전주를 비롯한 수백만 시민의 젖줄인 용담댐 상류지역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번에는 바다가 그립다

    그런데도 개발이 강행된다면? 내 머릿속 그림이 복잡해진다. 도시를 떠나 산골로 왔는데, 바로 가까이에 도시가 생긴다.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낯선 사람들로 복잡해진다. 가난하지만 정을 나누며 살던 삶의 흔적은 차츰 사라질 것이다. 이웃간의 단절과 소외. 나아가 도시형 범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림들이다. 예정대로 기업도시가 들어선다면 우리 식구는 이 곳에 오래 살 것 같지 않다. 이래저래 우리네 일상이 흔들린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 삶을 꾸린다면 살고 싶은 곳은? 얼른 떠오르는 답은 두 가지다. 더 깊은 산골이거나 아니면 바다 가까운 곳. 이 둘의 공통점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좀 더 많이 누리고 싶은 데 있다.

    어디를 먼저 가볼까. 이곳저곳을 눈으로 보는 여행은 흥미가 없다. 좋다고 해서 막상 둘러보면 방송이나 사진 또는 책으로 느끼는 감동보다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일을 좋아한다. 어디서든 몸으로 하는 일이 없다면 하루가 허전할 것이다. 그러니 여행을 하더라도 ‘일상이 있는 여행’을 꿈꾼다. 우리의 일상이란 사실 대단한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몸 움직여 먹을거리를 구하는 일이다.

    여행지에서 일상처럼 보내자면 그 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 식구는 운이 좋다. 바닷가에서 봉화 산골까지 이러저런 인연으로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이번에는 바다가 그립다. 그 가운데 저 멀리 남쪽 끝, 진도로 가보기로 했다. 우리 이웃에 살던 이가 진도로 이사를 가서, 우리한테 오라고 한 것도 이유였다.

    그래, 우리가 바닷가에 산다고 생각하고 한번 지내보는 거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지금 여기 삶’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지도를 가져다놓고 진도를 찾는다. 멀다. 긴 시간 차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몸이 다시 움츠러든다. 그런데 변수는 뜻밖에도 아이들이었다.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자 아이들은 처음부터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동안 자기들끼리 어찌 지낼지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미적거리자 ‘계획대로’ 여행을 가라고 반강요(?)를 한다. 그 이유를 물었다.

    “글쎄요? 우리 둘만 있어 보고 싶어요.”

    ‘마약’ 같은 곶감

    아이들에게 떠밀려 ‘가지 않으면 안 될 여행’으로 바뀌었다. 우리 부부가 여행을 떠나는 설렘보다 부모 없이 지내보는 아이들의 설렘이 더 큰가 보다. 아이들이 어느새 부쩍 큰 것이다.

    계기가 어떻든 막상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크게 걸리는 게 밥상이다. 집을 떠나 한두 끼는 그런 대로 잘 먹는다. 하지만 하루만 지나도 집 음식이 생각나 참기가 어렵다. 말하자면 ‘밥상 중독’이다. 하루 세 끼를 모두 집에서 먹다 보니 혀가 굳은 것이다.

    밥상 중독을 달래보려 이것저것 농산물을 챙긴다. 쌀, 수수, 검은콩, 검은쌀, 무. 이 정도면 집을 떠나도 어느 정도 혀를 달랠 수 있겠다. 아참, 하나 더 챙길 게 있다. 나는 여행을 떠났다가 집이 그리우면 정서가 불안해진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허둥대며 아내에게 “가자, 가자, 그만 가자” 한다.

    무,  곶감, 검은쌀   챙겨   떠난  ‘바람 여행’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말랑말랑 곶감. 이 곶감을 두고 여행을 떠난다는 건 고통에 가깝다.

    이때를 대비하여 칭얼대는 아이 달래듯 ‘비상약’을 준비한다. 그건 바로 곶감이다. 집 처마에 주렁주렁 걸려 주황빛으로 말라가는 곶감. 곶감은 초겨울 이맘때가 가장 맛있다. 껍질을 깎아 한 달쯤 말리면 떫은맛은 사라지고 단맛이 돈다. 겉은 꼬득꼬득하지만 속은 말랑말랑하다. 씹는 맛, 단맛이 하루하루 깊어진다. 아침에 눈을 떠, 창을 열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곶감이다. 아침 햇살 오를 때 저절로 손이 가, 뚝 따 먹는다. 이른 아침, 정신이 맑을 때 먹는 맛! 달짝지근한 맛이 온몸으로 퍼진다. 초겨울에 맛볼 수 있는 마약(?) 같은 황홀함이다.

    여행하다가 이 곶감이 생각나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다면 ‘참을 수 없는 병’이 된다. 곶감으로 생기는 병은 곶감 이외에 약이 없으리라. 곶감 스무 개를 챙겨 넣었다. 이 정도면 그런 대로 견딜 만하겠지.

    그런데 아이들에게 떠밀리듯 여행가는 게 조금 억울했다. 여행 가기 전날 저녁.

    “얘들아, 엄마 아빠 여행 가는 데 뭐 없어?”

    “뭘 해드릴까요?”

    “음, 보통 자녀들은 부모가 여행을 간다면 용돈을 주지 않니?”

    큰아이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제 방에 다녀오더니,

    “가는 길에 두 분이서 ‘다정하게’ 차나 한잔 하세요”

    세어보니 2만원이다. 작은아이도 1만원을 보탠다. 이렇게 해서 여행 준비가 끝났다.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무주 산골에서 진도 바닷가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국도로 한 시간 달리다가 호남고속도로로 접어든다. 몇 해를 호남 땅에 살면서 호남고속도로를 처음 타본다. 다시 국도로 빠졌다가 서해안고속도로로 옮겨 탔다. 이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다. 여기가 정말 우리나라인가 싶다. 그래도 휴게소만 보이면 들렀다. 목적지에 몇 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이웃이 ‘되는 대로 편하게 오라’ 했으니까. 차에서 내려 몸도 풀고 간단히 쇼핑도 했다.

    해가 질 무렵, 바다가 보이는 이웃집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아준 것은 사람보다 바람이 먼저였다.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집안으로 마구 밀어넣는다.

    오랜만에 이웃과 회포를 풀었다. 마당에 숯불을 지펴놓고 굴을 구웠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바람이 문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낯설지만 고단해서 잠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로 분다. 오줌을 누려고 서니 바람이 한사코 바다로 나를 밀어낸다. 바닷가에 살려면 바람과 친해져야겠구나.

    아침에 이웃이 진도 어디어디를 가보라 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오늘 하루 특별한 계획이 없다. 그냥 형편대로 쉬면서 일도 하고 주위도 둘러보고 바다에도 나아가 보고.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고 싶다고 말했다.

    아침을 먹고 아내와 뒷산을 올랐다. 겨울산은 우리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다. 바람을 막아주고, 몸을 따뜻이 해줄 땔감이 있는 곳이며, 세상을 드넓게 볼 수 있는 눈을 준다. 낯선 바닷가로 곧장 가기보다는 높은 곳에서 바다를 살피고 싶다. 산을 오르는데 처음 보는 열매가 많다. 빨간 청미래 열매도 우리 지역보다 굵고 빛깔이 곱다. 하나 둘 섬이 신천지처럼 보이고, 해안가에는 무슨 양식장인지 부표가 논두렁처럼 가지런히 뻗어 있다.

    내려오는 길에 여기저기 썩어가는 나무가 보인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땔감거리로 안성맞춤이다. 어깨에 메고 내려오니 뭔가 일을 한 것 같다. 내 일상의 한 부분이 여기에도 있다.

    물때에 맞추어 우르르 바닷가로 갔다. 온갖 생명이 바위틈에 붙어 있다. 이웃에게 하나 둘 배운다. 고둥을 이곳에서는 ‘고동’이라 했다. 진도에 왔으니 이곳 말을 써야지. 고둥보다 고동이 더 살갑다. 톳도 자란다. 바위에 붙은 굴이 가장 끌린다. 조새(굴 따는 도구)로 껍데기를 벌리고 그 자리에서 굴을 먹어본다. 바닷물로 간이 되어 날로 먹기가 좋다. 한번은 조새로 껍데기를 까고는 바위에 엎드려 입맞춤하듯 먹어보았다. 바다를 먹는 듯 또 다른 맛이 있다.

    갓 잡은 문어 데쳐 초고추장에…

    이웃이 바닷가에 쳐둔 통발에 문어가 걸려들었다. 아주 크다. 산 문어를 만져 본다. 힘이 좋아 만지는 내 손에도 힘이 느껴진다. 보는 것만으로 포만감이 밀려온다. 이제 잡을 만큼 잡았나, 바람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그만 돌아가야겠다.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먹을거리를 해오니 오늘 하루가 푸짐한 것 같다. 문어는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우리가 가져간 무와 바다에서 따온 온갖 고동의 속살을 넣고 끓인 뭇국은 정말 맛있다. 과식한다는 느낌이 왔지만 몇 술 더 먹었다. 언제 또 이렇게 먹어 보겠나 하는 마음이 앞선다. 여행지에서 먹는 걸 일상처럼 한다는 건 어렵다. 대충 때우든가 아니면 아주 잘 먹든가.

    밥상을 물리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동물의 여행과 우리 자신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양말을 빨아 널고는 하루를 마감했다.

    그 다음날도 여전히 새벽에 잠이 깼다. 잘 잤다. 우리 집에서 자는 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나 보다. 똥이 마렵다. 아하, 어제는 똥을 못 누었구나. 환경이 바뀐 걸 몸이 먼저 느끼나 보다.

    밖이 고요하다. 문풍지를 흔들던 바람도 없다. 방을 나서 마당에 섰는데도 바람 한 점이 없다. 바람 방향이 바뀌는 때인가. 뒷간에 앉으니 섬들이 새벽빛을 받으며 거뭇거뭇 깨어나고 있다. 해 뜨는 모습과는 또 다른 장관이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배들도 벌써 바다로 나아간다. 넓은 바다에 떠 있는 배는 정말 작다. 큰 생명의 품 안에 깃들인 작은 생명들. 나도 저들과 가까운 이웃으로 살 수 있을까.

    낚시를 하겠다고 바다에 나갔다. 민물낚시와 달리 모든 게 서투르다. 파도가 치고 물이 밀려든다. 이리저리 머리를 짜 내지만 고기는 입질 한번 하지 않는다. 바다는 넓고도 깊지만 무식한 사람한테는 자신을 쉽사리 열지 않는 모양이다.

    집에 돌아오니 안주인이 수제비를 준비한다.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밀가루 반죽을 힘껏 했다. 맛있는 수제비가 나왔다. 산골에서와 달리 갯가에서 잡은 온갖 조개류와 고동을 넣었다. 처음으로 이곳에 사는 게 좋다는 느낌이 온다. 역시 나는 먹을거리를 잘 먹어야 사는 것 같다고 느낀다.

    아빠와 엄마의 ‘빈자리’

    먼 곳으로 여행을 왔지만 아이들과 호흡을 나누는 일은 빼놓을 수 없다. 다음은 큰아이와 주고받은 e메일 내용이다.

    [제목: 우와, 문어?]문어 잡는 아빠라니~너무 멋진데요.우리는 어제 점심에 떡볶이 해먹었어요.무지 맛있게 됐죠.근데 이것저것 다~ 넣고 해서양이 너무 많았어요.엄마 아빠 안 계시니까 왜 이렇게 전화가 많이 오는지….오늘 만 해도 벌써 세 통이나 받아서대신 제가 수다를 떨었죠.여주의 미경 고모는우리 둘이 잘 지내는지 물어보셨어요.

    [제목: 잘 하고 있구나]잘 해 먹고 지낸다니 좋구나.나처럼 ‘너무’ 잘 먹으면 안 되겠지만….우리 역시 여행을 해 보니할 일이 왜 이리 많나.네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고네 엄마랑 조금 놀랐지.우리는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는데온 동네 소문이 난 김에덩달아 우리도 홈피에 글을 올렸지.이제 물때가 다가온다.바다에 나가 고동이라도 주워야지.

    [RE: 잘 하고 있구나]아하하 ^^;홈피에 글 괜히 썼나요?나는 며칠동안 홈피에 안 들어오시는 줄 알고이유를 가르쳐드려야지 하고 올렸는데.아까 엄마랑 전화를 했더니 엄마 말씀이아빠가 지금 바다에서 돌아오고 계시네 하더라고요.아빠랑 엄마는 이제 완전히‘바다사람’ 느낌이 나는 건가요?여기, 저는 이제 조금씩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는데 ^^*무위는, 노래 틀어놓고 너무 즐겁게 춤추고 있어요.

    ‘빈자리’라는 말이 가슴이 와 닿는다. 우리 네식구는 대부분 함께 지내, 서로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는 편이다.

    ‘그럼 그렇지. 떨어져 지내보니 부모 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 것이다!’

    그런데 이모티콘을 보니 그게 아니다. 빈자리를 그리워하기보다는 즐기고 있는 듯하다. 부모 빈자리를 느끼면서도 그 자리를 아이들 스스로 채우는 만족감이라고나 할까.

    아하! 이놈이 장어렷다!

    무,  곶감, 검은쌀   챙겨   떠난  ‘바람 여행’

    누구는 아는 만큼 본다고 했다. 우리에게 여행은 ‘아는 만큼 먹을 수 있다’이다. 바닷가에서 이웃이랑 갯것을 채취하는 모습.

    물때에 맞추어 다시 바닷가로 갔다. 이번에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갯벌로 갔다. 바지락을 캘 요량으로 도구와 그릇을 잔뜩 가지고 갔다. 갯가로 가니 바닷물이 차츰 썰려나고 있다.

    물 따라 천천히 아내와 바다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떻게 잡지? 둘레를 보니 아무도 없다. 우리가 잘못 온 것인가. 아니면 때가 아닌가.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동네 초상이 나서 그랬단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그냥 우리식으로 궁금한 곳에다가 호미로 긁었다. 시꺼먼 흙에서 나는 갯냄새가 진하다. 바지락 껍데기뿐이다. 우리는 완전히 까막눈이다. 그나마 운 좋게 잡은 거라고는 가재를 닮은 쏙 한 마리 그리고 바지락 몇 개가 전부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읍내 나간 이웃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오후 6시가 다 되어간다. 어젯저녁에 넣어둔 통발을 걷어야 한다. 고기 담을 그릇을 들고 혼자 나섰다. 어두워지면 쓰려고 손전등도 하나 챙겼다.

    통발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해가 져 간다. 밀물이 7시쯤이라 했다. 약간의 여유는 있다. 물이 많이 빠졌다. 보름사리가 가까우니 달의 힘을 코앞에서 생생히 본다. 첫 통발. 뭔가 있을 것 같다. 설렘으로 당겼다. 있다! 구불덩구불덩 움직인다. 길쭉하다. 아하. 이놈이 바로 장어렷다! 다음 통발. 이번에는 게다. 아이들 손바닥만하다. 손으로 잡으니 집게로 내 손을 콱 문다. 윽, 아프다.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나, 쓰리다. 게와 싸우는 수준이다. 그래도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다. 오늘 하루 양식을 스스로 마련한 것처럼 들뜬다. 차츰 바다에 익숙해지는가.

    저녁에 다음날 일정을 이야기하는데, 이웃이 배를 타고 작은 섬에 가보잔다. 안내를 맡아줄 사람과 상의해보겠단다. 그리고 일찍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듯하다.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걸 체험했다. 여기 삶이 일상이 되자면 좀더 긴 호흡이 필요할 것이다. 이따금 빼먹던 곶감도 약발이 다 된 것 같다. 이럴 때 나의 정서불안을 아내는 익히 안다. 고맙게도 아내는 섬까지 갈 마음을 접는다.

    집으로 곧장 간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이 떠오른다. 전어랑 꼴뚜기는 못 잡아도 고동이라도 주워 가야 체면이 설 것 같다. 신을 신고 나서려는데 아내가 함께 가잔다. 조새와 작은 칼, 그리고 갯것을 담을 비닐봉투를 챙겨 나섰다. 몇 번 왔더니 이제 제법 익숙하다. 통발 놓은 곳에 가보니 물에 잠겨 가까이 갈 수가 없다. 바위틈에서 고동을 줍는데 물이 밀려오니 손놀림이 바쁘다. 아이들에게 굴도 먹이고 싶다. 조새로 바위 거죽까지 들어 올리듯 따니 어쩌다가 굴이 통째로 따지는 게 있다. 물이 점점 들어온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웃이 섬에 가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일장을 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웃은 내 고집을 잘 아니까 허허 웃기만 한다. 여행이랍시고 와서는 집 둘레에서만 꼬박 나흘을 머물렀으니. 먹다 남은 곶감을 마저 나누어 먹고 함께 오일장으로 갔다. 늦은 시각이지만 시장은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아내와 나는 구경하면서 고기에 대해 연신 묻기에 바쁘다. 되미라는 고기가 있다. 전어 사촌이란다. ‘가을 전어는 참깨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되미로도 충분히 고소하다. 너무 맛있어 되미를 한 보자기 샀다. 도미도 기념으로 한 마리 샀다. 김장 때 쓸 까나리젓도 샀다.

    이웃이 한 군데만 더 들렀다 가란다. 이마저 거절하기에는 너무 내 중심이겠다 싶었다. 첨찰산 쌍계사란 절에 들렀다. 국화차를 대접받고 선물로도 받았다. 절 들머리 감나무집이라는 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여기서 뜻밖에도 지역 문화를 가꾸어가는 분들을 두루 만나, 진도에 얽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분들한테 장어죽까지 대접을 받고 보니 왠지 빚을 진 것 같다. 이분들이 우리 사는 곳에 여행을 온다면 나는 산에서 꿩도 잡고 토끼도 잡아 대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맑은 달을 볼 수 있는 곳

    무,  곶감, 검은쌀   챙겨   떠난  ‘바람 여행’

    진도읍 장에서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 되미를 조금 사니까 망둑어를 덤으로 한 마리 주신다. 낯선 사람을 낯설지 않게 맞아주는 그 힘을 배우고 싶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많은 사람과 오래도록 어울릴 만큼 내 몸이 튼튼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여행이면 좋겠는데 이웃은 원하는 것 이상을 주려고 한다. 나로서는 이웃집에 머물며 바닷가 삶을 체험한 것만 해도 넘치는 여행이었다. 낯선 곳에서도 몸과 마음이 편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게다가 차 뒤에 실린 고기가 싱싱할 때 아이들이 있는 집에 도착하고 싶다.

    이웃과 아쉽게 헤어졌다. 이제 가는 일만 남았다. 다섯 시간의 긴 여행은 몸에 무리가 된다. 올 때는 마음이 몸을 달랬는데 돌아갈 때는 몸을 억누른다. 힘들어도 참으라고. 진도대교를 넘어가는데 발에 땀이 나는 것 같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운전을 했다. 발가락이 오랜만에 제 구실을 하는 것 같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보름달이 떠오른다. 창 밖으로 산과 들과 불빛이 스쳐가지만 달은 계속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차 안이라는 답답한 공간과 지루한 시간을 잊고자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부부가 늘 붙어 지내지만, 주제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가니 할말이 많았다. 집에 도착하니 앞산 위로 달이 제법 높이 솟았다. 아이들과 오랜만에 포옹했다. 트렁크 짐을 내리고 나니 뒤가 마렵다. 아하, 똥구멍이 먼저 집을 알아보는구나.

    ‘일상이 있는 여행’을 꿈꾸었지만 돌아보자면 기껏 이웃이 깔아둔 멍석에서 퍼질러 놀다온 셈이다. 통발 하나도 아무나 놓을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마을 어촌계에 가입하고 자기 영역을 가져야 한다. 또 바다낚시로 고기를 잡아올 듯 아이들에게 말했지만 결국 장에서 사야 했다. 과식도 그렇다. 일상에서 늘 신선한 걸 먹을 수 있다면 여행지에서도 음식에 대한 유혹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산골에서처럼 바닷가에서도 자급하고 사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기업도시 문제는 아직 시간이 있다. 기업도시로 선정만 됐지 도시 개발이 확정되자면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모로 알아봐야겠다. 사실 눈을 돌려보면 개발붐은 이 곳만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자연이 오롯이 살아 있는 곳이 드물 것 같다. 언젠가 우리는 밤하늘에 ‘맑은 달’을 보기 위해 ‘멀고 긴 여행’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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