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 1200개 업체 불법복제 적발
- 단속반 들이닥치자 창문 밖으로 PC 내던져
- 협회 ‘클린 인증’ 받으면 소프트웨어 저렴하게 제공
- 정부 위원회, 민간단체 의견은 듣지 않고 지침만…
이번에는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가 나섰다. 1993년 출범한 이 협회는 120개 회원사가 가입돼 있으며, 한컴이나 안철수연구소 같은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MS), 어도비 같은 외국 업체도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협회 김규성(金圭性·44) 부회장은 죄책감 없이 무단으로 프로그램을 도용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올해 협회가 주력할 사업은 불법복제 단속의 사각지대이던 인터넷데이터센터(IDC)와 인터넷 암거래 시장에 대한 철저한 감시”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검찰과 경찰의 강도 높은 단속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 부회장은 “이와 함께 기업이 자발적으로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적절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노력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협회에 요청해 스스로 소프트웨어 사용 실태를 검사받고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회사들에 대해서는 협회가 ‘클린 회사’로 홍보도 해주고, 저렴한 가격으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협회는 미래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육성하는 일에도 매진할 계획이다. 2006년 10월부터 실력은 있지만 돈은 벌지 못하는 젊은 개발자를 대상으로 각종 소프트웨어와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 제2의 빌 게이츠가 자라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에서 김 부회장을 만나 불법복제의 현황, 기업의 소프트웨어 사용 실태, 젊은 개발자의 육성 방안 에 대해 들어봤다.
회비 얼마 내든 권리는 똑같아
-협회의 한 회원사에 물어보니 한 달에 10만원 정도 회비를 낸다고 하더군요. MS 같은 거대 외국 회사는 그보다 훨씬 많은 회비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비를 많이 내는 회원사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협회가 좀더 관심을 갖겠죠?
“돈을 많이 낸다고 더 많은 권리가 부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협회 이사회 논의에서도 모든 회원사에 이익이 되는 것만을 다룹니다. 예를 들어 검찰이나 경찰이 불법복제 단속을 하니까 협회가 도와주자는, 뭐 이런 것을 논의하고 결정하죠. 협회로선 작은 회사의 권리도 보호해야 합니다. 이런 회사에선 회비도 많이 받지 않아요. 돈 많이 낸 회사를 두둔하게 되면 예컨대 한컴과 MS가 충돌했을 때 어느 편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둘 다 회원사인데. 국내 업체끼리 소송이 붙어도 협회로선 중립을 지켜야죠. 얼마 전 MS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얻어맞았지만 협회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어요. 회원사의 공동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회비를 많이 낸 회사로선 그만큼 더 큰 이익을 얻고 싶을 텐데요.
“협회가 활동한 덕분에 업체들이 돈을 많이 벌었어요.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정부와 손잡고 단속을 강화한 결과, 프로그램을 더 많이 판매하게 됐지요. 이런 혜택 때문에 몇몇 업체가 협회에 기금을 내고 협회 운영비도 많이 지원하는 겁니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현재 100억원에 달한다. 협회가 사무실을 대치동으로 옮기고 빌딩을 마련한 것도 기금 덕분이다. 그동안 협회가 감독 당국에 끊임없이 불법복제 단속을 촉구하고, 사회적으로도 정품 쓰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불법복제율은 2000년 70%에서 2005년 40%대로 떨어졌다. 정품 쓰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업체의 재무구조는 탄탄해졌다. 물론 아직도 선진국 수준을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말이다.
-협회는 불법복제율이 40%대로 떨어졌다고 하지만, 업계에선 아직도 6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더군요.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겁니까.
“불법복제 현장을 어디까지로 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불법복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돈을 벌고 있는 기업으로 한정하면 불법복제율은 40%대예요. 그런데 개인 사용자까지 합하면 50%가 넘습니다. 의미가 큰 것은 기업들의 무단 복제 횟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협회의 노력도 있지만, 1999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저작권 보호정책을 적극 실행한 덕분이죠.”
-그렇지만 아직도 선진국과 비교하면 정품 사용률이 낮은데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훔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첫 째 이유입니다.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만질 수 없는 것’이다 보니 죄를 지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거죠.
둘째 이유는 소프트웨어를 살 때 맺는 계약관계를 오해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제조업체는 제품을 판매할 때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범위를 한정합니다. 다시 말해 이용할 수 있는 범위를 판 것이죠. 사용자가 그 범위를 넘어 사용할 때는 사용료를 더 받아야 한다는 게 프로그램 개발업체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내 돈 주고 샀으면 그때부턴 내 것이니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카피를 사서 서버에 저장한 뒤 여러 번 복제하는 겁니다. 요즘엔 ‘멀티 PC’라고 해서 여러 명이 함께 PC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도 불법복제가 자행됩니다. 기술은 발달하는데, 저작권 보호정책이나 사용자의 의식수준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죠.”
“영장 있어요?”
-단속 현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습니다.
“한때 디자인 회사와 출판사를 집중단속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가격이 굉장히 비싸요. 프로그램을 복제해서 사용하는 곳도 많았고요. 한 PC에서만 2억∼3억원어치의 불법 카피본을 찾아내기도 했고, 한 회사에서 7억원 상당의 불법 카피본을 적발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한번 걸렸다 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해요. 언젠가는 단속반이 들이닥치자 한 직원이 쓰고 있던 PC를 창 밖으로 내던져버렸어요. PC 한 대 부서지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거죠. 단속 시즌이 되면 아예 회사에서 컴퓨터를 들고 나와 여관 잡아놓고 일하는 회사도 있어요.
대기업에 가면 조사할 컴퓨터가 1000대도 넘어요. 노트북 컴퓨터도 많고. 걸리면 문제가 생기니까, 어느 대기업 직원은 단속반을 보자마자 쓰고 있던 노트북을 들고 줄행랑을 놓더라고요. 단속 현장이 한바탕 아수라장이 됐죠. 요즘엔 법의식이 높아져서 그런지, 단속반에게 영장부터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체신청 조사 때는 영장 없이 암행단속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지금은 영장 없이는 조사도 못 해요.”
-컴퓨터를 밖에 던진 경우는 수거해서 조사합니까.
“그렇게는 안 해요.”
-끝장을 봐야 업체들도 조심할 것 아닙니까.
“사람을 상하게 하는 중범죄는 아니니까, 되도록 충격을 주지 않으려고 신경을 씁니다. 조금 완화된 처벌을 하는 것이 좋아요. 생각이 바뀌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쨌든 밖으로 내던진 PC는 버리고 새로 사야 하니까 돈이 들어도 소프트웨어는 구입하게 돼요. 마음고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프로그램을 사게 됩니다.”
-좀더 강력한 단속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가운데 성공한 기업이 적은 것은 무단복제 때문 아닙니까.
“맞아요. 사실 사용자들 사이에도 이대로 가다간 공멸하겠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어요. 한국이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돈벌이가 안 되는데 누가 소프트웨어 개발한다고 나서겠어요.
온라임 게임이 발달한 이유
한국에 왜 온라인 게임 시장이 발달했겠습니까. 게임을 개발해서 CD로 만들어 팔면 이익이 엄청나게 남습니다. CD 1장을 50원이면 만드는데, 이렇게 해서 1만원만 받고 팔았으면 벌써 제2의 빌 게이츠가 수두룩하게 나왔을 거예요. 그런데 게임을 CD로 팔면 1만 카피 이상은 안 팔려요. 그때부턴 매출이 정지됩니다. 불법복제 때문이죠.
김규성 부회장은 “불법복제율이 선진국 수준이었다면 제2의 빌 게이츠가 한국에서도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1년에 몇 개 업체나 적발됩니까.
“1년에 보통 1200개 업체가 적발됩니다. 이 중 1000개 업체는 소프트웨어 개발사와 합의를 봅니다. 나머지는 소송으로 이어지는데, 피해 금액이 적은 경우가 많죠. 혹은 폐업하려고 작심한 업체도 소송으로 갑니다. 합의가 많은 이유는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이 명예훼손이나 강간죄처럼 친고죄여서 그래요. 피해자가 고소할 때만 처벌할 수 있거든요.”
-한번 걸렸다 하면 사업이 망할 정도로 벌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처벌이 경미하면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한국은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징역 3년 이하인데, 징역 판결이 나와도 웬만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나옵니다. 미국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이라고 해서 피의자가 불법으로 얻은 이익까지 징수하기 때문에 한번 걸리면 파산하기도 하죠. 우리가 미국식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려면 여러 여건이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우선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요. 지금의 처벌 수준으로도 시장이 정상화되고 있다고 봅니다.”
-적발된 업체 중엔 대기업도 많죠?
“다양합니다. 큰 기업도 적지 않아요. 대기업은 조사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아요. 지방에 있는 계열사까지 모두 조사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아요. 감독 당국이 여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거죠. 물론 구체적으로 고소한 사실이 있다면 영장을 발부받아 조사는 합니다.”
-업계에선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서 무단 복제가 자행되고 있다는 불만이 많더군요. 일부 회원사는 협회가 IDC 단속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단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IDC는 서버를 임대하는 곳인데, 서버 안의 내용물은 IDC 소유일 수도 있고, 개인 기업 소유일 수도 있어요. 이게 누구 것인지 알아야 조사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 적용을 받기 때문에 영장 없이 조사할 수 없어요. 그쪽에서 거부하면 조사 못 합니다.”
시기가 문제지 준비는 됐다
-먼저 단속이 있고, 적발된 것이 있어야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고소할 텐데요.
“단속하기가 쉽지 않아요. 우선 IDC에 들이닥치면 영장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고발된 건(件)이면 당연히 영장을 보여주죠. 그런데 IDC 내 서버가 고발된 기업의 소유가 아니고, IDC의 것이라면 조사할 수 없습니다. IDC 개인 재산이니까 못해요. 이들이 조사에 도움을 줄 이유가 전혀 없는 거죠. 개인 정보를 누가 주겠습니까.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IDC에는 수많은 서버가 있습니다. 서버마다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조사하려는 서버를 관리하는 직원이 출장 갔다거나 자리에 없으면 서버에 들어갈 수조차 없어요. 패스워드를 모르니까요. 그러니 관리자가 도주라도 했다면 서버를 열 방법이 없어요. IDC로선 발뺌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겁니다. 이런 이유로 IDC가 다른 업체와 비교해 조사를 덜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알면서도 내버려둘 수는 없잖습니까.
“올해부터 IDC와 인터넷 등의 감시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증거를 찾아 고소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고소하면 검찰과 경찰도 조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고요. 무단복제한 기업은 물론, IDC까지 같이 고소하면 IDC에서도 조사를 거부할 명분이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예전엔 왜 양쪽 모두 고소하지 않았습니까.
“IDC의 특정 서버를 지목해 고소해야 하는데, 그동안 이걸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실태를 파악했습니다. 언제 고소하느냐가 문제지, 불법복제 증거를 찾는 게 문제는 아닙니다.”
회원사도 불법복제 적발
-아무리 철저히 단속해도 이를 피해가는 기업은 있게 마련입니다. 업계가 자율적으로 정품 사용 운동을 벌이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런 측면에서 협회가 3년 전부터 벌여온 사업이 소프트웨어 자산관리 서비스예요. 서비스에는 소프트웨어 자산관리 컨설팅과 소프트웨어 정품사용 인증이 있습니다. 부연하면 회사가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는 무엇인지, 불법 카피본은 얼마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요. 그리고 어느 회사나 필요한 것 이상으로 카피해서 쓰는 경우도 많아요. 필요 없는 것을 불법복제한 셈이죠. 이를 상시적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회사의 규모에 따라 달라요. 뭐,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컴퓨터가 2000대가량 있다면 1500만∼1700만원으로 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죠.”
-회사의 속살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일 텐데, 기업에서 선뜻 요청할까요.
“이 서비스를 받는 기업에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합니다. 우선 ‘소프트웨어 클린 회사’라는 점을 부각시켜 언론에 공개합니다.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때도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2005년에 30개 업체가 이 서비스를 신청했어요. 일일이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NHN이나 네오위즈는 대표적인 클린 기업입니다.”
-협회 회원사도 조사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솔선수범한다는 차원에서.
“물론입니다. 협회 회원사도 검사받았어요.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회원사 중에서도 불법복제한 소프트웨어가 적발되기도 했죠. 이렇듯 조심한다고 해도 어느 순간 불법복제된 프로그램이 깔릴 수 있어요.”
-적어도 30개 업체 이상은 협회의 서비스를 받았고, 불법복제 현실을 적나라하게 목격했을 텐데요. 평균적으로 기업의 불법복제율은 어느 정도나 되던가요.
“드러내놓고 검사를 받겠다는 회사인데도 불법복제율이 30∼40%는 됩니다. 10개 프로그램을 쓰면 3∼4개는 무단으로 복제했다는 얘기죠. 대기업은 20∼30% 수준입니다. 아마 국내 기업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느닷없이 단속반이 들이닥쳐 적발되면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하겠죠? 그래서 사전에 예방하자는 겁니다. 법적인 강제는 줄이고, 자정 노력은 격려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취지죠.”
돈 없고 ‘빽’ 없는 개발자를 위해
-2005년에 30개 업체가 검사를 받았다고 했는데, 실적이 저조한 것 아닙니까. 1년에 1200개 업체가 적발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우선 손이 부족해요. 대기업의 경우 검사를 시작해서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한 달 이상 걸립니다. 아쉽게도 아직 대기업이 요청한 사례는 없지만요. 형이 잘해야 동생이 따라 할 텐데 우리 대기업들은 이런 것을 받아들일 겨를이 없나 봅니다. 그래서 협회 차원에서 새해부터 대기업 위주로 사업을 펼쳐 나갈 예정이고, 50개 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할 생각입니다. 이미지 홍보도 할 수 있고, 또 저렴한 가격에 프로그램을 구매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공기관은 어떻습니까. 법을 잘 지키고 있나요.
“공공기관은 확인이 잘 안 돼요. 특히 정부 산하기관과 연구원은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협회나 단속기관이 주의해서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그나마 정부 부처는 행정자치부 내에 관리팀이 있어서 크게 불법을 저지른 사례는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정부 산하기관은 감시가 소홀해 이 틈을 비집고 생각 없이 복제하는 경우가 많아요.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직원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가 막힙니다.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서 그런다는 거예요. 프로그램 구매 신청서 자체가 없다는 얘기도 하는데, 저희에겐 아무래도 핑계처럼 들려요.”
-협회가 새해 사업으로 계획한 것 중에 돈 없고 ‘빽’ 없는 개인 개발자를 위한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협회 내 소프트웨어 발전센터를 발족했어요. 바로 이 빌딩에서 오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될 겁니다. 저작권협회 회원사들이 돈을 모았어요. 환경이 열악한 개인 개발자들에게 무료로 프로그램과 설비를 제공해서 마음껏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돕자는 것이죠. 회의실도 제공할 겁니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가 정품 사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미래 인재 양성은 정부에서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부 돈으로 하는 것과, 저작권자들이 직접 제품을 팔아서 만든 기금으로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후자의 경우) 얼마나 생생한 개발 현장이 되겠습니까. 물론 기성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도 많은 공부가 되겠죠.”
-협회라는 곳이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실에만 머물지 말고, 이렇듯 적극적으로 미래의 인잿감을 찾아내 키우고 정부에 애로사항을 건의하는 등 외연을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처럼 협회, 민간단체가 더욱 성장해서 사회발전에 일정한 몫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이 녹록지 않네요. 정부가 민간단체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해도 받아들이는 정도가 미미합니다. 정부 산하기관의 지원을 줄이거나 역할을 축소하고, 이를 민간단체에 맡겼으면 합니다.”
-예산을 지원해달라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민간단체가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죠. 예컨대 관련 법안을 만들 때 우리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반영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기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위원회는 관료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할 수 없죠. 무슨무슨 위원회에 들어가 보면 정부의 지침을 받아 적는 수준이에요. 더욱 문제인 것은 위원회의 관심사가 업계의 관심사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듣지 않으니 업계의 현실을 반영할 리 있겠습니까.
한국은 관료 중심, 미국은 업계 중심
얼마 전에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 10여 개 지역을 돌아보고 왔어요. 지적재산권 전문가로 초청됐기 때문에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고 왔죠. 미국은 민간위원회의 파워가 막강합니다. 이 위원회가 정부와 긴밀하게 교류하고, 협조하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을 개척합니다. 업계에서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는 바로바로 해답을 내놓습니다.
가령 연방정부는 산업단체나 이익단체와 의견을 교환하고, 여기서 나온 문제를 풀어낼 입법 활동을 합니다. 정부 정책이 산업과 밀접하게 조응한다는 것이죠. 외국과 통상 문제가 생겼을 때 정부가 갖고 있는 자료는 대부분 협회나 민간단체에서 올린 것들입니다. 정부는 이 자료를 읽고 사실 관계만 파악하고는 대부분 정책으로 구체화시킵니다. 내부적인 문제라면 각 주정부와 대화하면서 해결하고, 외부적인 문제라면 각 나라의 정부와 대화해서 문제를 풀어 나갑니다.
우리에겐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요. 민간에서 제기한 문제가 정부 어디서도 조율되지 않아요. 정부는 공청회를 열어서 민의를 수렴한다고 하지만, 한두 번의 공청회로 수많은 문제를 조율할 수는 없습니다. 대충 얘기를 듣고는 법률을 만들어서 공포하죠. 지키든 말든 그건 업체 책임으로 돌립니다.
업계에 얘기할 통로가 부족하니까 우리 같은 협회가 공무원도 만나고, 국회의원도 만납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요. 사사건건 언론에 호소할 수도 없고요. 언론에 얘기하지 못할 사정도 있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어디에 호소해야 합니까. 통로가 보이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