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더구나 한류(韓流) 열풍이 국가 이미지 상승에 크게 기여하면서, 소프트 파워인 문화 영역이 논술시험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생애와 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인간적 번민을 다룬 작품이다. 모차르트의 주옥 같은 명곡이 전편에 흐르는 영화를 감상하며, 인간의 삶에서 문화가 갖는 의미를 조망해보자.
이를 반영하듯 2005년 대학입시 정시 논술 시험에선 문화를 주제로 한 논제를 출제한 대학이 가장 많았다. 성균관대는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현상, 한양대는 ‘용사마 현상’, 동국대는 문화의 힘에 대한 논제를 출제했다. 앞으로도 문화에 대한 논제의 출제 빈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의 한 장르인 고전음악을 소재로 한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일생을 그린 평범한 전기 영화가 아니라 두 사람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삶과 음악, 그리고 두 사람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천재적 재능은 있지만 난잡하고 경박한 모차르트에 대해 내내 열등감에 시달리던 살리에리가 그를 질투한 끝에 살해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리에서 영화가 만들어졌다. 진실일지도 모를 허구를 기반으로 한 음악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의 흐름을 시각과 청각으로 음미할 수 있다. ‘Amadeus’란 라틴어로 ‘신의 아들, 신의 사랑’이란 뜻이다.
문화로서의 예술은 인간에게 영원히 중요한 화두다. 예술은 그 시대를 대변하면서 가장 인간다운 것을 그려낸다. 모차르트의 선율은 몇 세기를 뛰어넘어 우리 모두의 귀에 익숙하다.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단지 그의 천재성에서 비롯된 것일까? 위대한 예술은 작가의 천재적 재능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상과 인간의 감정을 이루는 요소들이 용해돼 형성되는 것이다.
신을 믿지 않게 된 살리에리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1악장의 장중한 선율과 함께 한 노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모차르트! 모차르트! 용서해주게. 자넬 죽인 건 날세. 내가 자넬 죽였네. 모차르트 용서해주게! 나야! 모차르트! 자넬 죽인 게 바로 나란 말일세. 용서해주게 모차르트!”
요양원에 수용되어 자살을 시도한 이 노인에게 신부가 찾아온다. 노인은 안토니오 살리에리(F. 머레이 에브람 분)다. 영화는 살리에리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살리에리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와서 요제프 2세(제프리 존스 분) 황제의 궁정 음악장이 되어 음악 애호가인 황제의 개인 교습을 도맡았다. 하지만 모차르트(톰 헐스 분)의 출현으로 살리에리는 자신의 음악적 한계를 절감하기 시작한다.
요제프 2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연주 소식을 듣고 오페라 작곡을 의뢰하기 위해 그를 궁중으로 초대한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환영하는 행진곡을 작곡해 궁중에서 연주한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연주를 한 번 듣고서 악보를 보지 않은 채 즉석에서 재현해내고 수정할 부분까지 지적한다. 이런 천재적인 재능을 보고 살리에리는 패배감에 사로잡힌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에 살리에리가 사랑하는 제자를 프리마돈나로 출연시켰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마돈나로 출연한 자신의 제자와 관계를 맺은 것을 알고 모차르트에 대한 증오와 저주의 마음을 품게 됐다. 살리에리의 고백이 이어진다.
“그때부터 신을 믿지 않게 되었소. 오만하고 음탕하고 지저분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녀석을 선택하고선 나에겐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밖에 안 줬기 때문이오.”
살리에리는 신이 편파적이고 매정하다고 여기고, 십자가를 불태워버리면서 모차르트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키워간다.
모차르트 집으로 한 여자가 찾아와 “전 하녀예요. 여기서 선생님을 도와드리라는 명을 받았어요. 급료는 선생님을 숭배하는 익명의 어떤 분이 내실 겁니다”라고 했다. 하녀가 모차르트의 집으로 들어와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하녀는 살리에리가 보낸 사람이었다. 하녀는 살리에리에게 가서 모차르트의 집 사정을 낱낱이 보고했다. 하녀는 모차르트 부부가 궁정 연주를 위해 집을 비우자 살리에리에게 이를 알렸다. 모차르트의 집으로 온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 악보를 본다.
살리에리는 황실 음악 관계자들에게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 희곡에 연주될 곡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피가로의 결혼’은 계급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황제가 금지한 작품이다. 황제에게 호출당한 모차르트는 서막을 보여주면서 그를 설득해 작품을 무대에 올렸지만, 살리에리의 교묘한 음모로 ‘피가로의 결혼’ 오페라 공연은 단 9회로 막을 내리고 만다.
“점점 날 죽여가고 있어”
모차르트는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불효자라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이때부터 모차르트의 오페라 작품 경향이 바뀌게 된다. ‘돈 조반니’ 공연 장면이 보이면서 살리에리의 고백이 이어진다.
“그의 작품에 끔찍한 형상이 등장했지. 죽은 기사장의 혼령이 무대에 우뚝 서 있었어. 난 알고 있었소. 그 무시무시한 형상은 죽음에서 소생한 아버지였지. 그는 아버지를 소생시켰던 거요. 경악과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었소. 그때부터 나의 광기가 발동하기 시작했소. 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소. 신에 대항해 끝내는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무서운 음모를….”
집에서 작곡을 하고 있는 모차르트에게 저승사자 복장을 한 사람이 찾아와 보수를 넉넉히 주겠다고 하면서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곡의 작곡을 의뢰했다. 살리에리가 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전기 작가들은 ‘레퀴엠(Requiem)’을 의뢰한 이는 살리에리가 아니라 죽은 아내를 기리고자 한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라고 증언한다. 살리에리의 고해성사가 계속된다.
“계획은 아주 간단했지만 난 두려움을 느꼈소. 먼저 진혼곡을 손에 넣은 다음 그를 죽게 만드는 것이었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자책하면서 아버지의 환상에 시달리는 것을 알고 진혼곡 작곡을 의뢰해 심리적 압박을 가할 뿐 아니라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경제적인 압박을 가했다. 모차르트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여기저기 일자리를 물색하며 돈 구할 곳을 알아보고 있었다. 음악가로서의 자존심도 접고 여러 사람에게 사정해보지만 거절당한다. 이때 모차르트의 피아노 콘체르토 d단조가 흘러나온다.
모차르트는 집에서 진혼곡을 작곡하면서 술과 약으로 고단한 삶을 견디며 점점 폐인이 된다. 아내 콘스탄체가 “여보,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돈 한푼 주지 않는 그 바보 같은 짓은 집어치워요. 왜 곡을 완성하지 않는 거죠? 이해가 안 가요”라고 하자 “점점 날 죽여가고 있어” 하고 대답한다. 모차르트가 술에 탐닉하면서 방탕한 생활에 젖어들자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온천으로 가버린다.
모차르트가 연주회에 참석했다가 쓰러진다. 이를 지켜본 살리에리는 자신의 마차로 모차르트를 집에 데려다주고 침대에 눕힌다. 모차르트가 감사의 뜻을 표하자 살리에리는 “진정으로 자넨 가장 위대한 작곡가야”라고 말해주고 모차르트의 구술을 받아 적으면서 미완성 상태인 진혼곡을 작곡한다.
모차르트가 쓰러진 사실도 모른 채 아들과 함께 돌아온 아내 콘스탄체는 써놓은 진혼곡 악보를 보고 “이건 뭐죠? 안 돼요. 여보 이건 안 돼요. 이런 작품은 다시 손대지 마세요”라고 소리친다. 누워 있는 모차르트는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모차르트의 장례식. 모차르트의 유해가 구덩이 속으로 던져지고 그 위로 횟가루가 뿌려졌다. 이때 모차르트가 작곡한 진혼곡 ‘레퀴엠’이 흘러나온다. ‘안식’을 뜻하는 라틴어인 레퀴엠은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로마 가톨릭의 장송미사에서 유래한 음악이다.
살리에리의 고해성사를 듣던 신부가 십자가를 든 채 눈물을 짓고 있다. 살리에리가 신부에게 말한다.
“당신들의 자비로운 신은 사랑하는 자녀를 파멸시켰소. 모차르트를 죽이고 날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들었소. 나의 음악은 점점 희미해져갔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희미하게…. 끝내는 아무도 연주하는 사람이 없게 됐지. 한데 모차르트의 작품은….”
영화 ‘아마데우스’는 천재 모차르트를 흠모하고 질투했던 살리에리의 이중 심리를 다룬다.
“나는 보통 사람들의 대변자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자지. 난 그 평범한 사람들 중 챔피언이요! 그들의 후원자이기도 하고!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여, 너희 죄를 사하노라!”
살리에리가 허공을 향해 외치는 장면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온다.
흠모와 질투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가 당시 서양 고전음악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 빈 무대에 등장한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밟았던 시간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천재 모차르트를 흠모하고 또 질투했던 살리에리의 이중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주옥 같은 모차르트 음악의 선율과 오페라가 펼쳐지면서 많은 작품이 어떤 동기로 만들어졌는지 드러난다. 네빌 마리너가 음악감독을 맡은 아카데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음악의 현란한 선율을 선사한다. 또한 당시의 화려한 궁중 의상을 그대로 재현한, 스케일이 큰 영화다.
F. 머레이 에브람은 방탕한 천재를 질투하다 결국 좌절하고 마는 살리에리 역을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톰 헐스는 벨벳 재킷, 하얀 가발과 경박스러운 웃음소리로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캐릭터를 재창조했다.
〈영화 속 논술·구술 워밍업〉
※문화는 ‘동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을 음미해보자.
※현대사회에서의 문화의 비중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핵심 기본 논제1〉
※영화 ‘아마데우스’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삶과 그를 질투한 살리에리의 인간적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에서 예술의 한 장르인 고전음악은 두 등장인물의 생애에 영향을 미치고, 갈등을 유발하는 중요한 소재다. 인간의 삶에서 예술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논술하시오.
〈예시 답안〉
예술이란 아름다움의 창조로 미적 완성을 갈구하는 것이다. 예술은 삶의 과정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일상생활과 대립된 정제된 삶의 정수일 수도 있다. 이처럼 예술은 우리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오고, 표현되는 형식 또한 그만큼 다채롭다.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는 예술을 접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이미 예술은 우리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술이건 음악이건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실을 재현하거나 인공적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예술 작품이 단순히 사실을 재현해야 한다면 사진이 그림보다 예술성이 더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그리고 인공적이라는 것도 반드시 예술가의 수공(手工)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이미지를 수공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도 예술가의 창조성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의 의미는 꼭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술의 조건에는 전통적인 견해 외에 또 다른 견해가 추가된다. 즉 감상자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그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수용자의 견해다. 작가의 시각과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수용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감흥을 주느냐가 예술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글쓰기를 예로 들어보자. 아무리 뛰어난 형식을 갖추고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큰 의미를 지닌다 해도 독자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글은 그 의미가 없다. 물론 작품 자체가 지니는 형식과 의미도, 작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는 주제의식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작품이 어떤 고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도, 그것이 수용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예술은 삶의 반영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개념의 예술이든 간단한 생필품의 디자인이든 삶을 그대로 담아낼 때 사람들에게 깊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예술은 시대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산물이며 인간의 내재된 모습을 현시적으로 표현하는 거울이다.
침대에 앉아 신부에게 힘겹게 고해성사하는 살리에리.
※현대사회와 미래사회의 주요한 코드인 ‘소프트 파워’에 대하여 말해보시오.
〈예시 답안〉
문화적 힘을 일컫는 ‘소프트 파워’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의미하는 하드 파워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소프트 파워는 문화보다 상위 개념이기도 하고, 제품·기술, 그리고 정보와 구분되는 고품질의 ‘문화 콘텐츠’를 주로 가리킵니다.
이미 현대사회는 감성을 중시하는 소프트 파워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국가의 수준은 하드 파워가 아닌 소프트 파워에 좌우됩니다. 국민 수준도 개개인의 ‘소프트 마인드’에 달려 있습니다. 문화적 힘이 국가와 기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기술사회 혹은 정보사회에서는 기술과 제품에 디자인을 첨부하는 순서로 제품이 생산되지만, 감성을 추구하는 드림 소사이어티에서는 디자인에 기술을 적용합니다. 소비자의 통념을 깨뜨리는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인이 설계되면 기술력을 거기에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프트 파워가 하드 파워보다 먼저 고려되는 것입니다. 또한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획은 그 자체로 높은 부가가치를 갖는 상품 생산의 진정한 출발점이 됩니다. 같은 기술력을 보유한 제품이라도 매혹적인 디자인이나 테마를 갖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부가가치 창출에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와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주체적이고 보편적인 코드는 소프트 파워, 즉 문화의 힘입니다. 이러한 진단은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에 주목하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준거(準據)입니다.
*관련 기출문제*
※아래 제시문을 참고하여, 예술적 감성과 사회적 환경의 관계에 대하여 논술문을 작성하시오. 예술의 한 분야를 선택하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체험을 적절히 활용하시오.(고려대 1996학년도 정시)
제시문
음악은 인간의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의 전형으로 간주되어왔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형태를 동경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음악회에 참석한 청중이 자기를 잊고 연주회에 빠져드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체험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예술적 감성에 근거한다.
음악은 만인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나, 시대·연령·계층별로 애호하는 음악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음악에 대한 기호(嗜好)는 학습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제한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예술적 취향에는 사회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Tip〉
●예술적 감성이 사회적 환경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묻는 문제다. 이 제시문은 두 개의 문단으로 돼 있는데 각각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다. 첫째 문단은 예술적 감성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것이라는 주장이고, 둘째 문단은 예술적 감성은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예시 답안〉
(음악의 경우) 문화라는 말을 넓은 뜻으로 사용할 때에는 학문과 도덕과 예술의 세 영역을 모두 포함한다. 학문은 지적인 능력에 의해, 도덕은 양심에 의해, 예술은 감성적인 능력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다. 문화적 수준은 학문과 도덕과 예술의 총합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 볼 때, 문화는 예술의 영역을 지칭한다. 예술이란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하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다. 예술은 다른 모든 인간의 활동처럼 사회적 상황의 소산이고, 예술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문화의 한 분야인 예술은 사회 구성원, 즉 대중의 삶과 생활에 깊숙이 내재돼 있다.
음악은 가장 내면적이고 주관적이며 자유로운 삶의 내용을 가진 것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여러 음악이 각기 다른 사회적 상황에서 탄생한 것임에도 감동을 주는 까닭은 진한 예술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은 예술로 독립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의 소산임을 부인할 수 없다.
프랑스 혁명의 전조를 알린 작품으로 알려진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귀족이 지배하던 당시에 평민 출신인 피가로가 백작과 1대 1로 맞서는 장면이 등장한다.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에서 영감을 얻어 교향곡 ‘영웅’을 작곡했다. ‘영웅’에서 장송 행진곡은 특정한 의미가 결여된 추상적인 비탄이 아니라 혁명적인 감정으로 가득 찬 영웅의 비탄이다. 이처럼 예술은 사회적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회성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음악의 양면성을 이해해야 한다. 음악은 인간의 근원적 상실감, 영혼의 갈구, 인생의 무상함 등 인간의 감성적인 내면을 표현하는 실존의 소리인 동시에, 공동체의 감정 전달 수단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음악의 정신적 깊이와 전달의 넓이를 인정해야 한다. 음악은 감정의 표출과 사회적 공정성 사이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음악이 감상적으로 치우쳐 사회적 정의감에 대한 무관심을 은연중에 조장해서는 안 된다. 또한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함으로써 인간 심성의 불변적인 요인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소홀해서도 안 될 것이다.
*관련 기출문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서울대 2005학년도 모의 논술고사)
1. 이 글의 필자가 비판하는 ‘천재’의 개념은 어떠한 것인지 요약하여 200자 원고지 4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2.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천재’의 개념을 유추(類推)하여 모차르트가 가진 천재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 200자 원고지 2000자 내외로 서술하되, 이 글에서 언급된 ‘천재’의 개념에 본인이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지를 밝히고 자기 주장을 보강하는 다른 사례를 더 들면서 제목을 달아 한 편의 완성된 글로 작성하시오.
제시문
우리는 천재적 재능의 성숙이 그 개인의 인간적 운명과는 별개로 완성되는 자동적이고 내면적인 과정이라는 생각과 드물지 않게 마주치게 된다. 이런 생각은 위대한 예술작품의 창조가 그 창조자의 사회적 실존, 즉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그의 성장과정이나 그의 체험과는 무관하다는 관념과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모차르트 전기들은 종종 예술가 모차르트와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일을 인간 모차르트에 대한 이해와 분리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분리는 인위적일 뿐만 아니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까닭에 불필요하다. 우리가 가진 현 수준의 지식으로는 한 예술가의 사회적 실존과 작품들 간의 상호연관성을 칼로 해부하듯 펼쳐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탐침으로 내장을 진찰하듯이 탐사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천재의 비밀을 미화하는 것은 현재의 문명 수준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깊은 욕구를 충족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미화는 위대한 인물들을 신격화하는 형태 중의 하나로서 그 이면에는 평범한 사람들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쪽을 인간 수준 이상으로 높임으로써 다른 쪽을 낮추는 것이다.
한 예술가의 업적에 대한 이해와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그 작품과 인간 사회 속에서 그의 운명과의 연관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약화되기보다는 오히려 깊어지고 강화될 수 있다. 특출한 재능, 또는 모차르트 시대의 용어로 말한다면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특성을 뜻하는 ‘천재’는 그의 사회적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들 중에 하나이며 이런 점에서 천재가 아닌 범인들의 범상한 재능과 꼭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다.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의 경우에는 ‘예술가’와 ‘인간’의 관계가 연구자들에게 특별히 혼란스럽게 보이는데, 그 까닭은 서신이나 보고서 또는 다른 증거 자료들에서 나타나는 그의 이미지가 천재에 대한 선입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길거리에서 모차르트와 마주친다면 그는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할 평범한 한 인간일 것이다. 그는 때때로 유치한 행동을 했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똥과 관련된 비유를 거침없이 늘어놓기도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애정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짧은 성년기에 왕성하게 발산한 성욕이나 아내와 청중의 사랑에 대한 끝없는 갈구에서 잘 드러난다.
문제는 평범한 범인의 모든 동물적 욕망을 두루 갖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듣는 이들의 모든 동물성을 씻어주는 듯한 순수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음악의 특징을 ‘심오한’ ‘다정다감한’ ‘고상한’이나 ‘비밀스러운’ 등의 개념으로 나타낸다. 이런 음악은 범상한 인간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속하는 듯하며 그 세계에서는 인간의 승화되지 못한 측면들을 기억하는 일조차 거슬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낭만주의적 이원론이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명백한 까닭이 있다. 이 이원론은 현재의 발전 수준에서는 자신의 동물성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문명인의 거듭된 확인과 성찰이나 다름없다. 천재의 이상적 이미지는 각자가 자신의 정신성을 지키기 위해 육체성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이는 군대의 동맹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싸움터를 이동시켰다. 이런 식으로 천재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비밀과 그의 비천재적 인간성을 각각 다른 서랍 속에 넣어두는 이분법은 바로 유럽 사상계에 깊이 자리잡은 비인간적 측면을 표현한다. 이는 극복되지 못한 문명적 문제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Tip〉
●제시문은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관점인 모차르트=천재(天才), 살리에리=범인(凡人)이라는 내용을 반영한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이 제시문을 읽었다면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볼 때 흥미 위주로만 보지 말고 영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를 나름대로 파악하면서 감상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천재라는 것이 통상 생각하듯이 범인과 다른 특출한 재능을 가진 예외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모차르트가 대표적인 사례로서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문화(문명)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재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가 영화 ‘아마데우스’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논제1
이 글의 필자는 천재를 개인의 인간적 운명과는 별개의 것으로 이해한다. 천재는 자동적이고 내면적인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고 여기는 것. 따라서 천재의 개념을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고 살아온 성장과정이나 체험과는 무관한 것으로 이해한다. 결국 천재의 특성이라고 꼽히는 업적과 비천재적인 현실의 삶을 이분화하는 것이다. 천재의 인간적인 측면을 버리고 천재적인 요소만 부각함으로써 천재를 미화하고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천재를 일반인과는 다른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현실을 통해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천재적 요소로 인해 자연히 천재가 됐다고 간주한다. 천재는 범인과 다른 특출한 재능을 지닌 예외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논제2
제목 : 천재는 사회적 산물
사람들은 흔히 천재의 탄생이 개인의 사회적 실존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천재는 선천적인 재능으로만 형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천재의 이미지는 천재의 특성이라고 분류되는 업적과 비천재적인 일상의 삶을 분리해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천재를 미화하거나 신격화하고 싶어하는 범인(凡人)의 소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인이 자신의 평범함에 대항해 만족을 느끼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즉 천재의 현실적인 삶보다 그의 업적에만 치중해 지극히 평범한 자신들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러나 천재에 대한 이런 개념은 옳지 않다. 천재는 현실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현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현실을 초월하는 존재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탄생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재는 사회 실존의 산물로서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이해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재능이나 특성으로 봐야 한다. 결국 사회적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들 중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모차르트는 천재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관과는 동떨어진 사생활을 영위했다. 그가 천재적인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에만 주목, 그의 업적과 현실적인 삶을 분리해 인식한 것이다. 결국 작품과 인간성을 연관하여 모차르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삶과는 별개로 그의 작품을 평가해 천재에 대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우를 범했다.
그러나 실제 그의 삶을 이해하면 그의 작품은 더욱 생명력을 발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동물적 욕망을 지닌 그가 오히려 그 동물성을 씻어주는 순수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현실 속에서 그의 실존과 작품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차르트는 동물적 욕망을 억누르고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동물적 욕망을 예술이라는 도구로 승화했다고 이해해야 한다. 천재는 현실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현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현실 속에서 탄생한 존재다. 현실을 남과 달리 민감하게 느끼고 이해하여 업적이나 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람인 것이다.
모차르트가 지닌 천재적 이미지는 다른 천재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조국이 폭격을 당했을 때 고통받고 불안에 떨던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한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천재 감독 나운규 또한 일제 강점기의 암울하고 불안한 시대상을 ‘아리랑’이란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 이런 예는 단순히 인문학이나 예술 분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관심을 가져온 분야 역시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란 천재는 정보화 사회의 시대적 산물이다. 빌 게이츠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발명해 정보화 사회가 온 것이 아니라,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그의 천재성이 완전하게 발휘됐기에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발명된 것이다.
천재라는 개념은 여러 경우에서 보듯이 사회적 실존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천재가 평범한 범인들보다 현실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재능과 그것을 소화해 승화시키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천재의 타고난 재능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요소다.
천재의 업적은 그의 재능과 현실이 밀접하게 연관을 맺으면서 창조된다. 만약 모차르트가 현실과 단절됐다면 그의 재능만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천재라는 개념을 그가 타고난 재능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실존까지 확대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관련 기출문제*
제시문 (가), (나)를 참조하여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다)의 밑줄 친 역사적 권위의 해체 현상에 대한 견해를 논술하시오. 900~1000자. (가톨릭대 2005학년도 수시 1학기)
제시문
(가) 소문을 들으니 누군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준 식물은 잘 자라고 헤비메탈을 들려준 식물은 성장이 시원치 않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 또 육각수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말은 들은 적도 있다. 육각수라 하면 물 분자의 결합 상태가 가장 건강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모차르트의 음악은 물 분자를 육각수로 만들고 헤비메탈은 그것을 산만하게 만들어놓는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몸은 대부분 물로 되어 있으니 모차르트의 음악이 인간의 몸에 좋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나) 대중이 대중문화에 거는 기대는 꽤 큽니다. 그리고 통속성에 대한 비판 또한 그만큼 크죠. 대중문화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조금만 따뜻하고 너그러울 수 있다면 우리는 대중문화를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가수인지 배우인지 모르는 친구들이 국적 없는 문화를 퍼뜨린다고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보고, 액션, 호러 영화에 내용이 없다고 질책하기보다는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보는 것이 오히려 대중문화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일 것입니다. “재미있긴 한데 남는 게 없어” 하고 말하기보다는 “야, 그거 재미 하나는 끝내주는데”라고 말해보자는 거죠.
(다) 성웅(聖雄) 이순신. 전란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그가 요괴를 퇴치하는 판타지의 주인공이 된다면? 큰 뜻을 품지 않은 한량이라면? 최근 대중문화계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파격적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영웅 이순신’의 이미지를 벗어나 ‘이순신 새로 보기’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젊은이들이 국가 권위의 상징인 태극기로 머리나 몸을 감싸는 발상의 전환을 했듯이,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순신들이 나오고 있다. 이순신이라는 아이콘을 SF나 판타지 등 대중문화적 요소와 처음 결합한 것은 서울 광화문 앞의 이순신 동상이 ‘유쾌 상쾌 통쾌’라고 외치는 한 통신 회사의 광고였다. 이후 이순신 장군을 그 상품의 이름을 딴 ‘○○○○장군’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권위의 해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문제 해결을 위한 Tip〉
●제시문 (가)에서는 대중문화를 부정적으로 (나)에서는 대중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는 대중문화를 통해 이순신 장군을 파격적으로 해석하는 사례와 국가 권위의 상징이던 태극기가 월드컵 경기에서 응원 도구로 사용된 실례를 들면서 이를 ‘역사적 권위의 해체’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하여 (가)처럼 부정적으로 보는지, (나)처럼 긍정적으로 보는지 선택하여 논술하면 된다.
●역사적 권위의 해체란 권위를 가진 상징이 기존의 고정된 가치와 달리 새롭게 재해석, 재창조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중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가)의 견해에서는 역사적 권위의 해체가 대중문화의 수용자에게 역사적 권위의 상징물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고 기존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해석을 내릴 수 있다. 한편 대중문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나)의 견해에서 보면, 역사적 권위를 해체함으로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재해석과 재창조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예시 답안〉
대중문화에 대해 상반되는 두 시각이 존재한다. 제시문 (가)와 같이 대중문화는 질이 낮고 인간의 정서를 저해하는 문화라는 부정적 시각이 있다. 반면 제시문 (나)처럼 대중문화는 일반인이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대중문화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생성되고 발전한다. 대중문화의 소재는 제시문 (다)와 같이 권위의 상징을 파격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역사적 권위의 해체’에 도전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대중문화가 어떤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다양한 이미지 변신을 통하여 대중에게 다가가는 긍정적인 시도라고 본다. 대중문화는 사람들이 다양한 감성과 욕구, 열망을 표출하도록 이끌며 문화적 욕구를 실현하게 한다.
따라서 대중문화에 대해 기존 문화와 비교해 우열의 가치를 말할 것이 아니라 여가의 한 방법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대중문화는 사회 구성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상의 고루함을 깨뜨리고 개인의 문화적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분출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대중문화는 고정된 이미지인 역사적 권위를 다양하고 자유로운 사고로 해체해 재해석과 창조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이는 그동안의 고정관념과 역사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움직임이며, 바람직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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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는 범접할 수 없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실추될 수도 있고 다른 의미로 재해석될 수도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파급효과가 큰 대중문화에서의 역사적 권위 해체는 사회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직적 관계의 문화가 수평적 관계의 문화로 바뀌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역사적 권위의 해체는 다양함을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필연적인 현상이며, 기존의 권위에 짓눌려 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