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조합과 구청은 아직도 “조합 규약상 총회 결의 사항은 재적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의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또 “1999년 6월 총회(대우건설에서 변경한 제안을 수용할지 논의한 회의)에서 (변경안에) 동의한 조합원은 특별 결의의 정족수를 만족하는 3분의 2 이상이었다”고 말한다. 조합이 집합건물법이라는 규정은 무시하고 비교적 규정이 느슨한 조합규약을 내세워 재건축 변경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구청은 한술 더 떠 “사업승인이 나기 전까지 사업계획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조합과 시공사 간의 문제이지 구청이 간여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강서구청이 조합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한 재건축 사업을 승인했다는 점이다.
2000년 조합은 대우건설과 본계약을 체결했다. 조합은 2001년 6월 동·호수 추첨총회를 개최할 당시 총회장 입구에 재건축 결의 및 사업시행 동의서를 비치했다. 문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본인은 1995년 6월 재건축 결의시 결의서에 첨부한 서류에서 건물철거 및 신건물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분담과 건물 구분 소유권 귀속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해 동의했고, 1999년 5월15일 정기총회에서 조합규약에 의거한 가계약 안에 찬성하여 가결한 바 있고, 그후 대우건설과의 본 계약 및 분양계약에 의하여 구체적 내용이 아래와 같이 확정된 것을 인정하고 이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무상 지분율이 최초 117.2%에서 108.6%로 줄어든 것을 인정한다는 것. 조합원들은 총회장 앞에서 대우건설과 조합이 고용한 진행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사업시행 동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조합에서 총회에 앞서 조합원들에게 사업시행 동의 여부는 찬반 투표로 결정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에 자신이 도장을 찍은 서류가 동의서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서면결의로 결국 조합원 781명 중 686명(87.8%)이 무상 지분율 감소를 찬성한 셈이 됐다.
‘결격사유 있어도 밀어붙이기’
그렇다면 조합은 왜 2001년 동·호수 추첨총회를 이용해 편법으로 재건축 결의서를 다시 받은 것일까. 이에 대해 조합은 일부 조합원이 문제를 삼아 재차 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르다. 재건축업계에 밝은 B씨는 “재건축 결의를 할 때 구분 소유자나 조합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일단 결격사유가 있더라도 밀어붙인 뒤 나중에 ‘공사가 이미 진행됐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설득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총회 이후 일부 조합원들이 총회 의결무효 확인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은 ‘모두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이기 때문에 소(訴)의 이익이 없다’는 취지로 각하했다. 또 대법원은 ‘2001년 6월의 서면결의로 모든 결격 사유가 치유됐다’는 이유를 들어 또다시 각하했다. 조합원들은 대우건설의 변경안에 찬성했기 때문에 더는 지분율 감소를 이유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대우건설의 주장대로 공사비가 실제로 2600억원에서 3600억원으로 증가했다면 조합원의 무상 지분율을 117.2%에서 108.6%로 줄이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만약 실제 공사비가 2600억원인데도 조합원의 무상 지분율을 줄였다면 대우건설은 조합원을 속여 부당이익을 얻은 셈이다.
대우건설이 화곡동 시범아파트 재건축에 투여한 공사비는 강서구청에 제출된 재건축 관련 자료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데 사업 초기뿐 아니라 사업이 끝난 시점에서도 공사비가 3600억원이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1999년까지 조합이 조합원들에게 받은 재건축 결의 및 사업시행동의서엔 공사비가 2600억원으로 표시돼 있다. 2000년 3월23일(사업승인 이후) 남상국 사장(2004년 자살)이 노동부에 제출한 ‘관리책임자 등 선임 보고서’엔 공사비가 2300억원으로 표시돼 있다. 사업이 종료된 2002년 10월, 대우건설이 구청에 사용 검사를 받기 위해 제출한 ‘안전관리비 상용현황’이란 자료에도 공사비는 2570억원으로 기재돼 있다.
그렇다면 대우건설은 어떤 이유로 3600억원의 공사비를 주장하는 것일까. 대우건설이 내세운 주요 공사비 인상요인은 고도(高度)제한 강화와 암반 토출로 인한 토목 공사비 증가, 건설자재 가격 인상 등이다. 이 가운데 물가 인상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건설 중간재 가격이 30% 정도 오른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도제한과 암반 공사비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먼저 고도제한부터 살펴보자. 화곡동 시범아파트는 김포공항 인근에 위치해 공항고도 지구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건물을 신축할 때는 고도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주변에 자연지형이 있을 경우에는 그 자연지형의 높이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조합은 1993년 서울지방항공청에 문의한 결과, 재건축사업을 할 경우 인근 수명산 고도(72.3m)까지 건축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우건설도 1995년 시공사 선정 당시 이를 근거로 설계계획안과 공사비를 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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