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초부터 북미관계가 심상찮다. 워싱턴에서 가한 위조지폐 압박에 평양은 격렬히 반발하고 나섰고, 1월중 열릴 것이라던 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는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미 행정부 내부에서도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로 대표되는 ‘협상파’의 목소리 대신 ‘강경파’의 주장에 급격히 힘이 실리는 형국.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의 배후에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차관이 있다고 지목한다. ‘마지막 네오콘 전사’라는 조지프 차관은 누구이고, 워싱턴 강경파의 속내는 무엇인가.
로버트 조지프 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왼쪽)과 김계관 6자회담 북한측 수석대표(아래).
사건 직후 미 재무부는 오랜 침묵을 깨고 “북한이 100달러 지폐를 정교하게 위조했으며, 위조담배와 마약밀매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어 미 당국은 “중국 마카오 소재의 (중국계) 델타아시아은행(Banco Delta Asia·BDA)이 북한인들로 하여금 위조화폐를 유통시키고 여타 불법행위를 하도록 도와준 혐의가 있어 ‘돈세탁 우선 우려대상(primary money-laundering concern)’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미 애국법(Patriot Act) 제311조에 따라 미국계 은행은 앞으로 BDA와 거래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발표가 전해지자 BDA가 곧 망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마카오 일대에 삽시간에 퍼지면서 예금 인출사태가 벌어졌고, 결국 수일 후 중국 금융 당국은 BDA를 잠정 폐쇄하기에 이른다.
당시에는 많은 이가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들 사건은 모두 2005년 9월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이 채택된 시점을 전후해 일어났다. BDA 사건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은 2005년 11월 중순 5차 6자회담 1단계 회의에서야 이 문제를 언급했다. 이때 김계관 북측 수석대표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수석대표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할 만큼 강하게 반발했다. 김 대표의 반응은, 북한이 이른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심증을 갖기에 충분할 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북한의 태도는 “미국이 금융제재를 철회하지 않는 한 6자회담에 나가지 않겠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불법행위 문제는 6자회담과는 별개”라는 반응을 보이며 여느 때와는 달리 비로소 북한의 급소를 발견하고 표정 관리에 들어간 듯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주변국이 BDA가 북한의 중요한 외화 유입 창구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이 창구가 막히게 됐으므로 앞으로 북한은 상당히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관계자들 사이에서 미 국무부 비확산담당 로버트 조지프(Robert Joseph) 차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대북 금융제재를 비롯한 모든 ‘작전’이 조지프 차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언뜻 위조지폐나 마약 문제가 어떻게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문제와 관련이 있는지 의문을 가질 법도 하지만, 조지프 차관의 논리는 단순명쾌하다. 이러한 불법행위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WMD 개발과 확산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비확산부서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네오콘 전사’
조지프 차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군축 및 비확산 문제 전문가다.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플레처 외교법률대학원, 튤래인 대학, 칼턴 대학 등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미 국방대학교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안보 문제 연구에 전념했다. 이후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방부에 들어가 국제안보정책 담당 부차관보를 역임했고, 다시 국방대학교로 돌아갔다가 집권1기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비확산담당 선임보좌관으로 일했다. 2005년에는 존 볼튼 차관(현 유엔대사)의 뒤를 이어 2기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비확산담당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대계 미국인인 조지프 차관은 1기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신보수주의자) 네트워크의 핵심인사로 거명되곤 했다. 이 시기 정부부처만 놓고 보면 딕 체니 부통령이 가장 고위직 네오콘이었고, 특히 그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와 보좌관인 에릭 알더만이 체니 부통령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NSC에서는 엘리엇 아브람스 보좌관과 로버트 조지프 보좌관이, 국무부에서는 볼튼 차관과 폴라 도브리안스키 국제문제담당 차관이 네오콘으로 분류됐고, 국방부에서는 폴 월포위츠 부장관과 더글러스 페이스 차관이 네오콘 그룹에 속했다.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이들 네오콘의 상당수는 1기 때의 자리를 떠났다. 리비 비서실장이 CIA 직원의 신원유출 스캔들로 사임했고, 볼튼 차관이 유엔대사로, 월포위츠 부장관이 세계은행 총재로 자리를 옮겼으며, 더글러스 페이스 차관이 행정부를 떠났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볼튼 차관의 뒤를 이어 국무부 비확산담당 차관으로 발탁된 로버트 조지프는, 네오콘 네트워크 내에서 다소 비중이 낮은 알더만 보좌관과 도브리안스키 차관을 제외하면 2기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네오콘 전사’라 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 안팎의 네오콘들은 불량국가 및 테러집단의 WMD 획득을 저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노력을 통해 ‘위협이 가해지기 전에 위협요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 네오콘은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다자적 접근방식으로는 의심스러운 국가의 WMD를 검증(verification)할 수 없다고 판단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이들은 핵비확산조약(NPT)이나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생물무기제한협정(BWC)과 같은 기존의 다자간 비확산(non-proliferation) 체제 강화에 소극적이고, 대신 미국이 ‘핵전략 우위(nuclear strategic superiority)’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 불량국가나 테러집단의 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라고 본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네오콘의 반확산 전략을 입안한 주인공이 바로 조지프 차관이라는 점이다. 조지프 차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핵 테러’다.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팀은 물론 안보분야 전문가들을 통틀어 WMD에 의한 대미(對美) 테러 가능성을 가장 먼저 경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핵과 테러가 만날 경우, 다시 말해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갈 경우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이라는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조지프 차관은 9·11 테러 이전인 1999년 3월23일 미 국방대학교 반확산센터 소장 자격으로 행한 상원의회 군사위원회 증언에서 핵·생물·화학무기(NBC)에 의한 테러 가능성을 강력하게 경고한 바 있다. 이 증언에서 그는 과거의 억지(deterrence) 모델만 갖고서는 NBC 위협에 대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 미국과 소련은 상호이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대칭적인 이해와 위험에 기초한 억지, 즉 합리성에 바탕을 둔 억지전략을 수행해 효과를 보았지만, 북한(당시 조지프 차관은 알 카에다를 명시하지는 않았다)과 같은 나라에는 이러한 전략이 먹힐 리 없다…적(敵)이 NBC를 보유해봐야 별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대량 보복전략과 방어전략을 함께 갖출 필요가 있다”는 역설이었다.
“먼저 자금줄을 죄어라”
조지프 차관은 이후 미 공공정책연구소의 용역을 받아 ‘미국의 핵능력과 군비통제를 위한 논리와 요건(Rationale and Requirements for U.S. Nuclear Forces and Arms Control)’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2002년에 발표한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의 모태가 됐다. 냉전시대의 보복적 핵 능력에만 의존하는 전략태세로는 21세기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적절치 못하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NPR은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은 어떠한 무력공세도 저지할 수 있는 일정 범위의 핵·비핵 옵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불특정 대상으로부터의 불특정 수단에 의한 ‘비대칭 위협(asymmetric threat)’이 증가한 현재의 국제질서 속에서는 소극적인 방어 시스템으로는 ‘억지’가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 위협을 제거하는 쪽으로 전략개념을 변경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NPR은 핵무기에만 의존해온 기존의 삼중점 시스템(Triad System·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 미사일, 전략폭격기로 이뤄진 반격태세)을 ▲핵 및 비핵무기를 조합한 공격적 타격 시스템 구축 ▲미사일 방어(MD)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 방어체계 구축 ▲새로운 위협에 적시(適時) 대처할 수 있도록 방어 인프라를 강화하는 방안 등 ‘새로운 삼중점(New Triad)’ 체제로 흡수·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NPR은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대상국으로 핵 보유국인 러시아와 중국 외에,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바 있는 북한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 7개국을 지목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조지프 차관이 2005년 11월9일 카네기재단 주최 국제비확산세미나에서 한 연설(‘부시 행정부의 WMD 비확산 접근법’)과 12월9일 버지니아대 밀러센터에서 한 연설(‘WMD 확산 대응 방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조합한 공격적 타격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는 한편, 경제적 수단을 적절히 활용해 공세적인 반확산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여 년간 미 행정부는 약 20개국의 정부·비정부 조직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해왔는데, 극히 위험한 WMD 확산 사례에 대해선 유엔 안보리가 직접 경제제재를 가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조지프 차관은 WMD 확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 1540’에 따라 모든 국가가 WMD 프로그램 관련 수출과 거래에 연관된 자금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 2005년 9월 BDA에 대한 우려대상 지정조치를 비롯한 대북 금융제재가 어떤 배경에서 이뤄진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유엔 결의안 1540’에 입각해 2005년 7월 G8 정상들은 WMD 확산과 관련된 재정거래와 자산을 찾아내고, 추적하고, 동결하는 데 협력함으로써 이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은 G8 정상회담 직후 WMD 확산활동과 연관된 조직, 개인, 협조자들의 재산을 동결하고 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미 정부에 부여한 행정명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스터 PSI’
조지프 차관이 반확산 공세전략 못지 않게 중시하는 것이 바로 방어전략이다. 그 대표적인 수단은 바로 미사일 방어(MD)다. 조지프 차관은 앞서 언급한 버지니아대 연설에서 WMD를 탑재한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반격 능력의 개선, 적대적 WMD 제거 능력 강화, WMD 공격을 당했을 경우의 사후관리체제 완비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조지프 차관은 NSC 보좌관 시절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입안하고 실행한 주역이니만큼 ‘미스터 PSI’로 불릴 만하다. 그는 PSI야말로 WMD 확산을 억지·와해·방지하는 메커니즘으로, 외교·군사·경제·정보·법 집행 등을 ‘창조적으로’ 결합한 WMD확산 방어시스템이라고 본다. PSI 참여국들은 상호협력하에 이러한 수단을 융통성 있게 동원함으로써 대량살상무기를 실어나르는 선박을 제지하거나 WMD 확산 네트워크를 와해시키고 확산활동의 선봉에 선 기업이나 조직의 활동을 찾아내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프 차관은 반(反)확산 전략의 극적인 성공사례로 파키스탄 칸(Khan) 박사의 핵무기 네트워크를 와해시킨 일과 리비아가 핵·화학무기·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만든 경우를 꼽는다. 그는 특히 모든 정보와 수단을 동원해 칸 박사의 핵무기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수천개의 원심분리기 부품이 ‘BBC China’라고 하는 선박을 통해 리비아로 간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과의 PSI 협력을 통해 결국 선박을 제지해 관련 부품을 압수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BBC China 제지 작전’이 성공한 후 아랍에미리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말레이시아, 터키, 몇몇 유럽국가의 도움을 얻어 칸 박사의 네트워크를 최종적으로 파악해 와해시킬 수 있었고, 그 핵심 인물들에 대한 조사와 구속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조지프 차관에게는 일종의 ‘무용담’인 셈이다.
여기서 조지프 차관이 가장 극적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은, BBC China 선박이 나포된 지 두 달 만에 리비아가 WMD 포기를 선언하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그는 리비아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첫째, 리비아 핵무기 프로그램의 실체가 노출되고 상당부분 와해 직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는 점. 둘째, 이라크 침공을 통해 (결국 WMD를 찾지는 못했지만) 미국을 비롯해 영국과 기타 동맹국들의 WMD 비확산 및 반확산에 대한 의지가 증명됐다는 점. 셋째, 국제 비확산 규범을 준수할 경우 향유하게 될 잠재적 이득을 리비아가 충분히 인지하고 받아들인 점이다.
세 가지 도전
조지프 차관은 앞서 언급한 반확산 공세 및 방어전략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세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첫 번째 도전은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다. 조지프 차관은 6자회담 공동성명이 ‘주목할 만한 발전’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공동성명 발표 직후 북한이 경수로를 요구한 것에서 보듯, 북한의 비핵화와 검증을 위한 상세한 이행방안에 대해 합의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본다. 북한이 미국의 금융제재와 관련해 반발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조지프 차관은 불법행위 문제와 북핵 6자회담은 상호 별개라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북한의 핵확산 가능성과 불법행위로부터 미국을 보호할 수 있는 방어조치들을 취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이란 핵 문제에 대해 조지프 차관은 이 문제가 북한 핵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EU 트로이카(영국·독일·프랑스), 러시아, 인도, 중국과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 나가되, 이란이 끝내 협상을 거부하거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IAEA 이사회는 즉각 유엔 안보리에 이 문제를 회부해야 한다고 본다.
조지프 차관이 언급한 미국의 두 번째 도전은 불량국가나 개인, 단체에 의한 WMD 확산거래를 종료시키는 일이다. 다양한 국제적 노력과 더불어 PSI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조지프 차관은 2005년 10월 중앙아시아로 날아가 이 지역 국가들로부터 PSI에 대한 지원과 참여를 이끌어냈다.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보좌관. | 제이 레프코위츠 미 북한인권 특사. |
중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WMD 확산을 기도하는 국가나 단체들이 통과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예를 들어 북한과 이란이 항공로를 통해 ‘거래’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곳이 중앙아시아다. 조지프 차관이 중앙아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이 국가들은 자국의 영공이 WMD 확산 기도세력에 의해 ‘남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그의 처지에서는 상당한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네오콘이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국의 마지막 도전은 테러리스트들이 WMD를 획득해 사용하는 것을 막는 일이다. 조지프 차관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핵 테러’ 위험을 가장 먼저 경고한 인물이다. 그는 잘 조직된 테러그룹이 적절한 기술적 전문성을 갖추는 경우, WMD 무기체계가 아닌 관련 물질 정도만 손에 넣게 돼도 일종의 ‘더러운 폭탄(dirty bomb)’ 형태로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를 막으려면 WMD 관련 물질을 줄여 나가기 위해 범세계적으로 협력하는 동시에, 이들 물질을 추적해낼 능력을 함양하고 불법거래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 “단 한 개의 핵 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핵 물질이라도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이 남아 있는 이상 우리는 발 뻗고 쉴 수 없다”는 조지프 차관의 말은 심각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2006년 벽두부터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미국 행정부 네오콘들의 태도는 매우 원칙적이다. 따라서 향후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 매우 단호한 행보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불법행위 문제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외교무대의 주연배우였지만, 불법행위 문제가 6자회담 과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되면서 로버트 조지프 차관이 새로운 주연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2004년 7월 방한한 라이스 국무장관(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은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됐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이야기를 나누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리비아식 북핵 해법에 대한 선호도를 확연히 드러낸 바 있다. 라이스 보좌관은 이때 “북한은 고농축우라늄(HEU) 핵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해, 미국은 HEU 문제를 회피한 채 플루토늄 핵 문제만을 다루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한 라이스 보좌관은 “북한이 핵 활동을 중지하고 국제사찰을 받고 진정한 핵 폐기를 결정하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될지 북한은 놀랄 것”이라고 말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북한을 향한 미국의 ‘과감한 접근(bold approach)’이 본격화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미국 내 언론과의 인터뷰나 연설문(상원 인사청문회 포함) 등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 라이스 장관의 북핵 문제에 대한 소신은 이러한 유화 제스처와는 달리 매우 단호하다. 라이스 장관은 수차례에 걸쳐 “미국은 북한과 같은 정권에 대해 단호하고 과단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우선 억지력을 명백하게 표현해야 한다. 즉 그들이 WMD를 획득해 사용하려 할 경우 국가 소멸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는 무기가 되리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조지프 차관의 소신과 유사한 ‘단호한 대응’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원칙적인 자세는 빅터 차 NSC 아시아담당 보좌관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포린 어페어스’ 2002년 5~6월호에 실린 기고문에서 ‘매파식 관여(hawk engagement)’ 정책을 역설한 바 있다. 핵심내용은 “관여(engagement)는 (추후 상대방이 관여를 거부하거나 악용할 경우) 응징을 위한 토대”라는 믿음에 기초를 둔 정책이라는 것이었다.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의 페리 보고서에 대한 공화당 진영의 대항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아미티지 보고서’가 주장하듯, ‘한층 강화된 외교적 해결책이 실패한 원인은 북한에 있다’는 공감대가 북한을 제외한 관련 당사국들 사이에 형성되어야만 압박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연대가 가능해진다. 이른바 5대1 포위구조다.
양날의 압박
1기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이른바 ‘선제공격 독트린’을 카드로 활용했고, 이는 국제사회에 ‘부시 행정부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선제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때문에 북한 핵개발의 원인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때문이라는 북한의 ‘선전전’에 이용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른바 역(逆) 5대 1 구도가 그려지면서 관여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2기 행정부에 들어서면서 매파식 관여정책은 본격적으로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제까지 주역을 담당하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신 로버트 조지프 차관이 새로운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더욱 견고한 형태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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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볼튼 차관과 달리 ‘말없는 행동파’의 모습을 지닌 조지프 차관은 드러내놓고 자신의 ‘악역’을 입으로 강조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북한이 미국의 ‘말’보다는 ‘행동’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고위 당국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가 북한의 불법행위가 근절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추가 금융제재를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2006년 한 해 동안에는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 특사의 얼굴도 매스컴을 통해 자주 보게 될 듯하다. 부시 행정부는 인권 문제 또한 북한 정권을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향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압박과 인권 침해에 대한 압박을 양 날개로 삼아 북한의 비핵화라는 종착역을 향해 날아가는 독수리의 형상을 띨 것이다. 북한이 과연 독수리의 비상(飛上)을 어떻게 저지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