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석 파문’으로 전국이 들썩일 때 황우석 교수 연구실에 소속된 일부 연구원들은 황 교수나 선배 연구원들을 통해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매일 아침 날아드는 신문에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씩 알아갔다고 한다. 사람 좋아 보이는 황 교수도 연구실에서는 ‘군림하는 자’였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의사 개진이 자유로운 연구실이라면 파문이 그처럼 커지도록 연구원들이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듯 폐쇄적인 분위기가 한국의 이공계 연구실에서는 일반적이라는 사실이다.
과학자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황 교수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려운 여건에서도 연구를 계속하게끔 밀어주는 정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유능한 과학자 상당수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 이공계 전공자들은 기회만 된다면 해외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싶어한다.
국내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인이 탁월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행정부 모 부처 연구관 자리를 제안받았다. 한 방송사가 바다 건너까지 그를 찾아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뉴스로도 보도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자유로운 연구활동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는 “연구직 공무원이 많지도 않은데,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국회의원실의 이런저런 자료 요청에 응하면서 마음 편하게 연구에 매달릴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월화수목금금금’
이공계 대학원 과정은 학문의 진리를 탐구하는 핵심 중 핵심이다. 하지만 그 기능은 이미 오래 전 변질되었다. 진리 탐구보다는 취업을 위한 하나의 코스로 그 색깔이 변한 것이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진리 탐구라는 막연한 동경심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은 한두 학기를 거치면서 고민거리를 떠안게 된다.
우선 연구실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황우석 교수 연구실도 그랬다지만, ‘월화수목금금금’이 그런 사례다. 도무지 개인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일주일에 단 하루, 종교활동을 위해 연구실을 비우는 것조차 못마땅해하는 지도교수 때문에 고민하는 대학원생을 상담한 적이 있다.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에 뼈를 묻을 각오로 연구에 임해주길 바란다. 빠른 시일 내에 성과물을 내고 싶어하는 지도교수로서는 이를 당연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대학원 교육은 철저한 도제식이다. 맨투맨 방식으로 교수에게서 기술과 실험방법을 전수한다. 연구실 선배로부터 전수하기도 한다. 언론에서 실험실의 군대식 문화를 비판한 적이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구조가 남성 중심적인데다 군대를 다녀온 연구원도 많기 때문에 연구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군대식으로 흐르는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지도교수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연구실 내 최고 선임자다. 지도교수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논문 봐주고, 졸업 시키고, 능력이 닿는다면 취업 알선까지 신경 써주는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매일 마주치는 선배들은 실험실 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다.
석사과정 등 2∼3년의 과정을 밟고 졸업하는 연구원에게 그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무척 짧은 시간이다. 그냥 실험만 하다가 자기 논문 주제에 맞게 결과를 추려 논문을 내고 졸업하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터줏대감으로 눌러앉은 선배들의 충고가 귀찮다. 그냥 자기 뜻대로 실험을 진행하고 싶어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잔소리하는 선배 연구원이나 지도교수가 미워지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들어가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 결국 과정을 못 마치고 연구실을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부분의 연구실은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실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수립한 연구방법을 고수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해서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연구해보겠다는 생각은 이루기 어려운 ‘상상’이다. 박사과정 정도가 되어도 지도교수가 고려해줄까, 말까다.
박사급 연구원에 ‘충성서약’ 강요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의 지시에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다. 지도교수는 학생의 논문을 지도하고 대학원 생활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기에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학생들에게는 규율이요 철칙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유교문화적 존경심은 대학원 과정에 오면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
요즘은 좀 상황이 다른가 보다. 최근 한 대학의 연구실에서 연구실 구성원 전원에게 각서를 쓰게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문제의 각서는 지도교수의 지시사항을 잘 따르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일종의 ‘충성서약’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각서에 대해 문제를 삼고 불만을 토로한 사람은 그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수과정(Post-Doc.)을 밟고 있는 연구원이었다. 박사급 연구원에게까지 각서를 쓰라고 했다는 얘기라 좀체 믿기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 일이 벌어진 것은 황우석 교수 파문이 막 불거졌을 때다.
문서화한 각서의 효력이 민사소송으로 갈 수 있다고 보면 이제는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의 지시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황우석 교수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김선종 연구원을 지목해 검찰에 고발한 것을 보면 이미 그런 일이 현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과학 강연회나 과학영재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왜 과학고나 영재고에 진학하려 하는가” 하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다. 의대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부모님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같은 순수기초학문 분야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우리의 암담한 과학교육 현실이다.
교육과정이 대학입시 위주로 시행되는 한, 제대로 된 과학교육이 이뤄지긴 어렵고, 그런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과학자의 길에 들어섰을 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난감하다. 왜곡된 교육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이공계 대학 신입생들의 기초학력 저하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학의 미적분도 모르고 공대에 진학하다니 참담할 뿐이다.
아무튼 어려운 과정을 다 거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 진로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속한 연구 분야에서 정말 실력이 있다고 인정받고 논문 실적도 우수하다면 즉각 교수로 임용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교수 자리 하나를 놓고 선배 교수들이 저마다 자신의 인맥을 대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후보자가 임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필자가 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잠깐 귀국했을 때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서 대학교수 임용에 얽힌 돈거래를 다룬 적이 있다. 국립대, 사립대, 심지어 전문대 교수 임용에까지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는 방송을 보며 대학교수의 꿈은 내 머릿속에서 멀어져갔다.
나와 함께 연구실 생활을 하다 먼저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 한 분은 지방 전문대에서 전임교수 임용 제안을 받고 면접을 하는데, 학교측에서 대놓고 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학교측 요구에 응하지 않았더니 전임교수 자리엔 다른 사람이 임용됐다.
교수 임용 다음으로 많이 선택하는 진로가 박사 후 연수과정, 이른바 ‘포스트닥’이다. 대학이나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정액의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활동하는 것이다. 포스트닥은 국내에서 할 수도 있고, 해외에서 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 연구활동을 해보면 국내 연구실 문화와 워낙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대개는 귀국하지 않으려고 한다. 외국에서는 기초과학 분야 연구비를 풍족하게 지원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주제를 갖고 마음껏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연구원의 창의력과 연구에 대한 집중력이 향상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자기가 생각한 것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데 시간가는 줄 모르는 건 당연하다. 밤샘 작업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연구실 매니저’
외국의 경우 연구실 행정 및 연구비 관리를 전담하는 연구실 매니저가 따로 있어 교수는 강의와 연구, 논문지도와 연구비 확충에만 전념하면 된다.
필자가 박사과정을 밟은 호주의 한 대학엔 학과 행정조교 외에 연구실 매니저(Lab Manager)가 따로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는데,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처리해주는 ‘해결사’였다. 시약(試藥)과 기자재 구입부터 연구원들의 불만까지 해결해주는 게 그의 임무였다. 지도교수는 강의, 논문지도, 연구활동, 그리고 연구비 확충에 전념한다. 연구비 관리도 매니저가 담당했다. 연구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출장을 가게 되면 책임연구원의 손에 주유카드까지 쥐어줬다. 연구원의 급여는 2주에 한 번씩 정확하게 지급됐다.
세 번째 진로는 교수 임용을 바라다 ‘보따리장사’, 즉 시간강사로 전락하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시간강사를 하는 경우 대부분 가정을 꾸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간강사는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압박과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강의한 시간만큼 급여가 책정되니 늘 불안하다. 더욱이 방학 때는 강사료가 지급되지 않아 꼼짝없이 석 달간 실업자 생활을 해야 한다. 배우자가 맞벌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대책이 없다.
생활고를 못 이긴 시간강사가 자살한 사건이 일어난 후 강사료가 조금 오르긴 했지만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표도 나지 않을 만큼의 소폭 상승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계지출도 커진다. 긴급 가계자금 대출이라도 해보려고 은행 상담창구에 갔다가 1분 만에 퇴짜를 맞았다. 시간강사는 ‘은행권에서 인정하지 않는 직종’이라고 했다. 수입원이 불안정하고 근로소득세 근거도 불확실해 어쩔 수 없다는 게 은행측의 설명이었다.
과학자에게 조국이 있을까?
시간강사라도 하면 그나마 낫다. 그 자리도 못 구하는 박사가 훨씬 많다. “이제 이공계에선 교수직도 끝”이라는 어느 노(老)교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내 눈은 자꾸 해외를 기웃거린다. 과학자에게 조국이 있을까.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공부해서 남 주냐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과학자는 공부해서 남에게 줄 마음가짐이 돼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어려운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끔 봉사하려고 공부하는 것이지 자신의 명예와 출세를 위해서 과학기술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업적을 일궈냈는가는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뒤 후세가 평가하는 것이다.
박사급 연구원들의 월 급여는 대략 150만원, 석사급 연구원들은 70만∼80만원이다. 물론 연구소마다 또는 연구팀마다, 그리고 연구비 보유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연구비를 많이 받는 연구팀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린다. BK21 사업이나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NURI) 팀으로 선정돼 많은 연구비를 집행하는 팀에 합류하면 그래도 좀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금액도 못 받는 연구원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학회활동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공계 대학원 진학생 수가 줄어드니 학회에 참석하는 연구원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학회 회원자격을 대학원생부터로 제한하고 있다. 외국처럼 일반인도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학술활동 참여자 폭을 넓혀 일반인도 연구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일본에서는 일반 회사원이 노벨상을 받았듯 우리도 일반인에게 과학적 흥미와 관심분야에 대한 연구를 독려해야 한다.
과학자들의 의견에 귀기울이는 정부 당국의 자세를 기대해본다. 지금부터라도 바닥부터 점검하며 새롭게 시작한다면 우리도 훌륭한 과학자를 양성하고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과 육성이 지금보다 몇 배 더 활성화되어 마음 놓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