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노년기의 ‘고개 숙인’ 남성들에겐 남성 호르몬 요법이 큰 관심사 중 하나다. ‘회춘의 묘약’으로 알려진 남성 호르몬. 하지만 의학계에선 남성 호르몬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라고 경고한다. 남성 갱년기의 실체는 무엇이며, 남성호르몬 요법은 어디까지 유효할까.
홍씨는 지난 35년간 하루 1갑 정도 담배를 피워왔고, 아랫배 비만을 달고 다녔으며, 3년 전부터는 고혈압 약물까지 복용하고 있다. 혈액검사를 해보니 홍씨의 남성 호르몬(테스토스테론)은 정상 상태(12nmol/L)의 3분의 1 수준으로 그 외의 이상현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홍씨를 일단 노화에 따른 남성 갱년기로 진단하고 경구용 남성 호르몬 제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호르몬 요법 3개월 후. 홍씨를 괴롭히던 정서불안, 집중력 저하, 성욕 감퇴 증상 등 갱년기 증상은 일부 호전됐으나 발기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혈액검사상 남성 호르몬 수치는 치료 전보다 7.2nmol/L까지 높아졌으나 정상치에 미치진 못했다.
의료진은 경구용 대신 바르는 남성 호르몬을 처방한 후 발기부전 증상에 대해선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를 추가로 처방했다. 또한 금연을 강력히 권했고, 적당한 운동도 추천했다. 다시 3개월 후 홍씨의 남성 호르몬 수치는 정상으로 회복됐고, 이러저러한 갱년기 증상도 모두 사라졌다. 요즘은 발기부전 치료제 없이도 활기찬 성생활을 하고 있다.
20세기의 100년 동안 인간의 수명은 25년 이상 연장됐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와 노력, 기술개발이 만들어놓은 이 경이로운 결과물은 이제 사회문제가 됐으며 일부 학자들은 고령화를 또 다른 사회적 재앙에 비유하기도 한다. 의학의 급속한 발전은 수명만 늘려놓았을 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삶의 질을 그만큼 높여놓진 못했다. 즉 늘어난 수명만큼의 기간은 ‘장애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의학계의 관심이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삶의 질 향상으로 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중 한 줄기가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남성 노화에 대한 연구다.
남성 노화·갱년기 원인 모호
여성 대부분이 50세를 전후해 생식선 기능의 갑작스러운 감퇴와 함께 갱년기를 겪는 반면, 남성은 남성 호르몬이 서서히 줄어드는 까닭에 생식능력의 저하도 그만큼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노화 과정에 동반되는 신체 기능의 점진적 저하현상이 주요 장기뿐 아니라 호르몬의 분비와 작용을 관장하는 내분비계에서도 일어나기 때문.
문제는 남성에게 노화나 갱년기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 질환이 명백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노화나 갱년기 장애가 남성 호르몬의 분비기능 저하, 성장 호르몬 결핍, 갑상선 기능 저하증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이들이 노화과정에서 그냥 동반되는 현상인지, 실제 내분비계의 변화 때문에 발생하는지, 또 다른 질환의 결과물인지 확실치 않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남성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남성 호르몬이 감소한다는 점이며 노화의 과정에서 특정 형태의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의학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보편적으로 ‘남성 갱년기’라 표현한다.
갱년기 진단 신중해야
남성이 노인이 되면 흔히 복부에 지방이 쌓이고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는 반면 생활 활력도, 근육의 힘과 양, 성욕, 성적 활성도, 수면 중 발기현상, 골밀도 등은 감소한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있다고 무조건 갱년기라고 진단할 수는 없다. 성선(性線·생식선) 기능저하증이 있는 젊은 남성에게서도 이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데다 정작 남성 갱년기에는 이런 증상이 모호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남성 노인에게 나타나는 이런 증상과 증후들이 남성 호르몬 수치의 감소와 직접적 상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성장 호르몬을 비롯한 생리학적 기능 전반의 저하, 심리적 위축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도 이런 증상이 일어날 수 있으며, 남성 호르몬의 수치는 신체활동의 저하, 식이의 변화, 다른 질환의 후유증 등의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남성 노인에게 ‘남성 호르몬 결핍’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도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남성 갱년기 증상 |
남성 갱년기 진단 문항 ① 성적(性的) 흥미가 감소했다. ② 기력이 몹시 떨어졌다. ③ 근력이나 지구력이 떨어졌다. ④ 키가 줄었다. ⑤ 삶에 대한 즐거움을 잃었다. ⑥ 슬프거나 불안감이 있다. ⑦ 발기의 강도가 떨어졌다. ⑧ 운동할 때 민첩성이 떨어졌다. ⑨ 저녁식사 뒤 바로 졸립다. ⑩ 최근 일의 능률이 떨어졌다. ①과③이 그렇다 이거나 다른 3개문항이 그렇다 면 남성호르몬 결핍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자료 :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
그렇다면 의료계에서 남성 갱년기를 진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임상증상에 대한 확인결과 남성 갱년기의 가능성이 있고, 검사를 통해 남성 호르몬이 저하되어 있으면 갱년기라고 진단한다. 문제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남성 갱년기 점수 산출 문항이 아직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
국내에서도 남성갱년기학회에서 각 5점씩 20문항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도 보편화된 것은 아니다. 남성 호르몬의 감소에 의한 남성 갱년기 증상은 성욕 및 발기력 감퇴(특히 밤이나 새벽의 발기력 감퇴), 특별한 요인이 없는 정서 불안이나 지적 능력 또는 체력 감소, 피곤함·우울증·빈혈증, 체모 감소와 피부 변화, 근육의 양이나 강도의 약화, 골밀도 감소로 인한 골다공증, 지방질 증가 등이다.
어쨌든 임상 증상 확인과 호르몬 검사 결과 남성 호르몬 결핍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면 호르몬 보충요법을 시행할 수 있다. 단, 여기에는 남성 호르몬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가령 전립선암, 그리고 남성에겐 드물지만 유방암이 있는 경우엔 절대 이 요법을 쓰지 못한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인한 중등도 이상의 하부요로폐색 증상이 있는 경우에도 대부분 이 요법을 쓰지 않는다. 적혈구 증가증도 마찬가지. 호르몬 보충요법을 쓴 후 적혈구 용적률(hematocrit)이 50%를 초과하는 경우 혈전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면 무호흡증은 증상에 따라 처방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다양한 요법, 다양한 장단점
남성 호르몬 보충요법에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요소는 투여 약물의 효능이다. 이상적인 테스토스테론 제제는 호르몬 부족증상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고, 투여방법이 간편하면서 투여된 호르몬의 신체반응 결과가 생리적 일간 변동양상과 비슷하며, 값이 저렴해야 한다. 현재 시중에는 여러 종류의 테스토스테론 제제가 상품으로 나와 있지만 저마다 장단점이 따로 있다.
일반적으로 경구제제는 먹으면 간에서 대부분 흡수돼 효과가 거의 상실되는 까닭에 고용량을 투여해왔다. 하지만 이 경우 간에 흡수된 테스토스테론 제제가 독성을 일으킬 수 있어 지금은 간독성 문제를 해결한 제제들이 사용된다. 이런 복용약물은 삼키면 되기 때문에 주사나 피부 부착형보다 투여가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약물의 혈중 흡수 정도가 개인마다 달라 남성 호르몬 수치를 정기적으로 측정해야 하고, 한번 약물을 복용했을 때 효과가 6~8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등장한 피부 부착용 테스토스테론 제제는 음낭 부착용과 일반 피부 부착용으로 나뉜다. 이들은 매일 한 번씩 교환해 붙이면 적절한 혈중농도가 유지되고 언제든지 떼어낼 수 있는 반면, 보기에 좋지 않고 부착 부위에 가려움증이나 두드러기 같은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어 많이 사용되진 않는다.
근육주사용 남성 호르몬 제제는 효과가 2~3주일 지속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주사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정상 상한선보다 높게 유지되다가 다음 주사를 맞기 직전에는 혈중농도가 정상보다 낮아지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는 비교적 적당한 정도로 혈중 남성 호르몬 농도를 유지하며 효과가 3~4개월 지속되는 주사제가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겔 형태의 테스토스테론 제제는 바른 지 2시간이 지나면 혈중 테스토스테론치가 2~3배, 24시간이 지나면 4∼5배로 증가하며, 치료를 중단하면 원상태로 돌아오는 데 4일이나 걸린다. 테스토스테론겔은 최근 3개월간 치료경과를 관찰한 대단위 임상시험에서 도포 다음날 정상범위의 혈중 수치에 도달하고 관찰 기간에 일정한 수치를 유지한다는 것이 입증됐다.
호르몬 요법의 금기사항
호르몬 보충요법도 약물로 하는 까닭에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부작용은 고밀도 콜레스테롤(이른바 ‘좋은 콜레스레롤’·HDL-cholesterol)의 감소, 적혈구 증가증, 수면무호흡증, 전립선질환 악화 등이다. 이중 고밀도 콜레스테롤의 감소는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해 발생하므로 보충해주면 회복된다. 하지만 전립선질환의 일종인 전립선비대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립선은 나이가 들면 자연적으로 커지면서 전립선 비대증을 일으킨다. 이상한 점은 남성 호르몬이 부족한 갱년기 환자를 관찰한 결과 일반적으로 전립선 비대가 관찰되지 않았으며, 남성 호르몬 보충요법을 쓴 후 전립선의 크기는 증가했지만 대개 동년배 정상인의 전립선 크기 이상으로는 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요류(소변의 흐름) 속도는 약간 감소했지만,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치는 아니었다.
반면 전립선암은 사정이 사뭇 다르다. 남성 호르몬 요법이 상황을 크게 악화시키기도 하므로 앞서 설명한 대로 전립선암이 의심되는 환자에게는 이 요법을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남성 호르몬 요법이 전립선암 자체를 유발하는지에 대해선 밝혀진 게 없다. 최근 일단의 연구진이 테스토스테론 제제가 전립선암을 직접 유발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한 적이 있지만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한 현실이다. 남성 호르몬 요법을 진행하면서 혈중 테스토스테론이 정상치 이하로 내려가면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고, 역으로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저돌적인 성격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남성 호르몬 보충요법은 치료의 목적과 득실, 투여제제의 장단점 등에 대해 전문의와 충분히 상의한 후 실시해야 한다. 남성 호르몬을 투여한 후 2~3개월이 지나도 효과가 없으면 혈중 남성 호르몬 농도를 다시 측정해 정상범위 이하이면 호르몬의 용량을 높여준다. 그래도 치료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는 치료효과(성욕, 근력의 증가, 골다공증의 예방)와 부작용(전립선 비대증 악화, 혈중 지질 변화, 수면무호흡증 발생, 잠복 전립선암 악화, 적혈구 증가증 등)을 비교해 치료를 지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환자 본인의 의사지만, 증상 호전이 없는 60세 이상의 환자들은 치료를 중단하는 게 좋다.
남성 갱년기 환자에 대한 남성 호르몬 보충요법은 반드시 병력(病歷), 각종 검사결과를 분석해 치료대상임을 확인한 후 시행해야 한다. 혈중 테스토스테론치가 정상범위 이하인 저(低)테스토스테론 혈증은 2번 이상의 혈액검사(반드시 아침에 실시) 결과 지속적으로 테스토스테론치가 감소된 것으로 나와야 확진할 수 있다. 호르몬 보충요법의 적응증이 확실하면 나이가 많아도 상관없으며, 성선기능 저하증 환자는 대개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을 평생 받아야 한다.
활기찬 노후 보장
그러나 속발성(급성) 성선기능 저하증이 의심되는 환자는 내분비 검사가 완료돼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보충요법을 해서는 안 된다.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을 시작하기 전에 모든 환자는 전립선암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하고, 가벼운 전립선 비대증 환자는 보충요법을 받아도 별 무리는 없지만 심한 배뇨장애 환자는 절대 이 요법을 피해야 한다. 또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은 혈중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 수치의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유방암이 있는 남성에게 이 요법이 금기인 것은 이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을 받기 시작한 환자는 3~6개월 간격으로 반드시 추적검사를 받아야 한다. 치료에 대한 반응과 요로폐쇄 증상 등 부작용에 대한 병력 조사, 직장(直腸) 수지검사(항문을 통한 촉진 검사)에서 특이소견이 없으면 매년 혈중 지질, 전해질, 적혈구 용적률 등의 실험실 검사를 받는 게 좋다. 남성 호르몬 보충요법을 하는 중에 혈중 테스토스테론치가 오르내림을 반복할 수 있는데(특히 근육주사제의 경우), 이때 투여용량은 혈중 테스토스테론치와 상관없이 임상소견으로 판단해 조절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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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갱년기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남성 호르몬 보충요법이 20∼30대의 젊음을 약속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주름진 얼굴에 흰머리가 무성하더라도 젊은이 못지않은 자신감, 밝은 기분으로 노후를 보내고 싶다면 선택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