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은행도 마트도 필요 없는 ‘일상의 혁명’ 온다

이더리움과 스마트 계약

  • 입력2017-09-1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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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비트코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지난 1월 초만 하더라도 1비트코인당 가격은 900달러대였다. 그런데 그 사이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8월 13일 4078달러를 기록했다. 2011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1비트코인당 가격은 1달러도 채 되지 않았다. 6년 만에 가치가 4000배 이상 오른 것이다.

    비트코인처럼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또 다른 가상화폐가 있다. 이더리움(Ethereum)이다. 이더리움은 여러 가상화폐 중 최근 가격이 가장 많이 상승했다. 상승세 측면에서 비트코인을 누른 진정한 ‘대세’다.

    이더리움은 2015년 7월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화폐단위는 ‘이더(ETH)’다. 가격은 올해 들어 갑자기 폭등하기 시작했다. 올 초 1이더당 가격은 10달러를 밑돌았다. 그런데 지난 6월 12일에는 무려 356달러에 거래됐다. 가격이 35배 이상 뛴 것이다. 이후 8월에 접어들면서 1이더당 300달러 근처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더리움 가격이 폭등한 것은 그만큼 이더리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높다는 방증이다. 지금의 이더리움 가격 폭등 현상을 단순히 가상화폐에 대한 거품으로만 보긴 어렵다. 이더리움이 가상화폐를 제공하는 플랫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은 일명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이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이 플랫폼은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미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한 거래 서비스가 출시되어 있고, 앞으로도 많이 나올 예정이다. 주식, 엔터테인먼트, 전력, 사업 운영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분야는 매우 다양하고,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정리하면 비트코인과 달리 이더리움은 ‘전에 없는 거래 시스템’을 제공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고 따라서 가격이 폭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더리움이 제공하는 서비스란 무엇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더리움의 핵심 플랫폼인 ‘스마트 계약’에 주목해야 한다.





    비트코인 누른 ‘대세’

    스마트 계약은 블록체인(Blockchain·가상화폐로 거래할 때 해킹을 막기 위한 기술) 분야에서 고도화된 플랫폼이다. 간혹 스마트 계약은 ‘블록체인 2.0’이라고도 불린다. 블록체인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비트코인이다.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개발자가 2008년 비트코인 논문에서 처음으로 블록체인을 언급했다. 비트코인은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듬해인 2009년 도입됐는데, 각 국가의 통화정책 통제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중앙국가의 통제 없이 화폐 거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분산형 원장(元帳)’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존 중앙 관리 방식은 이렇다. 서비스 내에서 발생한 중요 정보는 모두 중앙 서버에 기록되고 관리된다. 반면 블록체인은 중요 정보를 중앙 서버가 아닌 ‘모두의’, 즉 서비스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의 기기에 저장하고 관리한다. 비트코인을 예로 들면, 비트코인에서 발생한 모든 거래는 비트코인 소유자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 등에 기록된다. 참고로 블록체인 참여자는 ‘노드’라 하고, 노드에 기록된 정보 저장소는 ‘장부’라고 한다.

    블록체인의 이러한 운영 방식은 사용자에게 네 가지 이점을 제공한다. 첫째, 위·변조가 거의 불가능하다. 블록체인은 노드의 장부가 서로 같은지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런데 기록된 장부 중에는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다. 가장 많이 기록된 것으로 장부 내용을 수정한다. 가령 A장부와 B장부가 있는데, 서로 장부 내용이 다르다고 가정하자. 이때 A장부와 동일하게 기록된 장부가 B장부와 동일하게 기록된 장부보다 많다면 B장부의 내용은 A장부의 내용으로 수정된다.
     
    이러한 블록체인은 악의적인 위·변조를 어렵게 한다. 해커가 비트코인의 거래 장부를 조작한다고 가정해보자. 조작이 성공하려면 해커는 비트코인 참여자 중 과반의 계정을 해킹해 이들 장부를 동시에 위·변조해야 한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수억 명의 비트코인 사용자를 찾아내 절반 이상을 해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사 해킹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장부를 동시에 조작해야 하므로 알파고보다 훨씬 우수한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해커가 글로벌 기업 수준이 아닌 이상 그런 슈퍼컴퓨터는 구하기 어렵다.

    중앙아메리카의 온두라스는 이러한 블록체인의 특성에 착안해 블록체인을 토지 계약 시스템에 적용하는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블록체인에 토지 계약 정보가 기록되면 위·변조할 수 없기 때문에 조작 부정을 방지할 수 있다. 동유럽의 소국 조지아도 부정부패 이미지 개선을 위해 토지 대장을 블록체인과 연계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위·변조 안 되고 은폐도 없고

    둘째, 투명하다. 블록체인에는 중앙 관리자가 없다. 중요 정보를 은폐 없이 ‘그대로’ ‘모든’ 기기에 기록한다. 2014년 스페인의 신생 정당 포데모스(Podemos)는 이러한 블록체인의 장점을 적극 활용했다.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 시스템인 아고라 보팅(Agora Voting)을 도입한 것이다.

    셋째, 개인정보 보호가 가능하다. 블록체인에서 발생한 정보는 모든 참여자의 기기에 기록된다. 그런데 개인에게 중요한 정보가 그대로 기록된다면 개인정보 보호에 큰 위해를 가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유형의 블록체인 플랫폼은 데이터를 암호화해 저장함으로써 개인정보를 보호한다. 비트코인에 사용된 블록체인은 공개키 암호화 방식으로 개인의 거래 내용을 보호한다.

    마지막으로 블록체인은 서비스 공급자의 운영 비용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다.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사업자는 데이터 저장을 위한 스토리지, 이를 보호하기 위한 보안 장비를 구매, 운영할 필요가 없다. 액센츄어(Accenture)가 글로벌 거대 기업 10곳을 조사한 결과 블록체인 적용으로 서비스 운영에 드는 비용을 기존 대비 30%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우리는 사물인터넷으로 인해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로 접어들고 있다. 사물인터넷에서 생성한 데이터를 모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의 운영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블록체인의 매력은 더욱 돋보이게 된다. 참고로 가트너(Gartner)는 2020년이 되면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될 기기 수가 200억 개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개인 간 거래 활성화…

    스마트 계약은 블록체인이 가진 특성에 자동화 결제 시스템이 더해진 플랫폼이다. 스마트 계약의 개념은 1994년 컴퓨터 과학자 닉 사보(Nick Szabo)가 처음 제안했다. 이 개념은 이더리움에 최초로 구현되었다.

    이더리움의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이 둘의 한계점을 깨닫고 이를 보완한 새로운 가상화폐를 개발하고자 했다. 그는 2013년 대학교를 중퇴하고 스마트 계약을 적용한 이더리움 개발에 성공했다.

    이더리움으로는 거래가 자동으로 이뤄지게 할 수 있다. 개인 간 도서 구매를 예로 들어보자. A가 이더리움으로 B에게서 책을 한 권 산다고 할 때, A는 B에게 책값을 이더로 입금한다. 이때 이더는 사용이 불가하다. B는 택배로 책을 A에게 보낸다. A가 책을 받고 나서 B가 거래를 이행했음을 승인한다. 이제 B는 A로부터 입금받은 이더를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거래는 완료된다. 만일 A가 책을 받지 못했거나, A가 약속한 것보다 적은 이더를 입금했다면 제3자가 이를 중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이더리움을 사용하면 거래가 간편해질 뿐만 아니라 중계 기관을 스마트 계약 시스템으로 대체함으로써 여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중계 기관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고, 중계 기관이 검증하는 데 드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더리움은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 이더리움을 적용한 시스템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가늠해보자.

    이더리움은 현재 금융기관에서 많이 활용되는데, EEA(Enterprise Ethereum Alliance)가 대표적이다. EEA는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이룬 연합체다.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이 기술 파트너로 참여한다. 금융기관으로는 크레딧스위스, JP모건, ING 등이 있다. 지난 2월 설립된 EEA의 우선 목표는 중개기관 없이 외환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 금융계는 굵직한 업체들이 참여한 EEA의 향배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오락 분야에도 이더리움을 적용할 수 있다. 싱귤러 DTV(Singular DTV)는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가 중간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하는 플랫폼이다. 이더리움 플랫폼 안에서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면 해당 콘텐츠를 바로 보거나 들을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이다. 현재 개발 중이다. 

    이더리움은 전력 거래 분야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전 세계 2000만 고객을 확보한 독일 에너지 기업 RWE는 최근 이더리움 기반 스타트업 슬록(Slock)과 함께 전기자동차 충전 거래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에는 머문 시간만큼 요금이 책정돼 불합리하다. RWE는 실제로 충천한 전기량만큼 요금이 부과되는 방식을 개발 중이다. 사전에 충전할 양과 금액을 스마트 계약으로 입력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슬록은 전기차 충전 외에도 가정용 에너지 거래 부문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사업도 이더리움으로?!

    심지어 회사 운영도 이더리움으로 할 수 있다. 이더리움은 ‘DAO(탈중앙화조직)’ 플랫폼을 개발했다. DAO는 회사 운영을 위한 플랫폼인데, 독특한 점은 순수 외주 방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사업 제안이 들어오면 DAO 참가자들이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이더를 가진 사람들이 DAO 플랫폼에 참가할 수 있는데, 이더가 많을수록 의사 결정 권한이 강해진다. DAO에는 주주(이더 갖고 있는 이더리움 사용자) 이외에 ‘계약인’이 있다. 계약인은 사업이 계약대로 진행되는지 점검하고 관리한다.

    이외에도 이더리움은 보험 거래, 개인인증 등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거래’가 있는 분야라면 어디든지 활용할 수 있다. 이더리움을 통한 개인 간 스마트 계약이 일상 속에 공기처럼 자리 잡을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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