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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친구 같았기에 두려웠던 스승 길현모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잊지 말게”

  • 구본형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소장 bhgoo@bhgoo.com

친구 같았기에 두려웠던 스승 길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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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교수를 꿈꾸게 한 것도, 대학교수의 길을 포기하게 한 것도 길현모 교수님이다. 나는 지금도 인생의 고비마다 친구 같은 스승인 길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결정한다.
친구 같았기에 두려웠던 스승 길현모

교수 시절의 길현모 선생님(가운데). 그의 강의는 언제나 학생들을 매료시켰다.

내게는 스승이 한 분 계시다. 삶의 한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그분은 거기 서 계셨고, 인생의 갈림길마다 나는 그분에게 갈 길을 물어보곤 했다. 물론 직접 찾아가 물어본 것은 아니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은 지금도 계속된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3년 초, 대학 입학 면접장에서였다. 당시 나는 재수의 피곤함에서 벗어나 얼른 대학에 들어와 젊음을 발산하고 싶은 풋내기였다.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뭘 하고 싶나?”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싶습니다.”

“교수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선생이며 학자입니다. 그러나 선생이기 이전에 학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럴 듯한 대답이라고 만족스럽게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내 대답이 별로 만족스러운 것 같지 않았다. 나처럼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이 30년도 더 된 대화의 한 끝을 기억하고 있음은 신기한 일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어떤 부분은 매우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만큼 선생님은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마다 커다란 지혜를 주셨다.

선생님 앞에서 한 담배질

선생님을 생각하면 대학 시절 몇 개의 장면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들곤 한다.

1970년대 젊은이들은 주로 술을 퍼마시며 한 시절을 보내곤 했다. 입시에 치여 지낸 새내기들에게 대학은 유토피아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릴 수 있는 자유가 숨통을 틔어주곤 했다. 라일락 꽃이 활짝 피어날 때면 술을 사가지고 교정에 들어가서 그 향기를 맡으며 마시기도 했다.

역사학과는 짝도 잘 맞았다. 여학생 15명에 남학생 15명이었다. 3일에 소연(小宴), 5일에 대연(大宴)을 베풀며 술을 마셔댔다. 어느 날인가, 그날도 술을 마시다 문득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는 선생님댁으로 쳐들어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때 선생님댁은 성북초등학교 앞의 운치 있는 한옥이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작은 뜰이 정겨운 집이었다.

술이 좀 오른 풋내기들 앞에 선생님은 술과 안주를 내놓으셨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자네들 담배 피우나?”

대부분 골초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재떨이를 가져다주시며 담배를 피우라고 하셨다. 아무도 피우지 못했다. 선생님 앞에서 담배질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술과 달리 담배는 대단히 건방지고 껄렁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당시 결코 용납되지 않는 무례였다. 그러자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면 그 생각이 많이 나고, 결국 방을 나갔다 들어왔다 하게 되니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으냐”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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