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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안 통하는 법정’ 꿈꾸는 전직 판사의 참회록

‘봉투’에 판결 팔고, 차 할부금은 변호사가…

  • 신 평 경북대 교수·헌법학, 변호사 lawshin@knu.ac.kr

‘로비 안 통하는 법정’ 꿈꾸는 전직 판사의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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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안 통하는 법정’ 꿈꾸는 전직 판사의 참회록

2006년 4월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모의재판. 연예인과 영화감독이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려는 유혹은 그 재판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끝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일반적 감정이다. 그 재판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가 바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거기에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연고주의가 강하게 지배한다. 판사건 누구건 연고를 무시하고 처신하면 거만하고 무례한 인간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에서 판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린 경험이 몇 번씩은 있다.

지독한 연고주의, 서열주의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인이 설사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더라도 법관이 되는 것을 막았고, 또 법관으로 발령했더라도 중요한 자리에는 배치하지 않으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대한 일제의 변명은 ‘반도 출신들은 연고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연고주의의 실상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도 읽을 수 있다. 다산은 이 책에서 자신이 고을 수령이 된 후 일가친척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어떻게 접대해 인심을 잃지 않았는지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도대체 일가친척 접대가 고을수령의 직무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필자가 일본에 유학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가졌을 법한 일본사회가 연고주의에서만큼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일본도 우리처럼 수직적 네트워크를 가진 사회이다.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엄격하게 구별해 네 편, 내 편 가리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그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과 상식이 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연고 같은 것을 이용해 그런 원칙과 상식을 깨려는 측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게 대응한다. 그래서 사회는 언제나 예측가능하다. 거기에 맞춰 살아가면 되니 다른 데 신경 쓰지 않아도 살아가기 편하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이런 점을 더욱 깊이 느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법조 브로커가 설쳐서 재판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최근 들어 우리도 연고주의를 극복하고 원칙에 따라 사회가 움직이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상당히 좋아지긴 했으나,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게 솔직히 인정하며 더 노력해야 우리 사회의 장래가 보장될 것이다.



사법시험은 왕조시대의 과거(科擧)를 연상시키며 치러져왔다. 지금은 상당부분 퇴색했지만 사법시험, 흔히 말하는 고등고시에 합격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인증으로 치부됐다. 그런 가운데 극심한 특권의식이 자리잡았다. 사법부에서 하는 일은 절대 오류가 없고, 설사 조그마한 잘못이 있어도 이는 사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수습할 수 있으니 외부인은 여기에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등산을 할 때도 서열에 따라 발걸음을 맞춰야 한다는 그 지독한 권위주의와 서열의식이 자신의 양심과 법률에 따라서만 재판을 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원칙과 결코 상종할 수 없다.

철밥통 ‘법조 3륜’

그뿐만이 아니다. 법관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용이 터무니없이 베풀어졌다. 사법부에는 어떠한 결함도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분명히 법관의 잘못 때문에 재판이 그르쳐졌는데도, 재판은 정당했고 법관은 잘못을 전혀 범하지 않았다는 상투적인 회답이 민원인에게 돌아갔다. 이런 사건에는 국가배상청구도 허용되지 않았고, 검찰청에 고소해봤자 결과는 늘 뻔했다.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사건 당사자가 입는 손해는 너무 쉽게 무시됐다.

오직 반복되는 것은 ‘사법부는 완전무결의 조직체’라는 떠벌림이었다. 설사 부패사건이 생겨 문제의 일각이 불거져도 사건 초기단계에서 은폐하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했다. 언론도 협조했다. 검찰은 당연히, 협조 정도가 아니라 ‘공범자’로서 사건의 무마와 은폐에 무소불위의 힘을 기꺼이 빌려줬다.

최근 들어 검찰이 제대로 의식을 갖춘 법무장관들 밑에서 많이 변화했지만 아직은 멀었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은 사건, 검사 자신에 대한 평가가 상부로부터 직접적으로 내려질 수 있는 사건을 제외한 일반 사건에서는 과거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우리 판사들은 다른 나라 사법부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왜곡된 질서에 순응하기를 강요당한다. 하지만 순응하기만 하면 장래는 보장됐다. 처음에는 숨 죽이고 발걸음 하나에도 신경을 쓰며 조심해야 하지만, 엄격하게 설정된 관료체계의 순서에 따라 점점 지위가 올라간다. 후배 법관들은 선배가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웬만한 잘못은 조직이 알아서 감싸준다. 기계적으로 한번 정해진 서열은 해당 법관의 잘잘못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철저하리만큼 ‘철밥통’ 구조이다. 이에 판사들은 점점 편안함을 느끼며, 그 조직이 안겨주는 끝없는 안정감에 그게 바로 최선의 조직인 양 환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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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평 경북대 교수·헌법학, 변호사 lawshin@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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