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산업의 중심지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있는 인구 26만의 리버사이드 시를 지나 골프장으로 향하는 국도로 들어서니 고향 가는 길처럼 고즈넉하다. 끝없이 펼쳐진 오렌지 과수원 너머로 우뚝 선 바위산엔 마치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빚은 것처럼 동글동글한 바위가 널려 있고, 그 밑으로는 사막 특유의 선인장과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해 있다.
흰 대리석과 석회암 계곡에 들어선 오크퀘리 골프클럽에 도착해 발 아래 펼쳐진 코스를 내려다보니 아직도 광산 채굴을 하고 있는 듯 삭막하고 황량하다. 6년 전 폐광이 된 것을 세계적인 골프코스 설계가 길 모건이 19홀, 파72, 7002야드의 국제규격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봐온 여느 골프코스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옷을 갈아입고 퍼팅그린 옆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는데 존이라는 마셜(marshal)이 다가와 코스의 특징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핸디캡이 얼마냐, 공은 몇 개를 가지고 왔냐고 물었다. “핸디캡은 6이고, 공은 15개 갖고 있다”고 하자 그는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선인장밭이고 코스 곳곳에 연못이 있는데다 티잉 그라운드와 페어웨이가 연결되는 부분은 돌밭 낭떠러지여서 동반 골퍼를 위해 10개 정도는 추가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듣던 대로 만만치 않은 코스라는 생각이 들어 공을 20개쯤 더 구입했다. 13년 전 미국에서 제일 어렵다는 호놀룰루 쿨라우(Koolau) 코스에서 일행이 가진 공을 모두 잃어버려 플레이를 중도에서 포기한 일이 새삼 떠올랐다.
삭막한 폐광과 푸른 그린의 조화
스타터의 안내로 1번 내리막 홀(363야드)에서 티샷 순서를 정하는데, 싱글 핸디캐퍼가 시범을 보이라고 야단이다. 퍼팅그린에서 연습하던 다른 골퍼들이 돌밭 사이에 난 녹색 가르마 같은 좁은 페어웨이로 어떻게 티샷을 하는지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우리 팀은 갤러리를 의식해서인지 다소 긴장해 있었다. 갤러리가 많고 어려운 내리막 첫 홀은 몸이 풀리지 않아 미스 샷을 하기 십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호흡조절이 중요하다. 좀더 천천히 백스윙을 하고, 공을 끝까지 봐야 하며, 완벽한 톱 스윙을 해야 한다는 점을마음에 새기고 어드레스를 하면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높은 언덕의 티잉 그라운드에서 낮은 평야를 향해 내려친 공은 높이 날아올랐다 에메랄드빛 페어웨이로 떨어졌다. “굿샷!” 소리가 들려왔다. 나머지 3명의 티샷은 왼쪽, 오른쪽으로 휘면서 돌밭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상쾌한 기분으로 녹색 카펫 같은 잔디를 밟으며 공이 떨어진 곳으로 가보니 남은 거리는 100야드. 피칭웨지로 샷을 하자 옆 친구가 “핀 하이(pin high)!”라고 외쳐댄다. 그린에 올라갔더니 공이 깃대 옆에 붙어 있어 한 손으로 퍼트를 끝냈다. 첫 홀을 버디로 시작해 휘파람을 불며 그린 뒤쪽을 바라보니 산토끼 두 마리가 축하해주듯 앞발을 들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