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달러 위조 문제로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 1년을 맞은 현 시점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북한이 대외 금융거래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 재무부의 대북 금융압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시작된 것이냐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는 그 끝이 북한의 붕괴인지, 아니면 북한의 굴복에 따른 6자회담 재개인지, 그것도 아니면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가 발발하느냐는 것이다.
우리 정보 당국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북한은 매년 2월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때 노동당, 내각, 인민군 핵심간부들에게 돌리던 양주를 올해에는 수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달러 등 경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결제할 계좌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BDA에 있던 노동당 대외결제 계좌들이 모두 동결되고 이후 다른 나라 은행들도 북한 기관 명의의 계좌 개설을 거부하면서 외국 양주 회사에 수입 대금을 온라인으로 결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은 지난 3월부터 동남아 등지에서 현지인 명의를 빌려 계좌를 개설하는 식으로 대외결제 마비사태를 수습하려는 움직임이 우리 정보 당국에 포착됐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일본 ‘산케이신문’도 8월19일 북한이 동남아와 몽골, 러시아 등 10개국 23개 은행에서 현지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했다고 보도했다.
현지인 명의를 이용한 계좌 개설은 1990년대부터 북한이 미국에 의한 자산동결 위협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종종 시도했던 방안이다. 그러나 북한은 현지인 명의 계좌도 불안하게 여겨 큰 규모의 자금 결제에는 이용하지 않았다는 게 김태산 전 북한 조선체코신발기술합영회사 대표의 지적이다. 더구나 미국은 이들 현지인 명의 계좌도 포착해 해당 국가에 폐쇄를 요청한 실정이다.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금융범죄담당 차관은 8월28일 베트남, 싱가포르, 몽골 등이 이에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이 이처럼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자 미 중앙정보국(CIA)의 한 관계자는 올해 봄 우리 정보 당국과 업무 협의 때 “우리는 마침내 북한의 목줄을 쥐었다”고 표현했다는 게 앞서의 정보 당국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무부의 한 관계자도 우리 외교 당국 관계자에게 “북핵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아 불가피하게 대북 경제봉쇄를 해야 할 때 굳이 그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지 않아도 미국 독자적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최근 대북 금융압박을 통해 알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조화폐 4500만달러 이상 유통
북한도 자신들의 위기감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8월26일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확대·강화에 대해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모든 대응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6자회담에 나가고 싶으나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풀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대북 금융압박을 확대·강화하는 방안을 공개하고 나섰다. 이틀 뒤인 8월28일 대북 금융압박을 지휘하고 있는 레비 차관이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북한은 금융거래에서 완전히 고립됐으며 미국 관리들이 아시아지역 국가와 은행들에 북한과의 거래 행위가 금융 관련 신뢰도에 크게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