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계획대로 정비되면 용산역 인근 노후주택단지들은 대부분 첨단 주상복합과 초고층 빌딩 등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동부이촌동은 완전한 평지인데다 사통팔달의 교통여건을 갖췄다는 게 커다란 장점이다. 가구수 대비 전체 상업시설의 비율이 낮고 크기가 작은 상가가 많다보니 장사는 잘되는 편이지만 이용자들은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다. 실평수 25평이면 이 지역에서 아주 큰 상점에 속한다. 강남 주택가와는 달리 패션거리나 대형 고급 백화점이 없는 게 옥의 티로 꼽히기도 한다. 백화점을 이용하려면 소공동 롯데나 회현동 신세계, 반포 신세계까지 나가야 한다.
그래도 한번 이곳에 정을 붙인 사람들은 여간해서 동네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섬마을처럼 몰려 사는, 편하고 익숙한 분위기가 자아내는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차가 필요없는 동네
1998년 9월.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듯 늦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렸다. 강남에서 수입가구점을 운영하던 K씨는 거의 파산상태에서 동부이촌동에 들어왔다. 외환위기의 폭풍은 7개월 만에 그의 집을 뺏아갔고, 급작스레 돌아온 어음은 그를 한 순간에 신용불량자로 만들어버렸다. 빚에 몰린 그는 압구정동의 50평형대 아파트를 급히 처분하고 2036세대 대형 단지가 막 입주 중이던 이촌역 앞 한가람아파트 25평형을 6500만원 전세로 얻었다.
복도식 아파트에다 한 면에만 베란다가 있고 2평이 채 안되는 방 2개에 4평짜리 안방 하나, 3평의 거실, 1평 조금 넘는 화장실 한 개. 거실은 대형 TV를 볼 만한 거리에 못미쳤고, 싱크대의 음식물 찌꺼기 냄새가 안방까지 밀려드는 듯했다. 아내와 세 자녀는 무엇보다 절반으로 줄어든 주거공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많은 가구를 다 처분하고 안방엔 장롱 하나, 침대 하나만 겨우 들일 수 있었다. 아이들 방은 몸만 겨우 뉠 수 있는 형편이었다.
K씨는 좋은 점만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이겨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촌동 조기 축구회에 가입하고 공무원시장에 조그마한 공간을 얻어 인테리어 가게를 냈다. 시장 상인들을 사귀면서 한창 입주 중인 동부이촌동 새 아파트의 개조공사와 헌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를 따내기 시작했다. 밤 9시쯤 가게문을 닫고 공무원시장 한켠에서 치킨 반 마리에 소주 1병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너무도 가벼웠다.
조금씩 수입도 늘어갔다. 작은 집에 들어오면 ‘아직도 내 곁에 남아준 아내와 예쁜 아이들’을 보고 용기를 냈다. 그는 1년 만에 동부이촌동 전체를 파악했다. 그러고는 2년 만에 한가람아파트 옆에 새로 지어진 대우한강아파트 33평으로 옮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