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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최초 검거 남파간첩 정경학

외국 애인 대동하고 한국 침투, e메일로 北에 정보 보고

  • 이정훈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참여정부’ 최초 검거 남파간첩 정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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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최초 검거 남파간첩 정경학

야후 e메일을 통한 정보보고(왼쪽). 검거된 직후 정경학이 작성한 남조선 침투 임무서(오른쪽).

1993년말 정경학은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국 문화연락실 공작원으로 신분이 변경됐다. 문화연락실은 김정일의 지시로 한국의 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장봉림을 실장, 대외정보조사부 과장으로 있던 변복현을 부실장으로 해서 갑작스럽게 만들어졌다. 지도원은 8명, 공작원은 정경학 등 40여 명이었다.

문화연락실은 외형상으로는 인민무력부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김정일 서기실(비서실)에 직보하는 체제로 운영되었다.

태국에 정착한 지 1년5개월이 돼가던 1995년 2월, 정경학은 농기구 등을 제작하는 태국 기업 ‘탄 붓(TARN BUCH)’사의 무역부장으로 취직해, 차량 및 주택과 월급을 제공받게 됐다. 그리고 6월엔 태국에서 사귄 분미 빈 핫산의 도움을 받아 가공인물인 ‘마놋 세림’ 명의로 호적을 얻는 데 성공했다. 12월에는 마놋 세림 명의로 주민증과 병력증명서, 여권을 발부받아 합법적인 태국인 신분을 확보했다.

이러한 노력을 할 때인 10월, 그는 사업차 태국에 온 한국의 A실업 대표 손모씨를 만나 친분을 쌓았다. 그는 태국인 신분을 획득한 사실과 한국인 사업가를 만난 것 등을 태국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인민무력부의 문화연락실로 보고했다.

한국 회사 직원 안내로 청와대 관광



해가 바뀐 1996년 1월20일 북한에 들어간 정경학은 장봉림 실장으로부터 남조선에 들어가 유사시 인민군이 타격할 수 있도록 청와대와 원전, 통신기지국, 고속도로의 터널과 교량 등을 사진으로 찍어오라는 지시와 함께 5000달러를 받고 2월20일 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월20일 여권을 만들어준 태국인 친구 분미 빈 핫산과 함께 태국항공 편으로 김포공항을 통과해 한국에 들어왔다.

다음날 그는 A실업의 손 대표를 찾아가 은가락지 등 선물을 주며 지방 관광을 부탁했다. 그리고 종로서적과 교보문고 등을 다니며 전국도로지도, 관광안내책자, 필름 등을 구입했다. 3월22일 A실업의 손 대표는 직원 김모씨로 하여금 렌터카를 몰고 24일까지 정경학 일행에게 지방 관광을 하게 해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이때 정경학은 달리는 차안에서 천안 성거산에 있는 공군 레이더, 울진의 원자력발전소, 경부고속도로상의 터널과 다리 등을 촬영했다. 서울에 돌아온 다음날인 25일에는 A실업 여직원 김모씨의 안내로 청와대 관광에 나섰다. 그러나 겁이 나서 청와대 촬영을 하지 못하고 27일 서울을 떠나 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태국에 와 있던 장봉림에게 필름을 넘겼다.

1997년 3월 정경학은 다시 평양에 들어가 ‘용산 미군기지와 국방부 등을 촬영해오라’는 지시를 받고 5월말 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6월2일 그동안 사귀어 놓은 태국 애인인 밍위왓 유핀을 데리고 마놋 세림의 여권으로 김포공항에 들어왔다.

6월5일 정경학은 남산의 서울타워에 올라가 용산기지를 파노라마로 촬영하고, 7일에는 A실업의 안모 직원의 안내로 국방부 근처로 가 국방부를 촬영했다. 9일에는 광주의 5·18묘지를 방문하고 10일에는 고속도로변에 있는 한국군 탄약사령부 담장을 미군 부대로 잘못 알고 촬영하고 12일 태국으로 돌아갔다.

정경학이 두 번째로 한국에 침투하기 6개월 전인 1997년 2월12일, 베이징에서는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한국대사관 영사부로 망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북한은 공작기관을 상대로 한 전면적인 검열에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장봉림이 숙청되면서 문화연락실도 폐쇄됐다. 그해 10월 2차 한국 침투를 끝내고 돌아온 정경학도 북한으로 소환됐는데 이때가 정경학으로서는 큰 위기였다.

태국 주재 북 외교관 망명으로 드러나

정경학을 만난 35호실(구 대외정보조사부)의 김 부부장(60세가량)은 “장봉림이 간첩짓을 했다. 당신의 신분도 노출됐을 수 있으니 더 이상 태국인 신분을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에 정경학은 “나의 신원 사항이 남조선에 갔다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 내가 직접 남조선에 들어가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지 입증해 보이겠다”고 극구 주장해, 간신히 “남조선에 들어가더라도 절대 남조선 사람을 접촉하지 말라”는 지령을 받고 1만달러를 수령해 11월30일 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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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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