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집중취재

‘코드 진보’가 거머쥔 대한민국 문화권력

“인민군이 남한 점령해도 이렇게는 못한다”(모 연극인)

  • 홍찬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코드 진보’가 거머쥔 대한민국 문화권력

3/7
‘코드 진보’가 거머쥔 대한민국 문화권력

최근 재임명된 김철호 국립국악원장(왼쪽)과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3년 전 이들이 임명될 당시 문화계에 ‘편파 인사’ 파문이 거세게 일었다.

“김철호 원장은 3년 전 민예총에 관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평 단원에서 하루아침에 원장으로 발탁된 사람이다. 문화관광부는 그를 뽑기 위해 심사위원을 코드에 맞는 사람으로 중도 교체하는 편법까지 동원했다. 이 인사로 국악계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내부 화합이 무너지고 사분오열되고 말았다. 가뜩이나 국악계가 침체되어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것이 개혁이고 발전이란 말이냐.

국악 분야는 이념이 필요 없는 곳이다. 국립국악원의 역사는 1300여 년 전 국가 차원의 국악기관을 신설한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에는 장학원이 있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이왕직 아악부로 이어졌다. 우리가 대대로 해온 국악을 전승해 나가는 곳이 국악원이다. 국악에 개혁을 해야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현 정권 사람들이 먼저 말해보라.”

노 정부의 문화계 ‘새 판 짜기’의 핵심은 문예진흥원에서 탈바꿈한 문화예술위원회이다. 문화관광부는 2003년 하반기 문화계 요직을 진보 성향의 인사들로 갈아치운 뒤 문화예술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데 매달렸다.

2005년 9월 정식 출범한 문화예술위원회는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장인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를 비롯해 강준혁(문화기획자) 김언호(출판인) 김정헌(화가) 김현자(무용가) 박신의(미술평론가) 박종관(민예총 충북지회) 전효관(전남대 교수) 정완규(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 한명희(한국민족음악가연합 이사장)씨가 위원들이다. 이들 가운데 과거 예술단체를 대표해온 한국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소속 인사는 정완규씨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소위 진보 성향에 치우쳐 있다는 분석이다.

문화예술위원회는 한해 1100억원을 문화예술인에게 지원한다. 정부 예산 지원이 연간 약 300억원이고 로또 수익금에서 약 300억원이 지원된다. 여기에 더해 5000억원 규모로 조성된 문화예술진흥기금에서 300억원이 나온다. 문예진흥원이 소유한 뉴서울골프장의 연간 수익금도 약 70억원에 달한다. 적지 않은 돈이다. 문화예술인들은 이젠 자기 주머니 돈을 쓰지 않아도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여건이 좋아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많은 돈을 누구에게 어떻게 지원하느냐가 문화예술위원회의 손에 달려 있다.



문화예술인 속성 간과한 위원회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 장르별로 안배되어 있고 문화예술인만이 위원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위원에 대한 임명권은 문화관광부 장관이 갖고 있다. 위원 아래에는 소위원회가 있다. 위원회 차원의 중요한 결정은 위원들이 전체 회의를 열어 내린다.

문예진흥원을 위원회 형태로 바꾼 것은 정부가 지원금 배분에 개입하지 않고 문화예술인들이 스스로 배분을 결정하기 위해서라는 게 개혁 진영의 논리였다. 문화예술인의 사정은 문화예술인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문예진흥원 시절에도 산하에 지원금 배분을 심의하는 소위원회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원회를 만든다고 해서 과거 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또 문화예술인들이 주체가 되어 지원금을 배분하면 오히려 배분이 왜곡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문화예술위원회 결성에 반대했던 정진수(연극연출가) 성균관대 교수의 말이다.

“문화예술인은 행정가가 아니다. 문화예술 분야는 세분되어 있고 상대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위원회를 만들어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무용 분야만 해도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으로 나뉘어 있고 각각 분파가 있다. 예술가 몇 명이 문화예술위원이 되어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문화예술인의 속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자기의 예술세계를 어느 정도 구축한 사람이라면 독특한 예술적 목표와 지향점이 있으며, 자기와 반대되는 성향의 예술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게 마련이다. 내가 옳다는 신념이 없다면 그는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인의 이런 특성으로 볼 때 편파적 운영의 여지가 크다.”

3/7
홍찬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목록 닫기

‘코드 진보’가 거머쥔 대한민국 문화권력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