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

“호남은 이제 ‘김대중주의’ 끝내라” “킹? 킹메이커? 나라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하겠지만…”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입력2006-12-07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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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핵사태 두고 못봐 구국(救國) 나선 것…정치 재개로 봐도 좋다
    • 핵무기 만드는 北에 9억달러 건넨 DJ가 美 책임 거론하다니…
    • 한나라 특정후보 지지는 곤란…고건씨는 ‘좌파정권’ 몸담았던 분
    • 삼성이 지지율 오르는 여당 후보에게 ‘7분의 1’만 줬겠나
    • ‘3대 의혹 사건’ 모두 무혐의…방송이 의혹 확산 주도
    • 정치판 물갈이 앞세운 여당과 방송사의 ‘합동 깜짝쇼’ 경계해야
    • 남한 핵무장론, 한반도 비핵화 최후수단으로 가능한 방법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李會昌·71) 전 한나라당 총재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경향 각지로 강연을 다니고 틈틈이 언론인을 비롯해 주요 인사를 만난다. ‘신동아’ 인터뷰도 선선히 수락했다. 대선에서 겨뤘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는 편이었으나 최근에는 비판의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6·25전쟁 이래 제2의 국난(國難)을 맞아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것을 정치활동의 재개라고 본다면 그렇게 봐도 좋다고 했다. 내년 대선에서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정치를 떠나 있는 처지”라며 분명한 답을 피했다. 대권과 대선 차원을 넘어 구국(救國)의 길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8개월 전 한 월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시 현실정치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던 태도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가 풍겼다.

    서울 숭례문 인근 단암빌딩 21층 사무실에는 문패가 붙어 있지 않고 ‘2105’라는 방 번호만 크게 씌어 있다. 2105호에는 비서실, 집무실, 접견실이 들어 있다. 대통령후보 시절 언론특보를 지낸 이종구씨가 맞아주었다.

    접견실 팔걸이 탁자에 책이 여러 권 쌓여 있었다. ‘황장엽 회고록’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21세기 국가전략’ ‘변증법적 전략전술론’ ‘A Troubled Peace’ ‘공영방송 특강’ 같은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짐작케 해주는 책들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약속시각 3분 전에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는 “차가 막혀서 늦는 줄 알았어요”라며 집무실에 잠시 들렀다 나왔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보좌진에게 책을 치우라고 했다.



    “저자들이 보내준 책인데 그냥 쌓아놓았을 뿐이에요. 전에 박근혜 대표를 만날 때 ‘만약에’라는 역사서가 놓여 있었는데 기자들이 책 제목을 인용해 ‘대선에서 만약에…’라며 추측 기사를 쓰더라고요.”

    그가 들어오기 전에 책 제목을 얼른 메모해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오전 10시에 인터뷰가 시작됐다. 필자는 그를 두 번째 인터뷰하는 자리였다. 필자가 첫 번째 인터뷰를 기억하느냐고 묻자 그는 “대법관 때였나요”라고 되물었다. 그가 1986년 첫 번째 대법원 판사 임기를 마치고 대한상공회의소 빌딩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을 때 필자가 인터뷰를 해 ‘동아일보’에 수첩 크기만한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는 “정치 입문 전에 한 인터뷰라 기억하지 못하겠군요”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후보 두 차례와 야당 총재, 국무총리, 감사원장을 하며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터뷰를 했다. 정치의 풍상을 겪고 돌아온 그에게 정치 입문 이전은 선사시대쯤에 해당하지 않을까.

    우선 분위기를 풀기 위해 그가 기분좋아할 만한 화제를 꺼냈다.

    한국은 ‘바보들의 천국’ 신세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
    ▼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도저히 그 간판으로는 차기 대권창출이 힘들어지자 신장개업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백년(百年) 정당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는데 고작 3년 갔군요.

    “다급해 보이데요.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말이 당연히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런데 기사회생을 하려면 좋은 정치를 하는 쪽으로 가야지, 또다시 지역주의와 결합해 판을 한번 바꾸려는 시도라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벌써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서로 지역을 바꿔 방문하면서 움직이는 걸 보면 그런 의도가 감지됩니다. 이분들이 다시 그런 식의 판짜기를 시도한다면 단순히 정치 후퇴가 아니라 북핵 사태로 인한 국가위기에서 나라를 함정에 빠뜨리는 일이 됩니다.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략과 대책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러나 나라를 잘못되게 만드는 새판 짜기는 제발 안 했으면 좋겠어요. 국민을 더 이상 피곤하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필자가 “지금까지는 자제하던 정치 비판을 시작했군요”라고 말하자 그는 웃으며 “이제 제가 얘기 좀 하려고 해요”라고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에서 겨뤘던 상대이기 때문에 제가 비판하고 공격하는 게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해 그동안 삼갔습니다. 그러나 북한 핵실험 이후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분들 하는 일을 방관하면 나라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제 얼마 남았습니까(‘1년 4개월 남았다’고 말해줌). 아마 본인이 굉장히 고달팠으리라고 생각돼요. 정말 미숙하고 능력에 문제가 있다 해도 마음이 국민을 향해 있고, 국민의 진실을 믿었다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겠죠. 북핵 사태 이후 남북 문제에서 대통령이 철학이 전혀 없거나, 아주 잘못된 편견으로 나라를 끌고가고 있어요. 국민이 그것을 알고 정확한 평가를 해야 합니다.

    부동산정책이나 교육정책을 보면 완전히 좌파죠. 시장논리에 의한 정책이 아니라 세금폭탄으로 저소득층, 중산층 울리는 정책입니다. 교육도 자율과 창의성을 북돋우고 나라를 이끌어갈 원동력인 인재를 길러내는 정책이 아닙니다. 과도한 평등주의로 하향평준화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대학의 입시요강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지배하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 중에 또 있습니까.

    좌파면 좌파답게 그쪽으로 간다면 이해하겠는데 도대체 대중을 잡을 수 없어요. 느닷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한다고 나섭니다. 저는 FTA 같은 개방정책은 써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정부가 일관된 정치이념의 기조 위에서 해 나간다면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면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한다는 식이죠.”

    ▼ 정부의 북핵 대처 방안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경제 상황도 나쁩니다. 3년 연속 잠재성장률을 밑돌았고 내년에도 저성장이 예고됩니다. 내년 대선은 국운(國運)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 같은데, 차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봅니까.

    “대한민국의 핵심적 가치에 관해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야죠. 대북 문제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신념에 입각해 방향을 바로잡고 풀어갈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6·25전쟁 이후 제2의 위기에 해당하는 사태가 온 것은 집권세력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철학을 확고하게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 경선 관여 않겠다

    한국은 동북아에서 4강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고래 사이에 낀 새우지요. 우리가 살길은 무지갯빛 환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동맹과 개방입니다. 이 동맹과 개방에 관한 확실한 통찰과 식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동맹은 바로 고래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제적으로 바깥에 친구를 갖는 길이고, 개방은 문을 열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동맹보다 자주 구호를 내세우다가 한국은 왕따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이) 직접당사자라고 할 6자회담이 재개되는데 한국 머리 위에서 왔다갔다하고, 우리는 언제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왕따 됐는데도 아니라고 우기죠. 좀 심하게 말하면 ‘바보들의 천국’이 되어버렸어요.”

    ▼ 대통령 탄핵방송에 대해 언론학회 연구결과도 공정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됐든 헌법재판소가 다수 의견으로 탄핵소추를 기각하지 않았습니까. 결과론이지만 탄핵소추가 없었더라면 열린우리당이 약진해 다수 의석으로 무리한 법률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조순형 의원이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박관용 최병렬 홍사덕 등 탄핵소추의 주역들은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살 만했습니다.

    “방송이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리라고 상상하기 힘들었겠지요. 우리 국민은 선거나 정치에 관해 두 가지 심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약자에 대한 동정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 출마한 사람들이 목에 힘주면 반드시 떨어집니다. 자세를 낮춰야죠. 힘 있는 자에 대한 견제 심리도 작용해요. 방송이 탄핵정국, 탄핵국회를 보도하면서 바로 이러한 국민심리를 자극했습니다. 다수당인 야당이 밀어붙인 것처럼 보였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탄핵 투표 끝나고 나서 울부짖으니까 약자의 모습으로 비쳤죠. 방송이 그렇게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헌재 결정에서 나왔다시피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지만 사안의 경중(輕重)을 따져볼 때 대통령직을 그만둬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 않습니까.

    “헌재 결정에 대해서는 헌법학자들이 비판론을 내놓았습니다. 헌법 위반사실을 전부 인정해놓고도 탄핵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고 빠져나갔는데, 이미 지적한 헌법 위반 사실 그 자체가 탄핵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죠. 결론이 왜곡된 결정이라는 비판론이 많았지요. 저는 학문적으로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할 수 없지만 당시 탄핵사유가 약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봐요.”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호남 유권자

    필자는 인터뷰 전에 질문요지 10개를 간추려 이 전 총재측에 보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그중에는 ‘한나라당과 호남의 화해’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필자가 인터뷰를 진행하며 뜬금없는 질문 같아서 빠뜨리고 넘어가자 그가 “그 질문은 안 하나요”라고 물었다. “준비됐으면 하시죠”라고 말하자 그는 직접 쓴 메모를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나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아부하는 태도로 호남 표를 얻으려고 하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DJ가 광주에서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라고 썼습니다. 원래는 이 충무공이 한 말이죠. 원문은 ‘若無湖南 是無國家’지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와 전국을 유린할 때 이 충무공이 호남마저 빼앗기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쓴 말입니다.

    호남은 정말 그동안 김대중씨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밀어줬습니다. 저는 그것을 일종의 ‘김대중주의’라고 봅니다. ‘무DJ 무호남’이었죠. 호남 대통령이 탄생함으로써 호남인의 긍지를 높인 점은 저도 인정하지만, 이제는 호남도 김대중 도그마에서 벗어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라고 봅니다. 김대중씨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옳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습니다.

    한나라당도 국가를 사랑하는 호남 민중에게 접근해 표를 얻어야지, 무조건 김대중주의에 영합해 표를 얻으려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호남에서 진정으로 국가를 아끼는 민심이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이 호남과 가까워지려면 이런 추세를 잡아야 합니다. 햇볕정책에 대한 아첨은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이 대목에서는 호남 민중의 반론도 들어봐야 할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한나라당의 5, 6공당(共黨) 이미지, 영남당(黨) 이미지 같은 것 말이다.

    ▼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있습니까.

    “두 권을 한꺼번에 읽고 있습니다. 대만 출신 일본 작가가 쓴 세 권짜리 ‘일청(日淸) 전쟁’이라는 책이 있어요. 일본과 중국의 역사적인 관계가 잘 드러나 있죠. 그 책에 조선 조정이 아주 분통 터질 만큼 피눈물 나게 고생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다 결국은 일본한테 먹히죠. 소설이지만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역사공부도 됩니다. 감명 깊게 읽었어요.”

    이 대목에서 조인직 기자가 “혹시 문화일보 ‘강안 남자’ 읽습니까”라고 물었다.

    “사무실에서 가끔 봅니다. 청와대에서 절독(絶讀)하니까 작가가 내용을 좀 톤다운시키지 않았나 싶던데 잘 모르겠어요. 며칠 못 봤어요. 유치한 얘기지요. 연재소설을 절독 핑계로 댄 거잖아요.”

    ▼ 술은 어느 정도나 합니까.

    “거의 안 해요. 정치할 때야 기자단이나 당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마셨지요. 그때는 술자리 환담이 유용했던 것 같아요.”

    ▼ 건강해 보입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20~30분 하죠. 며칠에 한 번 한강 둔치에 가서 산보를 합니다. 게을러서 가끔 빼먹어요.”

    신장 163cm. 인상은 말라 보이는데 체중은 64kg이라고 했다. 이 전 총재의 가계는 장수(長壽) 집안이다. 아버지는 97세, 어머니는 96세에 세상을 떴다. 부모는 90을 넘겨서도 당뇨 고혈압 같은 성인병 증상이 없었다고 한다. 건강과 수명은 집안 내력을 무시할 수 없다.

    “무병장수라는 말을 하는데 인생의 마지막에는 무병장수도 힘들더라고요. 기력이 쇠잔해져 견디기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보기가 안타까워요.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인생의 복이죠.”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
    ▼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할 계획입니까.

    “사실 정치를 떠난 처지입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고요. 다만 이번 북핵 사태를 계기로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권이나 대선 차원을 넘어 나라를 구하는 일에 몸을 바치려고 합니다. 나라가 살고 난 다음에 대권과 대선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정치 재개라기보다는 국가 원로로서 할 말은 하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는 현재의 위기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 정권이 가는 길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리려고 합니다. 그것을 꼭 정치활동이라고 본다면, 그렇게 봐도 좋습니다. 무슨 말을 듣든 나라를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이 굳건한 사람을 밀어줄 계획은 없습니까.

    “좋은 분이 나오면 그렇게 해야지요.”

    ▼ 적극적으로 한나라당 후보지지 활동을 하겠다는 건가요.

    “아니, 나는 지금 말이지요, 무슨 선거운동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킹이 되려느냐, 킹메이커가 되려느냐 하는 질문은 지금 저한테 안 하시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 정치를 떠나 있기 때문에…. 다만 이제 국가를 위한 길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얘기죠. 그것은 대권, 대선에 관여하느냐, 누구를 미느냐는 차원을 훨씬 넘어 나라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주십시오.”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에 관해 물었는데 그는 킹과 킹메이커를 엮어서 한꺼번에 대답했다. 국민이 그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하는 현안이어서 더 분명한 답을 듣기 위해 후속 질문을 던졌다.

    ▼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서 1000만표 안팎을 득표(得票)한 이 전 총채의 거취에 대해 정치권과 국민의 관심이 높습니다. 킹메이커로서가 아니라 차기 대선에 직접 나가서 뛰어볼 생각은 없습니까.

    “지금 저는 정치를 떠나 있습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이 문제 가지고 자꾸 얘기하면 오늘도 아마 그게 토픽이 되겠죠.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북핵으로 발생한 우리의 위기상황입니다. 북핵과 이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되고 있고,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기인가 하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저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갖고 묻는 것은 이해하지만 너무 자세히 얘기하다보면, 이것이 오늘의 주 이슈가 될까봐 걱정입니다.”

    필자는 이 연재 인터뷰 기사를 대개 200자 원고지 100장 안팎에서 막고 있다. 단편소설 길이다. 바쁜 세상에 책 한 권 분량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독자가 지치게 하는 것은 결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인터뷰는 좀 길어질 것 같다.

    ▼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빅 투’이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 자리 숫자로 뒤를 쫓아가는 형국인데요. 일각에서는 100% 국민경선을 주장하지만 박 전 대표는 거부반응을 보였습니다. 최근 이 전 시장은 오픈 프라이머리 경선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고….

    “저는 당적은 가지고 있지만 당원으로서 전혀 활동을 안 하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현재 당원 구성이나 당의 경선 규정이 어떻게 돼 있는지 모르겠어요. 오픈 프라이머리나 100% 국민경선제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어느 쪽이 유리하고 어느 쪽이 불리한지도 모릅니다.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오픈 프라이머리나 100% 국민경선제도는 정당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원래 오픈 프라이머리 시스템을 도입한 미국에서 이 제도가 오히려 정당을 죽이고 정당정치의 긍정적인 면을 퇴색시켰다고 하는 비판이 나옵니다. 실제로 경선 참여자들이 주민의사를 골고루 반영하는 층이 아니라 이익단체와 동원된 사람들이 주로 참여하기 때문에 여론이 균형 있게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야 정당이 국민경선 제도를 일부 도입하고 있지요. 포퓰리즘에 구애하지 말고 장단점을 더 검토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선 때 ‘방송사 깜짝쇼’ 경계해야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
    ▼ 한나라당 대선주자들 중에 당원지지도는 높은데 국민지지도가 낮은 사람이 후보가 될 경우 국민지지도가 높은 쪽에서 당을 뛰쳐나가거나 경선에 불복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요? ‘제2의 이인제’라고나 할까.

    “현재 상황이 그때와는 많이 다르지요 경선 결과에 불복해본들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대권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경선 후에 뛰쳐나갈 사람은 없습니다. 국민이 그것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경선 중에는 시끄럽겠지요. 저도 경선을 두 번 치러봤지만 어디 조용히 됩니까.”

    ▼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세 사람 모두 당에서 함께 일했으니까 장단점을 잘 알고 있을텐데요.

    “세 사람을 뜯어보면 모두 훌륭한 대통령후보감입니다. 저쪽에서 예상외의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저는 셋 중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을 모아야지요. 개별적인 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쓸데없는 오해가 생길 테니까.”

    ▼ 여론조사 지지도가 1년 뒤에 어떻게 요동을 칠지는 예측하기 어렵죠. 일단 현재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간판을 내릴 예정인 열린우리당의 주역 정동영, 김근태씨는 어려우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범여권에서 유일하게 ‘빅 스리’에 포함되는 사람이 고건 전 총리죠. 경기고등학교로 따지면 누가 선배인가요?

    그는 웃으며 “당연히 내가 선배지요. 3년 내지 5년 위일 텐데 정확히 모르겠네요”라고 했다. 고 전 총리는 52회, 이 전 총재는 49회, 손 전 지사는 61회이다.

    “그분과 특별하게 깊은 인연은 없어요. 제가 신한국당 대표를 할 때 그분이 김영삼 대통령 밑에서 국무총리를 했지요. 당정협의할 때마다 만나보니까 사람이 아주 세밀하고 능력 있는 분이에요. 그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3대에 걸쳐 국무총리를 한 분은 그분 한 분입니다.”

    고건씨는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한 국회 표결이 있었으나 개표를 하지 않고 폐회하는 바람에 고 총리가 DJ 정부의 초대 내각을 제청하고 퇴임했다. 이런 연고로 김대중 정부에서 일주일 동안 총리를 한 셈이다.

    인터뷰에 배석한 ‘신동아’ 조인직 기자가 “총재께서 보기에 후보별로 조금 보완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점이 있으면 말해주시죠. 워낙 잘 아실 테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고건씨, 3대 정권 걸쳐 총리 한 분”

    “내가 입을 방긋하면 아무개를 민다는 말이 나와요. 엊그제 누가 ‘총재께서 박근혜 전 대표 쪽을 민다고 소문났습니다’고 하길래 내가 깜짝 놀라 ‘왜 그런 소문이 났느냐’고 물었더니 내 밑에 있던 국회의원들이 그쪽으로 많이 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 밑에 있던 분들 중에 이명박 전 시장 쪽에 가 있는 사람도 있다고 답변했어요. 혹시 그런 말을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쓸데없이 오해받을 말은 피하고 싶어요”

    ▼ 고 전 총리가 지금은 범여권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뉴라이트 쪽에서 그의 이념에 비추어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는 그분이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할 뜻을 갖고 있는지,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먼저 본인의 정치이념을 분명하게 밝혀야 할 거예요. 저는 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봅니다. 그분은 노무현 대통령 정권하에서 일을 하면서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 후보로 거론됐던 분입니다.”

    ▼ 열린우리당은 지지도가 낮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변화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지지도가 한 자릿수에 머물다가 정몽준 후보와 엮이면서 껑충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이에 비해 한나라당은 두 번의 대선에서 다 상황변화에 따른 기민한 대응이 뒤졌던 것 같아요. 한나라당의 유력 후보들은 너무 오래 노출돼 내년쯤 가면 국민한테 피로감을 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오래 노출됐다고 해서 식상하거나 피로감이 생기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보다도 ‘깜짝쇼’에 쏠리는 정서가 더 문제입니다. 제가 두 번이나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2002년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노무현 후보가 광주 경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이겼을 때 지지도가 올라가 저보다 앞섰다가 그 후 떨어졌습니다. 11월에 정몽준 후보와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후보가 됐을 때 또 올라갔습니다. 그 언저리에서 소위 ‘3대 의혹 조작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때 제 지지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한 달 뒤에 골인했거든요.

    깜짝쇼가 그만큼 위험요소예요. 솔직히 야당이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방송이 깜짝쇼를 돕습니다. 방송을 장악한다는 말을 하면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방송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는 야당 처지에서는 당할 수밖에 없어요. 국민이 깜짝쇼에 휩쓸리지 말고 국가지도자로서 자격을 보고 선택하라고 호소해야지요.

    정치판 물갈이 같은 것도 깜짝쇼가 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에 어떤 합의 또는 밀약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영남으로, 호남으로) 다니는 게 큰 의미에서 정치판 물갈이 깜짝쇼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7분의 1이란 걸 믿으세요?”

    ▼ 비록 두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했지만 대법관을 두 번 지냈고 국무총리, 감사원장, 국회의원을 하며 우리 사회에서 혜택을 많이 받았는데요. 미국에서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정계 은퇴한 뒤에 ‘무주택 서민을 위한 집 지어주기 운동’ 같은 것을 벌이는 것이 보기 좋더군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 운동’을 하다가 중간선거 지원유세도 하고 왔다갔다합니다만…. 혹시 정치와 무관한 분야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적절한 기회에 좋은 방편이 생기면 저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카터도 정치를 해요. 북한에 가서 김일성도 만나고,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어떤 역할을 맡으려고 그러잖아요.”

    필자가 “그래서 노벨평화상도 받았죠”라고 말하자 그가 웃었다.

    그는 46세에 대법관이 됐다. 아직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대법관은 법조계의 주목을 받는 진보적인 판결을 많이 냈다.

    ▼ 박철언 전 의원 회고록에 자신이 40대 대법관 탄생에 일조했다고 쓴 대목이 있더군요.

    “회고록은 박 전 의원이 보내줘서 봤어요. 1981년 청와대 우병규 정무수석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 자리에 박철언 정무비서관도 나와 있더군요. 법원 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했으니까 정무수석 만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갔지요.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도 대통령 당선자나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할 때는 전부 다 만나 인터뷰를 해봅니다. 박 전 의원이 그때 어떤 구실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 대법관을 두 번 하면서 법조계에서 대법원장 감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법관이 김영삼 정부에 들어가 감사원장을 하고 있을 때 김 대통령이 윤관씨를 대법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전남 해남 출신이라 지역안배를 고려한 측면도 있지요. 그때 좀 서운하지 않았습니까?

    “법관으로 있을 때는 대법원장이 돼서 사법부를 제대로 끌어봤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윤관씨가 된 것이 서운하다기보다는 내가 안 돼 조금 서운한 마음은 있었지요.”

    ▼ 검찰이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하는 도중에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이 10대 1 정도로 차이가 날 것이라고 했는데요. 실제 기소할 때는 7대 1 정도로 좁혀졌지요. 그때 한나라당의 이른바 ‘차떼기’도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후 대선자금 수사를 당한 처지에서 그 수사가 공정했다고 생각하는지요.

    “황 위원, 7분의 1이라는 것을 믿으세요? 아니, 대(大) 삼성이 말이야, 야당 후보한테 300억원 주고, 집권당 후보, 더군다나 여론 지지율이 올라간 후보측에 30억원을 줬다면…. 한푼이라도 받은 것이 잘못이기 때문에 제가 정말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는데 하여튼 국가권력의 행사는 일언이폐지하고 공정하지 못하면 정의가 아니에요. 그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 대선자금 잔여금 수사가 있었습니까.

    “제가 직접 수사를 받지 않아서…. 아마 수사했을 거예요. 당시 하여튼 먼지 털듯이 다 했다고 그러니까.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데 그런 것으로 알아요.”

    편파 방송, 내년 대선에서도 주요 변수

    ▼ 2002년 선거에서 여당이 3대 의혹사건을 제기하면서부터 이 후보의 지지도가 떨어졌잖아요. 나중에 검찰과 법원에 의해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는데, 선거 때 실컷 이용해놓고 선거 끝나자 흐지부지돼버렸어요. 3대 의혹사건에 대해 방송이 집중 보도를 했어요. 대선을 치르면서 ‘방송 때문에 힘들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더군요. 2002년 대선만 놓고 보면 MBC는 왼쪽 편이었고 SBS가 오른쪽 편이었다면, KBS는 기계적 중립이라도 지키다가 노무현 캠프쪽으로부터 도와주지 않는다고 욕을 먹었다고 주장하던데요.

    “KBS도 중립이 아니었어요. 여러 말 할 것 없이 KBS의 감사를 지낸 강동순씨가 선거보도가 편파적이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방송시간을 똑같이 주는 기계적 중립은 의미가 없습니다. 3대 의혹 조작사건 같은 것을 계속 쏘아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대업을 불러다 몇 차례씩 인터뷰를 하고 대담을 했지요. 탄핵방송 보세요. 계속 국회 난투장면을 내보내면 국민 여론이 어떻게 돌아갑니까.”

    진홍순 KBS 전 보도국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2002년 이회창 후보가 방송연설을 하기 위해 여의도 KBS 사옥에 왔다. 박권상 사장이 보도국 간부들과 함께 인사를 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KBS 출신인 양휘부 언론특보가 이회창 후보에게 “박권상 사장 오셨습니다”라고 소개를 했으나 분장을 하고 있던 이 후보는 뒤도 돌아보지 않더라는 것이다. 박 사장은 머쓱히 2~3분 서 있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전하자 이 전 총재는 “그런 일이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 인사 온 박 사장을 외면한 것은 방송의 편파성을 경고하는 의미였습니까.

    아니에요. 나는 그런 기억이 전혀 안 나는데…. 그럴 리가 있나. 생각해봐요. 방송사에 조금이라도 잘 보여야 할 판에 그럴 리가 있나요. 양휘부씨가 KBS에 있던 사람인데 제가 못 들었다면 가만히 있을 리도 없지요. 그건 뭔가 이상한 얘기네. 온 줄 알았으면 돌아보고 반갑다고 해야 그나마 방송을 좀 잘 내줄 것 아니야(웃음). 내가 정치 떠난 뒤에 보니까 사석에서 한 이야기라고 하면서 오만 가지 소리가 떠돌아요. 심지어 그것을 신문칼럼에 쓰는 사람들까지 있더라고요. 전혀 기억도 안 나는 얘기를 가지고 말이지.”

    ▼ KBS 정연주 사장이 연임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이 내년 대선에서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KBS가 정말 제자리에 서서 잘해줘야지요. 과거 식으로 계속하면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그런데 그 양반은 (현 정권과) 특별한 관계가 있나요?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시키려고 하지….”

    ▼ 2002년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서민적 풍모이고 이회창 후보는 귀족풍이어서 손해를 본 것 같기도 한데요.

    “그런 점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누가 서민이고, 누가 귀족인지 진짜 모르겠어요. 서민이라는 사람이 골프 더 자주 치고, 명품도 좋아하고….”

    미국 중간선거 승리로 하원의장이 될 민주당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를 공화당에서 ‘아르마니를 입은 좌파’라고 빈정댄다. 리버럴 민주당에 재벌이 많다. 한국에도 아르마니 좌파가 있고, 골프채를 둘러메고 ‘없는 사람을 위해 정치하겠다’고 말하는 ‘컨트리클럽 좌파’도 있다.

    이 대목에서 가벼운 농담이 오갔다. 필자가 ‘아르마니’ 상표명이 생각나지 않아 더듬자 이 전 총재가 “이름도 기억을 못하나요?”라고 건드렸다. 필자가 “입어본 적이 있어야지요”라고 하자 그는 “귀족은 못 되네요”라고 받았다. 그래서 “저는 실용주의자라 그런 옷은 안 입습니다”라고 말했다.

    ▼ 대검 중앙수사부가 청구한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영장을 법원의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기각하니까 검찰은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재청구했습니다. 검찰과 법원이 감정대립을 하는 것 같아요.

    “서로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속영장 발부도 재판인데, 기각된 다음에 새로운 증거나 자료를 보강하지 않고 재청구한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다른 자료나 보강한 증거를 붙인다면 재청구할 수 있죠. 법원은 또 그것을 성의 있게 검토해야지요. 냉정을 찾아 원칙대로 하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 미국에서는 엔론 CEO가 징역 24년 4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미국에서는 형량을 잘 깎아주지 않고 거의 그대로 복역시키죠. 우리처럼 중간에 형집행정지, 가석방 또는 사면을 받고 나오는 사례가 드물어요. 우리는 법원이 경제사범이나 뇌물범죄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해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 점이 있지요. 우리나라는 수사 단계에서는 구속을 많이 해놓고 재판에서 받는 형량은 미국보다 비교적 약합니다. 미국은 수사단계에서는 불구속 원칙으로 하고 그 대신 유죄가 확정되면 형량이 셉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바라지만…”

    ▼ 이용훈 대법원장이 한 일련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법원장은 처신이 어려운 자리입니다. 사법부의 독립과 양심과 관련되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정확하게 모르지만 어쨌든 특정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재판하는 법관을 위축시키거나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 국정원에서 ‘일심회’ 사건을 적발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386간첩단 사건이 드러났습니다. 강력한 의지를 갖고 수사하던 김승규 국정원장이 일심회 사건이 공표된 직후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386 압력설이 나오고 청와대는 부인했는데요. 김승규 국정원장이 이례적으로 “내부 승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지목한 김만복 차장이 결국 국정원장으로 내정됐습니다. 막후에서 뭔가 복잡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가 없어 구체적인 사정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국민의 안보의식이 약화될 대로 약화됐어요. 북한체제를 용인할 수 있다는 의식도 확산되고 친북좌파들이 득세했죠. 이번 간첩단 사건도 참 용케 적발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국정원장을 고발하고, 여권이 국정원장을 비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간첩단 사건의 실상을 밝히기도 전에 그것을 덮어버리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국가위기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정밀 조사해 추상 같은 법의 판단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9월19일 강연에서 ‘한미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이양과 연합사령부 해체를 강행해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일본의 핵군비(核軍備) 경쟁 조짐이 나타날 경우’라는 조건을 달아 차기 정권은 장기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더군요. 동맹국인 미국의 핵우산 속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고, 우리가 핵을 가질 경우 일본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비판이 따랐습니다.

    “‘성급하다’ ‘부적절하다’고 비판한 분들은 내 논문 내용을 다 보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분명히 한반도 비핵화론자예요. 제 통일론의 첫째는 북핵 포기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둘째는 북한의 개방화, 자유화입니다. 북 체제의 변화와 개혁이지요. 셋째는 통일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역설적으로 핵무장 주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북한이 굴종을 강요한다면?

    우리의 핵무장은 세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합니다. 첫째, 북한 핵 폐기 압박이 실패 또는 현상유지 쪽으로 가서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할 때, 둘째, 그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핵군비 경쟁이 일어나 일본이 강력한 핵무장국가로 떠오르거나 가능성이 커질 때입니다.

    역사적으로 일본과 중국은 패권을 다투는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일본은 항상 중국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어요.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오르고 거기에 북한이 위성처럼 붙어 있으면서 핵을 갖게 됐을 때 일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셋째는 한미동맹이 약화될 때입니다. 미군의 핵우산에 의한 핵 방위력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핵 보유국이 된 북한이 우리에게 굴종을 강요한다면 우리가 그저 상전을 향해 손바닥 비비듯이 온갖 것 바치면서 눈치보고 살아야 하느냐는 거예요. 그럴 때는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중국은 지금 북한이 핵을 폐기하도록 하기 위해 힘을 100% 쓰지 않고 있어요. 조중(朝中)동맹을 당장 끊겠다고 하면 북한이 어떻게 견딥니까. 그래서 한국의 핵무장 주장은 중국에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가라는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약화하는 쪽으로 가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핵우산 개념은 소위 ‘확장된 억제력(extended deterrence)’입니다. 북이 핵실험을 한 위기상황에서 미국은 당연히 핵우산에 대해 한국민에게 확실한 안정감을 심어줬어야 한다고 봅니다. 핵우산은 즉각적이고 또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정도로 나와야 되는데, 한국이 참 보기 딱하게 매달리는 것을 매정하게 자르는 식으로 한미안보연례협의회(SCM)가 진행됐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한미동맹이 약화되면 핵우산도 결국 약화될 수밖에 없지요.”

    레이건도 소련에 압박정책 썼다

    그는 “햇볕정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꽤 긴 답변을 했다.

    “현 정부는 그야말로 아무 철학 없이 햇볕정책을 답습했습니다. 북의 핵실험으로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북핵 사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포용정책을 재고할 것처럼 얘기하고 대북관계에 문제가 있었음을 자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마디 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금방 돌변해 ‘햇볕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지원협력 관계도 그대로 계속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야당 총재로서 상호성, 투명성이 부족한 햇볕정책을 비판했습니다. 포용정책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죠. 포용을 위한 정책이라고 내놓은 햇볕정책은 북한체제의 개방과 자유화를 상호 조건으로 반드시 걸어야 했습니다. 도와주면 변한다고 했는데 변하기는커녕 오히려 핵만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대화를 거부한 미국의 책임이라고 합니다. 핵개발 즈음에 (북한에) 9억달러를 갖다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떻게 미국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는 또 북핵 문제는 압박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는 북미 양자회담을 주장하며 북핵 폐기를 위한 국제적 압박에 공조하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1994년 북한이 5메가와트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꺼내 시위할 때 미국 클린턴 정부가 어떻게 했습니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소해 강하게 제재하겠다고 나서고 병력 증파 계획을 세웠거든요. 북한은 결국 카터가 조정하는 형식을 취해 굴복했습니다. 미국이 요구한 세 가지 요건-핵 연료봉 처리 금지, 연료봉 재장착 금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을 다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협상에 들어가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까지 갔지요. 그리고 2005년에 6자회담을 할 때도 중국이 원유공급을 끊어서 북한이 회담에 나온 것 아닙니까.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에 대한 압박봉쇄 정책을 폈습니다. ‘스타워즈’라는 전략방위구상으로 군비경쟁을 벌이고 니카라과와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이런 압박정책으로 결국 고르바초프가 양보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르바초프가 군비 부담을 덜기 위해 제의한 군축(軍縮)도 레이건이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거절했지요. 소련 공산주의와 동구권은 결국 부조리한 정치구조와 레이건의 압박 정책으로 무너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광주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통해 휴전선이 5~10km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얘기죠. 지금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한다고 아무나 자동차 타고 거기까지 갈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금강산에서 북한 병사에게 아이스크림 사줬다가 벌 서는 판인데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합니까.”

    그는 진남색 양복에 하늘색 넥타이 차림이었다. ‘정치를 떠나 있는 처지’에서 오랜만에 하는 언론 인터뷰이고 필자가 낯설어서인지, 인터뷰 초기에는 두 손의 움직임이 다소 불안정해 보였으나 점차 자연스러운 제스처가 나왔다. 앞 단추는 시종 잠그고 있었고 다리는 꼬고 있을 때가 많았다.

    ▼ 여권 사람들이 ‘그렇다면 전쟁하자는 말이냐’는 말을 자주 합니다.

    “노 대통령이 ‘평화가 최상의 가치’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해석합니다. 이 문제는 ‘평화냐 전쟁이냐’가 아니라 ‘어떤 평화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깡패가 칼로 위협할 때 깡패한테 돈 집어주고 달래서 얻는 노예의 평화냐, 깡패보다 더 세게 대응해 칼을 내놓게 만들고 누리는 자유인의 평화냐 하는 차이입니다. 그저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논리로 몰고가는 것은 국민을 협박하는 것이라고 봐요.

    북핵 사태는 6·25전쟁 이래 제2의 위기입니다. 만일 북핵 사태가 제대로 해결이 안 되고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굳어지면 우리에게 재앙이 옵니다. 우리가 일치단결해 핵을 폐기하는 쪽으로 힘을 모아야 할 텐데, 전·현직 대통령이 같이 다니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간다면 나라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좀 말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위중한 시기에 와 있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국민에게 정확히 알릴 의무가 제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중단해야

    ▼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 개혁 측면에서 이해한다. 그러나 금강산관광은 북한의 달러 유입 창구 노릇만 하고 있으니 중단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개성공단도 한국 정부가 ‘자본주의의 학습장’이니 뭐니 얘기하니까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는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사업 다 같이 중단하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쨌든 두 가지 사업은 사실 우리 기업들이 애 많이 썼기 때문에 당장 중단하면 피해가 생길 게 뻔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핵 폐기 압박에 공조해 나라가 먹히느냐 안 먹히느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시점입니다. 금강산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은 모두 다 현금지원과 연결되기 때문에 당연히 둘 다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는 김일성만 죽으면 북한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는데 12년 넘게 유훈(遺訓)통치로 버티고 있어요. 지금은 김정일이 죽어야 무너질 것 같다는 말이 나옵니다.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는 사태에 어떻게 대비해야 한다고 봅니까.

    “충분히 그러한 상황을 예견할 수 있지요. 북한이 무너지면 피난민이 쏟아져 들어오고, 여기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은 북한 붕괴시 반드시 개입하려 할 것입니다. 중국과 미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말을 쓸 만큼 현재로서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이 미국의 사전 양해와 일본 러시아 등 주변강국의 이해를 구한 뒤 개입해 북한 붕괴 이후의 사태를 관리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단독개입을 다른 강국들이 거부하면 4강이 공동 관리하는 형식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6자회담 같은 것을 운영해왔으니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이번의 6자회담 재개에서 보듯 한국의 머리 위에서 결정돼 흘러가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1세기 전 대한제국 말기처럼 북한 문제가 우리의 손을 떠나는 상황이 됩니다. 왕따가 되면 힘을 못 씁니다. 주축은 한미동맹입니다. 북한 붕괴상황이 왔을 때 중국의 단독개입 또는 다자(多者)의 관리를 막고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려면 주동맹국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중국, 일본 등의 근접국과 우호관계를 긴밀하게 해둬야 합니다. 중국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한국에 관리를 맡기는 편이 낫고 그것이 동북아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주(自主) 주장하다가 왕따 되면 눈앞에서 북한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상하원에서 다수당이 된 미국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에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DJ도 북미 직접대화를 주장하고요.

    “북미간 직접대화는 북한이 내세운 일종의 핑곗거리입니다. 그런데 직접대화로는 쌍방의 의견이 안 맞기 때문에 6자회담이 시작된 것 아닙니까. 실제로 6자회담 틀 안에서도 북미간 직접대화는 가능하거든요.

    미국 민주당 사람들은 북한이 자꾸 직접대화를 주장하니까 협상 진전의 계기를 만들어보라고 권고하는 것이죠. 6자회담에서 막히던 것이 북미회담으로 해소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요.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이겼다고 하지만 행정부가 바뀐 것은 아니지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기더라도 북미회담에서 미국이 특별히 양보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대북관계에서 기본적인 선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 원망하는 국민 많아”

    ▼ 대통령이 전시작전권 단독 행사를 추진하다가 북한이 핵실험을 하니까 “상황변화가 있으므로 재고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2009~12년에 전시작전권을 넘겨주기로 어정쩡하게 합의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전시작전권 단독행사를 자주(自主)로 포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미국은 ‘한미동맹이 진화과정에 있다’는 표현을 쓰면서 연합방위체제와 전시작전권을 넘겨주고 떠나려 합니다.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이 체결한 한미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일동맹은 소련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체제였습니다. 소련과 동구의 공산체제가 무너지면서 동맹의 전제가 없어졌어요. 미국은 발칸 같은 유럽의 변방이나 유럽 밖의 분쟁지역에 미군을 투입해 안정을 유지하는 체제로 나토의 동맹이념을 재편했습니다. 일본 유사시에는 미군을 극동지역에 투입, 안정화하는 재편 방향을 잡고 있죠. 현재 미국의 전략목표는 공산주의 억제가 아니라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 억제거든요.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

    필자(오른쪽)와 조인직 기자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점심을 함께하며 인터뷰를 하고있다.

    여기에 맞춰 한미동맹도 바뀌어야 한다하는 것이 미국의 기본 생각입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이른바 재래 방위는 한국군 주도로 하고, 핵무기는 미국이 담당하는 식이죠. 미군은 대량살상무기 테러리즘 억제를 위한 신속군을 분쟁지역에 투입하는 체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재래 방위를 한국에 맡기기 때문에 연합방위 체제를 해체하는 것입니다. 그 전략의 중심이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넘겨주고 가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로서는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미군의 중보병 전진배치를 유지하고 연합사 해체나 전작권 이양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노 대통령이 미국의 그런 의도를 덜커덕 받아서 자주를 갖고 장사를 한 거예요. 우리 국민주권 찾아오고 국민 자존심 찾는다고 하면서 전시작전권을 뺏어온다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을 설득해야 할 판이었는데 속으로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차기 정부가 전시작전권 문제를 반드시 재협상해야 합니다. 북핵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이상 미국 핵우산의 북핵 억제력 작용 형태나 효능에 관해서도 다시 깊이 있는 논의를 해야 합니다.”

    12시를 넘겨 단암빌딩 지하식당에서 주문한 도시락을 들었다. 필자가 외교안보 분야는 책을 통해 공부하느냐, 아니면 별도 과외를 받느냐고 묻자 그는 “늘 뉴스를 들으며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외교안보 분야”라고만 대답했다. 점심 이후에는 가벼운 대화가 이어졌다.

    필자가 ‘죄인론’을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묻자 그는 “무슨 죄인?”이라고 반문했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가 밉다지만 그렇게 된 데는 이회창 전 총재에게 원죄(原罪)가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말에 “나를 원망하는 국민이 많지요”라며 씁쓰레한 미소를 짓고 물 한 잔을 들이켰다.

    “허주, 다 잊읍시다”

    ▼ 허주(虛舟·고 김윤환 의원)가 이회창 대통령 후보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는데 그를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것을 보면서 “‘창(昌)’은 정말 냉혹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일각에서 나왔습니다. 선거에서 득이 됐는지 실이 됐는지 계량하기는 어렵겠죠. 그 양반 세상 뜨기 전에 문병 가서 화해했다면서요.

    “허주에 관해서는 지금도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0년 총선 때 저로서는 참 어려운 결단을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1997년 선거에서 패해 야당이 됐거든요. 대통령이 꾸려가던 여당 체질 정당이 대선 패배로 대통령 없이 들판에 선 야당이 됐습니다. 그야말로 존망이 위태롭게 됐지요. 더구나 파벌정당이었습니다. 1998년 경선을 거쳐 총재가 된 뒤에 언론계 중진들이 제게 ‘당내 파벌을 없애고 정당의 면모를 바꿀 수 있겠나. 파벌의 역사나 힘의 균형으로 볼 때 우리가 보기에는 어렵다’고 했어요. 여당에서 야당이 된 마당에 파벌정당으로 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눈에 핏발이 서서 사람 빼가기를 했습니다. 국회의원 30여 명을 빼갔는데, 어떤 날은 하루에 네 명씩 빼갔어요. 파벌정당 체제에서는 한 파벌이 그런 유혹이나 압력에 넘어가면 쉽게 무너지지요.

    그래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하기 전에 각 파벌 보스에게 ‘우선 최고회의를 구성할 테니 일선에서 물러나달라’고 요구했지요. 그리고 정말 가슴이 아팠지만 정당의 체질을 바꾸고 살아남기 위해 개혁 공천을 했습니다. 그러자 일부는 뛰어나가서 민국당을 만들어 한때 영남지역을 석권하는 듯싶었어요. 그렇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야당이 돼 처음 치른 총선에서 133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습니다. 집권여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했어요.

    뒷날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머무르다 돌아와보니 허주의 상태가 안 좋다고 해서 문병을 갔습니다. 의식이 왔다갔다할 때였는데 마침 제가 갔을 때 정신이 돌아왔어요. 제게 ‘언제 미국에서 왔냐’고 물어요. 수척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가슴이 찡하더라고. 손을 잡고 ‘그동안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 내가 미안하다. 우리 다 잊어버리자. 마음 편히 먹고 빨리 회복하시라’고 했습니다. 허주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조금 있다가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다시 잠에 빠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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