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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렬 한국자산관리공사 부동산사업단장 & 고종완 RE멤버스 대표

강사·학생으로 만나 公·私 부동산시장 거물로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김정렬 한국자산관리공사 부동산사업단장 & 고종완 RE멤버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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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업이 유망하다”

그즈음 고씨는 옛 직장 상사로부터 벤처기업을 창업하려는데, 참여하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는다. 고씨는 고민에 빠졌다. 옛 상사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옛 상사가 창업한 벤처기업에 들어가는 편이 직접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것보다 위험부담이 덜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차에 김씨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고씨에게 부동산업에 종사할 것을 권유했다. 첫째, 부동산업은 대단히 유망한 직종이다. 왜냐하면 IMF 금융위기를 잘 넘기면 많은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려 시장이 훨씬 다양해질 것이고, 몇몇 외국 기업이 국내의 A급(100억원 이상의 부동산) 건물들을 사들이면서 부동산에 대한 접근 방식도 변하고 있다. 이젠 우리나라도 부동산을 사두기만 하면 80% 이상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서서히 깨지고, 과학적인 투자와 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둘째, 고씨는 유동적인 부동산 흐름의 맥을 잘 짚어내고, 그것을 네트워크로 풀어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부동산업엔 아직까지 엘리트가 모여들지 않아 조금만 더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것이다.

고씨는 김씨의 조언에 따라 1억5000만원을 투자해 부동산중개소를 차렸다. 그리고 주위에서 권유하는 주식과 벤처기업에 3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그가 투자한 주식의 가치가 폭락하고, 벤처기업은 망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중개소 실적도 별로 좋지 않았다. 고씨는 강의를 잘했지만, 매수자와 매도자의 비위를 맞추는 데는 서툴렀다. 강의하러 다니느라 중개소 일을 직원에게 전적으로 맡기다시피 한 잘못도 컸다. 결국 직장을 그만둔 지 2년여 만에 퇴직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고씨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단연 청중 앞에서 하는 강의였다. ‘건국부동산경제연구소’라는 1인 기업을 세우고, 본격적인 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한 재건축과 경매 관련 정보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제공하고 일반인 대상 컨설팅도 했다. 그가 제공하는 정보가 유익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네티즌 사이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도장가게 주인의 안목

2002년 초, 고씨는 김씨로부터 다시 ‘러브콜’을 받는다. 법률, 금융, 마케팅 등 부동산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부동산 드림팀’을 만들고 있는데, 고씨가 국내 부동산 중개 분야를 맡아줄 것을 제안해온 것. 박준봉 한국리모델링협회장, 유정봉 주식회사 PSNS 대표, 이경욱 뉴씨티코퍼레이션코리아 이사, 양철원 HMD AMC 본부장, 강병규 부동산씨너지 사장, 김응조 한결법무법인 변호사, 김종필 세무사, 채천석 토지공사 처장, 박경자 멕스리얼티 대표, 김영도 대일에셋감정평가협회 이사, 조욱현 현대산업개발 상무, 김재희 대한토지신탁 사장, 심영섭 우림건설 대표 등이 당시 ‘드림팀’ 멤버다. 이들의 면면에 비해 고씨의 이력이나 명성이 턱없이 뒤떨어졌지만, 김씨가 나서 ‘보증’함으로써 고씨는 드림팀에 합류했다.

그 무렵 김씨는 고씨와 종로의 이름난 도장가게를 찾았다. 그로부터 10여 년 전, 김씨는 그곳에서 친구의 소개로 거금을 들여 도장을 새긴 적이 있다. 당시 관상과 사주를 보는 데 능한 주인이 김씨에게 “10년 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 김씨는 10년 후 부동산 업계에서 꽤 유명해졌다.

김씨는 대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1981년에 지금의 한국자산관리공사 전신인 성업공사 공채 1기에 수석 입사했다. 성업공사에서 부동산에 대한 기획과 집행, 채권추심 등의 업무를 10년 동안 맡아 했다. 1991년 정부에서 당시로선 획기적으로 부동산 신탁회사인 대한부동산신탁을 세우자 김씨는 그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 때 대한부동산신탁이 문을 닫았고, 김씨는 ‘대한부동산경제연구소’를 열었다.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워낙 부동산 기획통으로 이름을 날린 김씨에게 일간지 기자들로부터 금융위기 상황에서의 부동산시장을 전망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그러던 중 ‘매일경제’ 기자가 김씨에게 생계형 부동산 실무 강좌를 개설해보자고 제안했는데, 그것이 고씨를 처음 만난 ‘부동산중개업 창업과정’이다.

김씨는 그 후 경향신문에 ‘김정렬 부동산칼럼’을 연재하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높여갔다. 1999년 말엔 지방 언론사 사주가 ‘부동산써브’라는 부동산 정보회사를 만들고, 김씨를 전문 경영인으로 스카우트했다. 1년간 좋은 실적을 내며 이론에 실무 경험까지 쌓은 김씨는 부동산 드림팀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김씨는 드림팀의 다른 구성원의 반대에 상심한 고씨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에 도장가게를 찾았다. 주인은 머리가 하얗게 되어 두 사람을 맞았다. 가게 주인은 고씨에게 “내가 권한 도장을 파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꽤 고가(高價)였지만 고씨는 선뜻 도장을 새겨달라고 했다. 김씨는 성공을 향한 고씨의 강한 집념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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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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