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서평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조선시대 사회, 문화를 웃음으로 꿰뚫다

  • 오세정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놀이 연구소 연구교수 osj@aks.ac.kr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2/2
웃음은 인간과 너무 닮았다. 야비하고, 색스럽고, 변태적이다. 우스개 하면 음담패설이 빠지지 않고, 성기에 대한 은유와 환유는 그 범위를 짐작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웃음의 본색을 놓치지 않는다. 첫날밤 성행위를 치른 신부가 신랑에게 투정을 부린다. 기교가 뛰어난 걸 보니 첫경험이 아니라고 확신해서다. 과부가 개와 관계를 맺으려는 것을 아들들이 야단치자 윗구멍(上口)말고 아랫구멍(下口)도 중요하고 더 크다고 일침을 놓는다. 술, 돈, 종이를 의인화한 가전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기를 의인화한 가전체도 있다. 또한 남성에 의해 성적 대상이 되어버린 여성은 왜곡당하고 수모를 겪는다. 단적인 예로 우스개 속에서, 강간을 당하던 여성이 성행위 후에 즐거워하며, 간통을 하고서도 여성만 벌 받기 일쑤다. 이 같은 이야기들을 저자는 음담패설을 통한 남성들의 관음증적 시선과 욕망으로 해설하고 있다.

웃음은 점잖고 유식하다. 심지어 모른 척 딴전을 편다. 에둘러 와서 실제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백사(白沙) 이항복이나 현곡(玄谷) 조위한 같은 당대의 문장가들은 우스개의 달인이었다. 이항복은 어전회의 때 원수 권율을 속여 임금 앞에 맨발을 내어놓게 해 웃음거리로 만든다. 더군다나 권율은 이항복의 장인이다. 이 상황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명품 우스개꾼의 재치와 거기에 걸맞은 명품 해설이다.

“권율은 임진왜란 도원수로 육전을 총지휘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 카리스마 넘치는 원수가 사위에게 속아 왕과 신하들 앞에서 맨발을 드러낸다. 장인에게 장난을 친 사위가 그렇다고 철부지도 아니다. 그는 병조판서,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을 두루 지낸 역사적 인물 이항복이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는 조정, 특히 선조대의 조정은 국가와 백성의 운명을 결정하는 엄숙한 곳인데, 그런 장소에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면 재미있다. 이항복은 더운 여름 소낙비처럼, 경직된 조정에 활력을 불어넣는 인물이다.”

오래된 웃음의 가치

웃음은 역설적이다. 역설적이라는 말은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든 용어다.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독사(doxa), 즉 집단적 교리에 반하는(para) 것이 바로 역설, 패러독스(paradox)이다. 웃음을 통해 우리가 아는 일상적 상식, 교리, 진실이 뒤집힘을 경험하고 반전을 목도한다. 웃음의 역전(펀치 라인· Punch line)은 바로 그 찰나에서 나온다. 문학의 시적 표현 중 힘있게 감동을 주는 표현법으로 나는 역설이나 반어를 으뜸으로 꼽는다. 소월은 ‘그리워하다 잊었노라’고 노래하고, 만해는 ‘님은 갔지만 보내지 않았다’고 노래한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니 전혀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 노래의 절절함과 진실함을 안다. 극과 극은 통한다 했던가.



웃음 또한 극과 극 사이에서 생성된다. 웃음은 뒤집는 것이다. 뒤집어놓은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하고 시대적으로 온당한지 따지기 이전에 웃음의 역설적 힘을 자각해야 한다. 웃음은 가벼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가벼움이, 순간, 일상에서 느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벗어나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그 에너지를 숲 속에서 찾으라고 주문한다. 웃음의 숲에서 놀고 나온 사람들, 즉 자신의 독자들이 그 숲의 꽃과 바람, 햇살을 만끽했으니 이제 그것들과 닮아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옛날 우리 선조들의 우스개에는 진지한 사고도 있고 음담패설도 있지만 모두가 소중하다. 왜냐하면 이 우스개 때문에 우리는 기생의 말을 기억하고, 근엄한 척하는 양반들이 성적 환상을 지녔음을 눈치채고, 구제불능의 공처가라는 비밀을 알게 된다. 이 같은 웃음의 사회·문화사는 비단 조선시대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옛사람들의 웃음을 통해 그들의 삶의 흔적들, 그들의 문화를 알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오래된 웃음의 숲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아니 웃음을 통해 그 숲은 지금 나의 삶터가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평소 농담도 이해 못하던 사람이 어떻게 웃기는 책을 썼냐는 놀림에, 저자는 조선시대 우스개꾼 현자 같은 답을 했다. 자신처럼 “웃음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 역설적으로 더 웃음을 원한다”고.

신동아 2006년 12월호

2/2
오세정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놀이 연구소 연구교수 osj@aks.ac.kr
목록 닫기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