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바진의 대표 소설 ‘가’, 수상록 ‘매의 노래’

‘영원한 아나키스트’ ‘시대의 양심’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입력2006-12-13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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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진의 대표 소설 ‘가’, 수상록 ‘매의 노래’

    ‘가’(전 2권) 바진 지음/박난영 옮김/황소자리/각 311쪽, 327쪽/각 9800원‘매의 노래’ 바진 지음/홍석표 외 옮김/황소자리/343쪽/1만8000원

    바진(巴金)은 ‘20세기 중국의 양심’으로 불린다. 1904년 11월에 태어나 2005년 10월에 죽었다. 101살, 20세기를 온전히 살고 갔다. 그가 살았던 1904년부터 2005년까지 중국은 봉건과 군벌 시대, 국민당 시대, 항일전쟁과 사회주의 혁명,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 문화대혁명, 그리고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 세기를 보냈다. 그동안 중국에 숱한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는 그 정권의 빛에 도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의 어둠을 투시하는 시대의 양심이었다. 청년시절 아나키스트가 된 이후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아나키스트였다.

    대가정에 대한 회의

    바진은 중국의 전통적인 대가정에서 태어났다. 중국의 전통 대가정은 대개 100명 내지 200명이 함께 거주했는데, 그의 집도 그러했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20여 명, 형제 세대가 30∼40명, 그리고 하인이 50여 명이었다. 그런 전통적인 대가정은 바진이 세계와 인간을 보는 출발점이었고, 문학의 기점이기도 했다. 어른 위주의 수직적 억압 구조 속에서 아랫사람은 일방적으로 억압당하고 희생당하고, 특히 하인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세상의 진면목을 그는 대가정에서 목도했다. 특히 열 살 때 어머니를,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후 대가정 안에서 벌어진 갈등과 암투는 전통 대가정에 대한 회의를 더욱 키웠다. 원래 중국은 ‘가국일체(家國一體)’ 사회였기에 전통 대가정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가정을 넘어 봉건제도 자체에 대한 혐오와 비판으로 이어졌고, 이는 바진의 삶과 문학의 기본 축을 이루었다.

    ‘가(家)’는 바로 그러한 전통 대가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로 바진의 대표작이다. 소설은 가오(高)씨 4대가 살고 있는 대가정을 배경으로 중국 전통사회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대서사시다. ‘가’는 다른 어떤 중국 소설보다도 중국 전통 대가정 내부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소설 속 대가정은 격변기 중국의 축도(縮圖)여서 가오씨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은 그대로 전통 중국의 몰락사(史)이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어른과 새로운 세대 사이의 갈등은 전통과 근대가 교전하는 근대 전환기 중국의 상징이다.

    소설은 가오씨 집안의 3세대라 할 쥬에신(覺新), 쥬에민(覺民) 쥬에후이(覺慧) 3형제 이야기가 중심이다. 서구 제국이 중국을 침략하는 가운데 나라는 위기에 처하고 새로운 사상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근대적 개혁운동이 일어나던 무렵, 3형제는 봉건 전통 윤리와 새로운 사상 사이에서 갈등한다. 소설에서 큰아들인 쥬에신은 결국 전통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 전통 가정과 함께 몰락한다. 쥬에신은 바진의 실제 큰형과 겹쳐 있다. 그의 큰형은 아버지가 죽은 뒤 어렵게 가정을 지탱하고 동생들과 식솔을 돌보다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자살했다.



    아나키스트 삶의 원칙

    하지만 둘째 쥬에민과 셋째 쥬에후이는 근대 지식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새로운 시대를 열 주축으로 성장해 나아간다. 소설 전반부에는 주로 전통 대가정의 어둠과 비극이 묘사되어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새로운 물결을 타고 대가정 내의 전통 세력과 새로운 세력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격렬해진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쥬에신은 “더 이상 집에서 배겨날 수 없다”면서 집을 떠난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 상하이로 떠나는 것이다.

    중국의 현대는 유교를 타도하자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아편전쟁(1840)이래 민족 위기가 갈수록 심해지자 중국인들은 중국을 구하기 위한 방도를 고민했다. 처음에는 무기나 새로운 군함만 있으면 될 줄 알았지만 그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쑨원(孫文) 같은 이가 나와 정치제도를 서구처럼 민주공화정으로 바꾸려고 신해혁명(1911)을 일으켜 공화국 정부를 세웠지만, 그것도 실패였다. 그러자 1915년부터 서구 근대 지식의 세례를 받은 급진적인 지식인들은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중국인의 의식과 사상을 바꾸는 일이며,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중국은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통 도덕의 상징인 유교를 타도하자는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른바 신문화 운동이다.

    이 신문화 운동 속에서 전통 체제와 전통 윤리의 상징인 ‘집(家)’이 가장 중요한 타도와 해체의 대상이었다. 쥬에신처럼 새로운 사상을 접한 당시 중국의 신 청년들은 ‘집’을 타도하고 가출을 감행했다. 바진의 ‘가’는 그런 시대를 보여준다.

    소설에서 쥬에신이 가출하여 상하이로 가듯, 바진은 19세(1923년)에 집을 떠나 상하이로 간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나키스트 저작을 탐독하고 아나키즘의 주요 글들을 번역한다. “나는 모든 사람의 자유 속에서 나의 자유를 찾고, 모든 사람의 행복 속에서 나의 행복을 구하겠다”고 삶의 좌표를 세우고는, 일체의 국가와 정부에 반대하며 자본계급이 없는 세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아나키스트의 길을 간다. 아나키스트로서 바진은 자신의 삶의 원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나의 주의를 판 적이 없으며, 어떠한 사람, 어떠한 당과도 타협한 적이 없다. 8년 전 아나키스트가 된 이래 나는 죽을 때까지 한 시각 한 초도 아나키스트가 아닌 적이 없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한 시각 한 초도 아나키스트가 아닌 적이 없을 것이다”는 그의 다짐은 국민당 정부의 파시즘이나 제국주의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그런데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뒤 아나키스트로서 평생을 살겠다는 그의 다짐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까. 바진은 흡사 예언처럼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우두머리가 나폴레옹이나 위안스카이(袁世凱)로 변하지 않으리라 누가 보장하겠는가?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된다. 그는 우파 독초로 지목당해 갖은 굴욕과 고초를 당한다. 그런 광기의 시대에 더없이 사랑했던 분신인 아내마저 잃는다. 병사(病死)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사인(死因)은 문혁(文革)이다.

    문혁, 절대 잊지 말아야

    바진의 ‘매의 노래’는 그렇게 10년 동안 온갖 굴욕과 폭력을 겪은 뒤 문혁 시기를 되돌아보면서 피로 쓴 회상의 기록이다. 이 책은 바진이 ‘수상록’이라 이름붙여 쓴 문혁 시기 회상록 중에서 대표적인 글들을 가려 뽑은 것인데, 20세기 중국의 양심으로서 바진의 인격이 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금까지 문혁 때 수난 당한 지식인들의 문혁 체험이 담긴 글이 여러 편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바진의 문혁 수상록은 단연 돋보인다. 바진의 문혁 기억에는 인간이 짐승이 되어 저지르던 광기와 폭력에 대한 고발과 더불어 그러한 시대가 초래된 데 대한 아픈 자성이 들어 있어서 그렇다. 바진은 “내가 온갖 모욕을 받고 실컷 시달림을 받았다고 하지만, 나는 왜 머리를 써서 사고하지 않았는지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으로서 나의 지식은 어디에 표현되었던가?”라고 자문하면서, “4인방이 나를 ‘반동적인 학술 권위자’라고 부르자 나는 고분고분 따르며 ‘학술’을 머리 뒤로 던져버렸다”고 자성한다. 비록 “그 누구도 맑게 깬 두뇌를 유지할 수 없던 시대”였지만 짐승의 시대를 노예로 산 자신에 대한 자성, 그리고 “아마 내가 (혁명세력에) 중용되었다면 나 역시 나쁜 일을 서슴지 않고 했을 것이다”는 아픈 자기 해부가 들어 있다. 가해자였던 사실은 숨기고 희생만 부각하는 뻔뻔한 문혁 기억, 중공당과 중국 정부의 통제에 따라 각색된 문혁 기억이 난무한 현실에서 바진의 문혁 기억이 더없이 소중한 이유이다.

    바진은 문혁이란 ‘좌(左)’라는 외투를 걸친 종교적 열정이었고, 사람과 짐승이 뒤바뀐 과정 역시 혁명이라는 외투를 걸친 봉건주의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비극이 재연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바진은 사람과 짐승이 뒤바뀌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그 피비린내 나던 10년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고, 맑게 깨어 있고, 독립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중국인에게 요청한다. 바진의 이 요청이 어디 문혁을 겪은 중국인에게만 해당할 것인가. 야만의 독재 시대를 산 경험이 있고, 이념적 열정이 종교적 맹신이 되어 인간을 억압하던 역사를 가진 사람 모두에게 바진의 요청은 더없이 절절한 비수이자 삶의 좌표이다. 문혁이 발발한 지 40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가 바진을 기릴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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