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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호 특별부록 | 한국의 核주권

일본의 원자력 정책

세계 유일의 피폭 국가→핵무기 갖지 않고도 플루토늄 보유한 세계 유일의 국가

  • 전진호 광운대 교수·일본학 jeon@kw.ac.kr

일본의 원자력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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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두 기관의 협의에 의해 결정되는 ‘내부자 거래’ 성격을 띤다. 따라서 일본의 원자력계는 일치단결해 원자력 공동체 외부의 공격에 대응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체제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1956년 재처리 계획 확정

1956년 원자력 개발과 이용에 관한 정책을 기획·심의·결정하는 기관으로 발족한 원자력위원회는 원자력 행정의 기본정책인 ‘원자력 개발이용 장기기본계획(장기계획)’을 수립했다. 장기계획에는 고속증식로의 개발과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플루토늄 연료의 이용이라는 핵연료사이클 정책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유일한 피폭 국가인 일본이 원자력 개발 초기 단계에서 이미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얻은 플루토늄을 준(準)국산 연료로 이용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1971년 일본은 고속증식로 실험로인 ‘조요(常陽)’를 건설하고, 1994년에는 상업용 고속증식로인 ‘몬주(文殊·석가여래의 왼쪽에 있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에서 유래)’가 임계(臨界)에 도달했다(임계는 연속적으로 핵분열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원자로가 임계 상태를 유지해야 발전할 수 있다).

몬주가 임계에 도달함으로써 일본은 플루토늄을 연료로 하는 발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의 핵연료사이클은 플루토늄을 이용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전세계가 안전성과 경제성 등을 이유로 핵연료사이클 계획을 중단하는 사이 일본은 ‘꿈의 원자로’라고 불리는 고속증식로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일관성이 일본의 힘이라 할 것이다.



카터 행정부 시절 미국은 엄격한 핵 비확산 정책을 택해 재처리 금지를 요구했으나 일본은 흔들리지 않고 재처리시설 공사를 계속했다. 1977년 실험시설 성격인 도카이무라의 재처리시설을 가동하고, 올해는 본격적인 재처리시설인 로카쇼무라 시설이 시험가동에 들어갔다. 일본의 10개 전력회사가 공동 출자해서 만든 로카쇼무라의 재처리시설은 연간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다.

1968년부터 플루토늄 도입 가능

미국의 지원과 협력은 일본의 원자력 발전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미국으로서는 일본 내부를 안정시키고 서방세계의 정치·경제적인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경제를 부흥시킬 필요가 있었다. 또 일본은 미국 원자력 산업계의 거대한 시장이었다.

미일 원자력 협력은 1953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원자력 평화이용 제안’에 따라 시작되었다. 일본은 1955년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를 공급받기 위해 ‘미일 원자력 연구협정’(이하 연구협정)에 조인했다.

이 협정은 미국이 일본에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하고, 20% 농축 우라늄 30kg(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235는 6kg)을 5년간 대여하며, 미국은 관련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사용후핵연료는 일본에서 재처리하지 않고 미국에 반납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1958년엔 발전용 원자로를 도입하기 위해 미일 원자력 일반협정을 조인했다. 이 협정으로 일본은 우라늄-235를 2.7t까지 미국에서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1964년 미국에서 우라늄 농축사업이 민영화함에 따라 새로운 원자력협정 체결이 요구돼, 1968년 새로운 미일 원자력 협력협정이 조인되었다. 신협정에 따라 일본은 미국에서, 발전 목적으로 연간 161t의 농축 우라늄과 연구 목적으로 플루토늄 365kg을 공급받게 되었다. 이후 규모가 커진 일본 원자력계는 농축 우라늄 수입량을 확대하기 위해 1973년 이 협정을 개정했다. 개정된 협정에 따르면 일본은 연간 335t의 농축 우라늄을 미국에서 수입할 수 있고, 플루토늄 공급량의 상한선은 삭제되었다. 플루토늄의 일본 밖 이전 금지도 해제되었다. 일본은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국가에 대해서는 플루토늄을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게 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영국과 프랑스로 보내 재처리한다는 일본의 정책은 1977년 발표된 카터 행정부의 핵 비확산 정책과 1978년 제정된 미국의 핵 비확산법(NNPA)과 충돌하게 되었다. 양국의 갈등은 미국이 ‘상업용 재처리도 반대한다’는 방침에서 후퇴해 ‘사용후핵연료의 보관 장소가 부족하고, 이를 처분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에 한해 이전을 승인한다’고 함으로써 풀렸다.

1977년 일본은 영국과 프랑스에 위탁 처리해오던 사용후핵연료를 일본에서 처리하기 위해 이바라키(茨城)현 도카이무라에 재처리시설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 시설에서 재처리할 사용후핵연료는 미국에서 수입한 것이라, 미국의 사전 동의가 필요했다. 도카이무라의 재처리시설은 프랑스의 설계와 기술로 건설됐는데, 이 시설을 지으라고 권유한 것은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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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호 광운대 교수·일본학 jeon@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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