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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호 특별부록 | 한국의 核주권

방폐장 유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변화

원자력시설과 공존공영하는 지혜를 익히다

  • 최승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전문위원 sjchoe@knef.or.kr

방폐장 유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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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폐장 유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변화

‘스와니’로 불리는 로카쇼무라의 문화교류 플라자.

시설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원자연료대책협의회’를 구성하고 주민연구회 결성, 국내외 관련시설 견학, 앙케트 조사 등을 통해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에 대한 주민의 이해를 넓혀 나갔다. 이후 내각의 승인을 거쳐 1991년 11월 과기청으로부터 방사성폐기물 1차분 20만 드럼을 저장할 저장소 건설허가를 얻어 1992년 12월부터 운영을 개시하였다.

특별법 통한 지원 이행

이러한 일련의 추진 과정에서 주민의 반대여론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도입한 특별법 같은 대규모 지원 정책이다. 일본 정부는 ‘전원(電源) 3법’이라는 관련 법률을 제정하여 1988년부터 2005년까지 로카쇼무라, 인접 지자체, 아오모리현 등에 총 423억엔(약 4200억원)의 특별 교부금을 지급했다. 우리 정부가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역에 3000억원의 특별지원금을 주기로 한 것은 이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의 일본 농촌이 그러했듯이 이곳도 인구가 줄고 주민 고령화 문제가 심각했다. 1980년 1인당 소득을 비교해보면 로카쇼무라가 89만엔, 아오모리현이 122만엔, 일본 전체가 170만엔이었다. 이곳은 일본 평균 소득의 절반 수준인, 아오모리현 가운데서도 가장 못사는 마을에 속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등 원자력시설을 유치하면서 로카쇼무라의 1인당 연간 주민소득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2000년 말 기준 320만엔에 달했다. 이는 아오모리현의 252만엔보다 훨씬 높고 일본 전체 평균 299만엔보다 높은 것이었다. 마을의 산업구조도 크게 변했다. 1985년 1차산업 41%, 2차산업 22%, 3차산업 37%의 구성비를 보이던 것이 2000년에는 1차 14%, 2차 45%, 3차 41%로 바뀌었다. 반농반어의 1차산업 중심에서 2차·3차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세금납부로 지방재정에 대한 기여도 또한 상당히 높아졌다.



로카쇼무라에서는 더이상 인구가 감소하거나 고령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 인구가 늘어나는 가운데 청·장년층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로카쇼무라 성인 남자들은 농한기인 겨울철이 다가오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으레 대도시로 떠나곤 했다. 그러나 이제 로카쇼무라에는 농한기에 대도시 취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기업유치로 인해 취업기회가 많아졌고, 각종 지원사업 시행으로 소득을 올릴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달라진 삶의 질

로카쇼무라에서는 참마, 감자, 무, 당근이 많이 재배되고 있고 매일 생산되고 있는 우유는 물론 치즈, 아이스크림, 요구르트도 호평을 얻고 있다. 원자력 시설이 있음에도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오징어, 연어, 대구와 전복, 다시마를 가공한 특산품은 인기가 대단히 높다.

시설 유치에 따른 지원금과 경제적 효과로 지역주민 생활의 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지원된 교부금으로 도로망 등 사회간접시설이 확충되고 지역 도서관을 비롯해 노인복지센터, 장애인 편의시설, 첨단 콘서트홀, 축구장, 야구장, 테니스장 같은 문화시설이 들어섰다.

장서 3만권을 갖춘 도서관과 공연장 등이 들어선 문화교류 플라자는 ‘스와니(Swanee)’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로카쇼무라는 원래 백조(Swan)를 비롯한 희귀 철새의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라 그와 같은 애칭이 붙었다.

로카쇼무라의 방대한 핵연료 사이클 단지에는 우라늄 농축공장, 재처리시설 등이 몰려 있지만 주민들은 평온하게 일상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주민뿐만 아니라 일본 환경단체도 시설 유치 반대에 가세했다. 일본 환경단체들은 주민들에게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건설에 반대하지 않으면 이 지방 농수산물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위협까지 했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인 일본에서 처음 건설되는 시설인데다 당시는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 여파로 원자력 시설에 대해 특히 민감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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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전문위원 sjchoe@kne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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