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의 서울. 지금의 명동 부근에 형성된 일본인 상권 ‘본정(本町)’의 풍경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근대적인 변화가 이뤄지기 시작해 오늘날과 같은 근대사회가 형성됐을까.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강점기에 근대화가 시작됐다고 본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선 사회가 근대화했다는 것이다.
과연 일제 강점기에 조선이 근대화했을까.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조선 사회는 개항 전후로 서서히 근대사회로 변해가고 있었고, 일제 강점기 역시 시기적으로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변해가는 과도기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근대적 변화 중 일부는 조선 자체 변화의 일부일 것이고, 또 일제의 조선 지배에 의해 이식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이 조선을 지배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는 왜곡되고 발전은 지체됐다.
정치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은 정치적으로 무(無)권리 상태에 놓여 있었다. 사회적으로 일제 강점기는 불평등한 소득분배로 계층 간 소득격차가 매우 심했을 뿐 아니라 민족차별 역시 격심했다. 문화적으로 일제는 조선의 말과 글, 그리고 역사를 없애려고 했다. 정치·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봤을 때, 한국 사회는 식민지체제를 청산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근대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본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는 어떠한가.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경제가 고도성장을 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 경제도 매우 빠르게 발전했다는 시각이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기간은 제1차 세계대전기, 전후 회복기, 세계 대공황기, 제2차 세계대전기였다.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더딘 시기였다. 바로 이런 침체기에 조선 경제가 일본 경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을 달성했다는 게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이다. 물론 조선에서는 민족별 소득격차가 확대되기는 했지만, 파이의 크기가 워낙 빨리 커졌기 때문에 조선인도 그 성장의 혜택을 받아 소득이 증대되고 생활수준도 향상됐다는 것이다.
과연 일제 강점기에 조선 경제가 그렇게 빨리 성장했을까. 또 조선인의 소득도 증대되고 생활수준도 향상됐을까. 정치나 사회, 문화적인 측면과는 달리 경제 분야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양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1인당 생산이나 1인당 소비와 같은 지표를 사용해 그것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쿠즈네츠의 ‘근대적 경제성장’
이런 지표와 관련해 널리 사용되는 것이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쿠즈네츠(S. Kuznets)의 ‘근대적 경제성장’개념이 그것이다. 쿠즈네츠는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1인당 생산이 적어도 30~40년 이상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조건이 충족될 때 근대적 경제성장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20세기에는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에 첫 번째 조건은 별문제 없이 충족된다. 따라서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조건만 충족되면 근대적 경제성장이 있었던 것이 된다.
근대와 전근대는 질적으로 엄연히 구별되는 사회다. 쿠즈네츠 같은 거물 경제학자가 이런 질적인 변화를 간과했을 리 없다. 비록 그의 기준이 1인당 GDP의 지속적 증가와 같은 양적인 것이지만, 그는 질적인 변화 없이 그런 양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