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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관리’ 국민훈장 받은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

“우리는 기록의 민족, 옛 지혜 살려 기록문화 선진국 돼야”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기록관리’ 국민훈장 받은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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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LG연암문고 탄생

책을 모으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옛 조상부터 가까이는 최남선, 김완섭, 이인재 같은 장서가들을 떠올렸다. 우리 고서를 모으는 다른 장서가와 달리 그는 ‘한국을 다룬 서양 책’으로 테마를 정했다.

“세계사는 한국사와 별도로 근현대사에서 보편성을 띱니다. 제가 서양 책을 주로 모은 것은 ‘세계 속의 한국’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언어 장벽과 해외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번거로운 절차 탓에 서양 책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지요. 그러나 서양이, 다시 말하면 세계가 한국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역사적으로 검증하려면 한국에 대한 서양 고전을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세계 각국 언어에 능통한 인력이 필요했고, 국내외 고서점을 이 잡듯 뒤져야 하는데 일손도 턱없이 모자랐다. 책의 문헌적 가치도 아리송했다. 문헌정보, 언어, 역사 전문가들에게 본격적으로 해외 한국학 서적을 수집하고 싶다고 자문한 결과,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1995년 역사, 문헌정보학 등 관련 전공 교수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300쪽에 달하는 계획서를 만들어 LG그룹 구본무 회장을 찾아갔다. “명지학원 예산은 학생들을 위해 써야 하니 LG에서 한국 고서 수집을 지원해달라”는 그의 요청을 구 회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명지대·LG연암문고가 탄생했다. 이제 문고를 빛낼 책을 수집하는 일만 남았다.



수집 목표량을 500~1000권으로 잡았지만 한국학 관련 해외 서적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범위를 좁힐 필요가 있었다. 우선 일본과 중국 서적은 수집 대상에서 제외했다. 중국과 일본 책까지 모으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 발간 시기는 1950년 이전으로 정했다. 1950년 이후에 발간된 한국 관련 책은 대부분 6·25 관련자료라는 판단에서였다.

아무리 전문가들이라지만 수집 초기에는 좌충우돌 헛물도 많이 켰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 한국 관련 서적 수집은 전례가 없었다. 연암문고를 채워가는 일은 어떻게 보면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고서점을 많이도 뒤지고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고서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쩔쩔맸지요. 영국, 프랑스의 고서점들은 대개 문을 연 지 100년이 넘은, 말 그대로 고서점입니다. 주인들도 대부분 3, 4대째 가업을 이어온, 해당 분야 박사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들과 인연을 맺고 차곡차곡 신뢰를 쌓은 끝에 이제는 좋은 ‘물건’이 있으면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줄 정도가 됐습니다.”

해외 고서 수집의 관건은 역시 정보다. 그래서 세계 고서상(商)과의 관계 맺기에 무엇보다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각국 언어에 능통한 직원들이 고서점 정보를 수집하고 발품을 팔았다. 연을 맺은 고서점에서는 정기적으로 보유 서적 리스트가 담긴 카탈로그를 보내온다. 세계사와 한국사에 조예가 깊은 고서위원들이 이 리스트 가운데서 필요한 책을 선별하는 게 마지막 과정. 이렇게 13년 동안 모은 책이 1만여 권에 달한다.

“역시 ‘세계 언어’인 영어로 씌인 책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수집하면서 러시아의 한국학 연구가 왕성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1917년 소비에트 혁명부터 1970년대까지 조사했더니, 한국 관련 러시아 책이 무려 2019권이나 발간됐더군요. 책을 다 구하기 힘들어 마이크로필름으로 한국 관련 부분만 찍어왔는데, 그 필름이 62통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불어, 독어본이 많고요. 일본은 한일강제합방을 하기 위해 조선의 광물, 식물 현황을 조사한 책을 많이 냈더군요.”

이완용의 시 ‘兩地一家天下春’

오랜 기간 세계 고서점을 돌며 진귀한 자료도 다수 확보했다. 그 가운데 유 이사장이 가장 아끼는 것은 ‘함녕전시첩(咸寧殿試帖)’. 한일강제합방 1년 전 덕수궁 함녕전에서 연 이토 히로부미의 송별연에 참가한 이들이 지은 시가 실려 있다. 1990년대 말 일본 경매에 나온 물건을 30만엔을 주고 구입했다. 유 이사장은 “이완용의 글씨뿐 아니라 고종과 데라우치 총독, 그리고 을사 5적의 서명이 모두 들어 있는 귀중한 자료인데, 보관자와 관계자가 그 가치를 몰라봐서 싸게 샀다”고 했다.

“옛날에는 좌중 가운데 가장 지체 높은 사람이 운을 띄우면 거기에 맞춰 시를 짓는 게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송별연에서 고종이 인(人), 신(新), 춘(春)의 운을 띄웠는데, 이 운을 받아 이토를 비롯한 일본인 3명과 이완용이 시를 지었죠. 재미있는 건 일본인 무리와 이완용의 시에 조선 침략에 대한 구상이 드러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완용은 ‘양지일가천하춘(兩地一家天下春)’, 즉 ‘두 나라가 한집안이니 온 세상이 봄이다’라고 지었거든요.

고종이 띄운 이 3개의 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옛날 중국 초나라 때 다른 나라에 끌려간 왕비가 저항의 의미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극적으로 저항한 것이지요.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춘(春), 신(新), 인(人)을 넣어 그 소극적인 태도를 꼬집는 시를 지었죠. 고종은 바로 이 시와 같은 운을 띄워, 저항하고 싶지만 소극적인 행동밖에 할 수 없는 심중을 나타낸 겁니다. 이렇듯 과거의 기록은 역사의 훌륭한 증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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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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