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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설립자 김연준 리더십 연구

“나는 두 개의 과녁을 뚫었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한양대 설립자 김연준 리더십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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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준과 조영식

한양대 설립자 김연준 리더십 연구

1938년 연희전문 4학년인 김연준의 독창회를 알리는 기사와 팸플릿.

이렇게 시작한 한양대의 현재 랭킹이 4~6권이라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양대는 랭킹 1위인 서울대나 2~3위를 다투는 연세대 고려대와는 다르게 발전해왔다. 경성제국대학의 터를 이어받은 서울대는 미 군정기인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이 공포되면서 탄생한 국내 최초의 종합대학이자 국립대학이다.

고려대는 일제 강점기로 들어가던 시절 이용익 선생이 만들고 김성수 선생 등 민족주의자들이 이어받아 발전했다. 연세대는 신문화와 함께 독립의 기운을 뿌려준 선교사가 세운 학교로 성장 속도가 빨랐다. 이화여대는 기독교, 성균관대는 유학, 서강대는 예수회라는 후광을 업고 명문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한양대는 김연준(金連俊·93) 개인을 배경으로 상위권 학교가 되었다.

광복 후 이 땅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사업가를 꼽으라면 대부분 삼성의 이병철과 현대의 정주영 회장을 꼽을 것이다. 정주영과 이병철은 선(善)하기만 사람도, 무결(無缺)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들은 실패와 좌절에 부딪혔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고 당대에 세계적인 기업을 이루고 후손에게 이어주었다.

‘윤리’라는 한 가지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사학 경영자를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 한양대 설립자인 김연준과 경희대를 이끌어온 조영식(趙永植·86)을 꼽는다. 두 사람은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학교를 발전시켰다.



안팎으로 발휘된 카리스마

혹자는 “교수세계만큼 말 많고 탈 많은 곳도 없다”고 한다. 교수 통솔은 내부 경쟁, 다른 대학과 다투는 것은 외부 경쟁인데 적잖은 대학 경영자가 내부 경쟁을 감당하지 못해 외부 경쟁에서 뒤처지고 때로는 학교를 잃기도 했다.

그러나 김연준은 달랐다. 그는 끝까지 내부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권위를 유지하고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양대의 외부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현재 고령인 관계로 한양대병원에 입원해 지내는 그는 1999년 ‘사랑의 실천’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낸 바 있다. 이 자서전과 수십년 그를 보좌해온 측근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연준 리더십을 추적해본다.

김연준은 ‘관북(關北)’으로 불리는 함경북도 출신이다. 관북은 조선 세조 때인 1467년 일어난 ‘이시애(李施愛·?~ 1467)의 난’으로 인해 조선조 내내 불온한 땅으로 여겨졌다.

김연준의 부친인 김병완(金柄玩)은 두만강 건너에 있는 남양에서 활동한 거상(巨商)이었고 부인인 김성녀(金姓女)와 함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김연준은 3남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김연준의 본관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같은 ‘전주김씨’다.

김연준은 큰형과는 열 살, 작은형과는 일곱 살 차이가 난다. 두 형은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만 나왔으나 ‘시절이 바뀐’ 탓에 연준은 아버지가 세운 명천교회 유치원을 거쳐 전문학교까지 다니는 행운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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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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