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옆에 세워진 마조단터 알림표석.(아래 사진)
역대 임금은 ‘말의 수는 나라의 부(富)와 직결된다’는 믿음 아래 말을 확보하는 방안에 골몰했다. 조선조 세종은 전국에 말 목장을 확장하라고 지시하고, 강화도 전체를 말 목장으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지금도 산간 오지나 섬에 말 목장 흔적이 있다.
말은 선조들의 정신세계나 일상적인 의식에도 깊숙이 관련을 맺고 있었다. 가령 전래설화에서 제왕 출현의 징표로 종종 말이 등장한다. 신라 박혁거세 설화의 백마, 고구려 주몽 설화의 기린마(麒麟馬), 동부여 금와왕 설화의 눈물 흘리는 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불운을 예시하는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붉은 말이나 머리에 뿔 달린 말, 머리가 둘인 말 등은 국가에 이변을 초래할 징조로 간주됐다.
선조들은 말에게 인간과 유사한 영혼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던 것 같다. 전국 도처에 산재하는 말 무덤이나 말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 등이 단적인 예다. 이 외에도 선조들은 민간신앙처였던 서낭당에 여러 형태의 마상(馬像)을 모시고 말과 관련된 각종 민속행사를 즐겼다. 대부분 자취를 감췄지만 일부는 현재도 그 맥을 잇고 있다.
말은 양기와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0월 말날(午日)을 택해 장을 담그고 악귀나 병마를 물리치는 벽사(?邪)의 의미로 대문 앞에 말의 피를 뿌리거나(이 풍습이 팥죽을 뿌리는 것으로 변했다고 한다) 말 모양의 부적을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이런 풍속들은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마(馬)문화를 형성했다.
개고기와 말고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말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말고기를 먹지 않는 유일한 민족일 것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말고기는 주요 육식 메뉴 다. 제주도나 대도시 변두리 일부에서 식도락가들을 위해 말고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나, 이는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다.
우리 민족이 원래부터 말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조 초기에는 말고기를 찾는 사람이 많아 말고기 파동이 일어나곤 했다고 한다. 말고기가 궁중과 관아 등 상류층의 주요 기호식품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서민이라고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의 육포처럼 건마육(乾馬肉)도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말 밀도살이나 말 도둑이 성행해 조정에서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말고기 식육을 금지시키고 밀도살을 중죄로 다스려도 수요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