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호

‘말의 성찬’ 노무현 복지담론, 상처 얼룩진 ‘진보적 복지’

노무현 2003-2008, 빛과 그림자 - 복지

  •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 ymkim@cau.ac.kr

    입력2008-02-14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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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비 확대 주장은 과장
    • 소득분배 일부 기여, 절대빈곤율은 상승
    • 비정규직 70% 사회보험 사각지대
    • ‘용돈연금’ 된 ‘노후연금’
    • ‘힘없는’ 국민연금 깎고, ‘힘센’ 공무원·군인연금은 피하고
    ‘말의 성찬’ 노무현 복지담론, 상처 얼룩진 ‘진보적 복지’

    비정규직 근로자의 70%가 아직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다.

    “진보의 핵심 가치가 복지입니다. 복지를 위해 5년 내내 노력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올 초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서 한 말이다. 후일 어떤 평가가 내려지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대통령의 이 말은 나름 ‘이유 있는 항변’으로 들린다. 그러나 한때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은 고위 인사는 일간지 인터뷰에서 정반대의 말을 쏟아냈다.

    “참여정부는 분배에 집중하지 못했다.”

    발언의 주인공은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참여정부 정책결정 과정의 최고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의 상반된 말은 참여정부 사회복지 정책의 명암을 그대로 보여준다.

    복지예산 확대의 명암



    참여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사회복지를 확대한 정권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국민의 복지 체감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은 소득분배 악화,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 문제가 확산되는 속도와 강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여기에 주택과 교육 등 가계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심적인 민생 문제가 악화되면서 그나마 확대된 사회복지 부문의 성과마저 평가절하당하는 형편이다.

    복지정책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소득분배 개선이다. 따라서 복지정책이 소득분배 개선에 어떤 효과를 미쳤는지는 매우 중요한 평가척도가 된다. 먼저 참여정부가 자랑하는 복지예산의 확대를 보자. 참여정부의 공식자료에 의하면 2002년 전체 정부 예산 중 22.6%를 차지한 경제관련 예산이 2006년에는 18.4%로 감소한 반면 사회복지 예산은 19.9%에서 27.9%로 수직 팽창했다(정책기획위원회, ‘미래를 향한 도전: 참여정부 국정리포트’). 이 지표를 그대로 인정하면 참여정부는 건국 이래 복지예산이 경제 및 국방예산 비중을 압도적으로 추월한 최초의 정부이며, 한국은 박정희식 ‘개발국가’를 벗어나 근대적인 ‘복지국가’로 이행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27.9%라는 수치에는 국제적으로 복지비 지출로 분류되지 않는 국민주택기금의 대출금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출금은 6조7000억원으로 보건복지부의 2006년 예산 약 9조원과 맞먹는 규모이기 때문에 이 돈이 포함된 복지예산 27.9%는 실제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진 수치다.

    물론 이 기금을 제외하더라도 참여정부의 복지예산이 역대 어느 정권에서보다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연금, 의료보험 등의 자연증가분은 차치하고 기초생활보장, 사회서비스, 여성 및 보육 관련 예산이 대폭 늘어났다. 또 올해부터 약 2조원 이상의 지출이 예상되는 ‘기초노령연금’을 참여정부의 성과로 본다면 복지비 증가폭은 상당한 수준에 달한다.

    그렇다면 늘어난 복지예산을 빈곤 감소나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 어떻게 사용했을까. 참여정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5.2%이던 도시가구의 절대빈곤율은 2003년 6.2%로 높아진 이후 2006년에는 5.7%로 하락하는 추세다. 즉, 참여정부 후반기에 들어와 분배구조가 개선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말의 성찬’ 노무현 복지담론, 상처 얼룩진 ‘진보적 복지’

    서울 남산 인근의 쪽방촌. 절대빈곤층의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국가의 복지제도가 아직 미흡하다.

    하지만 위의 통계는 2인 이상의 도시가계를 기준으로 한 분석으로, 빈곤 실태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빈곤의 위험이 높은 1인 가구, 농촌 가구, 비근로자 가구 등을 포함한 분석에 따르면 절대빈곤가구는 2000년 8.2%에서 2006년 11.6%로 늘어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우리나라의 빈곤실태와 정책적 함의’). 상당한 복지예산 확대에도 빈곤 상태가 개선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물론 절대빈곤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참여정부의 복지 확대와 빈곤 정책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균형 잡힌 평가는 아니다. 소득분배 효과는 1차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현대 복지국가에선 조세와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시장소득이 재조정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세와 사회복지제도에 의한 소득분배 효과는 소득에서 조세와 사회복지 이전소득을 공제하기 이전의 지니계수(시장소득 지니계수)와 공제한 이후의 지니계수(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 변화를 통해 측정된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에 시장소득의 지니계수는 0.3363이었으나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는 0.3241로 약 3.62%의 소득분배 개선율을 나타냈다(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한 분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2006년에는 시장소득의 지니계수가 0.3442, 그리고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가 0.3252로 소득분배 개선율이 5.52% 높아졌다. 물론 이 수치는 OECD 회원국의 평균적인 소득분배 개선율 26.2% 보다는 낮지만 복지예산 확대가 어느 정도 분배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복지예산 확대는 일정정도 소득분배 개선으로 이어졌지만 노동시장 양극화로 발생하는 빈곤층의 증가와 소득분배 악화를 제어하기에는 충분치 못했다는 게 정확한 평가다.

    反복지정책 된 국민연금 개혁

    소득분배 기능 외에 사회복지제도가 지닌 또 다른 핵심 기능은 국민 개개인이 실업, 질병, 고령, 산업재해 등의 사회적 위험에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소득의 중단 내지 감소를 보충해주거나 빈곤층에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데 있다. 전통적인 산업사회에서 발생하는 이 위험들을 ‘구사회위험(old social risks)’이라 하는데, 한국에서는 사회보험과 공공부조(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 위험들에 대처하는 핵심적 복지 프로그램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하기 이전 한국 사회보험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영세사업장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가 대부분인 보험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참여정부는 이들을 사회보험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였다. 그 결과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적용률이 2002년에 21.6%에서 2007년 33.3%로 높아졌고,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의 적용률도 24.9%에서 35.0%, 그리고 23.2%에서 32.2%로 각각 상승했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즉 3대 사회보험의 비정규직 적용률이 10% 이상 높아져 사각지대 해소에 일정한 성과를 나타냈다.

    문제는 70%가량의 비정규직이 여전히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는 참여정부 비정규직 복지대책의 한계로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빈곤층 증가의 여파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납부예외자 규모가 오히려 확대됐다. 2003년 2월 약 420만명에 달하던 납부예외자가 2007년 2월에는 495만명으로 약 75만명 늘어났다. 한편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4대 사회보험의 보험료 부과징수 기능을 국세청으로 이관하는 법률안이 참여정부에서 발의됐는데, 이 법안이 실행되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보험 급여 수준의 변화도 중요한 평가항목 중 하나. 그런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서 상반된 변화가 나타났다. 건강보험의 급여 수준은 참여정부의 보장성 확대 방침에 따라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암 환자의 본인부담률 인하와 비급여 축소 등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비급여 부문을 제외하면 2002년 72.8%이던 암 진료비 건강보험 급여율이 2005년 82.3%로 10% 이상 높아졌다. 비급여를 포함하면 2004년 전체 암 진료비 중 건강보험공단의 부담금은 49.6%였으나 2005년에는 66.1%로 대폭 늘어나 그만큼 환자 개인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말의 성찬’ 노무현 복지담론, 상처 얼룩진 ‘진보적 복지’

    참여정부의 대표 ‘복지상품’은 아동복지의 향상이다.

    국민 노후소득 보장의 기본축인 국민연금에서는 노 대통령의 선거공약과는 정반대로 제도가 변경됐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선거 운동 당시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을 대폭 인하하겠다는 이회창 후보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국민연금액을 인하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회창 후보의 공약이 관철되고 말았다. 2007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부여당이 주도한 연금개혁으로 소득의 60%에 이르던 연금액이 2028년까지 40%로 인하되는 ‘무자비한’ 연금액 축소가 이뤄졌다.

    더욱이 국민연금의 평균 가입기간이 21.7년임을 감안하면 실제 소득 대체율은 20%를 약간 넘어 평균적인 소득을 가진 사람의 연금액이 1인 가구의 최저생계비에도 미달하는 ‘용돈연금’ 수준이 되어버렸고, 이로 인해 연금의 노후빈곤예방 기능이 현저히 축소됐다.

    연금액 인하로 국민연금기금의 고갈 시기는 10여 년 늦춰졌으나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빈곤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친복지적’이라 자부하는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반복지적’ 정책이 되고 말았다. 물론 65세 이상의 현세대 노인을 위한 기초노령연금제도를 도입해 전체 노인의 60%(2008년만 70%)에게 월 평균 8만원 정도의 수당을 지급함으로써 축소된 연금액의 일정부분을 보완했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제도가 보편주의적 기초연금의 성격을 갖지 못하기에 전체적으로 참여정부에서 노후소득보장제도가 상당히 후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신사회위험 대책, 시작에 의의

    극빈층을 대상으로 한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는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극빈층의 생계보호를 가로막던 부양의무자 기준과 자산 평가기준이 완화되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가 2002년 135만명에서 2007년 167만명으로 약 32만명 증가했으며 관련 예산도 같은 기간에 3조2000억원에서 6조2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즉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 수준이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극빈층에 대한 보호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외환위기 이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절대빈곤층과 ‘근로빈곤층’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빈곤집단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편 후기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저출산·고령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 노동시장의 유연화 현상은 아동 및 노인의 보살핌 문제,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 문제, 그리고 특정 계층 사회적 배제의 영속화 등 소위 ‘신사회위험(new social risks)’을 만들어낸다. 신사회위험은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한 선진국에서 1990년대 이후 당면한 최대의 복지 문제이며 아동보육, 여성친화적인 사회서비스의 확충, 직업훈련의 강화 등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복지정책을 필요로 한다.

    한국도 노무현 정부에서 신사회위험이 핵심적인 사회 문제로 부상했고, 여러 가지 정책적 대응이 이뤄졌다. 이 중에서도 아동보육 부문에서는 참여정부의 복지정책 중 대표상품이라 할 정도로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다. 아동보육 예산이 2002년 2461억원에서 2006년 1조574억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그 결과 아동보육시설의 수나 보육시설 이용아동수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반면 일과 가정의 양립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적 정책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 여성친화적 사회정책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동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에 대응키 위해 참여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국가 차원에서 인구 문제에 대비하는 국가계획을 만들었다(새로마지플랜). 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조직화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나 실제 실효성이 있는 정책수단을 집행하는 데에서는 많은 한계점을 드러냈다.

    고령사회에 대비하는 가장 구체적인 수단으로 평가받을 만한 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입법화한 것이다. 이 제도는 일단 노인 돌봄의 문제를 사회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으나 수혜 범위가 제한됐다는 점에서, 또 최소한의 공적 노인요양시설과 관련 인력의 확보 등 기초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제도부터 무리하게 출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말의 성찬’ 노무현 복지담론, 상처 얼룩진 ‘진보적 복지’

    후기 산업사회에서 복지의 수요는 엄청나다. 문제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분배하느냐다.

    노동시장 진입과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집단을 겨냥한 직업훈련 등 직업능력개발사업도 확대됐다. 참여정부 자료에 의하면 실직자나 취약계층을 위한 직업훈련, 재직자 훈련, 그리고 비정규직 훈련 예산을 총괄한 직업능력개발지원 예산이 2002년 7534억원에서 2006년 1조 794억원으로 늘었으며 같은 기간에 대상자 수도 188만명에서 약 300만명으로 증가했다.

    무숙련 빈곤층을 위한 자활사업도 꾸준히 확대됐다. 기초생활법에 의해 시행되는 자활사업은 자활후견기관의 관리 아래 간병사업, 컴퓨터 등 폐자원 활용 사업, 음식물 재활용 등의 영역에 노동능력이 있는 빈곤층을 진입시킴으로써 일을 통한 탈빈곤을 추구했다. 이런 자활사업이 급속히 팽창됐지만 자활 대상자의 탈빈곤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복지담론 ‘사회투자’

    사회 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일자리 제공사업도 노동시장의 진입과 적응이 어려운 빈곤층, 청소년, 저학력 여성 그리고 노인을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사회적 일자리 확대 사업은 2007년만 해도 약 1조원 이상의 관련 예산이 집행됐고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 제공, 저소득층의 일자리 확대에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으나 임금지원 방식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특성 때문에 임금보조를 통해서만 일자리가 유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제공되는 서비스 역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신사회위험 대응책은 참여정부의 복지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고 가장 역점을 둔 분야다. 참여정부는 일과 가정의 양립과 노동시장의 적응, 즉 신사회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을 제도적으로 체계화했고, 신사회위험의 대응이 한국 사회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하다는 점을 사회 전체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분야 역시 신사회위험이 발생하는 강도와 속도에 비해서 정책적 대응이 충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정 정부의 복지정책을 평가할 때 제도 혹은 복지예산의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복지담론에 대한 평가다. 복지담론은 정부 및 주요 사회행위자, 그리고 일반 국민의 복지의식과 인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복지환경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주지하듯 김대중 정부에서는 ‘생산적 복지’라는 복지담론을 제기했고, 참여정부에서는 ‘사회투자’라는 개념을 새로운 복지담론으로 제창했다.

    사회투자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참여정부의 복지전략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했고, ‘비전 2030’ ‘선진복지한국의 비전과 전략’ 등 참여정부가 내놓은 미래의 사회복지 전략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참여정부가 사회투자 개념을 자신들의 핵심 담론으로 수용한 것은 한국 사회의 경제사회적 구조변화가 새로운 유형의 사회정책을 필요로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0년대 초반은 급속한 저출산과 인구고령화가 예견되어 생산가능 인구의 부족, 그리고 노령화 부담이 새로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시기였다. 동시에 외환위기 이후의 양극화로 말미암은 구조 변화로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근로빈곤층의 확대와 소득분배구조의 악화가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경제와 복지는 선순환 관계

    이런 상황에서 참여정부는 과거의 요소투입적 경제성장으로는 한국 사회의 지속적 성장이 어렵다고 보고 새로운 성장 전략, 즉 동반성장 전략을 제시했다. 이때 사회복지 분야에서 선택된 새로운 전략이 사회투자론이다. 사회투자 전략은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와 저출산, 고령화 등의 경제사회구조를 먼저 겪은 유럽에서 나온 새로운 형태의 복지 전략으로 인적자본 향상을 통해 국민의 노동시장 참여를 장려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복지가 경제성장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복지담론은 이런 사회투자 전략과 거의 유사하다. 참여정부는 사회복지와 경제성장이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점을 줄기차게 천명했다. 즉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모순된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보는 것이다. 이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상호 선순환 관계에 있다는 사회투자론의 문제의식과 시각을 공유한다. 사회투자론의 전략적 핵심 목표는 사회정책이 개인의 인적자본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논리 역시 참여정부의 사회복지정책에서 상당히 강조됐다.

    이처럼 사회복지를 사회투자 관점에서 접근한 담론은 학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혹자는 사회투자적 사회정책이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 특히 저출산·고령화와 노동시장의 구조변화라는 맥락에서 유용한 사회복지 전략이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고, 반대편에선 사회투자 개념이 전통적인 복지의 가치를 훼손하고 오히려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기초적 소득보장제도의 진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며 비판했다.

    사회투자론은 견해에 따라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지만 저출산·고령화 등의 인구가족구조 변동,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양극화에 따른 ‘신빈곤층의 출현’이라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매우 유용한 복지전략이 될 수 있다. 특히 경제정책과 사회복지정책을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두 정책의 관계를 상호보완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경제와 복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한국 상황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적어도 복지담론이라는 측면에서 참여정부는 사회복지가 단순히 소외계층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닌 경제성장,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미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중요한 부문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공을 인정받아야 한다.

    지지자 상처 준 복지정책

    복지정책 측면에서 참여정부는 일부에서 비판하듯 ‘포퓰리즘적’ 분배 정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완전한 ‘신자유주의 정권’도 아니었다.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에선 너무나 다양한 방향이 나타나 하나의 용어로 성격을 규정하기 어렵다. 참여정부가 과연 일관성 있게 복지정책을 수행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사회복지 예산의 확대, 아동보육 등의 사회 서비스, 건강보험 보장성, 공공부조에서는 분명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로의 진전이라 할 수 있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는 노 대통령이 “복지에 대해 5년 내내 노력했다”고 말할 만한 근거가 되고 있다. 반면 정권 초기부터 공약으로 국민에게 내세운 공공의료의 대폭 확충은 공수표를 날린 격이 됐고 국민연금 등 노후소득보장제도 영역은 공약을 완전히 뒤집는 후퇴가 나타났다. 의료급여제도는 의료 쇼핑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저소득층의 의료에 대한 기본 권리마저 부정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노인보호 등의 사회 서비스에서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고,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한 것 등은 조금 더 두고봐야겠지만, ‘복지의 시장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형국이다. 이에 더해 정치논리에 의해 정작 필요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보인다. ‘힘없는’ 국민들을 위한 국민연금은 호기롭게 깎고, ‘힘있는’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등은 의도적으로 피해간 흔적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말의 성찬’ 노무현 복지담론, 상처 얼룩진 ‘진보적 복지’
    김연명

    1961년 충남 예산 출생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사회정책 전공)

    영국 LSE 방문연구원, 미국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교환교수

    現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저서 및 논문 : ‘한국복지국가성격논쟁’(편)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복지’(공저) ‘사회투자론의 한국적 쟁점과 가능성’ ‘Beyond East Asian Welfare Productivism in South Korea’


    복지정책에서의 진보를 국가복지 혹은 공공복지의 확대로 이해한다면 참여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은 복지담론이나 정책의 방향에서 노 대통령이 언급했듯 진보 쪽으로 가닥이 잡혀 있었고 그렇게 평가받을 만한 구체적 내용을 상당 부분 담고 있다. 하지만 진보와는 전혀 동떨어진, 혹은 오히려 진보와는 반대방향으로 역주행하는 양상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민주노동당이 내건 무상교육, 무상의료보단 못하지만 노 대통령의 복지담론은 진보적 언어의 성찬(盛饌)이었다. 하지만 실제 정책의 내용은 진보적 언어의 성찬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참여정부를 지지한 상당수의 국민은 노 대통령에게 확실한 진보적 복지정책을 기대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이 그런 지지자들의 욕구를 채워줬다고 하기에는 여기저기 드러난 상처가 너무 깊어 보인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여기저기 상처로 얼룩진 진보적 복지정책”이라고 하는 게 옳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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