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정부가 이를 위해 ‘대가’를 지급했다는 소문이 일각에 떠돌았다. 최근에는 북측 관계자들도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과연 소문의 진실은 무엇인가.
중국 선양(瀋陽) 주재 북한 통일전선부(통전부) 관계자들이 탈레반 인질사태에 대해 조사하고 다녔다. 그들에게서 인질 1인당 대가가 200만달러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8월 초. 탈레반 쪽 정보를 얻기 위해 정보기관들의 촉수가 그 쪽으로 향했다. 당시만 해도 2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비용 이야기는 수면 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질 문제가 해결된 뒤부터 중국 쪽에서 정상회담의 대가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1000만~2000만달러 정도 받는다고 별 문제는 없을 거야!” 하는 식이었다.
▼ 상황 2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10월10일 이후)
2차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북측의 각 부서는 분위기 탐색을 위해 중국 선양, 베이징 등지로 나와 정보를 탐색했다. 이때 중국교포 K씨는 통전부 고위간부인 A씨와 식사 도중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만일 남측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돈을 보내왔다면 차기 정부에서도 특검이 열려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를 일종의 ‘역정보 흘리기’라고 생각한 K씨는 대수롭지 않은 듯 “줬다면 특검인데, 금액이 문제 아니겠느냐”라고 답했다. 그러자 A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돈이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기를 왜 물어보겠나.”
▼ 상황 32007년 12월 초순(대선 전) 평양을 방문하고 베이징으로 나온 재일교포 총련 C씨가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털어놓았다는 이야기.
“노무현 대통령도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했다더라. 몇 차례 확인을 해봤는데, 금액을 털어놓지는 않지만 돈을 준 건 사실이라고 한다. (북측 관계자들이) 금액 이야기에 대해선 고개를 흔들다가 난데없이 탈레반 인질사태 얘기를 꺼내서 놀랐다. 국정원에 대해서도 얘기하더라.”
▼ 상화 42007년 12월19일 대선 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압승한 직후 베이징에 나와 있던 북측 정보 관계자가 지인들에게 털어놓았다는 말.
“이렇게 되면 정상회담 때문에 내년에도 또 특검이 있겠구먼. 받아도 탈, 안 받아도 탈이니 걱정이다. 내년에도 북남관계가 잘되어야 할 텐데, 없는 나라가 돈 몇 푼 받은 것 가지고 또 말이 많을 게 걱정이다.”
“뒷돈 줬다”… 무성한 소문들
지난해 10월2~4일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배경에 대해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 이런저런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 핵심 중 하나는 ‘북이 과연 아무런 대가 없이 정상회담을 수용했겠느냐’는 점이다.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은 5억달러를 받아 챙겨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대북송금 특검이 실시된 바 있다.
북한체제의 특징에 대해 웬만큼 아는 사람들은 북한 쪽 입장에서 절박한 이유가 없는 한 “김정일 장군을 ‘알현’하기 위한 성의 표시는 예외 없는 원칙”이라고 말한다. 이런 마당에 2007년 10월에 열린 2차 정상회담이 노무현 정부의 주장처럼 ‘조건 없이’ 이뤄졌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
2007년 9월2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됐다가 석방된 19명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피랍자들과 함께 귀국한 김만복 국정원장과 한국 협상대표(검은 선글라스).
최근 중국 베이징을 중심으로 북측 인사들 및 그들과 접촉한 해외동포와 내국인들 사이에 이 부분과 관련한 말들이 흘러나와 관심을 끈다. 앞의 네 가지 사례는 그렇게 나온 얘기들 중 일부분이다. 골자는 노무현 정부가 2차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측에 얼마간의 현금을 지급했고, 그 과정에 아프간 인질 석방 교섭이 활용됐다는 것.
노무현 정부가 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측에 대가를 지급했다는 의혹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견지해온 정상회담 성립의 대전제를 스스로 저버린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정보 혹은 첩보는 최종 확인이 어렵다. 남과 북의 몇 안 되는 당사자는 아직 입을 열 처지가 아니고, 입증 자료가 나오기도 당분간은 무망하다. 지난해 7월 이후 수집된 ‘정황 증거’들과 안팎의 첩보들을 종합해 ‘2차 정상회담 뒷거래’ 의혹을 재구성해보고자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평양發’ 남북정상회담 성사 배경
애당초 예정됐던 2차 정상회담 일정은 지난해 8월28~30일이었다. 북한 김양건 통전부장의 요청으로 김만복 국정원장이 8월2~3일 비밀 방북해 정상회담을 제의받았고, 김 원장은 이를 노 대통령에게 보고해 오케이 사인을 받은 후 8월4~5일 다시 방북해 정상회담 개최합의서에 서명했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면 북한은 왜 그 시점에 ‘정상회담 카드’를 갑자기 꺼내 들었을까. 믿을 만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평양은 지난해 6월 이후 북미관계 등 전반적인 틀을 재조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남북정상회담은 평양의 모든 부서가 동의하는 사안이 아니었다고 한다. 심지어 표면상 대남업무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 내에서도 “해봐야 얻을 게 없다”는 반대론과 “남측 차기 정권에 대비해야 한다”는 찬성론이 엇갈렸다고 한다.
이 와중에 7월 초 국정원으로부터 정상회담 제안이 평양에 전달된다. 그러나 이는 노무현 정부 4년여 동안 ‘수시로’ 있었던 일이었기에 평양으로선 주목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한다. 7월 중순경에도 비슷한 제안이 재차 평양에 전달됐다. 그런데 이 때의 제안은 이전 제안들과는 조금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북측에 대해 무언가 다양한 ‘약속’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평양의 고심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결론은 8월 초 김만복 원장을 평양에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이는 ‘불러다놓고 담판 짓는’ 전형적인 평양식 접근법이다. 이처럼 전격적으로 이뤄진 합의과정에서 사전 의제 확정 등 통상적인 외교 수순은 완전히 무시됐다. 남북 양쪽에서 당시 상황을 추적했던 한 전문가는 ‘일단 만나는 데 의의를 두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평양발(發)’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의미하는 것은 ‘남(南)의 조건 제시 및 북(北)의 수용’이라는 골격이 완성됐음을 뜻한다. 남측 정부는 필요에 의해 어떻게 해서든 임기 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했고, 북측은 제시된 조건을 꼼꼼히 따져본 뒤 이를 수용했다.
그런데 예정된 정상회담 일정을 불과 열흘 앞둔 8월18일, 북측이 갑작스럽게 회담 연기를 통보해왔다. 표면상 이유는 8월 초부터 북한 전역을 강타한 폭우였다. 더욱이 재조정된 회담일은 예정일로부터 5주나 미뤄진 10월 2일로 결정됐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하나. 북한이 정상회담을 연기한 이유는 단지 수해 때문이었을까. 남북 양측이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할 또 다른 속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회담 연기 진짜 이유는 ‘성의 표시’?
그동안 2차 남북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제시해온 게 식량 지원이다. 북한은 2006년 미사일 발사 및 핵 실험 때문에 2000년 이후 남측으로부터 해마다 받아오던 식량을 지원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수해 등으로 식량 수급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심지어 평양에서는 “이번 겨울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실제로 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과정에서 서울은 ‘당연히’ 평양에 식량지원을 약속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러나 대북 쌀 지원은 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정부가 ‘임기 내 종전(終戰)선언’에 다걸기를 하면서 아직 성사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북측이 노무현 정부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평양식 논리’로는 이 같은 공식적인 지원 외에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성의 표시’ 또한 필수 항목이다. 가령 2000년 1차 회담 때 전달된 5억달러와 같은 돈이다. 이와 관련, 정보 관계자 A씨는 지난해 8월 베이징에서 만난 북측 관계자의 말이 지나고 보니까 의미심장하더라고 회고했다. 당시 북측 관계자는 정상회담에 대해 “일단 하자고 해놓고 나서 다시 생각해봐야지…”라며 여운을 남겼다는 것. 계속해서 A씨의 말이다.
“북측의 어떤 당국자에게 물어봐도 북이 아무런 조건 없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히 거론되는 예가 메가와티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다. 수하르토 초대 대통령의 딸인 그는 김일성 주석 생전에 부친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적도 있는 대표적인 친북 인물이다. 그런데도 2005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 대가를 치러야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는 말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한 뒤 그 대가를 어떻게 마련해 어떤 방법으로 전달하느냐를 놓고 정부의 고민이 시작됐다. 북한이 돌연 회담 연기를 통보한 8월18일 이후 이는 더욱 급박한 과제가 됐다. 김 위원장 면담을 위한 ‘성의 표시’에 ‘사후’란 없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8월 중순까지도 평양은 서울로부터 그 ‘성의 표시’를 받지 못했다. 평양으로선 이것만으로도 회담을 연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성의’를 전달할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 아프간 피랍 사태였다는 전언이다.
아프간 피랍자 석방교섭이 돌파구?
샘물교회 선교봉사단원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피랍된 것은 7월19일. 사태는 두 명의 인명 손실을 내면서 한 달 여 뒤인 8월29일 19명 전원이 풀려나 종결됐다. 사태가 진행 중인 내내 외국 언론에는 ‘탈레반이 한국 정부에 인질 몸값 얼마를 요구했다’는 식의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인질 석방 직후인 9월1일 로이터통신에는 탈레반 지도자위원회의 한 고위 인사가 “몸값으로 2000만달러(약 187억원) 이상을 받았으며, 그 돈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통신망을 재정비해 더 많은 자살공격을 위한 차량을 사들일 예정”이라고 말한 내용이 보도돼 파문이 일었다. 아랍권 통신사인 알 자지라는 2000만파운드(약 378억원), 일본 아사히신문도 200만달러(18억여 원) 몸값 지불설을 잇따라 보도했다.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은 10월14일자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의 보도. 이 매체는 탈레반 전투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부가 인질 석방 대가로 탈레반에 1000만달러를 지급했으며, 탈레반은 이 자금으로 무기를 사들이고 지원자를 훈련시켰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한 정보 관계자의 말이다.
“탈레반 측의 1000만달러 수수 주장이 나온 뒤, 파키스탄을 비롯한 러시아 주변의 무기시장에 약간의 술렁거림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탈레반이 약 400만달러어치의 무기 구매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 돈이 한국인 인질 몸값에서 나왔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사실처럼 퍼졌음에도 서울은 애써 이를 외면했다.”
우리 정부는 몸값 지급설을 일관되게 부인했지만, 한편에선 다른 얘기도 나왔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9월6일 국회 정보위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 이외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해 탈레반과 모종의 이면합의가 있었음을 시사한 것. 김 원장은 미국 뉴욕과 워싱턴-프랑스 파리-두바이를 거쳐 협상 막바지인 8월24, 25일경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들어가 현장을 직접 지휘하기까지 했다.
몸값 지급 소문은 피랍자들을 파견한 분당 샘물교회 주변에서도 흘러나왔다. 9월 정치권의 한 인사가 샘물교회측의 한 인사로부터 ‘정부가 구상권을 행사할 경우 교회가 그 돈을 내야 할 의무가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다는 소문이 한 예. 이때 양측 사이에서 언급됐다는 금액이 180억원(약 2000만달러)이었다. 하지만 그 후 정부는 석방된 피랍자들의 항공료, 체류비 등으로 샘물교회 측에 약 5700만원만을 청구했고, 그 인사는 지금까지 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김만복 원장이 아프간에 간 이유
여기서 문제는 탈레반 인질 몸값 지급과 남북정상회담의 대가가 어떻게 연결되는냐는 것.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대목은, 첫째 돈을 어디서 조달했느냐는 점이다. 전례로 볼 때 정부 예산에서 피랍자 몸값과 정상회담의 대가로 사용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으로는 감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국정원 예비비가 있다. 한 전문가의 설명이다.
“국정원이 해외에서 장부에 남지 않는 돈을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작을 위해 해외공관에 비축해둔 자금을 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행낭과 해외계좌를 연동시켜 자금을 모으는 방법이다. 이번 경우는 탈레반과 북한 모두 즉시 사용 가능한 현금을 원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현지에서 현금을 수송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대목은 돈을 지급한 방법. 탈레반에 대한 몸값 지급이든 북한에 대한 정상회담 대가이든, 정상적인 국제 금융거래로는 돈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금을 당사자에게 직접 은밀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앞의 전문가는 “8월 한 달 동안 평양으로, 카불로 뛰어다닌 김만복 국정원장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두바이를 거쳐 카불로 들어갔는데, 두바이는 중동지역의 자금거래 허브이자 국정원의 해외 거점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예치된 국정원 자금에 대해 지출을 승인하면, 예컨대 파키스탄 같은 곳에서 곧바로 현금을 전달하는 게 가능한 구조라는 얘기다. 파키스탄은 탈레반 같은 테러조직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자 북한과도 인연이 깊은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양측에 현금이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건 정보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써볼 수 있는 시나리오 아닌가. 이를 위해 김 원장이 직접 나섰다고 보는 것도 억지스러운 추측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분석은 특히 남북정상회담의 대가 지급과 관련해 설득력을 갖는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국정원이 활용했던 마카오 등 해외 루트는 2007년에 불거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에서도 확인됐듯 그 내용이 미국의 손바닥 위에 훤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미 발각된 루트를 다시 활용할 수도 없는 일이다. 거기에 탈레반이 요구한 액수 정도라면 현금화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방식이 아프간 피랍사태를 활용한 현금 전달이었다는 추측이다.
당사자가 진실 밝혀야
현재까지 수집된 첩보들을 종합해볼 때 북한에 건네진 돈은 1000만달러 정도일 것이라는 게 그간 이 사안에 천착해온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1차 정상회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액수라는 점에서 일종의 ‘행사비용’으로 봐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남북 공동행사의 경우 남측이 북측 행사 준비를 위한 비용을 부담한 전례가 없지 않았고, 이번 일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 정상회담을 위해 북측에 돈을 줬다면, 이는 스스로 정한 원칙을 저버린 행위가 된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또 다른 대북송금 특검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진정성도 퇴색될 수밖에 없다.
물론 2차 정상회담을 위해 현 정부가 북측에 돈을 건넸다는 설은 아직은 의혹 수준일 뿐 확인된 팩트(fact)는 아니다. 당연히 첩보에 근거한 이 기사 역시 미완(未完)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를 기사화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 사회 일각에 이어 북측에서조차 현금 수수설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의혹이며 둘째, 앞으로 정상적이고 건설적인 남북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이다.
하늘 아래 비밀은 없는 법. 2차 정상회담 추진에 관여했던 노무현 정부 관계자들은 이제라도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기자는 취재 막바지에 국정원과 청와대의 관계자에게 2차 남북정상회담 대가 지급설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직접 대화는 불가능했고, 응답 전화를 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