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문제엔 야심적, 통일 문제엔 애매한 MB의 한계
- NSC 기능 축소하나 안보정책 총괄 방안 마련엔 무관심
- 北, 이명박 대북정책 한계 꿰뚫고 있다
- 국방부 문민화, 방사청 폐지 추진해야
- 국정원 대북 공작 부활시키고 기능별 차장제 도입하라
- 통일부는 어차피 한시 조직…태스크포스로 재편해야
지난해 12월31일 육군 6사단(청성부대)을 방문한 이명박 당선자가 장병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확실한 통일 안보 외교 비전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경제에서는 확실한 자유주의자
반면 노동운동계에는 찬 바람이 불고 있다. 민주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선거 때 이 당선자 지지를 선언한 한국노총조차 “이 당선자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한국경제의 최대 성장률은 4%대다. 그런데 재벌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어지면 1%포인트 정도 성장률을 높일 수 있어, 이 당선자는 재벌들에게 출총제 폐지를 약속하고 공항 귀빈실 이용 기회를 주겠다고 한 것이다.
파업으로 치닫는 노동운동을 잠재워도 숨어 있는 1%포인트의 성장률을 끌어낼 수 있고, 각종 행정규제와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줄여도 역시 1%포인트의 성장률을 더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대운하라는 토목공사를 일으키고 금융산업을 육성시키면 연 7%대의 경제성장을 거듭해 5년 후에는 1인당 GDP가 4만달러에 육박하는 G7 수준의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 당선자의 비전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개발독재 방식으로 고도성장을 이끌었다면 이 당선자는 무한경쟁을 허용하는 자유주의적 리더십으로 부흥을 유도하겠다는 차이가 있다. 교육과 복지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자유주의적 태도를 견지한다. 미래를 이끌 실력 있는 지도자는 무한경쟁 속에서 탄생하니 대학입시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아닌 대학교육협의회가 주도해야 한다고 한 것이 좋은 사례다. 복지부와 여성부를 통합한 것도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하겠다는 암시다.
그러나 경쟁체제를 강조했다고 해서 그의 노선을 보수로 단정할 수는 없다. 공산국가인 중국은 이미 오래전에 경쟁을 허용하는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했고, 북한도 2002년 7·1경제개선관리조치를 선언하며 시장경제 체제를 일부 도입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장경제의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다. 김대중-노무현 좌파 정권이 남긴 폐해를 광정(匡正)하려면 그는 이념 문제에서도 자유주의자적인 면모를 강하게 보여야 한다.
평화체제 구축은 영구분단
그러나 이념 문제에 관한 한 이 당선자 측은 자신감이 결여된 모습이다. 통일부 폐지를 거론했다가 존치 쪽으로 돌아선 것이 한 사례다.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해외 경제정보 수집에 전념케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국정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데서 나온 단견이 아닐 수 없다. 국방부와 한미연합사 방문도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키로 한 노무현 정부의 결정을 뒤집는 것만 목표로 한 행동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29일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김양건 통전부장(오른쪽)을 안내하는 김만복 국정원장(왼쪽)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가운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을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져 있다. 평화체제 구축은 싸우지 말자는 것으로, ‘싸우지 않는 분단을 영속화’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북한의 자발적인 투항이 없는 한 통일은 이뤄질 수 없다. 그런데도 일부 인사들은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자유왕래가 실현되니 통일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궤변을 내놓았다.
여권을 들고 자유왕래하는 것은 두 개 주권국가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반면 통일은 하나의 주권국가를 만드는 것이니, 극과 극의 차이가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에는 ‘평화체제 구축=통일’로 보는 신드롬이 형성되었다.
김-노 정권이 ‘싸우지 않는 분단’인 평화체제를 추구함으로써, 김정일 정권에는 연명의 기회가 주어졌다. 두 정권은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이유로 남북경협을 추진했는데, 이 경협이 죽어가던 김정일 정권에 ‘생명수’를 제공한 것이다. 남북경협은 북한이 쳐들어 올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돈으로 평화를 산’ 것에 해당한다.
‘MB규어스’한 이명박 한반도觀
이러한 선택은 북한이 공격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을 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이 공격 의지와 능력이 없는데도 이 정책을 추진했다면 이는 북한의 공갈에 속았음을 의미한다. DJ 정부 출범 초기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방사포와 노동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말기엔 북한이 핵실험을 했음에도 김정일이 체제 유지를 위한 방어 수단으로 ‘짝퉁 핵실험’을 했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이제 북한을 우리의 경쟁상대로 보는 사람은 극소수다.
김-노 정부 시절 개성에 건설된 남북경협공단은 우리의 영토 경계선을 북상시킨 것이라는 자화자찬이 있었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북한 땅에 건설된 한국공단이지 한국의 영토가 될 수 없다. 개성공단은 김정일 정권의 연명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보수를 자처한 이명박 캠프는 남북경협에 진력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선거 공약인 ‘나들섬 구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공약은 나들섬으로 명명한 한강 하구의 퇴적지에 여의도 면적의 열 배에 달하는 초대형 경협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단지에 입주할 수 있는 기업은 저임금을 노리는 중소기업체다. 그러나 이러한 업체는 중국을 거쳐 베트남 등지로 이미 빠져나갔으므로 나들섬공단이 만들어지더라도 입주할 업체가 있을지 의문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명박 캠프의 남북 경협 구상을 반기는 것은 북한이다. 17대 대통령선거 기간 북한은 이 정책을 내놓은 MB진영을 단 한 번도 비난하지 않았다. 이 기간에 북한이 격렬히 비난한 것은 이회창 후보 진영이다. 올해 북한 언론은 이명박 당선자의 등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남북경협을 철저히 이행하라는 내용의 공동사설을 실었다. 이는 북한이 ‘이명박 정부도 빨아먹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념이나 통일 문제에 관한 한 이명박 진영은 ‘무늬만 보수’다. 경제와 교육·복지 분야에서는 ‘야망 있는’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ambitious를 토대로 한 신조어 ‘MB셔스(야심적이다)’를 낳을 정도로 자유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통일과 안보의 영역에서는 ‘애매한’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ambiguous를 빗대 ‘MB규어스하다(애매하다)’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불투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정원은 대북공작 재개, 기능별 차장제 도입, 부원장제 신설 등을 검토해야 한다. 사진은 국정원 업무 관련 회의 광경.
‘전문경영인’에게 안보를 맡긴다?
노무현 정부에서 안보·통일 분야의 최대 실세는 이종석씨가 실질적으로 이끈 국가안전보장회의(NSC)였다. NSC는 국정원을 포함한 안보 관련 부처에서 올라온 정보를 취합해 노 대통령에게 올릴 정보를 만들었다. ‘햇볕주의자’ 이종석씨가 정보를 선택하게 되자, 노 대통령에게는 외교와 안보 분야의 정보보다는 남북경협을 중시하는 쪽의 정보가 많이 보고됐다.
서해교전이 벌어져도 경협을 계속하고 북한에 큰 위협이 되던 심리전을 중지하는 결정이 유지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당선자는 이러한 폐해를 없애기 위해 NSC의 기능을 크게 축소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안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안보실장을 없애고 외교안보수석도 차관급으로 낮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국정원·국방부·외교부 등 안보 관련 부서의 책임자가 직접 대통령에게 정보와 업무 보고를 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노무현보다는 확실한 보수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국정원장과 국방부 장관·외교부 장관·통일부 장관에게 달성해야 할 목표를 줄 정도로 분명한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1월말 조각(組閣) 명단을 발표하는데, 이때 지명된 안보 분야의 책임자들이 MB시대를 관류할 통일·안보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입각 대상자로 지명된 인물들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데 이때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통일·안보정책을 내놓게 한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의 이러한 태도는 기업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재벌의 행동과 흡사하다. 경제와 교육 분야는 자신이 전문가이니 직접 챙기고 안보·통일 분야는 비전문가이니 잘할 것으로 보이는 전문가에게 비전 수립을 비롯한 모든 것을 맡기고 그 결과에 따라 전문가를 평가하고 자신도 그에 따른 영욕(榮辱)을 누리겠다는 자세다.
나들섬 구상에서 알 수 있듯 그가 남북경협을 중시하는 지도자라면 안보 분야 책임자들은 그에 맞는 비전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북관이 ‘MB규어스하다(애매하다)’는 것은 ‘비핵·개방·3000 구상’ 공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구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으로 가면 국제사회를 동원해 400억달러 상당의 투자를 해, 북한을 1인당 GDP 3000달러가 되는 나라로 발전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1인당 GDP 3000 달러 부분이다. 북한이 유엔에 보고한 1인당 GDP는 500달러선인데, 대북 전문가들은 이 보고를 믿지 않는다. 지금의 북한은 1961년의 한국과 비슷한데, 그때의 한국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80달러였다. 박정희 정부는 저임금을 토대로 섬유·봉제산업을 일으키고,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받아 사회간접자본을 구축했는데, 이러한 노력이 축적돼 1970년 한국은 간신히 200달러를 돌파했다. 1972년 박 정권이 10월유신이라는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1인당 GNP 1000달러의 달성이었다. 한국처럼 자원이 적은 나라에서의 자본 축적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한국은 ‘개발독재’라는 처절한 희생 과정을 겪어야 했다.
한국이 GNP 3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아시안게임 이듬해인 1987년이다. 일반적으로 정치경제학자들은 1인당 GDP 3000달러 시대를, 개발독재를 끝내고 시민 민주주의를 발아시키는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GDP 3000달러 시대를 열어주겠다고 한 것은 김정일 독재권력을 퇴장시키고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게 해주겠다는 것이 된다.
1월11일 이명박 당선자는 당선자 신분으로서는 최초로 국방부를 방문해 국방부와 합참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 당선자는 국방부 문민화, 방사청 해체 등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까.
핵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점은 북한이 ‘제2의 베트남’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안팎의 조건과 선택이 이러한 북한에, ‘비핵·개방·3000 구상’을 제시한 것은 ‘그림의 떡’을 맛있게 먹으라고 한 것과 같다. 이에 대해 북한은 ‘한국 빨아먹기’를 계속하겠다며 남북경협 이행을 촉구하는 신년 공동사설을 내놓았으니, MB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이 당선자의 한 측근 인사는 이에 대해 “유권자가 530만표 차이로 MB를 대통령에 당선시켜준 것은 국민을 잘살게 해달라는 것이지, 새로운 지출과 위험이 예상되는 북한 문제에 전념하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김정일 체제는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른다.
북한 급변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북한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북한 문제에 개입하기 힘들다. 이때는 핵 개발 등을 시도한 북한이 도발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리정책의 대표가 김-노 정부에서 추진된 햇볕정책이다.
북한이 급변사태에 빠지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도 ‘덜 뜨거운 햇볕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 급변(急變·emergency)상황이 벌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북한 급변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의 개입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북한 급변을 북한이라는 ‘안보 위협 요소’를 영구히 제거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성장동력을 잃지 않는 상태에서 통일을 이루는 기회로 환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원활히 해 통일한국의 성장엔진을 최대로 가동할 수 있는 상황도 창출해야 한다. 한국은 북한 급변을, 통일과 번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정치(精緻)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을 담는 그릇을 ‘MB독트린’으로 명명할 수 있다. 이 독트린에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담을 필요는 없으나 모두가 잘사는 통일한국을 지향한다는 목표만큼은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북한 급변에 대한 ‘정의(定義)’다. 어느 상황을 북한 급변으로 보느냐는 ‘우리의 개입 시기’를 결정하는 일인 만큼 신중하게 정의해야 한다.
북한 급변 상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거나 유고로 인해 사라질 때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60여년에 걸친 부자(父子) 세습체제가 낳은 모순이 노출돼, 군사적인 봉기나 민중시위 또는 먹을 것을 찾아 북한 주민이 대량 탈출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1인당 GDP가 5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국제사회와 단절돼 있는 북한에서는 민주화 봉기나 대량 난민이 발생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어렵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2006년 동티모르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840 달러다. 그런데 1인당 GNI가 500 달러도 되지 않던 1975년 11월28일 민중봉기가 일어나 독립을 쟁취한 바 있다. 그러나 9일 후인 12월7일 인도네시아군의 침입을 받아 인도네시아에 합병되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벌여 1999년 9월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동티모르에 독립의 기회를 준 나라는 호주였다. 호주는 19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합병을 승인한 거의 유일한 나라다. 따라서 동티모르 문제에는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하다 24년 후 다국적군 구성을 주도해 동티모르 독립을 성사시켜주었다.
1인당 GDP가 500달러에 불과한 북한에서 봉기가 일어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동티모르의 경우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봉기를 통일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느냐는 북한 급변사태 때 한국이 ‘북한 안정화 작전’을 위한 다국적군이나 유엔군(또는 유엔 평화유지군) 구성을 주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PKO 상비군 창설 서둘러라
김정일 유고 이후 북한에서 일어나는 혼란의 규모가 커질수록, 한국이 주도적으로 개입할 기회는 적어진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여국이 ‘북한 급변사태를 맞으면 국제 공동으로 대처한다’고 논의한 바 있었으니, 혼란이 커지면 여러 나라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때의 문제점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개입이다.
북한 안정화에 참여한 세 나라가 “남북한은 유엔에 별도로 가입한 독립국”이라며 “북한 지역에 별도의 민주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시키면, 북한 급변 후의 한반도는 여전히 두 개의 정부가 있는 분단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한국이 공고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다국적군 구성을 주도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에 대해서는 “절대로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외교적 약속을 한다면, 주변국들은 독일 통일처럼 국민투표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북한이 한국에 흡수되는 것을 용인할 수도 있다. MB독트린은 이러한 상황 유도를 목표로 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민주화를 촉구해야 한다. 나들섬 공단 건설은 북한 민주화를 전제로 추진한다고 밝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어찌되었든’ 김정일 체제가 유지되고 있기에 국제사회로부터 인도적인 차원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2002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마련하고 노무현 정부가 승계한 대북지원책이 ‘차관(借款)’ 형태의 식량(쌀) 지원이다.
‘무늬만 차관’인 이 지원을 단숨에 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유린 중단과 남북 이산가족 면담의 정례화, 그리고 민주제도 도입을 전제로 한 차관 지원은 계속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 나라가 거금을 들여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대북 차관 지원은 비핵화를 전제한 것으로도 바꿔야 한다.
MB독트린은 국제사회에 대해 ‘북한 민주화를 전제로 한 지원’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독트린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국제 공조체제 구축을 요구하는데, 이 체제가 형성되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 급변시를 염두에 두고 이 나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진력할 수 있다. 한마디로 MB독트린은 통일과 외교를 한 두름으로 꿰는 대전략이어야 한다.
MB독트린은 우리의 국방 정책에 대한 방향도 제시해야 한다. 북한 급변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국방 문제는 ‘북한 급변시 군사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MB독트린에는, ‘한국은 국제사회를 구성하는 국가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동북아에서 소요가 일어나면 이를 안정화하는 다국적군 구성을 주도한다’는 선언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북한 급변 상황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작업을 펼친다. 이러한 준비와 함께 MB독트린은 1월8일 국방부가 인수위에 보고했듯이 유엔 평화유지군(PKO) 활동을 위한 상비군 창설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이 부대는 육해공군을 포괄하는 통합군 체제를 갖춘다. 또 신속한 파견을 위해 필요한 수송수단과 장비, 물자를 재빨리 보급해주는 지원부대도 갖추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PKO 상비군은 미국 육군이 개발한 스트라이커(Stryker) 여단처럼 한국의 신속배치군 역할을 한다.
국정원, 정보-공작 차장제로 개편해야
MB독트린이 준비되면 부처별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 개편에 착수한다. 이 작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국정원 개혁이다. 김-노 정부 시절 국정원의 가장 큰 실책은 북한차장직 신설과 대북공작의 중단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은 국내-해외로 나눠져 있던 차장을, 국내-해외-북한 셋으로 늘렸다. 그리고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후 모든 대북공작을 중지하고 남북회담에 진력했다.
북한차장제 신설과 대북공작 중단 조치는 ‘국정원의 통일부화’를 초래한 주범이다. 이렇다 보니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세계적으로도 대북 정보 수요는 많은 편이다. 국정원은 이 수요를 채워줌으로써 아시아에서는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더불어 가장 우수한 정보기관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국정원의 통일부화’가 가속화되면서 일본의 경찰보다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외와 북한은 나눌 필요가 없다. 또 공작 활동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 국정원은 대북 공작을, 정보 수집 차원을 넘어 북한 민주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차제에 국정원은, 지역별 차장제를 없애고 미국의 CIA처럼 기능별 차장제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국정원이 해외차장-국내차장-북한차장-기조실장으로 이어지는 4차장제를 택하고 있다면, CIA는 정보차장(the Directorate of Intelligence)-공작차장(the National Clandestine Service)-과학기술차장(the Directorate of Science and Technology)-지원차장(the Directorate of Support)의 4차장제를 택하고 있다.
CIA의 정보차장 파트는 첩보(information)를 수집해 분석 가공한 다음 정확한 정보(intelligence)를 생산하는 일을 한다. 공작차장은 정보차장실에서 생산된 정보를 토대로 은밀하게 국익을 실현하는 공작활동을 하고, 과학기술차장실은 정보와 공작활동에 필요한 장비를 관리하고 개발하는 일을 한다. 지원차장은 국정원 기조실장처럼 안살림을 책임진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를 사찰하고 정치공작을 한다는 비난을 받은 것은 국내차장실의 존재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야권은 국정원이 정치공작을 한다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국정원이 정치를 지배한 게 아니라 여권이라는 정치권이 국정원을 지배해왔다. 국정원은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권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의 시녀’가 된 것이었다.
국정원장 내부 전횡 막아야
국내 정치에 대한 국정원의 접근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국정원은 CIA처럼 정보-공작-과학기술로 이어지는 기능별 차장제를 택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이 이뤄진다면 국정원에서는 정보기관의 고유 임무인 공작이 활성화되고, 그로 인한 한반도 안정화 작업이 촉진될 수도 있다. 유럽 정보기관들은 지역과 기능을 섞은 차장제를 택하고 있으므로 국정원도 차장제 변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김-노 정부 들어 국정원이 ‘보이지 않는’ 정부로 기능하는 현상은 크게 줄어들었다. 외부를 향한 국정원장의 파워가 그만큼 축소된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 내부에서의 국정원장 파워는 여전히 막강하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지난해 12월18일 김만복 국정원장의 비밀 방북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을 담당하는 서훈 3차장도 강하게 반대했다는데, 김만복 원장은 이를 무시하고 방북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김양건 북한 통전부장과의 대화록을 언론에 흘린 듯하다.
국정원처럼 복수 차장제를 택한 기관에서는, 차장들이 국내와 해외·북한이라는 고유한 영역을 맡고 있어 국정원 전체 업무에 관여하기 힘들다. 견제할 사람이 없다보니 국정원장 권력은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국정원장의 내부 독재를 차단하려면 원장과 똑같이 국정원 전체를 관장하는 부원장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국방부 개혁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한국 국방부가 미국 국방부나 일본 방위성과 확연히 다른 점은 문민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국방부는 민간인 관료가 이끄는데, 유독 한국 국방부만 군인들이 사복을 입고 근무한다. 국방부 직원의 절대 다수는 육군이다. 때문에 국방정책은 육군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간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국가 대전략은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하므로 이를 맡은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군 인사권은 각군 총장이 갖고 있어 사복을 입은 국방부 군인들은 이동이 잦다. 이러한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국방부의 문민화는 적극 추진돼야 한다. 방위사업청(방사청)으로 독립해 나간 무기도입 분야를 국방부 내부 조직으로 복귀시키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방사청은 무기 도입 비리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국방전문가가 아닌 민변 출신의 변호사가 추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형 무기 도입 비리는 국방부가 아니라 ‘내인가(內認可)’를 하는 청와대가 저지른 것이 다수였다. 따라서 방사청을 유지하면 청와대 등 정치기관의 개입 가능성만 커진다. 군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고 정치논리가 아니라 국방전략에 맞는 무기를 도입하려면 방사청을 국방부 안으로 원대복귀시켜야 한다.
통일부 조직 재검토 필요
이 경우 국방부는 지금의 외교통상부와 산업자원부처럼 1·2차관제를 도입해, 무기 도입 업무는 2차관이 전담하게 할 수도 있다. 복수 차관제를 도입한다면 부장관제 도입을 검토해볼 수 있다.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시 50만 병력으로는 북한을 안정화시킬 수 없다고 지적한다. MB의 국방부는 이를 염두에 두고 노 정부가 결정한 50만 감군과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를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존치 쪽으로 결정이 난 통일부 문제는 다시 검토해야 한다. 외교부와 국방부 행자부 등은 통일 후에도 있어야 하나, 통일부는 없어져야 할 ‘한시(限時) 기관’이다. 그렇다면 정식 부처가 아닌 ‘태스크포스’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적합하다. 김-노 정부가 ‘싸우지 않는 분단’을 추진하자 통일부는 대북 경협에 치중해 ‘퍼주기식’ 남북관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각종 시민단체가 남북협력기금을 방만하게 이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남북대화기구를 ‘해방’시키려면 ‘통일 담당 태스크포스’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다.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열리면 이 태스크포스는 기획재정부나 산업자원부와 연계해 참여하고, 국방회담이 열리면 국방부와 연계해 회담에 나선다. 한마디로 ‘통일 담당 태스크포스’는 급변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북한을 관리하는 일만 하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통일을 지향하는 비전을 내포한 안보 독트린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MB노믹스(이명박식 경제)’란 용어를 낳고 경제 대통령을 지향하는 그가 통일 대통령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인다면, 한국은 안보와 통일 분야에서도 ‘MB셔스한(야심적인)’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명박은 통일 대통령을 지향할 것인가. 그는 530만표 차이로 거둔 대승 의미를 다시 분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