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대선은 반동적 투표이자 응징투표의 결과였다. 민심(民心)의 속내는 보수 회귀가 아니라 진보의 업적 빈곤에 대한 실망과 회의였다. 여기에 대선 회의론도 가세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보수적 실용이 아닌 개혁적 실용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 표심(票心) : 회고적 투표?
2007년 대선은 보수정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여당후보와 528만표의 표차를 벌려놓았으니 압승이란 말도 모자랄 정도이며, 기존 대선을 특징짓던 지역분할과 세대분화도 뚜렷하게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선거라 할 만하다. 1987년 이후 치러진 세 차례 대선은 여당과 야당의 표차가 아주 미미한 접전이었다. 흔히 신승(辛勝·marginal victory)이라 부르는 ‘간발의 승리’였는데, 이는 거대야당의 견제력과 거부권에 포획된 ‘약한 대통령’을 낳았다.
그런데 압승이 ‘강한 대통령’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2007년 대선의 투표성향을 몇몇 정치학자는 ‘회고적 투표(reprospective voting)’로 규정한다. 회고적 투표란 ‘과거 정권에 대한 향수’가 표심을 좌우했다는 말이다. 현 정권의 빈약한 경제 업적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경제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후보 쪽으로 대거 몰렸으며, 고(高)성장시대를 재현하고 싶은 갈망이 투표행태로 이어졌다는 것. 이번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와 ‘성장 열망’이 가장 위력 있는 구호였기에 이런 진단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경제 살리기와 성장 업적을 열망했다고 해서 ‘회고적’이란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타당한가. ‘회고적’이라면 어느 특정 시대를 준거로 삼는 것을 전제하는데, 고도성장기인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가리키는가.
주요 언론사와 방송에서도 2007년의 표심을 ‘보수결집’으로 해석했다.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얻은 보수진영의 표가 64%를 차지한 데 비해 정동영 후보와 다른 군소후보가 얻은 표가 35% 정도에 지나지 않으므로 유권자의 3분의 2가 보수진영에 투표한 것은 사실이고, 이런 의미에서 ‘보수결집’이라는 해석이 적합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보수에 대한 회고적 투표’―이것이 2007년의 표심을 집약하는 말이 됐다. 과연 그런가. 유권자의 3분의 2가 보수로 돌아섰고 그들 모두 보수에 강한 지지를 보냈는가.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심과 정당구도에 대한 정교한 관찰을 통해 표심을 분석해야 더 적합한 결론이 도출되리라 본다. 표심의 분포가 ‘회고적 투표’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응징하고 싶은 욕망의 분출
2007년 대선은 ‘회고적 투표’인 면도 발견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반동적 투표(reactive voting)’ 또는 ‘응징투표(punishment voting)’였다.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반발심 또는 거부감이 투표 행태를 좌우했고, 나아가서 ‘응징하고 싶은 욕망’이 반발심을 지속시켰다. ‘반동적’이란 무언가에 대한 조건반사적 반응일 터인데, 현 정권의 이미지와 정치양식이 바로 그 민원(民怨)의 대상이었고, 그것이 응징이라는 적극적 행태로 표출된 것이다.
‘반발과 응징’으로 묶을 수 있는 표심은 과거 대선에서 그런대로 득표력을 보인 민노당과 여타 군소정당에 절대적 타격을 주었다. 권영길은 3.1%를 얻어 총선에서 중앙당 자격을 결정하는 마지노선을 겨우 넘었고, 이인제는 0.7%를 얻어 정치적 생명을 마감했다. 참신한 이미지로 승부를 건 문국현도 예상외로 고전해 5.8%선에서 기대를 접어야 했다. 보수 원조를 자처한 이회창도 타격을 입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내년 4월 총선에서 독자 정당을 꾸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15% 능선은 넘었다.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은 서민의 세금부담을 늘려 부동산시장을 얼어붙게 했다.
2004년 총선을 계기로 열린우리당이 거대 여당이 된 이후 훈계의 정치는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고 했던 정권의 겸손한 초심을 지워버렸다. 2004년 가을의 4대 개혁입법안 투쟁이 그 변신의 계기였을 것이다. ‘대통령인 국민’을 보수와 진보, 도덕과 부패, 수구꼴통과 미래연대로 나눠 패싸움으로 몰아간 것이 시작이었다.
적군과 아군을 구획하는 정치양식은 새로운 정책을 선보일 때마다 되풀이됐다. 국민은 때로는 아군으로, 때로는 적군으로 분류되는 이념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신행정수도 건설에 반대하면 보수인가, 진보인가. 종합부동산세에 반대하면 보수인가, 아닌가. 메이저 신문인 동아·조선·중앙을 구독하면 진보인가, 아닌가. MBC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KBS는 어떤가.
이런 종류의 소모적 질문이 모임마다 제기됐고, 그에 대해 명백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급기야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봐야 했다. 정체성의 혼란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좋게 해석되기도 하지만, 흔히 자신의 무능에 대한 좌절감을 낳고, 급기야는 피해의식으로 굳어지곤 한다.
보수표+호소표
피해의식의 원천은 이뿐 아니다. 청와대가 쏟아낸 거친 말들은 불화살이 되어 국민의 마음에 그대로 꽂혔다. 적어도 집권 초기에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속어들이 대통령 입에서 발설될 때 신선한 충격 같은 게 있었다. “막 가자는 것이지요?”라는 말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생중계됐을 때 국민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웠을 것이지만, 일단 신선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진다’는 말이 비속어가 아니라 신문지상의 칼럼과 해설기사에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 일상어가 됐고, ‘대못질한다’고 대통령이 힘주어 말했을 때 국민은 급기야 마음에 대못이 박히는 듯한 아찔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대못질’이야말로 가해자로서 정권이 가한 막말의 절정이었다.
정권 말기로 다가갈수록 ‘대통령인 국민’의 마음은 상처투성이, 유혈이 낭자한 상태가 됐다. 여기에 정권 말기 쏟아진 비난여론을 맞받아친 대통령의 말, “경제도 좋고, 잘못한 것 별로 없다”는 그 말에 국민은 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유권자는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것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하는 것, 가해자가 되어 응징하는 것, 어떤 정당들이 난립해도 응징의 표적을 고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2007년 표심이었다.
후보들의 득표율은 이렇게 결정됐다. 반드시 보수성향은 아니더라도 현 정권과 진보여당을 응징해달라는 호소가 표심으로 나타났다고 보면, 보수진영이 얻은 64%는 보수표+호소표의 결과라 할 것이다. 이것이 중도성향 유권자 대부분이 보수진영에 가담한 이유이며, 선거 사흘 전 이명박 후보가 BBK에 개입했음을 자인하는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됐음에도 오히려 지지율 상승으로 마감된 이유다. 다른 후보로 지지를 옮기기에는 ‘응징 욕망’이 더 시급했고 절실했던 까닭이다. 부패와 부도덕은 다음 일이었다.
그런데 반동적 투표, 혹은 응징 투표에 해당되지 않는 예외 지역이 있다. 지역주의의 본산인 경상도와 전라도다. 이 두 지역은 예외 없이 지역주의라는 구시대적 행태로 돌아갔다. 열린우리당이 한국 정치에 기여한 공로는 지역주의의 틀을 깬 점이다. 지역연고 대신 이념을 통해 정치세력 규합에 성공했다는 것은 쉽게 묻힐 공적이 아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표방한 이념정치가 별로 업적을 못 내자 이념이라는 연대 요인의 호소력이 소멸됐고, 우리당은 급기야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념을 대체할 뚜렷한 연대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후보들은 지역연고에 매달렸고 표심도 지역주의로 회귀하는 듯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과연 지역주의로 회귀했다. 정동영 후보는 경북 6.8%, 경남 12.4%, 부산 13.5%를 얻은 데 그친 반면, 광주에서 79.8%, 전북에서 81.6%, 전남에서 78.7%를 얻었다.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각각 얻은 표는 위의 수치를 거꾸로 뒤집으면 된다. 두 지역은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지역주의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 실용주의와 실용개혁정치
2007년 대선에서 특이한 현상은 주요 후보들이 ‘실용주의’란 말을 공통적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손학규 후보가 한나라당을 뛰쳐나올 때 ‘실용노선’을 강조했으며, 정동영 후보도 실패한 이념정치와 거리를 두기 위해 자신은 ‘실용적’임을 주장했고, 이명박 후보 역시 신행정부를 ‘실용정부’로 명명할 것을 검토했을 만큼 실용주의를 지향한다. 문국현, 이인제 후보도 실용을 주장했다.
이들이 실용을 앞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실패한 이념정치와 선을 긋고, 실익과 공익개념을 내세워 유권자의 관심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5년 전에 실용주의를 말하는 후보가 있었다면 웃음거리가 됐을 것이다. 이념정치에 신물이 난 지금은 누구나 실용주의자임을 자처한다. 시대정신의 시계추가 실용주의 쪽으로 기울었는가. 실용주의는 어떤 정치사상인가, 진보나 보수처럼 이데올로기의 한 유형인가.
한국 사회에서 실용주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일 때가 더 많다. 편의, 편익, 편리를 도모하는 기회주의, 어떤 뚜렷한 원리, 원칙 없이 눈치를 봐가며 이익을 추구하는 임의주의와 동의어로 쓰여왔다. 기껏해야 집단의 이해갈등이 극단적 충돌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하는 절충적 선택이 실용주의의 긍정적 의미로 쓰였을 정도다.
실증주의와 공리주의
세계관과 철학적 원리에 어긋나더라도 실익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취할 수 있다는 소극적 의미의 실용과, 학문이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 실익을 도모해야 한다(經世致用)는 명제로부터 출발해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창한 실학정신에 이르기까지 실용의 의미는 점차 넓어졌지만, 대체로 부정적, 소극적 차원에 머무른 것이 한국의 정신사적 유산이다.
열강의 침탈, 개항, 식민지,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 등 간난의 역사와 대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절충적인 논리보다 극단적 행위를 처방하는 이념과 자기희생을 정당화하는 이념체계에 더욱 매력을 느꼈던 탓이다. 관념론적 전통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현실성’을 강조하는 실용주의가 정착될 기반은 매우 취약했다.
실용주의(pragmatism)는 자유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뻗어 나온 하나의 철학사조 또는 세계관이다. 개인의 권리를 강조한 초기 자유주의가, 빈곤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폭력으로 바뀌자 벤담 같은 학자가 다수의 공리(公利)와 실리(實利)에 비중을 둔 수정이론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개인의 효용(utility)을 중시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다. 사물, 사회, 인간질서는 유용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는데, 사회구성원 다수가 유용성을 공유하는 것, 나아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자유주의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초기적 유용성 개념은 19세기 미국 사회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변용되기에 이른다. 윌리엄 제임스와 존 듀이는 자연과학적 사고방식과 합리성, 경험성을 도입해 진리의 발견에 현실성, 실용성, 결과성을 중시하는 진리체계를 제안함으로써 유럽의 관념론 및 목적론적 전통과 단절을 꾀했던 것이다. 이것이 실용주의 철학이다.
진리판단의 척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나 관념이 아니라 인간에게 어느 정도 유용성을 갖는가의 문제, 즉 실용성과 현실성이어야 한다. 실용주의는 경험세계와 실제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문제시한다는 점에서 실증주의의 후손이며, 사물과 진리의 실용성과 결과성을 중시하고 이론의 실천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행동주의적이다.
한국에서 이런 유형의 철학·사회사상을 찾으라면 박지원과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조선왕조 영·정조시대의 실학사상일 것이며,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와 그의 문하생인 김옥균, 유길준, 박영효 등의 개화론을 꼽을 수 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관념론과 도덕론에서 찾은 주자학적 전통을 부정하고 ‘사실’과 ‘현실’에 두어야 한다는 그들의 세계관은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주자학은 헤겔철학보다 더 관념론적이다. 명분을 버리고 공익과 실익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존 듀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이론가들은 현재 진행되는 사회의 제반 현상 속에서 자신을 위치시켜 시민들로 하여금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하고, 그들이 덜 맹목적으로, 덜 우연적으로, 더 지적으로 높은 수준의 방안들을 실행하도록 도움으로써 오류와 실수를 줄이고 성공의 혜택을 증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 제언 속에 정치인 자신의 어떤 이념이 들어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있다면, 공익과 실익, 다시 말해 국민의 복리증진이 최고의 가치라는 확신이다. 극단적 이념정치는 국민을 어떤 이론체계와 목적과 필연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것이 ‘덜 지적인지’ ‘오류와 실수가 있는지’는 성찰하지 않은 채 이념적합성의 여부가 중시됐던 것이다. 진리의 가치를 실용성에 복속시키는 듀이의 철학이 때로는 도구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현실을 이념으로 재단하는 오류를 탈피하는 데는 매우 유용한 시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실용주의를 정치사상이기보다는 통치양식(mode of governance)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안재홍의 민세주의
실용주의적 통치양식에 부합하는 국내외 사례가 있다. 하나는 1930년대 안재홍의 민세주의(民世主義), 다른 하나는 1990년대 말 영국 노동당 총리 블레어의 제3의 길이다. 주지하다시피 안재홍은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세계주의)의 공존과 결합의 당위성을 강조해 양자의 머리글자를 딴 민세주의를 주창한 정치인이다.
일제 지배하에서 사회주의세력과 민족주의세력이 연합해 결성된 최초의 연합전선인 신간회가 내부 분열로 깨지자 안재홍은 ‘국제적 민족주의’ ‘민족적 국제주의’를 내세워 통일전선의 재건을 도모했다. 세계의 흐름을 간파한 그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가 병재성(竝在性), 중층성(中層性), 회통성(會通性)을 축으로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두 이념의 연대와 결합은 민족독립이라는 실용적 목표에 의해 정당성이 부여됐다. 결과를 위한, 결과에 의한 진리판단이라는 실용주의적 논리가 민세주의의 핵심원리로 수용된 것이다.
17년에 걸친 보수집권 이후에 등장한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에게도 실용주의 노선이 필요했다. 1979년 이전의 경직된 진보노선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돌아가서도 안 되었다. 이미 영국은 많은 공기업이 민영화 과정을 거쳐 민간부문으로 넘어갔고, 노동조합도 네 차례 노동법 개정을 통해 개별주의적인 양상으로 뼈만 남은 상태였으며, 복지삭감과 주택시장의 민영화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었다.
블레어는 ‘제3의 길’을 선언했다. ‘제3의 길’은 전통적 좌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파 정책을 그대로 연장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절충주의를 지칭하는 것으로 비쳤으나, 사실은 진보정치에서 금기사항으로 여기는 규칙을 과감하게 깨고 융통성을 부여한, 말하자면 실용주의 그 자체였다. 시민단체에 정치참여의 길을 터주고,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시민단체와 긴밀한 협력정치를 행하는 것, 노동계급의 전통적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것, 노동조합의 분노에도 보수당이 실행한 개정노동법을 그대로 연장하는 것, 노동당에서는 금기사항으로 여기는 민영화를 정책 영역별로 허용하는 것 등의 새로운 정책들을 이용후생, 국리민복의 관점에서 합리화했다.
대처리즘을 계기로 17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국정운영의 기본원리로 고착되던 상황에서 다시 등장한 노동당이 전면적 반전을 꾀하기가 어려웠을 터고, 그 덕에 살아난 경제에 충격을 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영국에서 실용은 ‘우경화한 좌파’와 결합했다. 좌파 정당으로 하여금 그런 상황정의를 내리게 한 이론적 자원이 곧 실용주의다.
경제 살리기와 업적주의
이에 비하면 이명박 당선자가 말하는 ‘실용’에선 ‘결과로 말한다’는 뜻이 강하게 읽힌다. 노무현 정권처럼 ‘말’보다는 ‘결과와 업적’으로 증명하겠다는 의도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보면, 앞에서 지적했듯 그것은 ‘실천을 앞세운 업적주의, 실적주의’와 상당 부분 겹친다. ‘경제 살리기’라는 구호가 설득력을 가진 것도 그의 강점인 ‘업적주의’와 은연중에 결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용주의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리더십이 실용정치의 전형으로 승격되려면 첫째, 안재홍의 민세주의에서 보듯 서로 배타적인 요소들 간의 공존, 타협, 절충을 끌어내는 실천원리여야 하고, 둘째, 영국의 블레어에서 보듯, 상황정의에 따라 우파 정책과 선택적 친화력을 보여야 한다. 이 두 가지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안재홍의 민세주의는 이후에 ‘국민개로(皆勞)와 대중공생’을 강조하는 신민주주의로 발전했는데, 사회주의세력이 주창하는 계급투쟁을 지양하고 전(全)민족 협동을 기반으로 하는 독립국가의 건설과 국제노선에 병행, 협조하는 진취적 자세의 결합이 신민주주의의 골격이라고 설파했다. 당시 진보(사회주의세력)와 보수(민족주의세력)로 갈라진 독립운동을 병행, 공존, 타협정신으로 한데 묶어 연합세력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지난 5년간 한국 정치를 강타한 이념투쟁을 끝내는 최선의 지혜가 여기에서 엿보인다.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표방하듯, 시장경제(기업친화적 환경조성), 업적주의(3대 국책 프로젝트), 법질서와 규칙준수(노동운동, 비정규직 문제), 햇볕정책의 재고(한반도 비핵화 우선추구) 등의 ‘보수적 노선’만으로는 실용정치의 본질에 근접할 수 없다.
따라서 영국의 블레어 정권에서 보았듯이 우파 정책을 연장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진보정권이 폈던 정책을 사안별로 검토해서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강조할 점은 ‘급격한 선회와 단절’은 금물이라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의 진보는 정치이념에서 ‘이상주의’, 실행방식에서 ‘급진주의’였다. 이상주의와 급진주의의 결합이 의도한 대로 ‘사회 전복’을 이루기는 했으나 정권마저 전복시킨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필자는 이 시대 실용주의를 간단명료하게 이렇게 정의한다. 이명박 정권이 좌파정권의 정책을 완전히 폐기처분할 것인가. 아니면 사안별로 수용, 연장할 것인가. 수용, 연장한다면 그 정도는? 다시 말해 진보정권의 정책 중 쓸 만한 것을 선별해 약간의 수정과정을 거쳐 수용하는 것이 실용정치의 핵심이다. 중도 우파쯤에 위치를 정해놓고 필요하다면 진보적 성향의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시장, 조세, 빈곤해소, 복지의 정책 영역이 특히 그러하다. 실용주의가 ‘실용개혁정치’로 승화하려면 ‘정책의 보수회귀’가 아니라 ‘좌파 정책의 선별적 수용’이 관건이다.
신뢰-매력-경쟁력
필자는 ‘신동아’ 2007년 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실용개혁정치의 생명을 ‘상황적합성’ ‘가변성’ ‘유연성’으로 정의한 바 있다. 정치는 상황변화에 적응력을 배양하는 기예(技藝)이며, 적응력이 없으면 경쟁력도 없다.
마치 늘 시장변화에 대처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기업처럼 정치체제도 맥락에 민감하고 상황변화에 맞게 변신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상황변화를 탐지하고 대처할 능력이 ‘상황적합성’이고, 자신의 입지와 전략을 변화시킬 의지와 대응력이 ‘가변성’이며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움직이는 능력이 ‘유연성’이다. 상황적합성, 가변성, 유연성을 근간으로 하는 실용주의 정치철학이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 가는 경제시대에 매우 절실한 리더십의 요건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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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에서 필자는 ‘실용주의 리더십’을 ‘조정의 리더십’으로 규정하고, 이를 세 가지 면에서 조명했다. ‘세력 간 알력과 갈등을 조정(調停·mediation)하고, 분쟁과 이해충돌을 조정(調整·adjustment)하고,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기준과 정책을 조정(調定·settlement)하는 것.’ 이 시대는 세 가지 조정 기능을 포괄하는 리더십을 요청하고 있다.
747전략에 담긴 이명박 정권의 비전은 국민소득 2만달러의 한국을 이끌고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고지로 향한다. 4만달러 고지로 연결해주는 정치적 교량을 실용개혁정치라 하고, 여기에 세 가지 조정 기능을 부여한다면 그 목표는 분명하다. 신뢰사회, 매력국가, 경쟁국가의 구축이 그것이다.
신뢰사회는 시민사회의 질적 특성을, 매력국가는 지식과 문화창출의 역량을, 경쟁국가는 세계무대에서 갖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뜻한다. 각각을 만들어가는 방식에서 진보와 보수 간 의견충돌이 발생할 수 있겠으나, 앞에서 고찰했듯이 ‘조정의 리더십’의 장점인 선택적 유연성(selective flexibility)을 발휘한다면 신뢰-매력-경쟁력으로 구성된 삼층구조의 한국을 축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수도권과 충남의 지역주의 이탈
1월2일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코스콤 노조원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무튼 지역연고에 따른 투표는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극심했고, 수도권에서 다소 미약한 형태로 나타난 반면 다른 지역들은 앞에서 지적한 응징투표에 대체로 가담한 듯하다. 특히 이회창 후보의 출신지역인 충청도에서 연고적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향후 정치발전에 큰 의미를 지닌다. 지역주의를 벗어난 투표행태는 인구희소 지역인 강원도와 제주도에서도 발견됐다. 바람직한 일이다.
▼ 민심 : 경험투쟁
표심은 말 그대로 투표행위임에 비해 민심은 표심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표정이다. 민심이 표심을 결정하지만, 늘 그대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민심이 표심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여러 요인이 개입한다. 지역연고가 전형적인 요소다. 표심을 결정하는 민심의 대체적 동향은 투표 이전 여론조사에서 그 형태가 잡힌다.
올 대선에서 민심동향은 시간흐름에 관계없이 요지부동이어서 이명박 40~45%, 정동영 15~18%, 이회창 15~23%, 문국현 7~8%, 권영길 3% 안팎에서 고정돼 있었다. 부동표는 20~25%였다. 그렇다면 각 후보와의 일체감이 비교적 약한 약간의 유권자와 부동층이 실제 선거에서 최종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BBK 비디오테이프 공개로 위기를 느낀 보수성향 표가 이명박으로 몰렸고, 진보의 붕괴를 염려한 유권자가 정동영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는 이명박 소폭 상승, 정동영 대폭 상승, 이회창 소폭 하락이었다.
그러나 실제 민심은 변동의 폭이 거의 없었던 여론조사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보수 70%, 진보 30%로 나타났는데, 지난 5년간 형성된 한국인의 평균적 이념분포인 보수 30%, 중도 40%, 진보 30%의 비율을 감안하면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이 이번에는 모두 보수와 일체감을 형성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진보정권을 택한 지 5년 만에 급격히 보수화했는가. 이념성향이 정치적, 경제적 계기에 따라 다소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5년 전에 비해 이렇게 급격한 보수화가 일어났다고 단언할 확실한 근거는 별로 없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도성향이 여전히 40%를 차지하고 있던 터라면 말이다.
여기에 대선을 둘러싼 ‘민심 읽기’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권에 표를 던진 사람들의 이념성향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라도 40%에 달하는 중도적 유권자들이 왜 이명박과 이회창을 분산 선택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유권자들의 가치관 변동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지점이다.
서민 고통 해소보다 정권 정당성 치중
필자는 5년 전 출간한 저서인 ‘한국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에서 ‘진보정권 10년 간다’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선거 결과로 그 예측은 빗나갔다. 그러나 필자는 그 명제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기는 것이 아니다. 1987년 이후 한국인의 가치관은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진보 쪽으로 이동했다. 젊은층의 사회진출이라는 인구학적 변화요인도 그렇거니와 산업적·시대적 환경변화에 따라 탈물질적 가치관이 확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유권자가 점차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연도별로 실시되는 가치관 패널조사를 통해 그런 현상이 입증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보의 자원은 더 풍부해지게 마련이다. 이런 현상이 진보정권의 재창출로 이어지려면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진보정권의 업적이 체감될 수 있을 정도로 가시화해야 한다는 것. 아니면, 적어도 혐오감을 촉발하진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2004년 청계천을 시찰하는 이명박 서울시장.
기존의 지지자를 붙잡아둘 ‘거리’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동영 후보와 통합신당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경제 문제는 대선에서 언제나 중대한 쟁점이었지만 다른 사건, 예를 들면 병풍(兵風), 세풍(稅風), 북풍(北風) 같은 정치공학적 전략에 늘 밀렸다. 그래서인지 진보진영은 경제를 선점한 이명박 후보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자녀 위장취업사건, 도곡동 땅 문제, 그리고 BBK. 그것이 바람을 일으켰다면 대선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일지 않았고, 경제를 선점한 이명박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경제가 주효했고, 성장이 유권자의 주관심사였다. 왜 그랬을까. 경제 문제가 기존의 대선 때와 달리 더욱 심각해진 까닭인가. 아니다. 2007년의 경제사정은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휘몰아친 2002년보다 낫고, 외환위기에 처한 1997년보다 훨씬 낫다. 경제 문제라는 뇌관을 제거할 수 있는 정치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 정권의 상황정의(definition of situation)와 유권자의 현실감각 간의 ‘격차’가 그것을 설명한다. 노무현 정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제사정이 좋고 더 나아질 거라고 강조했다. 2007년 신년 연설에서는 OECD 국가 중 경제성장률이 가장 좋은 모범국가라고도 했다. 청와대의 경제지표는 투자율 호전, 물가 약세, 생산성 상승, 소득 증대 등을 가리킨 반면 국민은 소득 악화, 고용불안정, 교육비와 주택비 상승, 가계빚에 시달렸다.
‘잘나가던 시대’에 대한 회고
서민의 생계압박과 소외감 상승의 주범인 양극화가 가장 중대한 적(敵)임을 지적하면서도 청와대는 양극화의 폐해를 완화할 방안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고안했지만 실효는 미미했다. 반면 정권의 정당성에 관련된 굵직굵직한 국책사업과 주택정책에 공을 들였다. 국책사업이 서민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별로 없었다. 주택정책은 서민에게 세금부담을 안겨주거나 부자들에게 종부세를 부과함으로써 기껏해야 심리적 위로만 줬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가장이 비정규직, 부인은 파트타이머, 자녀도 비정규직으로 이뤄진 이른바 ‘불완전취업 가정’이 속출했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세계화시대 시장경제가 강요한 냉혹한 결과인데, 노무현 정권은 이런 외풍(外風)으로부터 지지자들을 보호하는 데 속수무책이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보다 생활고를 더 참지 못하는 것이 서민이다. 경제 문제가 가족을 압박할 때 사회정의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경제 문제는 단순히 경제침체와 생활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했을 때 ‘경제’가 경기침체에 찌든 미국인의 자존심까지를 지칭했던 것처럼 이번 대선에서 ‘경제’는 잃어버린 활력, 주눅 든 자존심, 실종된 성취욕망, 위축된 소득기회, 상실된 자수성가의 꿈 등 한국인 특유의 사회심리적 속성까지 포함했던 듯하다.
이런 것들이 노무현 정권의 빈약한 업적 탓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런 위축심리는 1997년 외환위기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고 이후 일련의 구조조정에서 야기된 후유증의 결과다. 노무현 정권에 왜 이런 문제들을 사전에 예측하지 못하고 방치하고 말았는지 따질 수 있다. 조금 더 냉정하게 추궁한다면, 왜 경기회복을 위한 적극적 개입정책을 쓰지 않았는지, 나아가서 진보적 사회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좋았지만 왜 경기활성화에 저해되는 정책들을 그토록 완강하게 고집했는지를 물을 수 있다.
실제로 그랬다. 노무현 정권만큼 경기활성화 정책을 만들어내지 않은 정권도 드물다. 노 정권은 김대중 정권에서 추진한 구조조정의 정책기조가 그대로 연장되어 완결되기를 고대했으며, 그것이야말로 ‘시장경제’를 수립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개입하지 않고 그 상태로 두는 것’이 노 정권의 경제기조였다. 정부 차원의 지원정책도 없었고 대책회의도 별로 없었다. 철저한 정경(政經)분리였다. ‘여전히 존재하는 시장규제’를 제외하면 경쟁력을 갖춘 재벌기업들에는 매우 편한 시절이었고, 여타의 중소기업들에는 매우 혹독한 시간이었다.
2007년 7월20일 충남 연기군 남면 종촌리에서 열린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
이 불만으로부터 국민은 ‘잘나가던 시대’의 꿈을 기억해냈다. 일할 의욕만 있으면 취업이 가능하던 시대, 고학력이 고소득 취업을 보증하던 시대, 약간의 시장지식만 갖고도 투자소득을 올릴 수 있던 시대, 무엇보다 자수성가의 꿈을 성취할 수 있던 시대 말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는 그런 무모함을 허용하는 시대는 결코 아니지만, 고도성장의 기억이 각인된 국민에게 경제란 성취욕망을 실현시켜주는 신나는 탐험으로 간주되게 마련이다.
이명박, 어떤 ‘경제 살리기’인가
이것이 경제에 대해 한국인이 가진 일반적 경험이자 보편적 심리라고 한다면, 유권자는 이번 대선에서 그런 경험의 복원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불평등 완화, 분배와 평등, 인권 등의 사회정의 개선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마음속에 끓고 있는 성취동기와 경제적 성공의 꿈이 탈색돼선 안 된다는 현실감이 더 절박했다. 그것은 노무현 정권이 내세운 ‘이념’을 ‘일반 경험’으로 대체하려는 표심이 분출됐다는 점에서 ‘경험 투쟁’이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경험의 복원 혹은 기대심리의 회복 욕구를 반드시 보수적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그 기대심리는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주어진 상수와 같다. 문제는 경제에 대한 기대심리가 ‘상수’로 기능하는지, 아니면 ‘결정적 변수’로 등장하는지다. 1997년과 2007년에는 상수가 아니라 강력한 변수로 작용했기에 정권교체가 일어난 것이다. 경제 문제가 ‘강력한 변수’로 등장하는 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거나 서민의 인내심을 건드릴 정도로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 있을 때다.
여기에 정권의 유별난 ‘상황정의’가 유권자의 현실감각과 현격한 격차를 보일 때 정권교체 가능성은 커진다. 유권자가 표를 통해 응징하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 이런 표심이 반드시 보수적인 것은 아니다. 진보의 최대 자원인 ‘사회정의’와 ‘분배’에 관한 유권자의 관심은 여전히 존재하고, 경제에 대한 기대심리가 어느 정도 충족되는 시점에서 유권자들은 소홀했던 그 문제를 다시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명박 정권이 경제 살리기에 성공하면 할수록 유권자의 관심은 사회정의로 돌아갈 개연성이 크고, 진보진영이 이들을 규합해 정치적 지지를 확대해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경제 살리기인가’가 이명박 정권이 주의해야 할 최대의 관건이다. 이명박 정권의 일차적 정당성은 경제 살리기로부터 나올 터지만, 그 정당성을 지탱하는 요소는 ‘결실의 분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살리기에 실패한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성공한다 해도 유권자가 대체로 용인할 수 있는 불평등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이명박 정권의 정당성은 급락한다. 한국인은 평등주의에 유난히 민감하다.
▼ 대선 의혹감 확산
이번 대선이 한국 정치에 제기한 의미심장한 과제가 있다. ‘이런’ 대선을 또 치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후보 난립, 상호비방, 혼란, 정당 이합집산 등을 5년마다 주기적으로 겪어야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혼돈의 계곡’을 지나면 광활한 평야가 펼쳐질 것이라는, 즉 한국의 정치발전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된다면 즐거운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확신과 보장은 없다. 당선자의 정치적 능력과 자질에 국운(國運)을 걸어야 할 판이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번 대선에 임하는 유권자의 푸념이었다. 그러고도 몹시 시끄러웠다. 여당은 해체, 변신, 통합을 반복했고, 야당은 일찍부터 경선에 돌입했다. 군소정당은 틈새시장을 노렸고, 야망을 키워온 정치인들은 신당을 꾸려 전국 인물로 뜰 기회를 엿봤다. 정치인들의 변신에는 항상 그럴듯한 수식어가 붙었다.
유권자는 헷갈렸다. 정치판의 이런 모양이 정상적인 것인지를 가늠할 겨를도 없었다. 민주주의의 선진클럽인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지극히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급기야 선택할 사람이 없다는 유권자의 푸념이 널리 퍼졌고, 그것은 63%라는 최저투표율로 나타났다. 37%는 정치 무관심층과 선거 거부자를 합한 수치다. 이들에게 대선은 소모적인 정기행사, 권력욕에 찬 정치인들이 벌이는 투전판으로 결국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당신들의 잔치’였다.
최저투표율로 당선
정치 기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선진국이라면 63%의 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한국에서 비참여자가 37%나 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선거 회의감이 확산된 결과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것, ‘정치인의 빈곤’이 첫째 이유다. 왜 이럴까.
대선이란 최고의 정치인들이 일합을 겨루는 자리이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런데 누가 봐도 최고수가 아닌 사람들이 출사표를 내밀었고, 그럴 때마다 유권자들의 냉소가 터졌다. 출사표를 내는 것은 개인적 자유에 속한다. 개인적 자유 속에 ‘개인 검열’도 포함된다고 보면, 유권자는 스스로 그럴 만한 인물인지 먼저 점검할 것을 기대한다. 보수진영은 비교적 그런 검열에 충실하기는 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후보 난립을 어느 정도 제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9명이 나타나 경합하는 과정에 6명으로 줄었고 최종적으로 3명이 남았다. 군소후보 난립에는 어떤 원칙도 없었다. 가문과 족보에 족적을 남기고 싶은 사람, 약간 정신이 돈 사람, 과대망상증 환자,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 등이 후보로 나섰다.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사람도 있었다. 동네잔치에는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제격이지만,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선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한국 정치는 여태껏 3김시대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중이다. 3김시대란 두말할 것도 없이 카리스마 정치였고, 따라서 정치인 후속세대를 배양해야 할 필요성이 멀게만 느껴지던 시대였다. 3김이 연속적으로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하면 15년이 소요된다고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3김시대의 정치양식이 유능한 정치인을 생산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카리스마 정치인들은 후속세대의 배양에 매우 인색했는데, 이런 빈 공간에 발을 들여 놓은 집단이 바로 민주화 투쟁인사들이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화 투쟁인사들의 권력지대였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도 후속세대 양성에는 선배들보다 더 인색해서 누군가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그냥 두고보지 못했다. 정동영, 김근태, 이부영, 이해찬 등이 그럴 만한 후보였는데, 모두 노 대통령의 정치적 포섭에 휘말려 독자적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 통합신당이 이토록 처절하게 참패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독자적 이미지 구축을 불허한 노 대통령에게 있다.
최고권력자가 허용하지 않는다면, 괜찮은 대중적 정치인이 성장할 정치 기제는 존재하는가. 아니다. 정치인 공급원으로는 국회와 정당을 비롯해 시민단체, 중앙정부, 전문가 집단, 지방의회, 지방정부, 언론, 방송, 기업 등이 있는데, 정치를 전공으로, 정치인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정치인을 배양하기에는 부족하다.
혜택 최대화, 위험 최소화
‘전문정치인’이란 적어도 10년 이상 정치현장에서 정치적 행동양식과 기본소양을 습득한 사람을 뜻한다. 그것은 전제조건에 지나지 않고, 여기에다 국가를 이끌 비전, 능력, 리더십을 겸비해야 한다. 국가의 중요한 현안을 다뤄본 경험이 있어야 하고, 중대한 고비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려본 경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유권자가 그런 모습을 기억해줘야 한다.
대중적 정치인은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정치인 배양 기제가 부족한 반면 정치 진입구는 천지사방으로 열려 있다. 야망과 욕망을 가진,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것을 허용한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적어도 MBA는 이수해야 하고 기업현장에서 20년 이상 몸바쳐 뛰어야 한다. 학계에서 뛰어난 학자가 되려면 박사학위는 물론 이후에도 10년 이상 탁월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는 자격증이 따로 없고 검증과정도 엄격하지 않다. 약간의 자질과 명성을 쌓으면 자칭 대통령후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능력과 자질, 리더십을 겸비한 대중적 정치인은 잘 생산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였는데, 이번 대선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앞으로도 재현될 인물난이 시작된 것이다. 찍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은 유권자라면 누구든지 한 번쯤 고민했을 문제였다.
그리하여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택하자’는 위로의 말이 퍼지기도 했다. 차선을 택하자고 백번 양보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차선으로 택한 그 사람이 과연 약속한 대로 정치를 행할 것인지 확실치 않고, 그의 뒤에 있는 권력실세들이 누구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전형적이다. 그의 정치행보는 ‘약속한 대로’와 매우 달랐고, 권력실세들은 유권자를 경악시켰다. 그렇더라도 유권자는 5년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번에도 과연 기대에 어긋날지, 아니면 대체로 예상과 맞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제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을 차선으로 선택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치더라도, 그 권력을 집행할 구성원들을 모른다는 사실, 뜻밖의 사람들이 뜻밖의 일을 저지를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제에서 투표는 위험 최소화(risk minimization)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혜택 최대화(benefit maximization)라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것은 내각책임제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다.
‘정치인의 빈곤’과 ‘의외성의 문제’라는 두 가지 불확실성은 한국 정치에 내재된 고질적 문제로서 대통령제에 대한 회의감을 널리 확산하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이번 대선에서 그 회의감은 예상외로 널리 퍼졌는데, 이명박 정권은 출범 이전부터 그것을 해결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한 셈이다.
〈 2부 - 이명박 리더십과 실용개혁정치 〉
▼ 이명박 리더십
지난해 12월26일 모습을 드러낸 정권인수위는 차기 정부를 ‘이명박 정부’로 명명한다고 선언했다. 대통령 이름을 따서 행정부를 지칭하는 미국적 관행이 보편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등 정권 특성을 지칭하는 기존 명칭과 비교하면 정권의 지향성(orientation)보다 책임성(accountability)을 강조한 작명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란 이명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의미다. 한국 최초의 CEO 출신 대통령답게 성과와 업적 중심의 리더십을 표명한 것이다. 업적으로 평가받겠다는 최고경영자적 통치관은 ‘코리아 주식회사’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
이명박 리더십의 최대 기대치인 경제 살리기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낼 것으로는 예상되지만, 모든 국민이 골고루 그 성과급을 분배받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예를 들면 경제 살리기 정신이 정치와 사회 살리기로 이어질 것인가, 전경련 재벌총수들 회동 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노동계와의 만남에서도 재현될 것인가, 진보정권 10년 동안 추진된 ‘분배와 평등’을 위한 크고 작은 정책들은 어느 정도 살아남을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답을 갖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앞서 검토했듯이 대통령제의 불확실성이 이명박 리더십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인 성취동기 자극한 청계천
리더십은 개인적 체험과 세력집단의 특성을 고찰하면 어느 정도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개인적 인생관에는 기독교 신앙심, 빈곤체험과 자수성가, 대기업 경영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빈곤-노력-성공의 진화과정을 밟는 3단계의 삶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 원형적 가치관이자 인생관이다. 불우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각고의 노력을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 이것이 인구의 절반을 도시와 산업공단으로 향하게 하고 농촌의 전통적 가치관으로부터 근대적 경영정신을 만들어낸 원동력일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개인적 삶은 그런 신념을 대표한다. 엉성하기 짝이 없던 현대건설을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낸 것은 직무 몰입(committment)과 ‘하면서 배우는(learning by doing)’ 한국인 특유의 자질이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생에 왜 좌절이 없겠느냐만, 그때마다 기독교적 신앙심이 ‘재기의 열정’을 달궜다. 다시 말해 소년시절의 빈곤 체험이 ‘나는 할 수 있다’는 ‘성취동기’로 바뀌고, 이것이 급기야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발전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구체화한 21세기형 프로젝트였는데, 별것 아닌 듯 보인 그 청계천 물길은 노무현 정권에서 위축된 한국인들의 성취동기를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청계천 물길과 함께 전국적 인물로 부상했다.
청계천 복원과 함께 버스 노선 변경과 강북 뉴타운 개발이 서울시장으로서 그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든 프로젝트였다. 기업과 자치단체는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한다. 프로젝트의 개발과 추진에서 그와 경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프로젝트형 경영 마인드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에도 통할까. 가장 큰 자치단체인 서울시를 지휘한 경험을 확대재생산하면 행정부 전체를 관리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행정부는 독자적 자율성을 가진 관료조직이고, 정치영역에 산재하는 거부권들과 긴밀히 연관되어 그의 통치력에 장애를 주는 항체들이 내부에서 형성된다. 항체들과의 대면과 접전,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핵심일 터인데 정치영역에 광범위하게 발달하는 저항세력을 포섭하는 데 필요한 조정, 타협, 양보, 수용의 통치양식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고용 없는 성장’ 딜레마
유권자들이 노무현 정권에 등을 돌린것도 타협과 양보의 결핍 때문이었다. 수도 이전이 좌초되자 명분만 바꾼 채 행정복합도시를 감행한 독선적 추진력에 유권자들은 염증을 내기 시작했다. 정당정치의 경력이 상대적으로 짧은 이명박 당선자를 만만치 않은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다. 거부권 행사가 전공인 야당, 공공성의 칼날을 휘두르는 시민단체, 생존을 외치는 노동운동, 교묘한 여론 형성자인 언론 및 방송매체가 그들이다.
여론지도자들은 어떤가. 취임을 전후한 짧은 기간 지식인 및 여론주도 집단들과 일종의 화해무드가 형성되겠지만, 이명박 정권의 정책기조가 가시화하는 순간 비난의 포문이 열릴 것이다. 유럽 정치를 선진정치로 끌어올린 핵심 요소인 협치(協治·corporatism)는 저항세력과의 ‘동침’을 의미한다. 설득과 조정, 양보와 연합이 협치적 통치술을 통해 이뤄질 때 민주정치는 발전한다.
때로는 강제도 필요하다. 이런 자질은 전국적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지만, 추진력, 자수성가, 최고경영자 이미지를 발판으로 통치자가 된 이명박 당선자에게 특히 요청된다. 노무현 정권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프로젝트형 추진력을 포함한 조정과 수용의 리더십이 필요하고, 정책 프로젝트가 정권의 전체적 성과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스템적 리더십이 절실한 것이다.
설득과 조정의 지혜는 ‘시장억제정치(politics against market)’로부터 ‘시장친화적 정치(politics for market)’로 전환될 정권 초기에 더욱 주효하다. 이명박 정부의 초기 정책이 노동에서 기업, 분배에서 성장, 통제에서 자율, 친북에서 친미로 선회할 것임은 이미 알려진 바인데, 정권의 성격을 규정할 인수위 구성원들의 가치관도 대체로 이와 일치한다. 경제, 남북관계, 교육 부문에서 가장 급격한 선회 내지 단절이 예상되는데, 이 영역이야말로 첨예한 이해대립이 대규모 세력투쟁으로 바뀔 위험이 큰 곳이다.
벌써부터 인수위원들은 이명박 당선자의 통치 기조에 맞춰 분배론자, 평등론자, 햇볕정책론자들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10년 동안 분배, 평등, 친북담론이 영향력을 확대해왔고, 사회 곳곳에 진보세력을 키워냈기에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경제 살리기만 해도 그렇다.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 개념이 시사하듯 경제 호황이 반드시 일자리를 동반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경제가 양극화 해소에 반드시 긍정적 기능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이른바 트라이레마(trilemma·삼자택일의 궁지)에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노무현 정권에 한껏 정치적 부담을 안겨준 이 ‘구조의 덫’을 이명박 정권은 피해갈 수 있을까.
▼ 삼자택일의 궁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 선진국들은 재정 건전성, 경제성장, 분배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정도는 달랐으나 성장과 분배의 적정균형을 꾀하는 사민주의적 정책 패키지가 개발됐고,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세 가지 목표의 균형을 중시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자본주의 구조가 금융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하고 생산체제에 근본적 변화가 발생하자 3자 구도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고용 없는 성장, 제로성장, 자본이탈, 노사정 합의체제 해체, 복지비용 증가, 공공부문 비대화 등이 3자간 균형을 깨뜨리고 재정, 성장, 분배의 동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세계화의 확산과 신자유주의적 시장기류가 더욱 강해진 1990년대에 선진국들은 세 개의 목표 중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재정, 성장, 분배 중 하나를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이것이 바로 트라이레마다.
‘분배-성장’에 희생된 ‘재정’
그런데 재정적자가 국민총생산의 3%를 넘어서면 EU 퇴출이라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의 규제사항을 지켜야 하므로 재정은 우선적인 준수사항이다. 최근 그리스는 재정적자가 쌓이는 바람에 EU로부터 경고조치를 받았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의 경제정책은 재정 건전성을 우선축으로 설정한다.
미국과 영국은 이미 1980년대 초반에 재정 건전성-성장 축으로 돌아섰고, 독일도 최근 메르켈 정권의 출범과 함께 분배로부터 성장 쪽으로 약간 선회했다. 공공부문이 국민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스웨덴은 성장전략으로 급격히 전환하기가 어려운데, 지난해 집권한 보수당은 저성장의 늪을 탈출하기 위해 복지삭감, 자격심사 강화, 법인세 소폭 인하 등의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돌아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이 트라이레마에 대한 스웨덴의 선택이었다.
한국은 유럽 국가들과 경제 및 재정구조가 다르다. 그러나 2003년 한국처럼 국가부채가 165조원으로 국민총생산의 23%에 달하는 적자정부를 유럽 좌파가 물려받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위에서 지적한 트라이레마 구조에서 무엇을 희생시켰을까.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이 국가운영의 최대 관건임을 인식했다면 ‘재정-성장’을 선택하고 분배를 줄였을 것이다.
그러나 분배와 평등을 내세워 집권한 진보정권이 그럴 수는 없었다. 공약에서도 7% 성장을 약속했기에 노 정권은 ‘분배-성장’을 선택하고 재정을 죽였다. 재정적자는 경제 건전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지만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것이 탈이다. 재정은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악화일로를 걸었다. 2004년 4조원 적자를 냈고, 2007년에는 15조원 적자를 냈다.
재정팽창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아 과거 10여 년 동안 OECD 평균의 2.3배 를 기록했다. 국가부채 증가는 더욱 심각하다. 2002년 133조원이던 것이 2007년에는 300조원으로 급증했다. 그리하여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02년 19.5%에서 2007년에는 33.4%로 높아졌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정권은 재정을 축내면서 ‘분배와 평등’에 우선 돈을 쏟았고 나머지를 성장에 할애한 셈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분배에 역점을 둔 정책 패키지로는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가장 바람직한 선순환 구조를 가정해본다면, 고성장정책이 기업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촉발하고, 이로부터 세수(稅收)가 늘어 재정상태가 호전되고, 이것을 분배구조 개선에 투입하는 순서일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 순환 단계를 분배로부터 시작해 성장, 재정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성장은 공약과는 달리 5% 수준을 훨씬 밑돌았기에 재정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재정악화를 막기 위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을 신설하여 세원(稅源)을 늘리고 기존 세금은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것이 또한 기업수익률 저하와 소비자의 구매력 악화를 초래했다.
신자유주의의 함정
이런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 이명박 정권은 1980년대의 미국과 영국처럼 재정-성장 축을 중시하고 분배를 시장에 맡기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의 길(neoliberal road)을 선택할 것임이 자명하다. 이른바 ‘747 전략’(연간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강국 진입)이 그렇고, 법인세 5% 인하,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점진적 허용, 민영화, 5년간 일자리 300만개 창출 등 기업친화력과 시장지배력을 높인다는 논리가 그렇다. 1980년대 세계시장에 공급자 혁명(supply-side revolution)을 불러온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의 한국판이 될 전망이다. 예단하기에는 이르지만, ‘MB노믹스’는 민주화 이래 가장 강력한 ‘공급자 혁명론’일 것으로 예상되기에 기업 중심의 시장재편과 규제완화, 헌신을 강조한 업적주의, 공기업에 자율과 책임원리 도입, 전기, 철도, 상하수도와 같은 기반시설의 민영화가 활발히 논의되고 추진될 것이다.
문제는 분배다. 영국과 미국이 보여주듯 ‘신자유주의의 길’과 ‘공급자 혁명론’이 경제 활성화에는 매우 긍정적이었지만, 소득 양극화와 분배 악화를 낳았다. 신자유주의는 공공복지 영역에도 기업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선호한다.
노무현 정권이 그렇게 애지중지한 ‘분배와 평등’은 양극화 현상에 휩쓸려 이렇다할 열매를 맺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MB노믹스는 미국과 영국의 전철을 피할 수 있을까. 분배와 복지 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정책 프레임이 선을 보일 것인가. 이명박 정권에 트라이레마의 덫은 어떤 정책과제를 던지는가. 분배와 복지 문제는 ‘하면서 배우기’ 방식으로는 풀지 못할 뿐 아니라 ‘복지정치’를 둘러싼 다양한 세력 간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 대치선과 세력투쟁
기대와 실망의 순환구조는 어떤 국가에서도 일반화한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기대-실망의 격차가 특히 두드러진다. 정권 초기에 한껏 부풀려진 기대감은 정권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실망으로 바뀌고 급기야 혐오감이 폭증해 정권교체가 일어난다.
기대-실망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압승의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번 대선이 그렇다. 528만이라는 표차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의 압승이 진보의 붕괴를 의미하는가. 이번 대선에서 특기할 것은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설득력이 없고 왜소했다는 점이다. 시민단체도 침묵했고 진보지식인들도 입을 다물었다. 진보이념의 매력을 되살릴 자원이 고갈된 듯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가 얻은 지지율은 전체 유권자의 30%에 불과하다. 투표 비참여자 37%, 진보정당 지지자 22%(통합신당, 민노당, 문국현 지지자)를 합하면 약 60%가 이명박 정권에 부정적인 사람들이다. 압승은 압승이되, 방관과 반대가 훨씬 더 많은 상태의 압승인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 점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 때도 그랬지만, 10년 만에 집권당이 된 한나라당은 반대와 거부의 바다에 떠 있는 섬이다.
국민의 이념성향 분포가 5년 전에 비해 그다지 큰 폭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러 사회조사에서 이미 확인됐다. 최근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가 ‘한겨레’ 1월1일자에 보도됐는데, 국민은 ‘경제에는 보수, 사회에는 진보’적 성향을 띠고 있다고 소개됐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보수로 일체화하는 비율이 2004년에 비해 11%포인트 상승한 반면 진보는 10%포인트 정도 낮아졌다. 하지만 복지와 고용안정을 위해 정부가 강력한 시장개입을 해달라는 진보적 성향의 요청이 늘었고, 소득분배 개선을 요구하는 비율도 3년 전에 비해 10%포인트 높아졌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국민의 평균적 이념성향이 보수 쪽으로 약간 자리 이동을 하긴 했어도 사회영역에서는 진보성향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 가해질 비판의 자원들이 여기에서 나온다. 즉 60%에 달하는 반대자와 방관자들의 요구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의 문제, 특히 ‘경제에는 자율, 사회에는 규제’를 선호하는 엇갈린 기대를 어떤 정책 패키지로 포용할 것인지가 그것이다.
60%의 방관과 반대
60%에 달하는 방관과 반대 속에는 기존 정당이 부응하지 못한 탈(脫)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숨어 있을 것이다. 투표율이 낮은 것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유권자의 발전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열광적으로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뜻인데, 사실상 이번 대선의 가장 강력한 프레임이던 ‘경제 살리기’는 생태, 평화, 자아실현, 미래지향, 문화 등의 탈물질주의적 가치관과 거리가 멀다. 현재는 개인의 이런 소망이 경제불황에 의해 억제되고 있는데, 만약 경제 살리기에 청신호가 켜지고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의 요구가 불거질 것이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증가할수록 더욱 그렇다. 이들은 물질적 풍요에 매진하는 집권당에는 잠재적 저항세력이다. 억울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경제에 성공할수록 이런 모순에 당면할 것이고, 진보정당은 역으로 기회구조를 넓히게 될 것이다.
현재는 지극히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고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재기가 어려운 듯 보이는 진보세력에게 지지기반을 회복할 수 있는 전략적 자원은 널려 있다. ‘사회적 진보’를 선호하는 이념성향이 매우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바로 이 영역에서 집권보수당과 대치선을 만드는 전략이 주효할 것이다. 첨예할수록 진보세력의 기회구조는 넓고 풍요로워진다.
이명박 정권과 진보정당이 정당성을 놓고 격돌할 논쟁거리들은 이렇다. 크게 보면 ‘신자유주의적 명제’와 ‘사회민주주의적 명제’의 대립이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배양할 방안을 놓고, 전자는 작은 정부, 시장자율, 복지축소가 국가운영의 최적 원리라고 보는 데 반해 후자는 큰 정부, 시장규제, 복지확대가 정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양자는 양립할 수 없고 상충적이다. 보수정당은 신자유주의적 명제를, 진보정당은 사민주의적 명제를 추종할 것이다.
‘임금’만 있고 ‘고용’은 없다
그렇다면 상반된 신념이 대치선을 형성하게 되고 이는 곧 사회세력 간 갈등으로 불거질 것이다. 노무현 정권을 괴롭힌 공방전이 거꾸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원리를 변형시키지 않으면 노무현 정권에서 형성된 대치선이 그대로 살아나고 불가피하게 진보진영과의 투쟁전선에 나서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이명박 정권의 공약을 보면 그럴 개연성이 크다.
우선 3대 국책 프로젝트가 그러하다. 한반도 대운하, 국가과학기업도시, 새만금개발은 수익성이나 당위성과는 상관없이 수도 이전을 둘러싼 5년 전의 공방전을 불러들일 것이고, 국토균형발전론자들과 생태환경론자들의 과격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진보진영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올 자원은 널려 있다. 예를 들면 기업환경 개선을 위해 규제완화는 좋으나 수도권 집중과 환경파괴를 불러올 전면적 완화에는 결사반대할 것이고, 시장개입 철회에도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진보진영은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야 고용안정이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가장 첨예한 갈등의 소재인데,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에는 임금 문제만 언급되어 있고 고용 문제는 빠져 있다. 더욱이 연초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거듭 강조한 ‘법치와 법질서’에 대한 언급 속에는 노동계의 정치적 파업을 법체계로 다스리겠다는 대처리즘적 노동정치관이 비친다. 따라서 노동조합과의 일대 전면전도 배제할 수 없다.
진보정권과 구별되는 보수정당의 사회정의는 무엇인가. 사회정의를 ‘효율성’과 ‘분배적 정의’로 나눈다면 아마 효율성 쪽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그렇기에 교육도 자율성과 효율성을 증진하는 쪽으로 개혁방향을 잡고 있고, 민영화를 통한 공기업 개혁도 마찬가지다. 금산분리를 완화해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겠다는 약속도 경제효율성에 무게를 두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과 갈등이 벌어질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서로 다른 정당성이 격돌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명제와 사민주의적 명제, 보수와 진보, 성장론자와 분배론자, 국토개발에 대한 불균형성장과 균형성장 사이에 다면적으로 발생할 정당성 투쟁에서 이명박 정권이 논리적, 도덕적, 실리적으로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권 초기에 향유한 기대 인플레는 쉽사리 꺼지고 만다. 기존 정권들이 걸어간 사양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실용주의는 이런 대치상태,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 부추겨 자신을 괴롭히게 만든 이념적, 세력적 대치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유용한 정치노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