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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_옐로칩 미술가 순례

복선과 도발의 저격수 - 이불

몸 오브제로 역설의 하이브리드 똥침 날리다

  • 정준모 미술비평가 curatorjj@naver.com

복선과 도발의 저격수 - 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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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과 도발의 저격수 - 이불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프랑스 파리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On Every New Shadow’ 전시장 전경.

당시 그의 작품에 담긴 의미 중 하나가 ‘도발’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 동양에서 온 젊은 여성작가가 은근슬쩍 날린 펀치 한 방에 공간을 비워야 했고, 그것을 결정하기까지 미술관 관계자들이 얼마나 고민했을까. 최고의 미술관이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우왕좌왕했을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이불의 의도된 기획이 아닐까 싶었다. 그는 ‘MoMA’라는 권위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미학을 실천했을 뿐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미술품 공동묘지’의 썩어들어가는 현실을 작품을 통해 역설적으로 풍자, 현대미술에서 미술관의 의미를 되물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때 출품된 작품이 ‘화엄(華嚴)’이다. 1991년 ‘성형의 봄’이라는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시즌2’쯤 되는 작품이다. ‘성형의 봄’ 전시를 위해 화랑을 주선했던 필자는 이 작품으로 인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썩는 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 없으니 작품을 당장 치우라”는 것이었다. 철거당하진 않았지만 전시장은 이후 방향제와 향수와 생선 썩는 냄새가 뒤섞인 독특한 현장이 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생선에 스팽글이라고 하는 반짝이는 장식물을 핀으로 꽂고 백합이나 비녀, 가발 등으로 생선 몸통을 장식한 후 비닐 팩에 넣어 벽에 걸거나 매다는 형식의 설치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결국 비닐 속에는 생선 썩은 물이 고이고, 생선 썩는 냄새가 퍼져나가면서 관객이 발을 돌리는 사태로 번졌다.

한겨울 자연 속에 있었으면 이불의 작품은 멀쩡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술관은 미술품의 안전한 보존 관리를 위해 항온항습 상태를 유지한다.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작품의 보존을 위해 이불의 ‘화엄’은 비닐 속에서 썩은 물로 남고 말았고 결국 이런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불 작품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불은 이 작품을 통해 관용과 화해, 공존과 평화라는 낱말들이 얼마나 허망한 구호이며 위선에 지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미술품의 권위와 우상화에 ‘똥침’을 날린 것이다. 게다가 아름다움과 메스꺼움, 유혹과 거부감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한 오브제로서의 몸을 강조했다.



하지만 발언 수위가 좀 높다고 해서 그가 특별한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었다. 보편적인 것들의 위선과 위장을 들춰내는 일이야말로 당시 이불이 지닌 가장 큰 목표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MoMA에서 철거된 작품 ‘화엄’으로 그는 이듬해 구겐하임 미술관과 휴고 보스사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휴고 보스상(賞)을 수상한다.

일상의 부조리에 침 뱉기

이불의 작품은 도발적이다. 그는 1980년대 초에 대학에 몸담은 세대다. 그 답답하고 꽉 짜인 가마솥 같은 세상에서 청춘을 보낸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게다가 절제하면서 초연하게 자신을 관조하는 당시 미술 동네의 교조적인 분위기에 동조하거나, 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 민중의 삶을 그려내겠다는 ‘현실을 모르는 현실주의자’들의 그림, 즉 민중미술 대열에 서는 양자택일 외에는 할 게 없던 시절이었다.

이불은 전공인 조소나 학교생활을 등한시한 채 연극에 몰입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현실을 외면한 셈이다. 그런 그에게 졸업이란 자유와 같았다. 이즈음부터 그는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저지르기 시작했다. 파격적이고 선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때로는 민중미술계열 작가로 오인되기도 했지만, 그의 행위는 어느 작가건 갖게 마련인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 같은 것이었다.

그는 몸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몸은 현대미술의 화두이자 소재다. 몸이란 모든 것의 복합체이자, 정신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의 현현(顯現)이기도 하다. 당시 그에게 신체는 도구이자 수단이었으며 ‘말’ 자체이자 자신을 말하는 ‘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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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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