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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소설은 글로 짓는 집… 같은 집 또 지을 수야 없죠”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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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옛 시절이긴 하지만 쉰을 넘기고 죽으면 잘 산 거다.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도 선위(禪位)를 준비하는 나이다. 그런데 요즘 세파는 잘 먹고 잘살아서인지 이런 말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필자도 쉰이 멀지 않았다. 그래, 이미 요절한 몇몇 친구에 비한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다가도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게 없어 심한 자괴감이 드는 그런 나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판단한다. 몸도 마음도 아직 사춘기다. 그래서 나도 쉰부터는 뭘 좀 하고 싶은 마음에 준비만 하고 있는 내 모양이 한심하긴 하지만, 그는 작품에서나 인간에서나 이미 한 고비를 넘긴 중견작가다. 그는 쉰이라는 나이가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와준 게 고맙다고 했다.

‘할아버지 나무’

특별히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여기까지 온 세월에 대한 고마움, 마흔에 쓴 소설인 ‘은비령’을 넘어온 심경일까. 그는 쉰이 되던 해에 장편 소설 ‘나무’를 썼다. 그로부터 이미 몇 년 전부터 들은 이야기를 소설로 만나니 반가웠다.

소설에서 그는 나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목소리를 싹 빼버린 소설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나무의 결에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었다’고 번역한다. ‘나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바로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쓴 것이다.



“어렵던 시절, 할아버지는 밤 다섯 말을 마을 산에 심었어요. 식구들 누구도 그 밤을 먹을 수 없었지요. 이웃나라에 나라를 빼앗긴 해였지요.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강원도 강릉의 한 촌락에서 할아버지는 묵묵히 밤나무를 심은 겁니다. 어린 우리들은 그 나무를 ‘할아버지 나무’라고 불렀어요.”

100년 전의 이야기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100년이면 나무가 변한다. 할아버지는 밤나무 외에도 평생 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 나무들에는 가을마다 수백 접의 밤이 열렸고, 집 안에 심은 자두나무와 앵두나무 석류나무가 울타리를 대신했다. 뽕나무가 밭둑마다 늘어섰고, 닥나무를 심어 종이를 구했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가 경술국치에 나무를 심은 심경을 나약한 글쟁이가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그의 할아버지가 나무를 심어 세상의 슬픔을 내면으로부터 다스렸다면, 이순원은 세상에 소설을 심었다. 그는 할아버지 나무를 오랫동안 가슴에 심어두었다. 그리고 그 나무에 열매가 달리듯,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동화 스타일로 이야기를 꾸몄다.

100년이 흐르는 동안 밤나무들은 세상을 떠나, 그 자리를 다른 나무에게 내어주었다. 이제 할아버지 나무는 한 그루만 남았다. 밑동이 썩고 줄기에 구멍이 났다. 그리고 가지는 내리는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휘어지고 부러졌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할아버지의 오랜 세월이지요. 그 시간을 견딘 보상으로 지금도 가을이면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밤을 던져주십니다.”

전통 유교마을 출신

이순원을 알기 위해서는 강원도를 알아야 한다. 할아버지 나무가 자라는 그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 위촌리다. 행정지명인 위촌리 대신에 사람들은 ‘우추리’로 부른다고 한다. 우추리는 강원도 산골 촌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터넷으로 ‘우추리 이장님의 연설’을 검색하면 독특한 강원도 사투리로 마을 주민들에게 연설하는 기가 막히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순원은 한번 들어보라면서 인터넷으로 우촌리 이장의 연설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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