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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했던 북핵에 발목 잡혀 ‘우선순위 함정’ 빠지다

노무현 2003-2008, 빛과 그림자 - 외교·안보

  •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 joseon@inss.re.kr

낙관했던 북핵에 발목 잡혀 ‘우선순위 함정’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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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대 구상’의 야심

출범 초기부터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거대한 프로젝트는 ‘동북아시대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변방역사 극복론’이 제시되고, 그 연장선에서 ‘동북아시대 구상’이 피력됐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팀 구성원들은 한반도의 평화 없이는 우리 민족의 발전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형성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나아가 우리나라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적극적으로 주도함으로써 ‘동북아 중심국가’로 부상한다는 야심만만한 계획도 세웠다.

2003년 8월15일 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따르면, 동북아시대 구상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치욕을 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협력과 통합의 동북아 신질서’를 만드는 것을 핵심목표로 내세웠다.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 협력을 통해 한국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정체에서 도약’으로 향한 전진을 주도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동북아시대 구상은 나름대로 치열한 역사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고, 동북아지역이 갖는 독자적인 의미를 간파했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다. 과거의 대미(對美) 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 한국의 시각에서 동북아 외교구상을 수립하고자 했다는 점도 분명 새로운 시도라는 의의가 있다. 실제로 2차 북핵 위기와 그에 따른 남·북·미·일·중·러 6자회담 개최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동북아지역의 독자성을 부각시키는 뜻밖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해프닝으로 끝난 ‘동북아균형자론’

그러나 바꿔 생각해보면, 동북아의 지역성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세계화라는 보편적 추세에 대응전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차원의 ‘변환(transformation)’과 마찰을 빚음으로써 한미관계를 약화시키기도 했다. 동북아시대 구상은 지역국가들과 협력해 경제와 안보를 포괄하는 지역공동체를 창설함으로써 우리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포괄적 안보 프로젝트로 시작됐지만, 국내 일부세력의 반발과 북핵 문제의 장기화, 동북아공동체의 일원이어야 할 일본과의 외교마찰, 그리고 미국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서 좌절이 예견되어 있었다.

동북아시대 구상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동북아균형자론이다. 동북아균형자론은 2005년 2월25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언급한 이후, 3·1절 기념사나 공군사관학교,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에서도 되풀이됐다.

동북아균형자론은 출발부터 개념적 타당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졌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동북아시대 구상의 핵심으로 불리는 이 밑그림은, 세계 유일 패권국인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지속하되 미일동맹을 통해 현상유지를 꾀하는 일본과 새롭게 지역패권을 노리는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실제로 동북아균형자론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과 ‘다케시마의 날’ 제정,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추진 등 일본의 움직임에 대한 대응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과연 미일동맹과 중국의 관계를 냉전기의 미국과 소련처럼 적대관계로만 볼 수 있는지, 중국과 일본 간의 협력 가능성은 없는지, 우리가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유효한 정책수단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동북아균형자론은 미국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한미 갈등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설사 일본만을 겨냥한 것이었다 해도 이는 결과적으로 미일동맹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 한미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동북아균형자론이 ‘친중반미(親中反美)’의 표출이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긴 했어도 결과적으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기도를 좌절시키는 데 일정한 기능을 했음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2005년 1월19일 ‘2+2 전략대화 공동선언’을 통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찬성하다는 견해를 발표했지만, 한국의 격렬한 반대를 포함해 여러 가지 외교적 고려 끝에 결국은 같은 해 4월 지지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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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 joseon@in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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