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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분권’에 국가경쟁력 흔들, 강박적 균등주의로 제로섬 자초

노무현 2003-2008, 빛과 그림자 - 지방

  • 유재원 한양대 교수·행정학 jwyoo@hanyang.ac.kr

‘묻지마 분권’에 국가경쟁력 흔들, 강박적 균등주의로 제로섬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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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가난해야 세금 더 받는다?

‘묻지마 분권’에 국가경쟁력 흔들, 강박적 균등주의로 제로섬 자초

2004년 12월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회 사무실에 걸린 지방분권 로드맵 추진상황 게시판.

균등주의에 대한 열정은 지방재정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우선 지방교부세를 대폭 확대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내국세 대비 지방교부세 비율이 15%에서 19.25%로 수직상승했다. 지방교부세는 자치단체가 공공 서비스에 소요되는 재원을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자체 재원을 통해 스스로 조달하지 못할 경우 그 부족분을 중앙정부가 메워주는 제도다. 통상 가난한 자치단체는 재정 부족액이 많아 재정부족액이 적게 발생하는 잘사는 자치단체보다 지방교부세를 더 많이 받는다.

이렇듯 지방교부세는 가난한 자치단체의 재정부족액을 보전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이면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유사한 수준의 공공서비스를 향유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생겼다. 그래서 자치단체 간의 재정격차를 줄이고 재정력을 균등화하는 효과가 탁월해 일명 재정균등화교부금(fiscal equalization grant)이라고 불린다. 지방교부세가 크게 확대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자치단체와 지역 균등화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균등주의 구현을 향한 노무현 정부의 노력은 재정보전금 제도 개정과 2008년 시행을 앞둔 서울시 공동재산세 제도에서도 엿보인다. 재정보전금은 광역자치단체가 도세(道稅)인 등록세와 취득세 일부를 도내 기초자치단체에 나눠주는 것으로 2007년 1월부터 재정자립도가 낮은 시·군에 최고 60억원까지 더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서울시 공동재산세 제도는 구세(區稅)이던 종전의 재산세를 특별시분 재산세와 구분 재산세로 분할해 특별시분 재산세는 서울시가 징수한 후 관할 구에 재분배하게 한 것이다.

지방교부세, 재정교부금, 공동재산세는 이처럼 시행주체, 시행대상, 세원에서 성격을 달리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지방재정 조정제도 성격을 띠며 지향하는 목표가 동일하다. 즉 상위정부가 가진 자원의 분배를 통해 자치단체 간의 세원 불균형과 이로 인한 재정력 격차를 줄이는 데 있다. 이러한 노력이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중앙정부, 도, 서울시 등 수준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여정부가 자치단체를 균등화, 평등화하는 데 열정적으로 올인했음을 의미한다. 적어도 지방정책에 관한 한 노무현 정부의 이념성향은 분배, 균등, 형평을 중요시하는 좌파 지향이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분권과 균형의 양립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노무현 정부가 양립하기 어려운 분권과 균형발전을 동시에 추구했다는 것이다. 최소한 분권의 핵심적인 영역인 재정분야에서는 그렇다. 분권과 균형발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대립적이며 갈등적이다. 중앙집권이 동질성(homogeneity)과 획일성(uniformity)을 의미한다면, 분권은 차이(heterogeneity)와 다양성(diversity)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권을 강화할수록 지방정부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양자를 성공적으로 양립시킬 수 있었다. 그 배경은 지방재정 확충 수단으로 지방세 확대 대신 지방교부세 확대를 선택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만약 지방세 확대를 선택했다면 지방세 세원의 지역 간 편재로 인해 자치단체 간의 재정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에는 지방소비세, 지방소득세 신설 등을 통한 지방세 확충을 지방재정 확대의 주요 수단으로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지방 간 재정격차를 심화시킨다는 판단에 따라 이런 접근을 포기했다(그 결과 국세:지방세의 8:2 비율이 재임 기간 중 줄곧 유지됐다).

대신 지방교부세 확대를 통해 지방재정 확충을 꾀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방교부세는 자치단체 간 재정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지방재정권 확대에도 기여한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자치단체의 재정균등화와 재정분권의 확대라는 두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지방교부세라는 묘수를 통해 양립하기 어려운 균형발전과 분권을 조화시키려 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균등주의에 입각한 지방정책을 전개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영국, 프랑스, 일본이 우리와는 반대로 이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도권 집중과 불균형개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그 처방 또한 우리와 유사했다. 입지 규제나 과세 정책(과밀부담금제 등)을 통해 수도권 인구 및 산업 집중을 억제하면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일본은 수도 기능 이전까지 포함)을 통해 수도권의 과밀을 해소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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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한양대 교수·행정학 jwyo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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