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수민족 지역의 도시화는 한족음식을 퍼뜨린다.
그 집에는 모두 여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청년은 이 집의 사위였다. 21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장인, 장모, 아내와 3개월 된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이 집의 유일한 아들은 라마 불교 사원에 들어가 승려 생활을 하고 있어 그가 데릴사위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30여 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의 장모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어눌한 중국어로 우리에게 집을 구경한 값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한 사람당 인민폐 50위안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 청년이 친절을 베푼 것은 결국 우리를 관광객으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됐다. 1인당 한국 돈으로 거의 7000원 돈이니 결코 싸다고 할 수 없었다.
‘샹거리라’와 티베트 사태
이들의 이런 ‘영업력’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원래 이곳은 ‘디칭(迪慶) 티베트 자치주’의 중심 도시인 ‘중뎬(中甸)’이란 곳이다. 그런데 2000년 9월 중국 정부는 이곳을 ‘샹거리라(香格里拉)’로 명칭을 바꿨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1933년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원작으로 한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이 1997년 개봉된 이후 수많은 서양인이 외국인에게 개방된 티베트인 거주지역 ‘샹그리라’를 찾아다녔다. 이곳 중뎬도 주목을 받았다. 그러자 윈난성 간부들과 학자들이 똘똘 뭉쳐 이곳을 마음의 안식처인 ‘샹그리라’라고 규정해 버렸다. 티베트의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의 축소판인 이곳의 간덴 쑴첼링사(Ganden Sumtseling Gompa, 松贊林寺)와 그 주변의 경관이 소설의 배경과 닮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도시 이름마저 ‘샹거리라’라고 바꿨다.
‘중뎬’은 윈난성의 성도(省都)인 쿤밍(昆明)으로부터 비행기로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아스팔트 도로도 뚫려 있다. 인구 1만명도 되지 않던 도시가 갑자기 10만명이 몰려 사는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2005년 이후에는 중국인들의 국내 여행도 붐을 이뤄 샹거리라를 찾는 사람이 연간 150만명에 달했다. 당연히 외국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아 그 해에 10만명을 넘겼다고 한다. 잽싼 지역민들은 이런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변신을 하게 마련이다. 내가 ‘소유차’ 한 잔을 결과적으로 사서 마시게 된 것도 그런 발빠른 지역민 때문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오로지 관광객을 위해 자신의 집을 새로 꾸미고, 관광버스가 마을 앞에 멈추면 사위를 내보내 호객행위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토박이가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샹거리라의 중심 상권은 대부분 한족(漢族)들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관광객을 위한 식당은 그곳이 아무리 티베트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라 해도 자본을 댄 주인은 거의 한족이다. 이런 현실은 티베트인들의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새로 이주한 다수의 한족 상인으로 인해 그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철도가 연결돼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더욱 가까워진 티베트성(西藏省)의 라싸는 이곳 샹거리라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이것이 최근 ‘티베트 사태’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