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살기 좋은 곳 전국 1위’ 서울 노원구의 두 얼굴

교통·환경·교육 저평가 論에 ‘자고나면 억!’ 서민층 엑소더스에 빛 바랜 ‘복지 1번지’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08-05-08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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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망 편리하지만, 도심 출근자에겐 만만찮은 거리
    • “아파트값 올리겠다” 선거 공약 실천한 구청장
    • 학원 밀집한 은행사거리가 아파트값 상승 진원지
    • 8000만원짜리 아파트가 1년여 만에 2억원으로
    • 개발 호재 많은 노원역 주변도 기대감에 들썩
    • 세입자들, 집값 부담에 의정부·양주 일대로 이주 준비
    ‘살기 좋은 곳 전국 1위’ 서울 노원구의 두 얼굴
    2006년 하반기 아파트값 상승을 주도한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와 경기 성남 분당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이 주춤한 사이, 서울 노원구 아파트는 최근 1년 사이 두 배 이상 가격이 오르면서 ‘대박 명당’으로 급부상했다.

    노원구 아파트값 과열 현상이 지속되자, 부동산정보업체들은 4월 들어 한 달 간 아파트 시세 조사를 중단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정부도 노원구 일대 아파트값 폭등세를 잠재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 국세청은 11일 합동 회의를 열고 서울 강북지역 집값 안정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노원구를 중심으로 도봉구와 강북구, 경기 의정부, 양주, 남양주 등 최근 집값이 폭등한 강북 지역을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묶는 방안이 검토됐다.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되면 60㎡ 초과 주택을 사고 팔 경우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세청은 자금조달계획서를 토대로 투기로 의심되는 거래행위에 대해 세무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정부의 이 같은 강력한 단속 의지 표명에도 노원구의 아파트값 고공 행진은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 동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노원구에서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서울 도심까지 1시간 거리



    4월8일 오후 2시. 기자는 서울 서대문구 충청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출발,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노원구청까지 직접 가봤다. 160번 버스를 타고 수유역까지 간 뒤 지하철 4호선으로 갈아타고 노원역까지 가는 데 1시간10분 가량 걸렸다. 평일 낮 시간대라 교통량은 많지 않았지만 잦은 정차와 신호대기 탓에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돌아올 때에는 노원역에서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해 동대문운동장까지 이동한 뒤 5호선으로 갈아타고 충정로역까지 왔다. 이번에는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비록 거리는 멀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서울 도심까지 1시간 내외에 출퇴근이 가능한 셈이다.

    대중교통 대신 승용차로 노원구에서 서울 시내에 들어오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노원구 상계동에서 서대문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김모씨는 “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출퇴근 시간대에는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계동에서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청량리-종로를 거쳐 시내로 진입하는 길이 가장 빠른 코스라고 한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대에는 도로 곳곳에서 병목현상이 빚어져 상습적으로 정체되기 때문에 대중교통보다 나을 게 없다.

    북부간선도로와 내부순환도로를 이용, 홍제 램프를 통해 시내로 진입하는 코스도 있는데, 이곳 역시 교통량이 집중돼 지체되기 일쑤라고 한다. 김씨는 “출퇴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경우는 어떨까. 노원구 중계동에서 역삼동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박모씨는 “지하철 7호선을 이용하면 4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다만 콩나물시루와도 같은 혼잡을 각오해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는 “거의 종점에서 지하철을 타는데도 출퇴근 인구가 워낙 많아 매일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5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는 군자역의 혼잡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살기 좋은 곳 전국 1위’ 서울 노원구의 두 얼굴

    상계 재정비촉진지구 약도.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과 혼잡도 등을 감안하면, 업무시설이 집중돼 있는 서울 도심과 강남 등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게 노원구는 그리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노원구 아파트값이 폭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파트값은 교육과 교통, 주거환경 등 몇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노원구는?

    노원구는 주변 환경에서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북쪽에는 수락산, 동쪽에는 불암산이 자리 잡고 있고, 서쪽으로는 중랑천이 도봉구와 경계를 이루며 길게 흐른다. 또 당현천이 동에서 서로 노원구를 가로질러 중랑천으로 이어진다. 산과 하천이 어우러진 평지에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어 주거 환경은 쾌적한 편이다. 무엇보다 계획도시로 개발된 노원구 전체 주택 가운데 89%가 공동주택 단지인 덕분에 도로가 반듯반듯하게 나 있다.

    주공·영구임대아파트 많아

    서울 도심으로 통하는 대중교통 수단도 잘 갖춰져 있다.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이 X자로 교차하고, 노원구와 인접한 도봉구로 1호선이 지난다. 도로사정도 좋은 편이다. 동부간선도로가 서쪽에 있는 도봉구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 중랑구와의 경계에는 북부간선도로가 지난다. 서울시의 10개년 도시철도계획안(案)에는 왕십리에서 중계동까지의 경전철 신설도 포함돼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개통돼 인천공항까지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

    다만 편리한 대중교통 여건이 갖춰졌음에도 서울 동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탓에 타 지역에 비해 도심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사통팔달의 교통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점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서민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심과 거리는 멀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원구 아파트가 그동안 저평가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민 대중교통 수단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

    노원구 상계동과 중계동 일대에 지어진 주공아파트 중에는 1980년대 중·후반 도심 정비 차원에서 청계천 일대에 거주하던 도시 빈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지어진 것이 많다. 이른바 서민 주택단지로 노원구를 개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의 다른 구에 비해 주공아파트가 유난히 많고, 영구임대아파트 비율도 높은 편이다.

    영구임대아파트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장애인, 노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노원구에 따르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1만941가구 2만1159명에 달하고, 장애인도 지체부자유자(1만2678명)와 시각(2512명), 청각(2614명) 장애인 등 모두 2만5358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외에 최근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새터민도 초기 정착지로 노원구를 선호하고 있다.

    도심과의 먼 거리, 그리고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라는 인식이 겹치면서 2006년까지만 해도 노원구 아파트값은 서울 시내에서 가장 낮았다. 강남에 있는 같은 면적 아파트의 4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전·월세 임대료도 낮아 주로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이 세를 들어 살았다. 자본금이 적은 신혼부부 중에도 신접살림을 노원구에서 시작하는 이가 적지 않다.

    노원역 사거리에서 10여 년 이상 개업의로 활동한 어비뇨기과 어홍선 원장은 “서울 시내에 아직도 허름한 판잣집이 남아 있는 곳은 노원구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부인이 노원구 관내 초등학교 교사로 10여 년을 근무했다는 어 원장은 “아내에 따르면 점심을 굶는 학생 비율이 30% 가까이 될 정도”라고 전했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크다는 얘기다.

    사교육의 힘

    ‘살기 좋은 곳 전국 1위’ 서울 노원구의 두 얼굴

    하늘에서 내려다본 상계 뉴타운 예정지.

    아파트값이 뛰는 가장 큰 이유로 손꼽히는 교육 여건은 어떨까. 노원구청 함대진 홍보팀장은 “노원구 하면 교육특구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고 자랑했다. 함 팀장은 “초·중·고, 대학까지 합해 102개의 학교가 관내에 있다”며 “노원구에 거주하는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은 학생 아니면 교육기관 종사자일 정도로 교육 여건이 잘돼 있다”고 말했다.

    노원구가 ‘교육특구’를 강조하는 것은 학교가 많다는 것 외에도 사(私)교육 시장이 활성화했기 때문이다. 중계본동과 중계1동 경계에 위치한 은행사거리에는 강북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학원가가 형성돼 있다.

    함 팀장은 “은행사거리를 중심으로 남북 150m에 이르는 학원가에 노원구 관내는 물론, 도봉구, 강북구, 성북구, 동대문구 등 인접 구와 경기도 의정부 양주 등지에서도 학생들이 온다”고 말했다.

    노원구 내에서도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중계동 은행사거리 학원가는 역세권에서 한참 벗어나 교통 여건이 불편한 편이다. 그럼에도 이곳이 학원가로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중대형 위주의 민영 아파트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어홍선 원장은 “중계동 은행사거리에는 중대형 민영 아파트가 많아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고 말했다. 어 원장 자신도 2003년까지 은행사거리 인근 대형 평형대 아파트에 살다가 지금은 ‘대전동(대치동에 전세 사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에 합류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노원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물론 인근 의정부와 양주, 포천 등지에서 병원이나 약국, 사업을 하는 사람이 주로 은행사거리 주변에 모여 산다고 한다. 규모가 100㎡ 이상 되는 대형 평형 아파트가 많은 데다, 불암산이 인접해 주변 경관이 수려한 점도 이 지역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한다. 어 원장은 “인천 등지에서 활동하는 고소득 자영업자가 서울 양천구 목동에 많이 모여 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가구가 모여 살다 보니 교육 수요도 노원구의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고, 학원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은행사거리 일대는 자연스레 학원가로 명성을 얻게 됐다.

    노원구 아파트값 폭등을 이끄는 진원지가 바로 은행사거리 주변 아파트다. 노원역에 도착한 뒤 처음 찾은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은 “노원구 아파트값이 많이 올라 취재하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대뜸 “여기는 별로 안 올랐다. 은행사거리 쪽에 가서 알아보라”고 말했다. 중개업소에 앉아 있던 한 중년여성은 “동진아파트 부근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귀띔했다.

    노원구청에서 1142번 버스를 타고 예닐곱 정거장을 가면 은행사거리에 도착한다. 은행사거리 주변은 ‘학원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학원이 밀집해 있다. 거리를 오가는 행인도 대부분 학원을 찾는 학생이었다.

    기자가 은행사거리를 찾은 게 오후 5시가 조금 지나서였는데,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을 실어 나르는 차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도로 양측에는 ‘전농행’ ‘방학행’ ‘의정부행’ ‘양주행’ 등 동대문구와 도봉구, 강북구, 심지어 의정부와 양주까지 인근 지역에서 학생을 실어 나르는 학원 차로 가득했다.

    노원구엔 ‘소치동’이 있다?

    은행사거리 인근 건물에 위치한 ○○부동산을 찾았다. 취재 의도를 설명하자, 중개업소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원구 아파트값 폭등의 문제점을 나열했다. ○○부동산 중개인에 따르면 은행사거리 주변 아파트는 2006년 12월부터 오르기 시작해 매달 1000만~2000만원씩 올랐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2006년 12월까지만 해도 7500만~8500만원에 거래되던 59.4㎡(18평형) 주공아파트가 지금은 2억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호가만 오른 것이 아니라 실제로 2억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계 6단지와 7단지는 18평형의 소형 주택이 대부분이에요. 재작년에 강남 아파트값이 한참 오를 때도 별 변화가 없었는데, 그해 12월부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작년에는 거의 매달 1000만원씩 올랐고, 올 들어서도 계속 올랐어요. (2006년 12월에) 평균 8000만원에 거래되던 것이 지금은 2억원에도 물건이 없어 팔지 못할 지경이에요. 1년 만에 2배 이상 올랐는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오르고 있어요.”

    과외방 성업도 집값 상승 부추겨

    ‘살기 좋은 곳 전국 1위’ 서울 노원구의 두 얼굴

    주민 간 빈부격차가 큰 노원구에는 여전히 판잣집이 남아 있다. 사진은 2002년에 촬영된 노원구 중계본동 판잣집촌.

    중계동 은행사거리에서 불암산 쪽을 바라보고 북서쪽에 위치한 중계 주공 5단지의 아파트 규모는 49.5㎡(15평형)부터 102.3㎡(31평형)까지 다양하다. 제일 작은 49.5㎡가 현재 1억5000만원 선에 거래되고, 59.4㎡는 2억원, 102.3㎡는 5억원을 웃돈다. 1년 사이 작게는 1억원에서 크게는 2억원 이상 뛴 셈이다.

    아래쪽 길 건너에 위치한 건영·청구 아파트 단지는 105.6㎡(32평형) 단일 평형으로 구성돼 있는데, 평균 거래가격이 6억원을 넘는다.

    건영·청구아파트에서 다시 동쪽으로 길을 건너 위치한 대림·벽산아파트는 강남아파트에 맞먹는 수준이다. 132㎡ 이상 40평형대와 50평형대의 아파트가 10억원을 훌쩍 넘어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50평대 아파트 가격은 15억원대로 강남 아파트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 강남구 대치동에 빗대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 주변을 ‘소치동’이라 부르는 것은, 학원이 밀집한 데다 아파트 가격까지 대치동 뺨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림, 벽산아파트 북쪽으로 길 건너에 위치한 동진·신안아파트도 마찬가지. 138.6㎡(42평형대) 아파트가 8억~9억원에 거래된다. 그 위쪽 청구·라이프·신동아아파트 단지도 비슷한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청구·라이프·신동아아파트 단지 외벽에는 ‘경축! 리모델링 추진위 발족’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치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어 아파트값이 더 오를 것임을 자랑하는 듯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은행사거리 주변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주변 오피스텔 가격도 덩달아 꿈틀댄다”고 했다.

    부동산 컨설턴트 봉준호씨는 노원구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것은 규제가 적은 3억원 이하 소형 평형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봉씨는 “3억원 이상 아파트는 LTV(Loan To Value ratio·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Debt To Income ratio·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적용받는 반면, 3억원 이하 소형 아파트는 이 같은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매매가 활발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강남 아파트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가격차가 컸던 것도 노원구 아파트값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중계역 인근 102.3㎡ 이상 민영아파트에 거주하는 송모씨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같은 면적의 강남 아파트와 비교할 때 평당 가격이 4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최근 아파트값 상승에 힘입어 3분의 1 수준으로 회복했다”며 “(아파트 가격이) 적정 수준은 돼야 한다는 주민 여론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현재 강남구 아파트 가격을 100으로 할 경우 노원구 아파트 가격은 32.1% 수준으로 나타났다. 2007년까지 27%에 지나지 않던 것이 최근 폭등세에 힘입어 3분의 1 수준까지 오른 것이다.

    선거 때마다 집값 올랐다

    노원구 아파트 소유주들 사이에 ‘이번 기회에 제값을 받자’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일부에서는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담합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중계역 인근에 위치한 S부동산 중개인은 “집 주인이 너도나도 아파트 값을 올려 내놓은 것도 집값이 오른 이유”라며 “분명히 담합으로 집값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는 것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사거리 인근 아파트값이 폭등한 또다른 요인을 가수요를 발생시키는 ‘과외방’에서 찾기도 했다.

    “은행사거리에는 학원도 많지만 아파트 단지에 과외방도 많습니다. 오피스텔에서 과외를 하려면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한데, 집(아파트)에서는 사업자등록증을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과외를 할 수 있거든요. 학원가 주변 아파트를 매입하거나 세를 얻어 과외하는 강사가 꽤 있는데 과외방은 특히 중계 5·6·7단지에 많습니다. 과외방을 하려고 아파트를 사거나 세를 얻으려는 강사의 가수요 때문에 집값이 더욱 가파르게 뛰는 것 같아요.”

    노원구는 소형 평형의 임대아파트와 노후한 주택이 밀집한 노원·상계역 주변과, 대형마트와 할인점 등 각종 생활편의시설이 밀집한 중계·하계역, 그리고 구시가지 이미지가 남아 있는 월계·공릉역 주변 등 크게 세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노원구에 사는 주민들은 “7호선 중계역에서 하계역으로 이어지는 지역이 가장 살기 좋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여건이 가장 좋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학교도 많고, 각종 생활편의시설이 밀집해 있다는 점에서다.

    그럼에도 노원구 아파트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지역은 은행사거리를 중심으로 한 노원·상계역 주변이다. 학원가 접근성이 높은 데다 상계뉴타운 지정 이후 개발 기대감이 높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와 할인점 등이 밀집해 원스톱서비스가 가능한 중계·하계역 주변 아파트값도 많이 오른 편이다. 2003년 30평형대 아파트가 1억3500만원 정도하던 것이 현재는 4억~5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월계·공릉역의 경우도 서울북부지원 이전 계획 등으로 집값이 다소 올랐지만 상승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개발 호재 전도사들

    1년여 만에 노원구 아파트 가격이 2배 이상 오른 데에는 지방선거와 대선, 총선 등 세 번의 선거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지방선거 당시 현 구청장이 ‘노원구 자산 가치 상승’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구청장에 당선된 직후 실제로 아파트값이 큰 폭으로 뛰었다.

    지난해 대선 직후에도 아파트값은 큰 폭으로 뛰었다. 신도시 개발보다는 도심 재개발과 재건축을 선호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20여 년 된 노후한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노원 지역에 재개발과 재건축 기대 심리가 한껏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4월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들이 ‘뉴타운’과 ‘재개발’ 공약을 앞 다퉈 제시하면서 아파트값이 들썩였다. 4월9일 총선에서 노원구 갑·을·병 세 지역구는 물론 도봉, 강북, 성북구 등 강북벨트에서 한나라당이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당선된 것도 뉴타운 건설 등 개발 기대감과 관계있다. 강남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노원구가 곧 재개발될 것이란 입소문이 삽시간에 아파트 투기 열풍을 일으킨 것이다.

    노원구는 노원역 주변 창동기지와 도봉운전면허시험장을 이전한 뒤 그 자리에 대형 컨벤션센터와 호텔 등을 지을 계획이 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개통에 발맞춰 인천공항의 배후도시로서 자리매김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있다. ‘노원구 자산 가치 상승’을 구정(區政) 목표로 삼고 있는 구청장을 위시해 관련 공무원들도 ‘개발 호재’ 홍보에 열심이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창동기지 이전과 상계뉴타운 등이 완공되면 노원구는 서울 동북부 중심도시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며 “은행사거리 주변 학원가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최근에는 노원역 주변에 하나둘 들어서면서 새로운 학원가가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값 상승이 구청장의 정책 덕택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자산가치가 상승하면 구민의 삶의 질도 덩달아 높아질 거라 믿는 듯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노원구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면서 세입자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소형 평형 세입자의 피해가 크다. 2006년까지만 해도 10평대 소형 아파트는 5000만~6000만원이면 전세로 입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파트값이 2배 이상 뛰면서 전세 가격도 8000만~9000만원으로 뛰어 올랐다.

    은행사거리 인근 ○○부동산 사장은 “돈이 없어 값싼 전세를 찾아 온 사람들이 2년 만에 2000만~3000만원의 전세금을 올려줄 수 있겠느냐”며 “결국 평수를 줄여 이사 가거나, 노원을 떠나 의정부, 양주, 남양주, 심지어 포천으로 이사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집 없는 서민만 죽어난다”

    노원역 주변에서 간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모씨 부부는 “아파트값 올라봐야 집 가진 사람만 좋지, 세 들어 사는 서민은 더 죽어난다”고 푸념했다. 노원구 인접구인 중랑구에 산다는 김씨 부부는 “우리 동네 아파트값도 노원구 영향을 받아 조금씩 오른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차라리 안 오르는 게 낫다”고 말했다.

    2001년쯤 어렵사리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다는 김씨 부부는 “집 한 채 달랑 있는 우리야 집값이 오르든 말든 죽을 때까지 살면 그만이지만,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슬하에 딸, 아들 하나씩 두고 있다는 이 부부는 “재산을 물려줄 형편도 못되는데 집값이 자꾸 오르면 애들이 커서 결혼할 때 어떻게 집을 살 수 있겠느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노원역 사거리에는 L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겉모습은 서울 명동이나 송파에 있는 백화점과 차이가 없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명동과 송파에 위치한 백화점의 경우 유동인구가 많은 1층 사방에 ‘명품코너’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이에 반해 이 백화점에는 한두 군데 빼고는 명품 코너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뿐만 아니라 ‘기획세일’이라는 이름의 할인 매장이 지하1층과 1층에 널따랗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손님도 기획세일 코너에 가장 많았다. 백화점 내부 매장은 비교적 한산했지만, 기획세일 코너 계산대 앞은 손님이 기다랗게 줄지어 서 있어 대조를 이뤘다.

    기획세일 매장에서 만난 한 50대 여성은 “노원구 집값이 왜 이렇게 오르는 것 같으냐”는 물음에 “투기꾼들 돈 놀음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집주인이야 강남에 비해 너무 싸니까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대책 없이 집값만 올리면 벌이가 시원찮은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고 하소연했다. 10월이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기간이 만료된다는 그는 “애들 아빠가 동두천에서 사업을 하는데 의정부나 양주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복지 1번지’ 명성은 옛말

    다른 구에 비해 노원구에는 저소득층과 장애인, 노인 등을 위한 복지시설이 많다. 서민 주거지역이 많고 복지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자연스레 ‘복지 1번지’라는 명성을 얻었다. 서울시 전체로 보면 도시 전체가 슬럼화하는 것을 막는 보루 구실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최근 집값 상승에 견디다 못한 서민이 하나둘씩 노원을 떠날 조짐을 보이면서 ‘복지 노원’의 명성은 이제 옛말이 됐다. 더욱이 관(官) 주도로 문화특구와 교육특구에 매달리다 보니 저소득 계층에 대한 배려가 뒷전으로 밀리는 듯한 인상마저 줬다.

    노원구 아파트값이 급상승하자 이제는 노원구 주민뿐 아니라 서울 다른 구와 수도권 주민까지 치솟는 이곳 아파트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집값 고공 행진은 노원구 아파트에 세 들어 살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파트 값 상승을 계기로 아파트 소유자와 세입자 사이에 위화감만 더욱 커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조사에서 노원구는 전국에서 ‘살기 좋은 곳 1위’로 선정됐다. 7개 분야에 대한 평가에서 복지·문화·주거·기초인프라 4개 부문에서 4점 만점을 받았고, 교육·의료·환경 3개 부문에서 3점을 받았다.

    수려한 자연 경관에 계획도시로 지어져 기초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저소득층과 장애인·노인을 위한 복지시설이 많다는 점이 ‘살기 좋은 곳 1위’라는 영예를 안겨준 셈이다.

    그러나 최근 집값이 큰 폭으로 뛰면서 일부 서민 세입자는 집값 고통을 견디다 못해 ‘탈(脫)노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민 세입자에게 노원구는 더 이상 ‘살기 좋은 곳 1위’가 아니다. ‘살기 좋은 곳 1위’는 이제 집 있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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