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
“통역대학원 있잖아. 통역사 되려면 가야 하는 곳.”
“왜?”
나, 이수영은 멀쩡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한다’ 소리 들으며 상위권 대학 영문과에 진학했고, 빈틈없는 준비와 약간의 운으로 바늘구멍이라는 취업시장도 무난히 뚫었다. 사회생활 첫발을 디딘 곳은 외국계 기업 물류팀.
첫해까진 ‘해피’했다. 새로운 일상이 주는 기쁨과 배워야 할 일더미에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돈 버는 재미와 쓰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송장(送狀) 쓰고 전화 체크하고…. 화석화한 직장생활에 ‘원래 그런 거야’라는 위로도 언제부턴가 와 닿질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단순반복 업무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입사 2년차에 접어들 무렵. 매일아침 눈뜰 때마다 침대 밑으로 푹 꺼져 지구 밖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을 만큼 슬럼프가 심각해졌다. 그리고 오래전 마음속에 접어뒀던 꿈을 꺼내보았다.
동시통역사. 학부 시절 동시통역사 직업설명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직업군별로 성공한 선배들이 와서 직업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나는 이렇게 준비해서 불가능이란 산을 넘었다”는 유의 이야기로 용기를 북돋워주는, 뭐 그런 자리였다. 초등학교 3, 4학년을 미국에서 보냈지만 내 영어실력은 유려하게 구사하기엔 약간 부담스러운 수준. 어려운 주제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비즈니스 영어’ ‘고급영어회화’ 등의 수업을 들어왔다. 그런 내 마음을 잡아끈 건 국제무대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 인사의 소통을 책임지는 그 선배의 모습이었다.
“통역사는 연사가 말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청중, 또는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짧은 시간에 긴 대화 내용의 핵심을 뽑아내 외국어로 표현해야 하지요. 해당 분야 지식이 없으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늘 외국어실력을 되새김질하고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깨어 있는 직업입니다.”
그의 말이 달콤한 설득으로 다가와 ‘콩콩’ 심장을 울렸다. 회사생활과 공부를 병행할 것인가, 공부에 ‘올인’할 것인가. 부모님, 친구는 물론 어학원 강사, 선생 통역사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정말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리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때는 12월. 통역대학원 시험이 있는 내년 11월까지는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STEP2 “언어는 ‘철판’으로 하는 거야”
학원에 갔다. 최다 합격생수를 자랑하는 강남 S어학원이다. 수업을 듣기에 앞서 결정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았다. 어떤 통역대학원(통대)에 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이 ‘투톱’이다. 1979년 국내 최초로 개원한 외대 통대는 그간 한영·한불·한독·한노·한서·한중·한일·한아 8개 학과 1800여 명의 통역사를 배출했다. 두 대학 외에 선문대와 서울외국어대에 통번역대학원이 개설돼 있지만, 규모와 역사에서 아직은 두 대학이 단연 선두를 달린다. 한영과의 경우 매년 15~20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일단 학원 관계자와 상담을 하기로 한다.
“이화여대와 외대 입시 요강이 많이 다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