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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수 신창원 옥중 인터뷰

“6m 담장, 3m 철조망 , CCTV, 적외선감지기, 무장 교도관… 나, 이제 절대 탈옥 못해요”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탈옥수 신창원 옥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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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수 신창원 옥중 인터뷰

신창원이 2006년 가을 보내온 사진. 디스크로 쓰러지기 전 찍은 사진으로 언론에 공개되는 신창원의 가장 근래 모습이다.

상담심리학을 통해 저와 동료들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찾아 함께 치유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공통된 문제 때문에 범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기 때문에 문제점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겁니다. 배움이 짧고 생각이 열리지 않아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동료가 있으면 함께 미래를 설계해보고 싶습니다. 교도관이나 다른 수용자의 말은 듣지 않아도 제겐 마음을 열어줘요. 그래서 마음의 대화가 가능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사랑으로밖에 치유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얼어붙은 가슴은 사랑만이 녹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도 마음이 열려야만 전달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제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게 있습니다. 지난날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살아보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 지금의 현실을 만들고 말았어요. 밑바닥에서 지저분한 옷을 입고 땀을 흘리는 모습이 창피하게 느껴졌던 거죠. 출소해서 일을 하려 해도 이런 이유로 금방 포기하고 쉽게 돈을 벌 생각에 범죄를 저지르곤 했던 겁니다. 우리의 공통된 문제점이지요.

‘상태 심각, 시급한 수술 요함’

우리가 바로 서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이곳 담 안입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추한 모습으로 추락해 있는 지금, 우리의 잘못된 삶을 돌아보며 문제점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잘못된 자존심을 버리고 몸으로 직접 밑바닥 생활을 시작할 수 있거든요. 이곳에서부터 밑바닥 생활을 자청해서 해야 사회에 나가서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땀 흘려 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밑바닥에 들어가 몸부림치듯 살려는 것입니다.”



당시 그는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했고, 동료 재소자들과도 잘 지냈다. 기자가 2004년 청송 제2교도소로 면회를 갔을 때 그의 후견인인 김신웅 장로는 물론 교도관들도 입을 모아 그를 칭찬했다.

그런데 대전교도소로 이송된 지 얼마 후 그의 누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신창원이 너무 힘들어한다며 면회를 가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전교도소는 기자의 면회를 불허했다. 면회신청서 ‘재소자와의 관계’란에 ‘지인’이라고 썼지만 교도소 측은 이미 기자 신분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

신창원은 편지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어 보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대전으로 간 것인데, 학사고시반 편입이 불허됐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가 있는 사동엔 4명만이 수용돼 있는데, 교도관을 살해한 정신질환 사형수, 역시 동료 재소자와 교도관을 폭행한 혐의로 추가재판 중인 정신질환 재소자, 그리고 사동 청소를 하는 재소자와 자신뿐이라고 했다.

종교집회, 자매결연, TV시청 등이 모두 금지된 데다 0.7평(2.31m2) 비좁은 독방에 갇혀 있다 보니 극심한 공황장애를 앓은 모양이었다. 밤마다 꿈에 시체가 나타나고 환상과 환청에 시달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게다가 방이 너무 비좁아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해 퇴행성 척추질환이 심해지고 신경성 소화기능 질환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는 다른 사동, 조금 더 넓은 독방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다른 재소자들과 어울려 숨통이라도 틔게 해달라는 것도 거부당했다. 처음엔 이감돼 왔으니 ‘군기’를 잡으려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3개월, 4개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가 대전교도소 측에 신창원을 그렇게 처우하는 이유를 묻자 “탈옥수였기 때문이다. 우린 규정대로 할 뿐”이라고 답했다.

결국 신창원은 8개월여 만인 2005년 8월, 청송 제2교도소로 다시 이감됐다. 정신적 고통은 사라졌지만 디스크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다시 공부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실제 그는 2006년 4월 지금의 청송교도소로 이감된 후 독학으로 공부해 2007년 3월 치러진 학사고시 1차 시험을 가뿐하게 통과했다.

하지만 시험을 치른 다음날 쓰러져 20여 일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등 허리디스크가 악화됐다. 김신웅 장로에 따르면 “하반신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생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확한 진단을 위해 외부진료기관에서 정밀검사를 받고 싶다”는 신창원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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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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