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한일 북한전문가 긴급 좌담

“北 도발에 무대응하는 게 최선의 전략일 수도”

  • 입력2008-05-08 1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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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석자 : 박두진 일본 코리아국제연구소 소장 손광주 한국 데일리NK 편집인
    • 사회 : 송문홍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 일시 : 2008년 4월10일
    • 장소 : 동아일보 출판국 회의실
    한일 북한전문가 긴급 좌담
    사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부터 개시한 대남 비방과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과거 10년간 이른바 진보정권과 상대해온 북한에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경험일 것입니다. 한편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남측의 보수 정권으로서도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좋을지 현장감각 면에서 일종의 혼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먼저 현 상황에 진단과 평가로 토론을 시작해보지요.

    손광주 먼저, 북한 문제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할 때 오류가 나오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저는 그것을 의사의 의료행위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의사들이 진료할 때 먼저 진단을 내리고 그 다음에 치료합니다. 즉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치료방법이 나오고, 그 다음에 사후관리 방법이 나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북한 문제도 첫 진단이 중요합니다. 지난 햇볕정책이 바로 그런 것이었어요. 햇볕정책은 북한이라는 환자를 진단하면서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와 주변국이 도와주면 개혁개방으로 나아간다’는 식으로 진단했습니다. 물론 시장경제주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체제는 봉건주의에 군사우선주의 수령체제가 기본 특징입니다. 시장경제주의 관점에서는 이런 본질이 안 보이게 돼 있습니다. 결국 북한은 햇볕정책을 역이용하면서 핵실험국으로 가버렸습니다. 의료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보기에 김정일 체체는 ‘암(癌)’인데 햇볕정책은 ‘물혹’ 정도로 진단했어요. 명백한 오진(誤診)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북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 점에서 먼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 북한이 왜 저렇게 나오는가, 이 부분에 대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개성공단 경협사무소 남측 직원 추방에서 시작된 일련의 북한 도발을 직역(直譯)해보면, 김정일은 한마디로 지난 10년간 햇볕정책처럼 앞으로도 남한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계속 잘해주면 좋겠다는 겁니다. 남한이 말 잘 듣고 착실하게 경제지원 해주면 제일 좋은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것이 잘 안될 것 같으니까 처음부터 길을 좀 들여놓겠다는 얘깁니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의 대남관계는 대미관계, 대중관계의 종속변수입니다. 김정일 처지에서 보면 ‘지난 10년간 남측의 대북지원은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일종의 평화세금 비슷한 것인데, (이명박 정부) 너희가 건방지게 대북정책을 새롭게 만들어가겠다? 그게 말이 되는지 두고 보자’는 식입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길들이기를 하면서 대중, 대미관계에 무게중심을 두려 할 것입니다.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을 하는 것인데, 자신들이 미국하고만 계속 대화하다 보면 남한은 언젠가는 내부 사정 때문에, 다시 말해 남한 여론이 분열되면서 견디다 못해 스스로 북한에 노크를 해오지 않겠느냐는 것이 김정일의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남한을 계속 집적거리면서 미국과 대화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김정일 誤算’ 되풀이



    박두진 제가 보기에도 북한의 정책은 항상 대미, 대일, 대남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가면서 자기 약점을 보충하는, 그런 전략적 자세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0년간은 북한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았지 않습니까.

    손광주 그렇지요. 특히 대남관계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잡았죠.

    박두진 말씀대로 주도권을 잡는 상황이 계속돼야 북한의 전략이 성립되거든요. 이런 흐름이 이명박 정권의 출현으로 끊긴 겁니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도 이 점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은데, 흐름이 달라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축구도 그렇잖아요? 공세에서 어떤 계기로 인해 수세로 몰리면 얼마나 피곤해집니까. 더욱이 이번 남한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면 또 모르겠는데, 500만표 이상의 차이로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변화의 바람이 그만큼 셌다는 겁니다. 김정일도 이 같은 흐름을 보면서 남한 내부를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한일 북한전문가 긴급 좌담

    <b>朴斗鎭</b> 1941년 일본 오사카 출생. 1962년 일본 내 조총련계인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1968~75년 같은 대학에서 정치경제학부 교수를 지냈다. 조총련 활동을 통해 북한체제의 모순을 세밀하게 관찰해온 그는 1970년대 후반 사상전향 후 김일성·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현재 일본의 북한전문가 집단에서 북한 및 조총련 문제와 관련, 가장 정확한 분석을 내놓는 인물로 꼽힌다

    이건 추측이지만, 북한 통일전선부에 숙청이 있었다는 둥 최근 북한 내부 소식도 그동안 대남정세를 너무 달콤하게만 분석한 게 아니냐 하는 반성이 그 배경에 있다고 봅니다. 제가 한때 조총련에 몸담았기 때문에 잘 아는데, 저쪽 조직은 어찌 됐건 윗사람(김정일)이 좋아할 만한 보고만 올립니다. 그러니까 남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장군님, 괜찮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나서봤자 우리가 다뤄나갈 수 있습니다’는 식으로 보고를 올리지 않았겠느냐, 그런데 나중에 가만히 보니까 이건 햇볕정책의 계승이 아니지 않으냐, 이렇게 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손 선생 말씀대로 지난 10년간 고생해서 구축한 구도가 무너지게 되거든요. 그간 북한의 전략이 미국과 한국, 미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 사이를 깨고 분열시키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북한은 아직 달라진 상황에 대한 대응책이 없어요. 내가 특히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북한은 남한의 민심(民心)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측근들도 우리가 협박하면 달라지겠지, 단순히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번 총선 결과를 보세요. 민심은 이제 햇볕정책 그만하자는 것 아닙니까.

    2002년에 고이즈미 전 총리가 평양에 갔습니다. 그때 김정일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사과하면 북·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지고 100억달러의 돈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해서 사과를 했거든요. 그런데 김정일이 몰랐던 것은, 바로 그 사과가 일본의 민심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았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김정일 자신이 민심을 만들지만, 민주국가는 대중이 민심을 만드니까. 김정일의 오산이 이번에도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싶어요.

    ‘평화세금 내놔라’ 공갈

    사회 지금이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의 과오를 바로잡고 판을 새롭게 구성할 기회라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현 시점의 북한이라는 상대를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 짚어봐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손광주 각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지난 10년간 북한의 대남전략을 보충 설명하는 역사적 사례로서, 10~11세기 잉글랜드의 소위 데인겔트(Danegeld)라는 ‘평화세금’을 들 수 있습니다. 데인(Dane)은 덴마크, 겔트(geld)는 돈(gold)이라는 뜻인데요. 당시 덴마크 주변 해역과 발틱해 쪽의 바이킹들이 잉글랜드 해안을 계속 침략해 식량과 젊은 여성들을 약탈하면서 생존했습니다. 그런 약탈이 일상화하니까 나중에 잉글랜드는 바이킹들에게 “전쟁을 하면 너희도 피해를 보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가 세금을 거둬서 너희에게 줄 테니까 전쟁하지 말자”고 제의했습니다. 그것이 ‘이상한 평화세금’의 역사적 사례로 인용되는 데인겔트입니다.

    2006년 5·31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북한 선전당국이 무슨 논리를 내놓았느냐 하면, ‘우리의 선군(先軍)정치가 남한을 미국의 위협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있으니 남한이 안전하게 경제활동을 해서 돈을 벌고 있다. 그러니 평화를 위해 우리를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데인겔트’를 내라는 소리예요. 2006년 남한에 온 권민웅(내각 참사)도 그와 비슷한 소리를 했고, 바로 얼마 전인 4월2일에도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장인 안경호가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안경호는 오래된 대남 전문가인데, “IMF 외환위기 때 한국에서 외국자본이 확 빠져나가지 않았느냐. 한반도에 평화가 깨지면 외국투자를 잃는다. 우리가 그런 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니까 돈을 내라”는 겁니다. 최근 북한의 대남, 대미관계가 복잡해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 아주 단순하게 압축하면 북한이 남한 길들이기를 통해 ‘한반도 평화유지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으니, 남한은 대북지원을 계속하면서 평화유지(?)에 기여해라’는 소리입니다.

    박두진 앞서도 얘기가 나왔듯이 햇볕정책은 전제가 틀렸습니다.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는 햇볕정책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끈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무언가 시장경제의 단서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게 됐나요? 사실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한 것은 남북 경제협력이 아니라 중조(中朝) 국경무역입니다. 북한 청소년들이 즐겨 본다는 남한의 드라마 CD도 휴전선이 아니라 중·조 국경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한일 북한전문가 긴급 좌담

    <b>孫光柱</b> 1957년 대구 출생. 고려대를 졸업하고 1996년까지 동아일보 ‘신동아’ ‘뉴스플러스’(현 ‘주간동아’)기자로 일했다. 그 후 국가정보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이념연구센터장을 지냈다. 전 북한노동당 황장엽 비서로부터 북한체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전수받았고, 현재 한일 양국에서 북한 연구의 ‘현장 교과서’로 통하는 ‘김정일 리포트’ 등의 책을 냈다.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 외교안보통일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햇볕정책, 전제가 틀렸다

    시장경제는, 시작은 자연발생적이지만 크게 되려면 법, 제도 밑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에선 중조 국경무역이라는 법, 제도가 없는 토대에서 시장경제의 미약한 싹이 트고 있는데, 이건 자칫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겁니다.

    어찌 됐건 햇볕정책은 그런 싹조차 만들지 않았다는 거죠.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저쪽이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개혁개방 안 한다. 그런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마라’고 했잖아요. 이렇게까지 된 데다가 앞에서 말한 ‘선군정치로 남한이 안전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만들어낸 겁니다.

    손광주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북한체제는 김정일의 지시·말씀대로 움직이는 사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북한을 진단하면서, 김정일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을 동심원을 그려가면서 설명한다면, 동심원의 맨 안쪽, 그러니까 김정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저는 그것을 ‘정권유지 비용 확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문제이지요.

    둘째, 일정 수준의 식량 확보입니다. 제가 ‘일정 수준’이라고 표현한 것은, 김정일은 식량 문제도 완전한 자급자족까지는 원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먹고 남을 정도로 식량이 풍족해지면 인민들이 딴생각을 하게 된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셋째가 김정일 처지에서 장마당 확대 현상 등 비(非)사회주의 현상을 막는 일이 급합니다. 장마당을 통해 외부 정보, 특히 중국과 남한 정보가 들어오는 현상을 막기 위해 이른바 ‘비사회주의 검열 그루빠(‘group’의 러시아어 표기)’를 본격 투입한 게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49세 이하 여성은 장마당에서 장사 못 한다고 공표했지요. 이런 식으로 장마당을 쥐었다 약간 풀어줬다 합니다. 만약 북한에서 식량, 인프라, 에너지, 대외 경화결제 등이 원활해지면 김정일은 틀림없이 통제경제를 복원하려 시도할 것입니다.

    넷째가 대외전략인데, 그 첫 번째가 핵 문제입니다. 김정일의 장기적인 핵 전략은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거예요. 다시 말해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는 것이 목적인데, 현실적으로 그것이 관철될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이것은 김정일의 욕망입니다.

    그런 점에서 핵 신고에서 미·북이 합의한다 해도, 거기에 기왕에 만들어놓은 핵무기 수는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플루토늄과 관련된 내용은 공개문서로 밝히고, 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과 시리아와의 핵협력 문제는 비공개 문서에 담기로 했는데, 여기서 이미 제조한 핵무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북한은 이미 만들어놓은 핵무기는 ‘미·북 간 핵군축 문제’라고 주장해왔고, 여기에서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대외전략의 두 번째 과제는 6자회담입니다.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로서는 9·19, 2·13 프로세스를 거치는 최종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인데, 북한에 6자회담은 한미일중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아내고 중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시키는 동력입니다. 중국을 의장국으로 계속 밀어주어 외교적 혜택은 중국이 얻고, 경제적 혜택은 자기들이 보겠다는 건데, 그런 점에서 북한이 6자회담 자체를 깨뜨리지는 않을 겁니다.

    김정일과 ‘김정힐’

    박두진 저 역시 김정일의 모든 행동의 동기랄까 배경에는 정권유지라는 근본적인 목표가 있다고 봅니다. 이게 김일성 시대와도 다른 점입니다. 김일성 시절엔 설령 그게 망상이라고 해도 한반도를 통일해서 영웅적인 인물로 남겠다고 하는 욕망이 컸거든요.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 들어오면서, 특히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망한 이후에 북한의 대남전략도 정권을 지키는 쪽으로 변화했습니다. 북한 처지에서 가장 안전한 것은 남한까지 자기 지배하에 놓을 때일 겁니다. 반면 남북대립 관계가 지속되는 한 북한은 항상 불안정합니다. 한국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한반도를 장악할 때, 거기에 더해 핵무기 하나 갖고 있으면 북한 정권은 안정권에 들어간다는 거지요.

    한일 북한전문가 긴급 좌담
    그런 점에서 김일성 시대 때는 ‘전쟁도 할 수 있다’고 하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김일성이 1974년에 중국에 가서 ‘(전쟁 하면) 우리에게 없어지는 것은 38선뿐이다’라고 하는 연설까지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국에서 그것을 저지했지요. 그후 북한이 전쟁을 통해 한국을 장악할 기회는 거의 없어졌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등장한 게 연방제입니다. 연방제를 통해 한국 인구의 절반을 자기가 쥐게 되면 전체로 봐서 거꾸로 2대 1이 되니까 선거를 해도 북한이 이길 수 있다, 그게 안 될 경우엔 -이건 황장엽 선생도 말했지만-100만명쯤의 청년에게 총을 쥐어줘서 남측에 보내면 후방을 혼란시키고 한미군사작전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던 거지요. 이것이 김정일 시대에 와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희한한 구호로 등장했습니다. 아무튼 저는 정권유지 목표와 연방제는 그런 점에서 일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이와 같은 10년간의 대남전략이 끊어지게 됐다는 겁니다. 지난해 10월4일 공동성명을 읽어보면 연방제로 갈 수도 있는 정황이 있습니다. 만약 햇볕정책이 계속됐다면 위태로운 상태에 빠질 만한 군사적 조치 등의 내용도 담겨 있어요.

    6자회담에 대해 한마디 덧붙인다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이 과연 한국과 일본 등 관련국이 원하는 쪽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본 일각에서는 힐 차관보를 김정‘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회 왜 그렇지요?

    박두진 김정일 쪽에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이끌어가니까…(웃음). 얼마 전 우리가 심포지엄을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김영진 교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어요. 지난 2월 미국에서 외교 문제 공청회가 열려서 힐 차관보가 핵 신고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힐의 대답 중에 북한 때문에 핵 신고가 늦어지고 있다는 표현은 없고 ‘우리(we)’라는 단어를 써서 엄청 당했다는 거예요. 북한이 아니라 ‘우리’에 의해서 늦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또 핵 신고 내용에 핵무기까지 포함돼 있느냐는 질문에도 힐은 ‘그건 북한과 논의해봐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일각에는 김정‘힐’이 위험하다, 그러니까 힐이 5월쯤 퇴임한다고 하니 그 사이에는 교섭이 진행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사회 지금까지 두 분이 현 북한체제의 작동원리, 김정일 위원장의 모든 행동의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은 정권유지다, 이렇게 큰 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2008년 현 상황은 북한의 처지에서 예전보다 나아졌느냐, 아니면 더 나빠졌느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식량난이나 체제이완 조짐은 더 나빠진 상황으로 볼 만한 여건들이고, 반대로 북·미 협상 과정을 보면 북한에 유리하다고 볼 측면도 있거든요.

    돈줄은 남한뿐?

    손광주 그 문제를 바라볼 때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관심을 갖는 포인트는 역시 김정일이 정권유지 비용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입니다. 그러니까 현금과 에너지, 식량 다 포함해서 정권유지 비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1년간 곡물 확보량이 360만t 이하로 떨어지면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김일성이 생전에 “우리는 하루에 식량이 1만t 정도 들어간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년이면 365만t입니다. 그 이상이면 아사자는 나오기 어렵습니다. 만약 아사자가 나온다면 분배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대북 식량지원은 ‘어느 정도를 주느냐’보다 ‘얼마나 잘 분배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다음은 달러 현금 확보인데, 먼저 김정일 주변에 포진한 당과 군의 200명 정도의 최측근 그룹을 관리하는 데 비용이 필요합니다. 또 노동당을 작동시켜야 하고, 보위부와 보안성의 인력을 현 수준에서 유지해야 합니다. 물론 가장 큰 비용은 군대유지 비용입니다. 하지만 북한군의 하급부대들은 거의 자체 공급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북한최고인민회의 예산은 대략 20억 달러쯤 됩니다. 하지만 이건 바깥으로 드러난 공개비용일 뿐이고, 군대유지 비용도 최소한만 포함돼 있을 겁니다. 무기 밀매로 벌어들이는 돈이 빠져 있는 건 당연하고요. 북한이 공식 예산 외에 가외로 버는 돈으로는 지금까지 연간 5억달러 상당의 미사일 판매와 마약·위폐·위조담배 등 불법수출이 있었습니다. 그 규모가 전체 수출의 35~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한일 북한전문가 긴급 좌담

    남북 경색이 심화된 가운데 3월27일 개성 관광을 마친 관광객들이 남북 출입사무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그런데 현재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등으로 인해 미사일 밀매가 여의치 않고, 2005년 9월 방코델타아시아 사건 등으로 불법적인 돈줄이 막혀버렸어요. 미국은 이때 동결한 2400만달러 계좌를 2007년에 풀어줬지만, 북한의 해외 불법자금 유통경로를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김정일로서는 현금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김정일은 현금 확보를 위해 남한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시내관광을 하는 개성관광까지 문을 연 겁니다.

    사회 남측으로부터 해마다 5억달러 정도는 받아내야 되는데 그게 여의치 않아졌다, 이 얘기지요?

    손광주 김정일로서야 남측으로부터 그 정도의 ‘데인겔트’를 받아낼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지요(웃음). 과거 DJ 시절에 정상회담 대가로 받은 게 현금만 4억5000만달러였잖아요. 이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건국한 이래 ‘단일 무역’(?)으로 벌어들인 가장 큰 돈일 것입니다. 하루 이틀 만에 그 정도 거금이 한꺼번에 입금된 경우는 없어요.

    그런데 그 뒤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으로 계속 돈줄이 죄니까 급기야 ‘아리랑’ 공연까지 외부에 팔아먹은 겁니다. ‘미국놈 때려잡자’면서 미국인에게 ‘아리랑’ 공연 관람 오라고 홍보했습니다. 통치자금을 만들어내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아무튼 김정일이 핵무기를 공갈포로 해서 현금을 확보하는 데 미국을 협박할 수 있겠어요, 중국을 협박하겠어요. 일본은 또 납치자 문제로 식민지 배상금 받아내려면 부지하세월입니다. 결국은 남한이 협박 대상인데, 김정일의 이러한 생각을 우리 정부가 정확히 알고 대처해야 합니다.

    박두진 일본에서는 ‘납치자 무사귀환 서명운동’에 사인한 사람이 600만명입니다. 이건 어느 정치가도 건드릴 수 없는 거예요. 다시 말해 일본에서 납치자 문제는 정치가 건드릴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한·미·일의 진심

    김정일은 전술가이지만 전략가는 아니라고 봐요. 전술에서 이기려고 하니까 전략적으로는 늘 지고 있어요. 지난 10년을 돌아봅시다. 김정일이 전진했습니까? 아니지요. 오히려 후퇴했습니다. 이제 쓸 수 있는 카드도 거의 없어요. 1994년 무렵만 해도 미국은 북한 내부 사정을 잘 몰랐습니다. 핵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에선 전략을 세우기가 어렵거든요. 그런 모호한 상태에서 북한은 협상에서 이겼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미사일 카드, 핵실험 카드까지 다 나온 마당에 북한에 무슨 카드가 있습니까.

    내가 얼마 전 ‘일본경제신문’ 인터뷰에서도 얘기했지만, 북한이 붕괴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격동적인 사태가 일어나면서 붕괴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변국들이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사실 이게 문제입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북한 핵 덕분에 얼마나 큰 장사를 했습니까? MD(미사일 방어체제)를 팔고, 일본에 그 비싼 이지스함을 몇 대나 팔았지 않습니까. 한국에 대해서도 지난번에 무슨 사령관이라는 사람이 MD 체제를 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회 한국도 PSI에 동참하고 MD체제에 가입하라는 게 미국의 은근한 바람이지요.

    박두진 미국에 또 한 가지 이득은 중국을 향해 ‘우리가 기지 배치를 바꾸는 것은 북한을 겨냥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중국에 구실을 안 주는 겁니다.

    일본은 또 어떻습니까. 일본에서 지금 헌법개정 문제가 조금 시들해졌지만 아베 정권 시기에 전후 50년 이상 건드리지 못했던 헌법개정 문제가 공공연히 제기된 것은 다 김정일 덕분 아닙니까. 다시 말해 일본이 말하는 보통국가로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은 김정일이 마련해줬다는 겁니다. 그렇게 고마운(?) 북한 정권을 어떻게 무너뜨리겠어요?

    한국은 조금 달라요. 한국의 햇볕정권은 심하게 말해 김정일 덕분에 정권을 유지한 정권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선군정치로 남한을 지켜줬다고 주장하는 것은 햇볕정권에 대해서는 조금 말이 되는 면도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김정일과 이렇게 친하다’라는 것을 정치적으로 선전할 수 있었다는 게 포인트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김정일을 만났다는 것이 일종의 자신의 정치적 격(格)을 올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풍조도 있었잖아요.

    그 외에 한국은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거였지요. 그런데 사실 황장엽 선생도 이야기했지만, 김정일은 겁이 많아 절대로 전쟁 같은 것은 못할 사람입니다.

    北이 시끄러워진 이유

    한일 북한전문가 긴급 좌담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김하중 통일부 장관(오른쪽), 홍양호 차관(뒤), 김병국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왼쪽)과 회의실로 들어가는 이명박 대통령.

    사회 기왕에 거기까지 얘기가 나왔으니까 한마디 덧붙인다면, 최근 들어 일각에서는 북한 위기론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예로 얼마 전 중국이 북중 간 중국 인민폐 결제를 허용했어요. 이건 중국이 북한지역을 ‘동북 4성화(省化)’하려고 한다는 데까지 논리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함의를 갖는 일입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이런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긴박감이랄까, 위기감을 가졌기에 최근 북·미 협상에서 상당 부분 양보한 것 아니냐, 이런 분석이 있습니다.

    박두진 타당성이 있는 분석입니다.

    사회 그런 분석의 배경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정상회담 첫날의 모습을 보면서 가졌던 ‘저 사람이 과연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맞물려서 ‘이제 북한의 체제 피로 현상이 한계치까지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박두진 그런 모든 점을 볼 때 김정일 정권은 이제 끝나가는 정권이라고 봐요. 아니, 이미 끝난 정권을 주변 나라들이 생명유지 장치를 붙여줘가면서 억지로 살리고 있는 겁니다. 이 부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손광주 박 선생 말씀대로 김정일이 전술적 유형은 맞는데 전략적 유형은 못 된다, 이건 정확한 사실입니다. 지금 북한이 살길은 개방뿐인데, 개방하면 정권이 무너지니까 딜레마에 빠지는 거지요. 현재 김정일 정권은 기업으로 치면 망해가는 중소기업이 3부 이자 주고 돈 빌리는 상황과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군사력으로 자꾸 시위하려고 하는 겁니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대남전략에서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어요. 미사일 실험을 해도 그냥 했고, 서해 도발도 먼저 대놓고 떠들지는 않았습니다. 조용히 치고 빠지는 식이었습니다. 근데 요즘은 ‘우리가 곧 때린다, 너희들 전쟁 할래?’ 식입니다. 핵실험을 할 때는 1년8개월 전에 외무성이 핵보유 선언부터 먼저 했습니다. 사실 핵실험은 은밀하게 치르는 것이 상대에게 더 큰 위협이 됩니다. 그걸 미리 공표한다는 것은 북한체제가 말 그대로 빈 깡통이 됐다는 얘기지요.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할 때 조심해야

    박두진 그걸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런 예도 있습니다. 제가 일본 조총련에서 활동할 때를 보면, 김일성 시대만 해도 북한 내부 정보를 잘 입수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는 심지어 북한에 사는 남녀 숫자까지 모두 개방됐거든요. 여기서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을 지킬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또 다른 예로 미국은 지난 10년에 걸쳐 김정일이 현지 지도하는 곳과 별장을 모두 추적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현지지도는 반드시 별장이 있는 지역에서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해요. 미국이 이런 것까지 전부 추적해서 포착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회 이제 북한 처지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 대외전략에 대해 한 말씀씩 보태주시지요.

    손광주 현재 상황을 보면 북한은 일정 기간 통미(通美), 통중(通中)하면서 봉남(封南)하는 것이 남한도 길들이고 나중에 경제지원을 받더라도, 남한 스스로 알아서 지원하도록 하는 길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미국과의 관계를 모양새 좋게 이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해제를 받고 적성국교역법 굴레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미국과의 해빙 무드를 이어가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지난해 2·13 합의와 김계관의 미국 방문 직후 떠들썩했던 미북 수교론이나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관한 이야기까지 진전되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햇볕파들의 ‘자기 망상’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으로선 핵 신고 및 핵시설 불능화 다음 단계는 검증단계라고 생각할 겁니다. 검증단계만 해도 꽤 오래 걸릴 것이고, 핵 폐기 3단계는 새 정권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핵 신고 대가로 50만t 식량지원을 얻어내면 남한 일각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햇볕파들이 ‘그것 봐라, 북한과 대화하고 지원하면 핵 문제가 빨리 풀린다. 북한의 통미봉남을 적어도 통미통남으로 돌려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면 김정일의 대남 ‘평화세금 징수’가 더욱 용이해지고, 무엇보다 남한 내부에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이 시험대에 오를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회 일본 측 전문가들 중에는 지난 몇 해 동안 일본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이가 꽤 있었지요?

    박두진 일본에 가장 큰 현안은 역시 납치자 문제입니다. 사실 이 문제가 이렇게 커지리라곤 일본 정치가들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앞서 말한 대로 2002년 김정일의 납치 문제 사과를 계기로 600만명이 서명할 정도로 커진 겁니다. 그전까지 일본 국민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란 게 유치원생 수준에 불과했거든요. 일부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도 어느 정도 있었고 ‘북한도 사람이 사는 나란데 설마 그 정도까지야…’하는 생각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는 지난 10년 한국도 비슷했지요. 그런데 김정일의 사과를 계기로 납치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일본의 대북관계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른바 ‘무오류의 존재’인 장군님이 사과하는 광경을 접하면서 조총련 조직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과거에는 일본 내에서 북한에 유리한 여론 조작이라든지, 뒷돈을 주고 정치인들을 배후조종하는 역할을 조총련이 다 맡아서 했는데, 김정일의 사과 이후에 거의 궤멸적인 타격을 받아서 세력이 크게 위축됐어요. 지금은 어린애까지 다 포함해 4만명이 될까 말까 한 수준입니다.

    반대로 일본 내에서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일군의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처지가 아주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북한을 안정시키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정책이다, 이렇게 주장해왔는데, 한국의 새 정권이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가니까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습니다. 김정일 정권이 일본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기가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된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도 지금 중요한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선거를 통해 햇볕정책 지지파들이 무너졌지만, 일본의 햇볕정책 지지파들도 이젠 오류를 인정해야 합니다.

    ‘적당한 절충주의’ 경계해야

    손광주 지난 10년간 북측에 빼앗긴 남북관계의 주도적 지위를 이명박 정부가 되찾아와야 합니다. 한국이 을(乙)에서 갑(甲)의 위치로 옮겨가려면 능동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꿋꿋하게 펼쳐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실용주의는 절충주의, 기능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지식인들은 김정일 정권을 약화시키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몰아가는 적극적 평화건설보다 ‘현존 평화유지 상태’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이것을 ‘평화’라고 착각했습니다. 또 절충주의를 제대로 된 ‘중도주의’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 국제관계에서 무엇이 우리의 근본이익인지를 가르는 기준을 정확히 세우고, 손익관계를 계산하는 실용주의가 필요합니다. 남북관계에서 적당한 절충주의는 실용주의가 아닙니다. 하지만 햇볕파들이 지난 10년간 오류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의 주장을 변색하거나 또는 계속 밀어붙일 수도 있습니다. 남한 내부의 정확한 여론 조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 이제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 이산가족,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 사안별로 살펴볼 차례인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남북 간에 경색국면이 계속될 경우 이런 현안들이 모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으로서도 전쟁은 곧 체제붕괴를 의미하기에 대남 압박 수위를 나름대로 세심하게 조율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공세에 대해 어느 정도 수위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박두진 먼저 북한의 정책수립 능력이 상당 부분 저하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어요. 과거에는 북한이 어떤 도발이나 위협행위를 하면 상대는 그 배경에 뭐가 있는지 몰라 대응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그렇거든요. 그런 점에서 북한의 어떤 행동에 대해 그것을 아예 무시하는 것도 좋은 대응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에 지금 남아 있는 카드는 ‘말’뿐입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이미 다 써버렸어요. 그러니까 북한이 말로 하는 협박을 과대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손광주 동의합니다. 핵실험을 함으로써 북한이 갖고 있는 최대치의 카드는 이미 다 내보였습니다. 더 숨겨둔 게 없어요. 앞으로 북한이 보일 행태도 과거에 해오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서해북방한계선(NLL)에서의 일정 수준의 도발, 휴전선에서의 일정 수준의 총격 등등입니다. 1999년엔가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을 억류한 사건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가 화들짝 놀라서 호들갑스럽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얘깁니다.

    박두진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을 통해 오로지 한 가지 방법, 다시 말해 협박을 해서 성공하는 법 외에는 배운 게 없어요. 그동안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선에 투입된 중견 간부들도 이런 수단 외에 다른 건 모르는 세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최근 달라진 대남환경을 되돌리겠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협박 외에는 없을 거란 말입니다.

    남측은 북한의 그런 대남 전략을 과대 평가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사실 주도권이 남측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잖아요. 저는 이산가족 문제에도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강산에서 한번 하면 다음엔 강원도에서 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제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일이 대응하지 말라

    손광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가 중요한데, 이 문제는 과거 동·서독 사례를 원용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서독은 동방정책을 하면서도 인권 문제는 끝내 양보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프라이카우프’라고 해서 돈을 주고 동독 정치범을 데려오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민간 베이스에서 이 일을 수행했고 또 돈 대신 현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서독의 제조업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었어요. 우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여론입니다. 대국민 홍보 등 사전 작업이 필요해요.

    이산가족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물론 어려운 과제이지만 돈만으로 해결해선 안 되는 문제라고 봅니다. 인권 문제로서 어떻게 부각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얼마 전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이런 식으로 국제여론을 적극적으로 조성해나가야 해요. 동시에 북한에 대해서는 보상도 제의하는 식으로 압력과 대화를 병행해야겠지요.

    사회 이제 오늘 대담의 결론을 내야 할 시간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한 말씀씩 해주시지요.

    손광주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북한을 정상국가로 변화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해요. 예컨대 9·19, 2·13 합의 같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도 북한에 이익이 돌아가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손해 본 일이 별로 없었어요. 유엔 제재를 했지만 한국과 중국이 북한을 도와줬잖아요.

    박 선생도 말씀하셨지만 북한이 남한의 새 정부를 시험하려 들 때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무시해버리는 게 좋아요. 또 대통령이 어떤 남북 현안에 대해 직접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방부에서 대응할 것은 국방부가 하고, 통일부에서 대응할 사안은 통일부가 하는 식으로 해야 합니다. 또 이제는 상대방과 격을 맞추는 게 필요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 우리 측 통일부 장관이 북측의 권호웅 내각참사와 상대했는데, 내각참사는 통일전선부 안에서 헤드 테이블에도 앉지 못하는 지위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수치스러운 일은 다시 없어야 하겠다는 겁니다.

    1990년대 초 1차 핵위기 때부터 북한의 목표는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켜서 경제지원을 얻어내는 것이었어요. 이 악순환을 막으려면 김정일이 북한 내부의 일을 수습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신경을 쓸 수밖에 없도록 하는 전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설적으로 하면 국정원이 지난 10년간 손 놓고 있던 ‘B 트랙’의 대북 오퍼레이션(operation)입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정권에 대한 기본 인식을 확실하게 바로잡는 일입니다. 북한 체제의 특징은 봉건적 수령절대주의, 군사폭력주의에 있어요. 사회주의적 요소는 잔영만 있는 정도입니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측면이 조폭적 행태예요. 조폭은 학식 높은 사람을 절대 존경 안 합니다. 조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 상대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미 군사동맹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김정일이 피부에 와 닿도록 느끼게 해야 합니다. 전쟁을 하자는 뜻이 아니라, 이런 메시지를 강력하게 던져줄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력 활용 역시 중요합니다.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과 돈, 이 두 가지를 잘 배합해 활용해야 한다는 거죠.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이 토대를 닦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이 주도하는 정책

    박두진 북한을 외부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지난 10년의 결론입니다. 더욱이 북한체제는 외부에서 압력을 가하면 내부적으로 더욱 단단하게 뭉치는, 이런 구조를 보여왔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북한 주변국들도 제각각 나름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외부의 힘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저는 봅니다.

    그렇다면 내부에서 바뀌어야 하는데, 북한 주민의 의식수준을 보면 아직은 기대하기 어려워요. 결국 북한 내부에서 변화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주체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주도의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거 노무현 정권은 이것을 ‘우리 민족끼리’로 했기 때문에 국제관계에서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명박 새 정부가 ‘외교안보의 틀 속에서 남북관계를 다루겠다’고 한 것을 아주 적절한 자세라고 평가합니다. 이럴 때 주변국에 대해서도 우리의 주장을 주도적으로 개진하고 관철할 여지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사회 긴 시간, 좋은 말씀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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