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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 김갑수│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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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턴테이블의 ‘명기’ EMT927F.

남이 쓰던 턴테이블을 구해왔을 때 기가 막히지 않은 적이 없다. 거의 대부분 조정이 틀어져 있는 것이다. 턴테이블은 미세조정의 산물이라 과거에 어떻게 다루어졌느냐에 따라 소리가 천양지차다. 오버행(overhang), 톤암 높이, 레터럴 각, 트래킹 포스, 안티 스케이팅 등. 정밀한 조정을 하면 LP에서 잡음이 나기란 힘든 법인데, 대개 얼렁뚱땅 대충 나사를 조여 소리를 낸다. 그러면서 위안으로 하는 말이 “LP란 잡음 듣는 맛이여…”, 순 엉터리 얘기가 떠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턴테이블 조정이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는 오디오 숍 영업부장이 대충 달아놓은 대로 갖다 쓰는데 그들이 작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턴테이블 한 대에 톤암과 바늘을 붙이려면, 아무리 빨라도 한나절을 잡아먹는데, 영업부장들은 몇 분 안에 뚝딱 해치우고 만다. 어떤 치과의사가 사용하다 내게 온 ‘누보 플라틴’ 역시 말이 아니었다. 통상 밀리미터 단위까지 따져서 톤암의 오버행 각을 조정하는데, 무려 1cm가량이나 각이 틀어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필경 그 치과의사는 턴테이블 성능이 나빠서 소리가 일그러진다고 불평하며 내다 팔았을 것이다. 그 덕분에 내 품에 들어오게 됐지만.

여덟 개 바늘을 동시에

문제는 대머리 윤광준이 옛날의 윤광준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프리랜서로 십 수 년을 지내는 동안 ‘잘 찍은 사진 한 장’ 같은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내고, 강연이다 모임이다 분망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저명인사’를 모셔와 톤암 여덟 대를 조정해달라 했으니, 며칠 동안 고기에 회는 기본이고 값비싼 사이폰 커피기구 한 세트를 구입해 상납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온갖 비굴모드로 윤광준을 찾는다. 단언컨대 턴테이블 조정 솜씨에서만큼은, 윤광준을 따라갈 자가 없다.

쉘터 9000, 수펙스 SD900, SPU 실버마이스터 같은 카트리지들을 새로 구하는 과정은 생략하기로 하자. 새로운 톤암마다 새로 제작해 부착한 반덴헐 포노케이블 입수 내막도 넘어가자. 독일 클리어오디오사의 초현대식 카본형 톤암을 내보내고 RS 212라는 고전 톤암으로 교체하는 과정도 건너뛰자. 어려움은 좋은 포노이퀄라이저를 선택하는 데 있었다. 턴테이블의 바늘이 소리를 내기 위해 연결되는 부분이 프리앰프인데 CD나 튜너 등은 그냥 연결되지만, 카트리지의 미세한 전류는 포노이퀄라이저라고 부르는 별도의 증폭회로를 거쳐야만 한다.



옛날 영미 쪽의 프리앰프들은 대개 포노부가 내장되어 있다. 내 프리앰프들도 물론 그렇다. 마란츠 7, 오디오리서치 SP15에는 애초부터 충실한 포노부가 달려 있고, 포노가 없는 독일계 마이학 101은 국내 장인이 ‘RIAA커브’를 조정해 제작했다. 그런데 나는 ‘톤팔이’다. 여덟 개의 바늘을 동시에 소화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포노앰프를 추가해야 한다. 포노앰프의 회로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내 프리앰프들은 전부 CR타입이라는 일반적인 구성이다. 별스럽고 더 우월한 것을 찾고 싶었다. 어떤 게 있을까?

‘LCR 타입’이라고 부르는 포노앰프의 원리가 있다. 무려 트랜스 12개를 접속하는 아주 복잡하고 거창한 방식인데, 이걸 만들어내는 회사가 없었다. 상품이 되자니 도저히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탓이다. 영국의 파트리지와 더불어 트랜스 제작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일본의 타무라 트랜스 회사가 세계 최초로 완전 LCR 방식의 포노앰프를 만들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으나,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수준의, 어쩌면 타무라를 능가할지 모르는 LCR 포노앰프 제품이 국내에도 있었다! 올닉 오디오에서 값비싼 니켈코어를 감아 만든 H3000이라는 모델이 바로 풀 LCR 타입의 포노스테이지로서, LP 사용자에게는 궁극의 목표물이 될 만한 물건이었다. 문제는 가격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그래도 과하게 비싸다. 그런데 지금 올닉의 바로 그 H3000이 ‘누보 플라틴’ 위에서 위풍당당 위용을 뽐내는 중이다. 무슨 재주를 피웠느냐고? 재주가 있기는 했다. 그 얘긴 나중으로 미루고.

‘톤팔이’에게 딱 맞는 조합

올닉으로 호사한 것으로도 모자라 또 한 대의 포노앰프를 추가했다. 내 프리앰프들과 같은 CR방식이기는 해도 유럽 ‘오도팔’들이 워낙 애지중지하는 물건이라기에 탐욕과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동지들의 안목과 제작자의 명성에 기대기로 했다. 우리나라에 장충 이광수 같은 앰프제작 명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켄 신도와 우에스기가 가장 유명하다. 두 사람 다 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자기 이름의 앰프를 만든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고매한 장충 선생이 신도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 선생의 인품으로 보아 민족적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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