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켈러의 후바커 포도밭.
클라우스-피터가 데뷔하기 전에는 주로 스위트 스타일로 양조했다. 그가 와인을 드라이 스타일로 바꾼 계기는 독일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찾아왔다. 잔당이 함유된 화이트에 염증을 느낀 애호가들은 드라이 화이트를 갈망했으며, 더욱이 그 수준이 최고이기를 원하던 때에 클라우스 피터가 등장한 것이다.
라인헤센의 달샤임이나 베스토펜은 오랫동안 와인을 양조해왔으나 여전히 무명에 가깝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역에서 손꼽히는, 아니 독일에서 가장 세련된 맛을 내는 양조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존 길만(John Gilman)은 그의 뉴스레터 ‘셀러에서 본 견해(View from the Cellar)’ 2007년 11월호에서 켈러에 대해 소상히 보고했다. 켈러의 혜성 같은 등장은 포도밭 구입에서부터 시작한다. 중세로 가보자. 중심도시 보름스의 교회는 종교적인 필요로 이름난 포도밭에서 나온 와인을 열렬히 원했다. 오늘날 켈러가 소유한 포도밭들이 당시 최고 인기였다. 교회가 좋아했던 포도밭 중에 압트세르데가 있었다. 그 밭을 돌본 수도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세기에 4ha였던 이 포도밭은 지역에서 높이 평가받았고, 전량 보름스 주교를 위해 사용됐다. 그러나 유럽이 암흑기에 돌입하면서 포도밭의 비밀이 자취를 감추고, 후임자들은 포도밭에 대한 기억을 전수받지 못한다.
그러나 켈러에 의해 중세의 찬란했던 이 마을 와인 수준이 되살아났다. 켈러는 그 옛날 그 좋은 와인이 생산된 곳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켈러는 그 밭들을 언제 구입했을까? 라인헤센을 통째로 흔들어 깨운 발견은 놀랍게도 최근에 일어났다. 그러니 켈러의 포도밭 구입은 환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1999년에 키르흐슈피엘을 샀고, 이어 2001년에 몰슈타인, 곧이어 압트세르데 포도밭을 매입했다. 클라우스-피터는 라인헤센의 유망한 구역에 대해 말을 아낀다. 틀림없이 어딘가에 중세 암흑기에 놓친 기가 막힌 포도밭이 더 있으리라.
왕년에 유명했던 포도밭을 찾았다고 해서 일이 다된 건 아니다. 켈러가 오늘날 독일 최고의 드라이 화이트 생산자가 된 것은 세심한 포도나무 관리를 통해 옛 품질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2007년 켈러를 찾았을 당시 그는 14년 묵은 빈티지 1993년의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았다. 그때 이미 주행기록이 40만km를 막 넘겼는데, 아마 지금도 그 차를 타고 다닐 것이다. 그는 매일 오전 7시 영락없이 포도밭에 있다. 빼어난 테르와(terroir·포도밭 토양)를 지닌 중세 명산지를 획득한 이후 매일 거듭된 작업 속에서 그는 포도나무 재배가 와인 품질을 보장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가지에서 나오는 송이 수를 제한하고, 송이가 완숙되기 전에 반을 제거함으로써 송이 크기도 제한하고, 잎사귀의 수도 제한해 광합성을 늦춰 포도가 오랫동안 서서히 익게 한다. 다뉴브 강가에서 생산된 오스트리아산 화이트 명주 도수가 14도를 웃돌지만, 켈러의 리슬링은 높아야 13.2도다.
한잔을 마시고 한잔 더 원해야
세계적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의 신간 ‘아웃라이어’에서 주장한 ‘1만 시간 이론’이 켈러에 적용된다. 1973년생인 켈러는 이미 1만 시간 이상을 쏟아 부으며 포도 재배의 달인이 되어간다. 켈러의 최우수 포도밭은 후바커(Hubacker)다. 달샤임 마을에 속하며 남동향의 4ha 규모이고, 15도 정도의 경사지며 토양은 황토, 양토, 이회토, 석회석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리슬링을 심고 거둔다. 리슬링의 매력은 그 맛이 무척 투명하고 순수해 땅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와인: 마개를 딴 인생(Wine: a life uncorked)’에서 휴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 “리슬링은 피노 누아처럼 토양을 들여다보는 렌즈다. 리슬링은 토양과 기후 그리고 빈티지 날씨를 집어 들어 틀림없이 그것들을 드러낸다.” 리슬링이나 피노 누아의 이러한 특질은 곧잘 샤르도네 혹은 카베르네 패밀리와 비교된다. 휴 존슨의 비교다. “보르도에서 하는 것처럼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카베르네 프랑은 혼합돼 서로를 가린다. 피노 누아는 리슬링처럼 투명하다.”
2009년 2월에 시음단체 ‘그랑 주리 유러피언(Grand Jury European)’은 2005년 빈티지의 리슬링 비교 시음대회를 열었다.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오스트리아, 호주산 리슬링이 한데 모였다. 영예의 최고 점수는 단연 켈러의 ‘후바커 2005’였다. “내가 원하는 리슬링은 몬스터 리슬링이 아니다. 리슬링의 고품질은 정밀함, 피네스, 광물성이다. 한잔을 다 마시고도 한잔 더 원해야만 그 와인이 좋다고 믿는다.” 이 같은 신념을 가진 켈러의 리슬링은 몽하쉐처럼 오래 숙성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몽하쉐를 사려면 1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선각자들의 조언이 조만간 켈러의 후바커나 키르흐슈피엘에 적용될 것이다.
독일의 몽하쉐? 독일의 후바커!
경매회사 소더비의 와인 수장 세레나 서클리프(Serena Sutcliffe)는 저서 ‘버건디 와인(Wines of Burgundy)’에서 몽하쉐를 10년 이내에 마시는 것은 ‘와인계의 범죄’라고 표현했다. 병입 후 2~4년까지도 여전히 와인이 만들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병 속에서 와인이 더 깊은 맛으로 변해간다고 믿는다. 한 10년은 돼야 마실 만하다. 세레나 서클리프는 13℃의 이상적인 셀러에서 보관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질감이 풍부해지며, 숙성되는 동안 연둣빛을 띤 노란색이 빛나는 금색으로 바뀌고,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더 깊어진다고 한다.
양조장을 방문하면 보통 품질별, 가격대별, 개성별로 순차적으로 와인을 시음하는데, 몽하쉐는 당연히 맨 마지막에 시음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방문자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켈러 양조장도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생산량이 적으니 시음할 기회도 적은 것이다. 라발 교수는 몽하쉐의 가격에 대한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빈티지가 좋은 해의 몽하쉐 가격은 그게 얼마든지 간에 그렇게 많이 내는 게 아닐 것이다.”
화이트 와인의 최고봉 몽하쉐에 필적할 와인이 있을까? 그 역사와 지명도, 맛, 그리고 숙성력에 버금가는 걸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기 후보가 있으니 바로 켈러다. 잰시스 로빈슨은 켈러의 리슬링을 ‘독일의 몽하쉐’라고 격찬했다. 켈러의 리슬링은 투명함, 정밀함, 우아함, 세련됨, 균형미, 미네랄을 잔뜩 갖고 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석탄을 불고 닦아 다이아몬드로 변화시킨 켈러는 아직 30대다. 그가 앞으로 리슬링 연구에 수만 시간을 투자해 ‘아웃라이어’로 성장해나가는 동안 독일의 몽하쉐가 아닌 후바커로 우뚝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