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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⑨

전등사의 명상 숲

‘나’를 벗어버리고 ‘나’를 놓아버리게 하는 곳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전등사의 명상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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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쪽으로 내려서는 성곽 길의 경사는 급하지만, 그도 잠시, 다시 경사 길을 조금 오르면 북문이 나온다. 해질 무렵에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정족산 정상 부근에서 서해의 낙조를 감상하고 동문으로 내려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해질 녘이 아니면 북문에서 사고 쪽으로 내려선 후, 사고 안에서 대문을 그림액자 삼아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 순서가 나의 대체적인 절집 숲의 순례방법이다.

정족산사고를 지키는 소나무들

전등사의 명상 숲

남문에서 서문으로 향하는 성곽 길에서 바라본 전등사.

정족산사고는 임진왜란의 산물이다. 한양의 춘추관(春秋館)과 충주(忠州) ·성주(星州)의 사고에 보관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전주(全州)사고의 ‘실록’만이 전란으로부터 온전히 보전되었다.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사고로 피난했다가 마니산사고로 옮겨졌는데, 1653년 마니산사고에 보관 중이던 ‘실록’들이 실화로 불타게 되자, 새로이 정족산성 안에 장사각(藏史閣)과 선원보각(璿源寶閣)을 짓고, 1678년에 남은 역대 ‘실록’과 서책들을 옮겨 보관하면서부터 정족산사고는 업무를 시작했다.

정족산사고에 보관되었던 서책들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 규장각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옮겨져 관리되었고, 오늘날 서울대학교 규장각도서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사고 건물은 1910년대 이후 헐렸지만,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1929년에 발간된 ‘조선사찰31본산’에는 ‘절집에서 사고는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고 밝히고 있다. 전등사에 사고가 복원된 것은 1999년으로, 대조루에 걸려 있던 장사각과 선원보각의 현판도 복원된 이들 건물에 다시 달게 되었다.

어떤 끌림 때문인지 몰라도 전등사를 찾으면 나는 가능한 한 이 사고를 찾는다. 절집 경내가 넓지 않은 것도 한 이유지만, 사고가 품고 있는 역사성에 끌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고 주변에는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사고를 호위하는 형상으로 서 있다. 이 소나무들은 낙락장송은 아닐지라도 사고가 조선왕조의 역사를 지켜낸 곳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늘 새롭게 다가온다. 한적한 시간에 절집을 찾으면 대부분 사고에는 사람이 없다. 툭 트인 배경과 사고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들을 한참 쳐다보면 근세 백년의 지난한 세월을 견뎌낸 절집의 저력과 함께 제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사고의 대문을 액자 삼아 바깥 풍경을 감상해보면 침묵 속에서도 세월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사고 안에서 눈높이를 낮추어 대문 밖을 바라보면 대문지붕의 처마선 바로 밑 중앙에는 굽은 두 그루의 소나무가 춤추듯 나란히 뻗어 있고, 그 오른편에 한 그루, 그 왼편에 굵은 두 그루의 소나무가 마치 그림처럼 화면을 멋지게 분할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강화반도와 해협이 액자의 중간쯤에 나타나며, 산성의 양 능선이 중앙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전등사를 찾을 때마다 한참 동안 이 풍광을 혼자서 아껴가며 즐긴다.

전등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성 안에 있는 사찰로 381년(소수림왕 11년)에 아도(阿道)화상이 창건한 진종사(眞宗寺)에서 유래한 절집이다. 고려시대에 여러 차례 수리 중건되었고,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도 중수되었다. 전등사(傳燈寺)라는 이름은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사명(寺名)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는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제178호), 약사전(보물 제179호), 범종(보물 제393호)이 있으며, 대웅전 추녀 끝의 나부상(裸婦像)과 은행을 맺지 않는 오래된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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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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