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물가 비싸고, 육아에 허리 휘고 … 그래도 한국이 살기 좋은 까닭

  • 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0-09-02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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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만의 한국 나들이. 반갑긴 하지만 걱정도 크다. 아이들은 그 잘하던 영어를 무서운 속도로 잊어먹는다. 집세와 가스요금 등 영국 생활비의 절반은 그대로 나가면서 한국 생활비가 추가로 들어간다. 인건비를 제외하면 한국 물가는 그 비싸다는 영국 물가 못지않다. 아이들 과외비는 또 어떻고…. 그래도 이것저것 다 따져보면 한국살이가 편하다. ‘효율성’ 때문이다. 곧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나는 이 편리한 효율성에 익숙해질까봐 두렵다.
    물가 비싸고, 육아에 허리 휘고 … 그래도 한국이 살기 좋은 까닭

    자동차 연료비와 대중교통 요금이 비싼 영국 사람들은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게 습관이 돼 있다.

    7월말에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영국으로 떠난 지 꼭 1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아주 돌아온 것은 물론 아니고 연구의 중요한 과정인 필드워크(Field Work)를 위해 2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기로 했다. 희찬이는 잠시 동안이지만 좋아하는 새집과 BBC 드라마 ‘닥터 후’를 떠나 있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영 시무룩했고, 한국의 할머니와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하던 희원이는 흥분해서 재잘거리며 비행기에 올랐다.

    글래스고와 한국을 잇는 직항노선이 없어서 우리는 네덜란드항공 소속 비행기를 타고 일단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으로 가, 거기서 다시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탔다. 갈아타는 시간까지 합하면 장장 열여섯 시간에 달하는 긴 비행이었다. 쉴 새 없이 보채고 싸우는 아이들을 달래며 지루한 비행 끝에 도착한 인천공항의 공기는 숨이 턱 막히도록 더웠다. 그 속에서 영국과는 다른, 낯익고도 익숙한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아,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다. 1년 동안 영국에서 보낸 수많은 날이 마치 하룻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엄마, 한국 사람들 되게 많다! 봐봐, 한국말로 방송도 나와!”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치자 단체관광을 다녀오신 아줌마 승객들이 우리 가족을 힐끔거렸다. 인천공항이니 우리말 방송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지난 1년간 엄마말고는 한국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던 아이들에겐 그마저 신기하게 느껴졌나보다.

    내 집으로 돌아가는 두려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다지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 집과 내 고향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너무도 그리웠기 때문에 도리어 오고 싶지가 않았다.

    1년의 시간 동안 나와 아이들은 힘들게, 정말로 힘들게 낯선 생활에 적응해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스산한 북구(北歐)의 도시에 뿌리내리고 사는 과정은 말 그대로 ‘고군분투’였다. 그리고 거의 1년간의 고군분투 끝에 우리 세 식구는 그럭저럭 글래스고를 ‘우리 동네’라고 여기면서 살게끔 된 것이다.

    그런데 가까스로 영국 생활에 적응한 이 시점에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가족은 영국에서 익힌 삶의 방식을 금세 잊어버릴 게 분명했다. 너무도 편안한 아파트 생활과 익숙한 주위 여건, 은행이든 식당이든 약국이든 편하게 말이 통하고 텔레비전을 켜면 기다렸다는 듯 우리말이 쏟아져 나오는 환경에 몸을 담그면 어렵사리 적응한 ‘글래스고식 삶의 방식’을 다 잊어버리게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두 달간의 필드워크를 끝내고 다시 글래스고로 돌아가면 우리 가족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또다시 힘겨운 ‘타향살이’를 시작하게 될 터였다.

    나는 그 과정이 몹시 두려웠다. 이제 거의 잊어가고 있는 ‘내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는 것, 그리고 잊고 있던 내 집의 안락함에 다시금 몸을 맡기게 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내 영어 선생님이자 친구인 캐시는 “한국에 가면 아이들보다 네가 먼저 영어 쓰는 방식을 잊어버릴 걸?” 하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아이들은 금방 영어 잊어버리겠지만 나는 그래도 괜찮을 거 같은데?”

    “아니야. 내가 보기엔 아이들보다도 네가 더 문제일 거 같아. 너 한국 가면 두 달 내내 영어 라이팅(writing) 전혀 안 할 거 아냐? 그러면 다시 여기 와서 영어로 페이퍼 쓸 때 문장 하나하나 쓰기가 더 힘들 거야.”

    영어와의 고군분투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지 모른다. 아아, 그건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나는 되도록 한국으로 필드워크를 가지 않고 영국 현지에서 연구를 진행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도교수인 필립 교수님은 그런 내 바람은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고 5월부터 “언제 필드워크를 갈지, 가서 무엇을 조사할지 구체적인 자료를 만들어 와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걸이로 두 아이의 손을 붙들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영어도 걱정, 돈도 고민

    막상 한국에 와보니 내 걱정은 대부분 들어맞았다. 시차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린 일주일이 지나자 춥고 서늘한 글래스고의 공기는 아득히 먼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한국의 숨 막히는 무더위와 아파트 단지, 그리고 번잡한 대형 마트가 맞춤옷처럼 느껴졌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희찬이와 희원이, 특히 희원이의 영어 실력은 친가와 외가에서, 그리고 이웃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희찬이가 외가에서 영국 생활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영국 학교에서는요, 점심 먹을 때마다 밥값을 내야 해요.”

    외할머니가 “그걸 영어로 어떻게 말하냐?”고 묻자 희찬이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희원이가 쏜살같이 대답했다.

    “When we eat a lunch at school, we have to pay the money.”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한 달이 지나자 희원이가 이런 실력의 영어를 깡그리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내가 영어로 뭐라고 하면 “엄마, 영어 좀 하지 마!” 하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세상에, 그렇게나 힘들게 배운 영어를 이렇게 쉽게 잊어버리다니!

    이런 이유들 외에도 내가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았던 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경제적 문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영국에서 살든 살지 않든 간에 영국에서의 생활비 지출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 오면 기본적으로 몇 백만원 수준인 비행기표 외에도 생활비가 적지 않게 들 것이 뻔했다. 그러니 한국에 머무르는 두 달 동안 우리는 영국에서의 기본생활비에 더해 비행기표 값, 그리고 한국에서의 생활비까지 두세 배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게 생긴 것이다.

    왜 영국에 살든 말든 기본 생활비가 똑같이 든다는 거야? 라고 궁금해 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영국에서 우리 가족이 쓰는 생활비의 절반가량은 고정비용이다. 우리 가족은 영국에서 한 달에 1800파운드, 원화로 35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쓴다. 이 중 690파운드가 집세, 85파운드가 전기 및 가스 사용료(영국의 에너지 회사는 매달 똑같은 금액을 통장에서 빼간 다음, 3개월마다 실제 사용량을 측정해서 가감되는 비용을 더 물리거나 돌려준다), 27파운드가 인터넷과 유선전화의 기본 사용료다. 이 비용은 내 영국 통장에서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니 한 달 생활비의 절반, 우리 돈으로 따지면 160만원 정도가 고정비용인 것이다. 쓰지도 않은 집세와 전화비를 내는 셈이니 아까울 수밖에 없다.

    물가 비싸고, 육아에 허리 휘고 … 그래도 한국이 살기 좋은 까닭

    우리 식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영어 실력을 자랑하던 희원이. 그러나 아이는 한국 생활 한 달 만에 영어를 깡그리 잊고 말았다.

    그러면 아마 또 다른 독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350만원 빼기 160만원, 즉 190만원 정도의 돈으로 세 식구가 먹고사는 게 가능하냐고. 한 달 생활비가 190만원이라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큰돈일 수도 있고 작은 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글래스고에서의 생활만을 따지자면 이 정도의 돈으로 세 식구의 한 달 생활은 충분히, 그리고 아주 여유롭게 가능하다. 여기에는 희찬이의 학원비(희찬이는 매주 토요일 골프클럽에 가서 1시간 동안 골프 레슨을 받는데 비용은 1시간에 1만원 정도다), 한 달에 30만원 정도 하는 희원이의 유치원비와 점심값, 내가 몰고 다니는 경차의 기름값, 나의 점심값과 주말마다 슈퍼마켓에서 장 보는 비용, 1년에 한 번씩 나오는 자동차세와 BBC 시청료(BBC 시청료는 무려 연 30만원이다!), 한 달에 한두 번 아이들과 영화 보고 외식하고 근교의 성이나 박물관에 놀러가는 비용, 아이들과 나의 책값 등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런 금액을 다 합하면 160만원에서 180만원 사이다. 그리고 글래스고에서는 이 이상은 굳이 돈을 더 쓸 데가 없다.

    식료품 싸고, 과외비 적고

    말이 나온 김에 잠시 설명하자면, 영국의 기본적인 생활비는 한국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일단 인건비가 비싸고, 그 외에 연료비나 교통비도 한국에 비하면 많이 비싸기 때문이다. 피부에 와 닿는 물가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은 단연 연료비와 교통비다. 내 느낌으로는 가스와 전기 비용이 한국의 2배 이상인 듯싶다. 가스와 전기, 이 두 가지만으로도 최소한 매달 100파운드 이상, 즉 18만~20만원을 지출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쓰지 않는 방의 전등을 끄고 안 쓰는 전기제품의 콘센트를 빼면서 사는데(거의 병적으로), 그런데도 매달 전기세를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자동차 기름값도 마찬가지다. 영국 주유소에서 휘발유 1ℓ가격은 1.20파운드 정도다. 우리 돈으로 2000원이 조금 넘는다. 한국보다 ℓ당 300원 정도 비싼 셈이다. 영국은 스코틀랜드 북해에서 양질의 브렌트 원유가 생산되는 산유국인데 왜 이렇게 기름값이 비싼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대중교통 비용은 상대적으로 싸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한 번 타는 데 드는 비용이 보통 3000원 정도라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게 습관이 됐다. 이외에도 사람의 손을 빌리는 일이라면 분야를 막론하고(예를 들면 미장원이나 세탁소 드라이클리닝 비용 등) 영국이 훨씬 비싸다. 이처럼 비싼 인건비 탓에 영국의 제조업은 대부분 사양길을 걷고 있고, 이는 영국 산업의 심각한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고정비용과 에너지 비용, 인건비 외에 피부에 와 닿는 물가는 영국이 한국보다 싼 편이다. 우선 주부에게 가장 중요한 슈퍼마켓 비용! 과일과 우유, 감자, 고기 같은 식재료는 대부분 영국이 더 싸다. 물론 한국 사람들의 주식인 쌀과 된장, 고추장, 두부 등속은 글래스고 시 외곽에 있는 중국 슈퍼마켓에 가서 사야 하지만 배추, 감자, 양파, 닭고기, 돼지고기 등은 거의 다 영국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이런 야채와 고기들을 사다가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고등어구이, 오징어볶음 등을 해 먹으면서 그럭저럭 끼니를 때운다. 이런 슈퍼마켓 ‘체감비용’은 영국이 한국보다 싼 듯싶다. 품목별로 하나하나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주말마다 장을 봐오면 한국에서보다 2만~3만원 덜 썼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우리 집의 지출항목을 잘 보면 아시겠지만, 한국의 가정이라면 기본 50만원 이상 든다는 학원비가 거의 없다. 한국 교육비에서 가장 큰 부분일 ‘영어학원비’가 아예 없고, 그 외에도 각종 학습지나 학원 비용이 들지 않는다. 영국 아이들은 학원 대신 학교나 평생학습센터, 시티 카운슬 같은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방과 후 활동에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 악기, 미술, 테니스, 축구, 골프, 연극, 발레 등이 영국 어린이들이 많이 참가하는 방과 후 활동이다. 이런 방과 후 활동 비용은 한국에 비하면 퍽 저렴하다. 희찬이는 영국에서 미술과 골프를 배웠는데, 두 과정 모두 시간당 비용이 1만원이 될까 말까다. 그러니 매주 1시간씩 골프를 배우면 레슨비용은 월 4만원에 불과한 것이다. 희찬이는 골프를 배우기 위해 어린이용 골프채 풀세트를 샀는데, 가격은 겨우 10만원이었다.

    육아 스트레스 너무해요!

    재미있게도 아이들이 골프나 악기, 미술, 발레 등 각종 취미활동을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은 싸지만 방과 후 아이들의 보육,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 대신 아이를 봐주는 비용은 한국보다 비싸다. 희원이는 운 좋게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유치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9시부터 4시까지 유치원 종일반을 다니는 비용이 월 30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이건 공립 유치원의 경우이고, 사립 유치원 종일반의 비용은 대부분 월 1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일하는 엄마 대신 아이를 봐주고 밥을 차려주는 보모 인건비도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보통 아이 한 명을 봐주는 비용이 시간당 최소 3.5파운드, 7000원 정도이기 때문에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인 오후 3시부터 서너 시간을 맡기려면 한 달에 60만~70만원 정도는 예상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절약의 포인트가 있다. 영국은 초등학교부터 아이들이 모두 교복을 입는다. 이 때문에 아이들의 옷값이 거의 들지 않는다. 교복 가격도 바지 7000원, 스커트 6000원 하는 식으로 아주 싸다. 눈에 띄는 것은 막스앤스펜서나 아스다(Asda)처럼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교복을 판다는 사실이다. 희찬이가 다니는 킬러먼트 초등학교의 경우 모든 교복과 체육복 상의에 학교 마크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교복 상의는 학교 사무실에서 사고, 바지와 스커트는 슈퍼마켓에서 사 입는다.

    교복 외의 운동복이나 청바지, 운동화, 모자 등 아이들 물건은 대부분 한국의 3분의 2 정도 가격에 살 수 있다. 학생인 나는 매일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학교에 다니므로 새 옷을 사 입을 이유 자체가 없다. 그러니 생활비 중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피복비’가 영국에서는 제로에 가깝다. 특히 글래스고는 한국처럼 계절 변화가 뚜렷하지 않고 1년의 대부분이 서늘한 날씨라 옷값이 더더욱 들지 않는다.

    병원비도 영국 가계부에서는 찾을 수 없는 항목이다. 진료는 물론, 예방주사까지 공짜라 아이들의 병원비나 약값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안경을 맞추는 것도 공짜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전액 무료 의료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것은 아니다.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 아이들은 6개월에 한 번씩 치과 진료를 받는다. 한 해에 두 번씩 집 근처의 치과에서 ‘몇 월 며칠까지 아이들 검진을 예약하라’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희찬, 희원이 역시 한국에 오기 한 달쯤 전에 치과 검진을 받았다. 영국인 치과의사는 아이들의 치아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웬걸, 한국에 와서 단골 치과에 갔더니 두 아이 모두 충치치료를 해야 한단다. 희원이는 제법 심각한 상황이어서 신경치료까지 해야 했다. 영국의 치과가 검진을 대강 한 건지, 아니면 한국 치과가 과잉진료를 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영국의 정기 검진이 좀 엉터리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이런 비용이 싸다고 해서 영국의 생활비가 한국보다 낮다고 할 수는 없다. 2009년의 ‘빅맥 지수’를 비교해보면 영국이 3.69로 한국(2.59)보다 꽤 높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교통비, 외식비, 인건비, 에너지 사용비, 책값 등 대부분의 비용은 한국이 더 저렴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만 지출하는 특수한 비용, 즉 학원비가 없다는 점만으로도 영국에서의 생활비 부담은 한국에 비하면 그리 높지 않게 느껴진다. 또 막상 겪어보니 교복 덕분에 아이들 옷에 대해 별달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점도 정말 편하다. 이런 점을 비교해보면 한국에서 ‘육아’는 영국에 비하면 어렵고 스트레스가 큰 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영국에서는 아이들 교복 사 입히고 학교 오가는 길을 데려다주기만 하면 끝인데, 한국에서는 엄마가 아이 학원도 보내고, 시험 공부도 시키고, 숙제도 봐주고, 철마다 옷도 사 입혀야 하고, 여러 학원을 비교해서 가격 대비 좋은 학원도 찾아내야 하지 않는가.

    놀라워라, 한국인의 ‘손맛’

    1년 만에 한국에 와보니 한국 역시 마냥 물가가 싼 나라는 아닌 듯싶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던 외식비나 커피값, 교통비 등이 점점 더 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웬만한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두 잔만 마시면 1만원쯤을 내야 하고, 영국에 비하면 아직은 싼 편이지만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패션모델 뺨치게 옷을 잘 차려입고 멋진 구두와 가방을 들었는지, 글래스고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하나같이 잡지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들 같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부리나케 미장원에 달려가 머리를 자르고 할인매장에 달려가 새 옷을 사 입었다. 필드워크 때문에 문화수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러 다녀야 하는데, 글래스고에서 입던 것처럼 청바지에 티셔츠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가면 건물 입구에서 붙잡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할인매장이라도 옷값은 과연 비쌌다.

    그러나 이 모든 생활비를 비교해보면 영국보다도 한국에서의 삶이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한국은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 수월하게 이뤄진다(인건비가 싸다는 점이 과연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이로운 일인가 하는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선 모든 서비스가 지극히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공교롭게도 10년쯤 쓴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10년 전의 사용설명서를 찾아서 서비스센터에 전화했더니 그날 오후에 서비스 담당자가 집으로 찾아와 냉장고를 말끔히 고쳐줬다. “애프터서비스 기간이 지나 부품비와 수리비용을 주셔야 한다”고 해서 조금 긴장하며 얼마인지를 물었더니 겨우 2만원이란다. 아침에 신고한 고장을 당일 오후에 와서 1시간 가까운 시간을 들여 고쳐준 비용치고는 터무니없을 만큼 싸지 않은가!

    영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한국으로 오기 얼마 전에 전화로 케이블 TV를 설치해달라고 신청했는데, 영국에서 가장 싸고 빠른 서비스로 이름난 버진 케이블 TV는 설치비용으로 7만원(35파운드)을 내야 하며, 설치하는 데는 최소 3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결국 케이블 TV가 설치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영국을 떠나와야 했다.

    물가 비싸고, 육아에 허리 휘고 … 그래도 한국이 살기 좋은 까닭
    전원경

    1970년 출생

    연세대, 런던 시티대 대학원(석사) 졸업

    월간 ‘객석’, ‘주간동아’ 기자

    저서 :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 ‘역사가 된 남자’ 등

    現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


    이처럼 기본적인 물가나 고정비용, 인건비, 교육비 등을 다 비교해보면 한국과 영국에서의 삶은 각기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효율성’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단연 한국이 영국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영국에서 냉장고가 고장 났다면? 모르긴 해도 우리는 고장 난 냉장고를 붙들고 꼼짝없이 서너 주를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오래 기다린 수리기사가 냉장고의 어디가 고장 났는지 못 찾아냈을지도 모른다(어이없는 일이지만 영국 테크니션의 수준은 한국에 비하면 형편없다. 이 때문에 기껏 서비스를 하러 와도 못 고치고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아, 이렇게 한국살이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이러는 와중에도 글래스고로 돌아가야 할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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