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비너스의 다채로운 일상

  • 입력2010-10-01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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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너스의 다채로운 일상

    <비너스의 탄생> 1486년경, 캔버스에 템페라, 184×285㎝, 우피치 미술관 소장

    신이 창조해낸 피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여자다. 여자의 육체는 그 어떤 자연보다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의 아름다움은 자연보다는 비너스 조각상과 비교해서 평가한다. 그래서 여자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비너스 같다’는 말이다. 비너스는 완벽한 여성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따르면 비너스는 바다의 물거품에서 탄생했다. 크노소스가 복수로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바다에 버리자 물거품이 일어나면서 비너스가 태어났다. 비너스 탄생의 순간을 그린 작품이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비너스는 화면 중앙의 조개껍데기 위에 서 있다. 비너스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하얀 피부 때문에 마치 대리석 같은 느낌을 준다. 보티첼리는 고대 조각에서 영감을 얻어 비너스의 자세를 정숙하게 표현했다. 그는 검은색 선으로 인물의 윤곽선을 뚜렷하게 표현해 인물의 명료함을 강조했으며, 비너스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고대 전설을 인용했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장미꽃은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생겨났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의 탄생을 보여주는 것이 조개껍데기와 화면에 떠다니는 장미꽃이다.

    화면 왼쪽에는 미풍 아우라에게 단단히 끌어안긴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날아오고 있다. 그들 두 신은 비너스를 해변으로 불어 보내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선 계절의 여신 플로라가 해변에서 비너스를 맞으며 그녀를 위해 옷을 펼쳐 들고 있다. 플로라의 옷을 장식한 꽃은 그녀가 봄의 여신임을 알려준다.

    보티첼리의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비너스는 시모네타 베스푸치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마상대회에서 일등으로 꼽힐 정도로 15세기 피렌체를 대표하는 미인이었다. 다방면에 재능이 있던 그녀는 요절하고 만다. 보티첼리는 그녀를 흠모했지만 생전에는 그리지 못하고 사후에 여신으로 표현했다.



    비너스의 다채로운 일상

    <잠든 비너스> 1944년, 172×199㎝,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여성에게 비너스는 완벽한 팔등신 몸매를 상징하지만, 남성에게 비너스는 꿈의 여신이다. 그녀와의 하룻밤 정사가 모든 남자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로망을 비너스로 표현한 작품이 폴 델보의 ‘잠든 비너스’다. 이 작품은 신화를 이용해 프로이트의 꿈을 해석하고 있다.

    고요한 달빛이 비치는 도시 광장에서 화려한 장식이 있는 긴 의자에 비너스가 팔을 들어 올린 채 잠들어 있다. 비너스 앞은 해골 마네킹이 지키고, 붉은색 모자를 쓴 여자는 해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해골은 죽음을, 붉은 모자를 쓴 여자는 성욕을 암시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욕망과 공포의 결합을 의미한다.

    왼쪽의 도리아식 건물과 비너스 뒤에 있는 이오니아식 신전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스식의 고전적 건축물은 죽은 장식물로 비현실적인 공간임을 강조하며, 누워 있는 여자가 비너스임을 나타낸다. 막혀 있는 광장은 충족되지 못한 성적 욕망을 나타내며, 광장 중앙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벌리고 있는 여자나 쓰러져 있는 여자들은 잠든 비너스의 꿈을 상징한다.

    델보는 이 작품에서 꿈과 비현실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배경과 사물을 임의적으로 배치했다. 델보는 초기에 표현주의와 인상주의를 추구했으나 키리코와 마그리트의 만남을 계기로 크게 영향을 받아 화풍을 초현실주의로 바꿨다. 이 작품은 그의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비너스의 팔등신 몸매는 소녀에게서 볼 수 없다. 성숙한 여인만이 비너스와 같은 팔등신 몸매를 드러낸다.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하는 시작은 생리다. 남자가 변성기를 겪으면서 소년에서 남자로 바뀐다면 여자는 생리가 시작되면서 소녀에서 여자로 바뀐다.

    비너스의 다채로운 일상

    <기차> 1993년, 왁스·유리구슬 등 혼합 재료, 134×53㎝, 개인 소장(왼쪽) <농부 비너스> 1938년경, 캔버스에 유채, 크기 미상, 개인 소장(오른쪽)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바뀌고 있는 여자를 표현한 작품이 키키 스미스의 ‘기차’다. 이 설치작품은 여성의 신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벌거벗은 채 엉거주춤 돌아서서 엉덩이를 보이고 선 여자의 다리 사이에서 붉은색의 긴 끈이 마룻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다. 뒤를 돌아보는 여자의 표정엔 당혹감이 서려 있다.

    늘어진 붉은색의 긴 줄은 유리구슬로 만들어진 것으로 여성의 생리혈을 의미한다. 풍만한 엉덩이와 잘록한 허리, 그리고 긴장으로 굳어진 허벅지는 생리 중인 젊은 여자임을 나타내며, 여자의 굳은 표정은 생리의 고통을 암시한다.

    키키 스미스는 바닥에 생리혈을 늘어뜨림으로써 배출의 과장, 그리고 여성의 고통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그녀는 생리혈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청결함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통적으로 여자의 육체는 남자 화가들에 의해 에로티시즘을 부각시키는 도구로 사용돼왔다. 그녀는 여성의 신체를 탐구해 재정립하면서 여성의 고통과 수고를 표현하고자 했다.

    육감적인 비너스의 몸매를 가졌다고 해도 모델이 아니고서는 몸매가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 비너스도 일을 해야만 먹고산다. 일하는 비너스를 그린 작품이 제프 힐츠의 ‘농부 비너스’다. 이 작품은 노동의 미덕을 표현한 풍속화다.

    벌거벗은 여자가 의자에 팔을 걸친 채 슬리퍼를 신고 있다. 의자에는 벗어놓은 옷가지가 쌓여 있고, 마룻바닥에는 벗어놓은 한쪽 양말이 흐트러져 있다. 여자의 뒤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다.

    침대 위에 세워진 베개와 발치에 접혀 있는 시트는 여자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옷을 벗고 있음을 의미하며, 방 크기에 비해 큰 침대는 농부의 소박한 살림을 나타낸다.

    비너스의 다채로운 일상
    박희숙

    동덕여대 미술학부 졸업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졸업

    강릉대 강사 역임

    개인전 9회

    저서 :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클림트’ ‘명화 속의 삶과 욕망’ 등


    단정하게 빗어 넘긴 여자의 머리는 노동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농부의 마음을 뜻하고, 의자에 쌓여 있는 면직물 옷들은 농부의 검소한 생활을 나타낸다. 여자의 붉은 뺨과 의자에 기대고 선 자세는 힘든 노동에 지쳐 있음을 보여준다.

    제프 힐츠는 나치에 의해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히자 자신의 주장을 세우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나치는 사실주의 누드화를 퇴폐미술로 여겨 작품들을 몰수했다. 그는 농부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저속한 이상세계를 나타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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