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향락욕·탐욕을 간질여 죄악을 파는 시뮬라크르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

    입력2010-11-02 1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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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살을 드러낸 미녀가 전단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안드레아는 125달러, 자넷은 99달러. 원하는 것은 뭐든지, 꿈꾸는 것은 뭐든지 갖다놓은 죄악의 도시(sin city)가 돈 버는 방식.
    “이미지는 실재의 반영이다. 이미지는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킨다.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든 어떠한 실재와도 무관하다. 우리는 가상실재, 즉 시뮬라크르의 미혹(迷惑) 속에서 산다.”

    -장 보드리야르

    향락욕·탐욕을 간질여 죄악을 파는 시뮬라크르의 도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이미지가 실재를 지배하면서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극실재를 구현해낸다고 사유(思惟)했다. 보드리야르를 원용하면 우리는 ‘가방’이라는 실재가 아닌 ‘루이비통’이라는 기호를 소비한다. 기호는 실재가 아닌 이미지, 즉 시뮬라크르다.

    라스베이거스는 시뮬라크르의 도시다. 복제가 실재를 전복한다. 낮에는 천장 가득 밤하늘을 수놓고, 밤에는 낮하늘을 모사해 비를 뿌린다. 극실재의 베네치아는 이탈리아가 아닌 라스베이거스에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뉴욕, 파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모하비 사막에 우뚝 선 에펠탑은 파리의 진품보다 극실재하다. 이곳이 뉴욕인가, 사막인가. 자유의 여신상이 신기루처럼 사람을 미혹시킨다.

    중세 유럽의 성, 이집트 피라미드가 극실재로 존재한다. 원탁의 기사가 엑스 칼리버를 휘두르고, 카리브의 해적이 우리를 노려본다. 대영제국 군함이 해적선과 맞붙는다. 그뿐인가. 구겐하임미술관 브로드웨이 할리우드가 바로, 이곳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호텔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로마 황제가 된다. 꿈속에서라도 카이사르가 돼보고 싶은가. 시저스팰리스 호텔로 가라! 영어 철자도 Caesar′s palace(카이사르의 궁전)가 아닌 Caesars palace(카이사르들의 궁전).

    베네치안호텔의 운하에선 베네치아처럼 곤돌라가 주유한다. 강둑엔 프라다 페라가모 구찌가 서 있다. 패리스(paris) 호텔의 개선문을 지나면서 우리는 나폴레옹이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후예들은 이곳에서 루이비통, 샤넬을 쇼핑한다.

    미라지 호텔의 열대(熱帶)는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1908~2009)가 ‘슬픈 열대’에서 묘사한 열대보다 극사실하다. 우리가 상상하는 폴리네시아는 적도가 아닌 라스베이거스에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멈추지 않는 파티다. 이 미친 땅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스티브 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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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베이거스 야경

    라스베이거스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카지노 재벌인 스티브 윈(68)은 열대를 콘셉트로 한 미라지(mirage·신기루)호텔을 1989년 개관했다. 그는 왜 호텔 이름을 신기루라고 지었을까?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 풍경은 황무지의 연속. 잡초가 데굴거리고, 모래바람이 인다. 어린아이 키만큼 자란 다 큰 나무가 안쓰럽다. 등산가가 레드록캐니언의 지각단층을 자일과 로프를 이용해 오른다. 시뻘건 돌산이 을씨년스럽다.

    해가 진다. 모하비 사막의 밤은 먹물처럼 까맣다. 도시가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네온 조명으로 치장한 호텔과 입간판이 칠흑(漆黑) 같은 밤에 수를 놓는다. 엘도라도(El Dorado)라는 낱말이 뇌리를 스친다.

    향락욕·탐욕을 간질여 죄악을 파는 시뮬라크르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죄악의 도시’ 이미지를 벗을 생각이 없다.

    밤 11시. 축제는 지금부터다. 카지노가 늘어선 스트립 거리가 붐빈다. 호텔이 내뿜는 불빛이 찬란하다. 라스베이거스는 밤에 피는 꽃. 가슴패기를 드러내는 미니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킬힐(kill heel)을 신고 또각또각 걷는다.

    사람들은 술을 들이켜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휘청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노점에서 보드카와 오렌지 주스를 섞은 스크루드라이버를 산다. 걸으면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워도 눈총을 주는 사람이 없다. 술, 담배를 들지 않은 이가 거꾸로 어색하다. 죄악의 도시(sin city) 아니던가.

    호사스러운 루이비통 매장 맞은편에서 젊은이들이 전단을 나눠준다. 호텔방으로 찾아가는 쇼! 속살을 드러낸 미녀가 전단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안드레아는 125달러, 자넷은 99달러다. 킬리와 릴리는 ‘two girl special’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웠다. 전단에 적힌 가격은 미끼다.

    클럽은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붐빈다. 이성을 유혹할 때 호젓한 공간이 경쟁력이 있게 마련. 홀이 아닌 카바나에서 놀려면 6000~8000달러를 내야 하는 클럽도 있다.

    카지노는 황금향(黃金鄕)의 시뮬라크르다. 새벽 2시, 플래닛할리우드호텔 카지노. 60대 할머니가 담배를 물고 슬롯머신 스핀 버튼을 누른다. 옆자리에선 20대 패셔니스타가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베팅 액수를 높인다. 카지노 공기는 한국의 강원랜드처럼 심각하거나 탁하지 않다. 딜러와 플레이어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웃음꽃을 피운다. 가슴골을 드러낸 여성 딜러는 엉덩이 속살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핫팬츠를 입었다. 할아버지 딜러가 패를 돌린다. 와인이 잔에서 출렁인다. 무희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 봉을 잡고 춤을 춘다. 몸을 파는 것처럼 보이는, 금발이 돋보이는 여자가 “애인을 찾아요?(Are you looking for a date?)”라고 묻는다. 사람들이 카운터에서 캐시아웃 바우처를 현금으로 바꾼다. 60대 할아버지가 바우처를 넘기고 10달러를 건네받는다. 베팅액 1센트짜리 슬롯머신을 돌렸나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백인 부부에게로 향한다. 카지노 직원이 100달러 지폐를 1장씩 부부 쪽으로 던진다. 지폐가 100장 넘게 쌓인 지 오래다. 아내가 좋아 죽는다. 웃음을 참느라 어쩔 줄 모른다. 남편이 청바지 앞주머니에 돈뭉치를 구겨넣는다. 아내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린다. 남편 앞에서 허벅지 속살을 드러내면서 쇼걸 흉내를 낸다. 부부가 행복한 표정으로 걷는다.

    향락욕·탐욕을 간질여 죄악을 파는 시뮬라크르의 도시

    미라지호텔은 폴리네시아의 사뮬라크르다.

    아침 7시. 축제는 끝났다. 톱을 입은 여자가 MP3를 팔에 묶고 음악을 들으면서 거리를 달린다. 노인 부부가 아침 산책을 나왔다. 그 많던 담배꽁초와 술병을 누가 다 치웠을까? 지난 밤 광란은 신기루였나? 아침햇살을 받은 경찰차가 눈부시게 빛난다.

    “라스베이거스의 기저엔 어덜트 프리덤(adult freedom)이 흐른다. 죄악의 도시에서 자유를 즐겨라!”

    -라파엘 빌라누에바

    라파엘 빌라누에바는 LVCVA(라스베이거스 컨벤션 관광청)에서 인터내셔널 세일즈 디렉터로 일한다. 1989년 미라지호텔이 들어선 후 일어난 라스베이거스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자랐다. 그가 일하는 LVCVA는 컨벤션·관광산업 부흥을 책임진 곳이다. 그가 한글로 이름을 쓴 명함을 내놓으면서 웃는다.

    “차이니스 캐릭터, 재패니스로 이름을 적은 명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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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마다 지상 최대의 나이트쇼를 선사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화보집 한 권을 꺼내놓는다. 제목이 한글이다. ‘김남길 여행 그리고 기록, 인투 더 와일드’

    그가 물었다.

    “김남길을 아나?”

    “티켓 파워를 가진 셀러브리티다.”

    그가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LVCVA가 화보집 제작을 도왔다. 관광객·컨벤션 유치엔 민관이 따로 없다. LVCVA 이사회는 라스베이거스 시와 클라크 카운티, 주요 호텔 대표로 구성돼 있다. 동아시아 관광객은 LVCVA 주요 타깃이다. 그가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했다”면서 너스레를 떤다. 17년 묵은 귀한 위스키를 선물로 받았단다.

    그는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인터뷰 분위기는 딱딱했다. 통계를 인용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벗겨진 이마가 빛났다.

    ▼ 요즘 가장 공들이는 고객이 누군가.

    “미국 관광객이 85%, 해외관광객이 15%다. 해외관광객을 늘리는 게 요즘의 목표다. 중국인 관광객이 빅 포커스다. 한 자녀 정책 덕분에 결혼할 때 쓰는 돈이 엄청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허니문을 즐기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 호텔 객실이 14만8000개에 달한다. 그 많은 호텔방을 파는 게 신기하다.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 상품의 질이 높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또한 공격적으로 마케팅한다. 하나투어, 롯데관광 사람들하고도 친하다. 지난주엔 대한항공 관계자들과 라스베이거스 취항 4주년 기념 파티를 했다. 라스베이거스의 특별함은 어덜트 프리덤에서 나온다. 컨벤션, 세미나 하고 카지노, 쇼핑, 나이트 라이프를 즐긴다. 밤마다 지상 최대의 쇼를 볼 수 있다. 고객별로 선호하는 게 다르다. 아시아인은 도박을 특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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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라지호텔을 시작으로 테마를 강조한 호텔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가족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다. 죄악의 도시에서 컨벤션 도시로 이미지가 바뀌었다고도 한다.

    “턱시도를 벗고 캐주얼을 입었다. 1990년대 이후 아이들도 올 수 있는 관광지가 됐다. 하지만 아이들도 올 수 있는 곳이지 아이들을 위한 곳은 아니다. 이미지가 바뀐 건 맞다. 카지노가 아니더라도 즐길 게 많다. 카지노는 전체 수익에서 50% 밑이다. 1등은 쇼핑, 2등은 쇼다. 하지만 기저에 흐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카지노와 어덜트 프리덤. 그것이 베이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는 “컨벤션 비즈니스로 성공을 거뒀지만 도박도시 이미지를 벗을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 라스베이거스의 경쟁도시는 어딘가.

    “시장에 따라 다르다. 카지노는 마카오다. 컨벤션은 싱가포르가 경쟁력이 있다. 최근엔 싱가포르에 카지노까지 들어섰다. 지리적 이점을 가진 말레이시아도 컨벤션에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서울도 열심히 하긴 하던데….”

    카지노는 컨벤션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비즈니스맨에게 던지는 미끼이면서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이들의 주머니를 터는 수단이다.

    LVCVA는 관광객으로부터 예산을 확보한다. 호텔 객실료에 붙는 세금 9% 가운데 4.2%가 LVCVA의 수입원. 그중 절반을 교육, 인프라 등 카운티 살림살이용으로 내놓고 나머지로 마케팅을 한다.

    “우리가 지금 모여 있는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험악한 땅이었다. 선인장만 무성한 사막에 불과했다. 우리가 일궈낸 변화는 21세기의 불가사의다.”

    -플랭클린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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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

    1935년 9월30일 완공된 후버댐은 플랭클린 루스벨트 제32대 미국 대통령이 약속한 번영의 상징이었다. 1930년대 초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모하비 사막으로 몰려들었다. 조지프 스티븐스는 라스베이거스로 쇄도하는 행렬을 이렇게 묘사했다.

    “1930년 후버댐 건설을 발표한 이후 실직자들이 쉭쉭 소리를 내는 자동차 행렬에 몸을 싣거나 유니언 퍼시픽 철도의 화물차나 말을 타고 아니면 심지어 걸어서 네바다로 향했다. 새로운 이주민은 풋내기였다. 공장 노동자, 기계 수리공, 판매원, 점원, 변호사, 은행가, 학생…. 고단한 육체노동을 해본 경험이 없는 초보들이었다.”

    라스베이거스 경제는, 1931년 네바다주 의회가 미국에서 최초로 카지노를 합법화하고 후버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용틀임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은 허름한 모텔 카지노에서 여흥을 즐기고 클럽에서 고단한 몸을 달랬다. 라스베이거스에선 오래전부터 금주법을 어기고 노동자들에게 술을 팔았다. 그들이 지은 후버댐은 지금껏 라스베이거스에 물, 전기를 공급한다.

    1946년 조직폭력배 벤저민 벅시 시걸이 플라밍고를 짓는다. 라스베이거스 최초의 세련된 호텔 카지노다. 시걸은 호텔이 완공된 직후 총에 맞아 죽는다. 그가 암살된 후 새로운 마피아들이 카지노를 짓고자 라스베이거스로 몰려든다. 1969년 네바다주 의회가 공기업이나 법인도 카지노 호텔을 인수·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기업 자본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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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벤션은 라스베이거스를 먹여 살리는 젖줄이다.

    1970~90년대를 거치면서 세 명의 거물이 라스베이거스를 오늘의 모습으로 키워낸다. 도박사 출신 제이 사노는 시저스팰리스·서커스서커스호텔을 지으면서 어른들만의 도시를 온 가족의 놀이터로 바꾸어놓는다. 커크 커코리언은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 도시를 업그레이드한다. 더 크고 더 화려한 호텔은 그 자체로 수요를 창출했다. 스티브 윈은 화려함을 콘셉트로 도시를 리모델링한다.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카지노 리조트로 평가받는 ‘윈 라스베이거스’는 윈이 27억달러를 투자해 2005년 문을 연 곳이다.

    어떻게 8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황무지가 한 해 방문자 수 4000만명이 넘는 돈 잘 버는 도시로 변모했을까. 향락과 탐욕을 파고든 생각의 혁신과 도전정신이 라스베이거스를 살기 좋은 도시, 노동자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시저스팰리스, 플래닛할리우드를 비롯해 라스베이거스에서 8개의 카지노 호텔을 운영하는 해라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라스베이거스의 번영은 생존을 위한 도전의 결과”라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는 미국에서, 아니 전세계에서 저숙련, 고임금 서비스경제의 가장 발전한 형태다.”

    -핼 로스먼

    네바다주립대학 라스베이거스캠퍼스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핼 로스먼 교수는 저서 ‘네온 메트로폴리스’에서 “노동자의 천국” “비숙련 노동자가 중산층 임금을 받으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곳”이라고 라스베이거스를 묘사한다.

    “라스베이거스 노동자들은 블루칼라로서 상당히 부유하다. 좋은 학군 지역에 멋진 집을 갖고 있으며, 호숫가 오두막이나 요트도 가질 수 있다.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면서 노후에 대비해 투자한다. 부모들은 스스로 운이 좋다고 여기면서 자식들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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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빌 혼벅클 MGM리조트인터내셔널 최고 마케팅 책임자 (오른쪽) 라파엘 빌라누에바 LVCVA 인터내셔널 세일즈 디렉터

    격조를 갖춘 호텔일수록 백발의 딜러, 웨이트리스가 많다. 20~30년씩 호텔에서 일한 저숙련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사는 곳이 라스베이거스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호텔과 카지노가 직원에게 제공하는 보육·복지 서비스도 우수하다. 라스베이거스는 자본주의가 비숙련 노동자의 공리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라스베이거스는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도시다. 미국인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 1위로도 자주 뽑힌다. 플로리다주의 도시들과 함께 은퇴 후 거주지로도 각광받는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도시는 호젓하다. 환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중산층 주거지가 이어진다. 주택가 주변 골프 코스, 테니스 코트가 아늑하다. 관광객이 뿌리고 간 돈이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인다.

    빌라누에바 LVCVA 디렉터는 도시의 미래를 낙관한다.

    “호텔이 새로 생겨 2만명을 고용하면 그만큼 인구가 늘어난다. 더 많은 학교, 상점이 필요해진다. 라스베이거스는 앞으로도 팽창해나갈 것이다.”

    1980년 46만명이던 라스베이거스 인구는 현재 200만명에 달한다. 빌라누에바의 말마따나 새로운 호텔과 카지노가 들어서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노동자들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일하고자 몰려들고, 그들이 살 집을 짓고자 건축업자가 뛰어다닌다. 건축 현장은 또 다른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한국 정부는 폐탄광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공기업 강원랜드를 설립했다. 정부가 ‘죄악의 산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강원랜드가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하고 있으나 태백, 정선은 살고 싶은 도시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국민 세금으로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떠나거나 슈퍼볼을 보러 갈 수는 없다.”

    -버락 오바마

    라스베이거스를 먹여 살리는 건 마이스(MICE) 산업이다. MICE는 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박람회(Exhibition)를 가리킨다.

    MICE를 목적으로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이들은 관광객보다 체류기간이 긴데다 쓰는 돈도 훨씬 많다. 컨벤션 참가자는 회사에서 항공료 숙박비를 지원받아 일반 관광객에 비해 씀씀이가 크다. 방문 이유가 비즈니스더라도 먹고, 보고, 즐기면서 어떤 식으로든 돈을 쓴다. 회사 돈으로 죄악의 도시에서 어덜트 프리덤을 만끽하는 예도 많다.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은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꾸짖은 것이다. 라스베이거스도 글로벌 경제위기로 흔들렸다. 구제금융을 받은 골드먼삭스, 엘스파고를 비롯한 다수의 회사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던 컨벤션을 취소했으며, 회의, 포상관광, 박람회 수도 줄었다. 경제위기가 고비를 넘기면서 라스베이거스는 빠른 속도로 재도약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해 열리는 컨벤션은 2만건이 넘는다. 최대 규모의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를 비롯해 방송장비 전시회 NAB, 자동차부품전 SEMA와 AAPEX가 대표적이다.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의 부가가치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국제회의 참가자 한 명을 유치하는 것이 자동차 한 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실수익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MICE 참가자들을 카지노로도 유혹한다.

    한국의 도시들도 국제회의장을 짓고 전시·컨벤션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걸음마 단계다. 도시 브랜드 가치가 낮은데다 대형 행사를 유치하기엔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MGM리조트인터내셔널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 빌 혼벅클은 “라스베이거스에선 비즈니스와 휴식 엔터테인먼트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컨벤션은 라스베이거스가 가진 기존 장점에 비즈니스를 접목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향락욕·탐욕을 간질여 죄악을 파는 시뮬라크르의 도시

    호텔방으로 찾아가는 쇼는 매춘이다. 몸 파는 여성을 광고하는 전단.

    MGM리조트인터내셔널은 벨라지오 미라지 만달라이베이 등의 카지노 호텔을 운영하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업계의 제왕이다.

    ▼ 2008년 여름부터 시작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나.

    “2008년 여름~2009년은 어려웠다. 전체 직원의 15%를 해고해야 했다.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에 위기를 극복했다. 객실 가동률이 정상으로 회복했다.”

    ▼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에서 독점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디언 카지노를 포함하면 미국 48개 주에 카지노가 들어서 있다.

    “라스베이거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특별하다. 카지노를 접해본 사람들은 카지노에 대해 거부감을 적게 가진다. 카지노가 늘어난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우리 호텔들은 제가끔 차별화한 고객을 타깃으로 한다. 타이슨-홀리필드 경기가 열린 MGM그랜드는 레거시 브랜드다. 만달라이베이호텔의 컨벤션 센터는 미국에서 5번째로 크다. 우리 호텔들은 로맨틱하고, 럭셔리하다. 라스베이거스는 명품 쇼핑몰과 식당, 볼거리, 골프코스 등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걸 갖추고 있다. 게다가 라스베이거스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나이트 라이프를 제공한다.”

    그가 “쇼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카(KA)쇼를 보았다”고 답했다. “판타스틱(fantastic) 하지 않으냐”고 그가 되물었다. 카쇼는 1억6000만달러를 투자한 무대공연으로 MGM리조트인터내셔널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다.

    라스베이거스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도로 만든 건 프랭크 시내트라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말년을 보냈다. 지금은 셀린 디온, 엘튼 존이 노래를 부르고,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마술쇼를 벌인다. 가슴을 드러낸 무희가 등장하는 토플리스 쇼의 고전 격인 주빌리쇼를 비롯해 호텔마다 나이트쇼를 공연한다. 컨벤션은 국제전시장만 있다고 유치되는 게 아니다.

    “카지노에서 돈 버는 방법은 딱 한 개가 있다. 카지노를 직접 차리는 것이다.”

    -스티브 윈

    사막의 햇볕이 뜨겁다. 9월인데도 최고기온이 40℃를 넘는다. 사람들은 호텔 수영장에서 밤의 쾌락을 기다린다. 물살을 가르거나 잠을 자고, 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마신다.

    수영장을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쇼핑을 나갈 때도, 박람회장을 갈 때도, 쇼를 보러 갈 때도 축구장보다 큰 카지노를 지나야 한다.

    라스베이거스는 자본주의 상업이 제공하는 쾌락이 얼마나 진화할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죄악의 도시는 향락욕, 탐욕을 간질이면서 돈을 번다.

    동남아시아에서 카지노, 컨벤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성장한 카지노 자본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신(新)시장을 개척한다. 도덕국가 싱가포르도 빗장을 열었다. 한국의 도시들도 카지노를 허가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원하는 것, 꿈꾸는 것은 뭐든지 갖다놓은 도시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면서 스크루드라이버를 시켜놓고 슬롯머신을 돌린다.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잭폿을 꿈꾼다. 비행기를 타는 게이트 앞에 카지노를 설치한 센스!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분출한다. 남은 지폐를 차례로 기계에 우겨넣는다. 비행기가 뜨려면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았건만, 라스베이거스는 1달러를 남기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백일몽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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