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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⑤

도박중독으로 파멸하는 ‘놀이하는 인간’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도박중독으로 파멸하는 ‘놀이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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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으로 파멸하는 ‘놀이하는 인간’

해외 원정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가수 신정환(가운데).

놀이의 골격은 “경연, 공연, 전시, 겨룸, 우쭐거림, 뽐냄, 치장, 겉치레, 구속력을 갖는 규칙”(호이징하, 앞의 책)들과 같은 기본 요소들에서 나온다. 사람은 놀이 속에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미덕과 원칙들을 배우고 익힌다는 점이다. 놀이가 제약되는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삶을 떠받치는 기쁨의 탄력을 잃고 구질구질해진다. 삶이 있는 모든 곳에는 놀이가 있다. 놀이는 삶의 한 본질이며 가장 근본적인 영역의 하나다. 놀이는 무의미를 통해 의미를 겪게 하고, 불합리를 통해 합리를 겪게 하고, 속됨을 통해 성스러움을 겪게 한다. 그래서 호이징하는 이렇게 적는다.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놀이의 형태와 기능을 통해서, 사물의 성스러운 질서 속에 파묻혀 있는 인간의 의식이 최초의, 최상의, 그리고 가장 성스러운 표현을 찾는다. 점차적으로 성스러운 행위의 의미가 놀이 속에 스며들고, 제의가 여기에 융합된다.”(호이징하, 앞의 책)

놀이와 노름

놀이 중에서 노름이 가장 나쁜 평판을 얻은 것은 그것이 무분별한 자발성에 매이게 하기 때문이다. 도박-놀음에 중독된 사람은 왜 무분별한 자발성에 매이게 될까? 그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돈은 부수적인 것이다. 돈보다 더 중요한 심리적 동인은 도박-놀음이 그 자체로 구조화하고 있는 짜릿함, 그리고 경쟁에서 ‘이긴다’는 사실이 주는 보상 효과다. 이기는 것은 물론 도박-놀음에 걸었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따는 것이지만, 그 효과는 심리적인 영역에서 나타난다. 즉 돈을 따냄으로써 나는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느낀다. 이것이 우월성의 효력이다. 자기가 어떤 일을 잘해냈다는 만족감은 일상생활의 덧없음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다. 방송에서 재치 있는 입담을 뽐내며 대중의 사랑을 받던 가수 겸 방송인이 노름 버릇을 끊지 못해 큰 곤경에 빠졌다. 외국의 카지노에서 노름을 하다가 큰돈을 잃어 방송 녹화에도 빠지고, 도박혐의가 불거지자 그는 노름은 하지 않았고, 뎅기병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다고 거짓 해명을 해서 파장이 더 커졌다. 그의 아름답지 못한 처신은 실망을 사고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가 재기하는 일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남이 부러워할 만큼 큰돈을 벌어들이는 그가 왜 자기파멸에 이르는 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앞서 얘기한 바지만 돈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더도 덜도 아닌 도박의 중독자다.

몇 해 전 온 나라가 ‘바다이야기’에서 퍼져 나오는 수상한 악취 때문에 들끓었는데, 그 ‘바다’에는 파도와 갈매기와 고래가 없었다. 저 외딴섬까지 퍼져나간 ‘바다이야기’는 사행성 성인게임장의 이름이다. 이 ‘바다이야기’에 대해 우리 시대의 한 지성은 이렇게 말한다.



“낭만적으로 시 제목 같은 ‘바다이야기’가 도박판이라는 걸 누가 알았겠어요? 그것은 문화관광부에서 문화, 낭만주의 그리고 사행(射倖), 이 세 가지를 붙여서 한 거 아닙니까. 사람 사는 데마다 도박장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거지요. 도박은 도박처럼 보여야지요. 문화관광부에서 하는 것이면 문화 행사처럼 보여야 되고, 시(詩)면 시 같아야지요. ‘바다이야기’처럼 시와 문화와 도박이 합쳐 있는 한국의 혼란 상태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문광훈, ‘세 개의 동그라미 ― 김우창과의 대화’, 한길사, 2008)

‘바다이야기’는 서민의 쌈짓돈을 긁어내기 위해 사행성 사업자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벌인 추악한 속임수요, 위장(僞裝)이다. 이 ‘바다이야기’의 뒷전에서 한탕주의와 돈·권력을 쥔 자들의 검은 거래가 춤추고 있었다. 정부 허가를 받은 도박장들은 이밖에도 황금성, 인어이야기, 오션파라다이스 따위의 이름을 달고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로또, 스크린 경마, 인터넷 도박 사이트 따위가 도박열풍을 거들었다. 이 사행성 놀이 뒤에서 상품권 발행업체, 인터넷 게임업체, 게임기 제작업체, 조직폭력배, 영화등급심의위 관계자, 문화부 관계공무원, 청와대 비서관, 국회의원 등이 이권의 단맛을 보려고 파리떼처럼 몰려들었다. 서민들은 ‘한탕’의 꿈을 안고 ‘바다이야기’ 속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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