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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⑤

“느리게 사는 삶이 조화로운 것 같아요”

천연염색하는 작은 거인 이성래의 보성 초은당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느리게 사는 삶이 조화로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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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흐뭇한 계산법도 있구나. 정 필요할 때는 목수를 몇 번 샀고 모자라는 나무와 흙을 조금 샀지만 돈 들여 구한 재료는 그리 많지 않다.

“본채 천장을 만드는 데 새 나무가 좀 들어갔고 벽을 바르는 데 석회가 좀 들어갔고 뒷문으로 쓴 두꺼운 느티나무 널문을 100만원이나 주고 샀지요.”

대신 굵직한 기둥과 벽돌과 문짝과 기와는 대개 헌 집 허무는 데서 주워오거나 얻어오거나 품삯으로 벌어온 것들이다.

“이 반질반질한 기둥은 외삼촌네 집을 허물면서 나왔고 이 오래된 흙벽돌은 이웃집 무너진 터에서 주워왔고 저 기와는 다산초당을 헐 때 거기서 일하고 품값으로 얻어온 겁니다. 이 마룻장은 우리 동네 제일 부잣집 마루인데 집을 새로 지으면서 버리는 걸 어머니가 얻어오셨고 저 굴뚝에 얹은 기와는 광주문화센터 허물 때 가져온 겁니다.”

옹기 속에서 아름다움을 배우다



남이 버리는 걸 주워 쓰자면 취사선택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낡은 것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버리는 것이라고 무조건 새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성래씨는 낡은 재료들로 드물게 정갈하고 안온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버려진 재료로 기품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는 힘과 기운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런 힘이 이성래씨에게 깃든 내력이 궁금했다.

그는 보성읍 쾌상리 출신으로 군산대학교에서 도예디자인을 전공했다. 물감 만지는 것보다 흙 만지는 것이 좋아서 택한 도자기였다. 졸업하고 그가 찾은 곳은 당시 ‘뿌리 깊은 나무’에서 운영하던 공예업체인 징광옹기였다.

“이 지역에 옹기가마가 많이 있어요. 미력옹기는 사람이 너무 많길래 징광옹기로 갔지요. 거기 샘이 깊은 물 한창기 사장님의 동생인 한상훈 선생이 계신다는 것도 모르고 찾아갔어요. 전 스승 복이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두 형제분은 한국의 전통 문화를 위해서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준비가 되신 분들이었지요. 눈썰미가 빼어나고 열정과 성질도 대단하셨어요.”

징광옹기는 광명단 바르지 않은 전통 옹기를 만들면서, 비단과 무명을 야생의 풀과 뿌리로 염색하는 자연염색을 하고, 야생차를 뜯어 전 과정을 사람 손으로 작업하는 옛날식 덖음차인 ‘징광잎차’도 만드는 곳이었다. 징광에서 그가 배운 것은 아름다움의 본질이었다. 옹기뿐 아니라 염색과 차 만드는 기술도 같이 배웠다.

“한상훈 선생님이 첫마디에 ‘네가 지금까지 배운 지식, 기술, 습관을 다 버릴 각오가 돼 있느냐’고 물으시데요.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다 버릴 자신이 있다고 했지요.”

거기서 그는 3년간 호된 도제교육을 받는다. 한상훈 선생은 정작 구체적인 기술을 설명하지는 않으면서 “이 베에 푸른빛을 들여봐라. 이 풀을 씹어봐라, 이 흙을 치대봐라” 하는 식으로 염색과 옹기제조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만들었다.

“한 선생님은 옹기의 기본형태가 뚝배기라고 하셨습니다. 뚝배기 모양에서 찻잔도 나오고 장독도 나온다고요. 뚝배기의 선을 하루 100번씩 그렸어요. 그런 후 옹기의 형태를 훤하게 꿰게 되니까 물레 앞에 앉히시데요. 머리보다 몸으로 형태를 익히게 하셨던 거지요. 한 번 몸 틀이 잡히면 잊어버리는 것이 없다고요. 1997년 서울에서 징광옹기전을 할 때 구워낸 옹기의 선은 다 제가 잡아놓은 거였어요.”

벽(碧) 빛을 찾아서

“느리게 사는 삶이 조화로운 것 같아요”

이성래씨의 서재.

염색 또한 그렇게 몸을 굴려 배웠다. 미친 듯이 산을 헤매며 풀과 나무껍질과 뿌리를 캤고 그걸 끓이고 젓고 빨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은 적도 있다. 20여 명의 젊은이가 울퉁불퉁하지 않고 그걸 달게 견뎠다.

“쪽염색이 제일 어렵지요. 봄부터 쪽을 길러서 가을에 물을 들이는 거니까 1년을 꼬박 기다리는 작업이거든요. 선생님은 쪽을 알면 다른 염색은 절로 알게 된다고 하셨지요. 쪽은 흰빛의 천이 옥빛이 되다가 청색이 되다가 남빛이 되어가는 변화의 단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염색입니다. 남빛에서 한 단계 더 나간 푸른빛을 우리는 벽(碧)이라 불렀어요. 흰빛에서 벽빛까지 과정을 들여다보면 고된 염색과정의 힘겨움을 다 잊을 만큼 황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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