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호

“檢 핵심 수사라인 2명과 고위층 정보통에 들었다”

盧 차명계좌 발언 기소 조현오 前 경찰청장 격정 인터뷰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2-10-18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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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女행정관 거액 차명계좌 발견됐다 전해들어”
    • “이인규 중수부장, 내 말 반 맞고 반 틀리다 안했나”
    • 쌍용차 해결, 칭찬하던 사람들이 이젠 ‘폭력진압’ 추궁
    • “지시받은 작전이 항명?…국가 정체성 잡기 위해 출마할 터”
    “檢 핵심 수사라인 2명과 고위층 정보통에 들었다”
    지난 4월 퇴임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57)은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검찰은 2년 넘게 끌어온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고소사건을 수사한 결과, 조 청장 발언이 사실이 아닌데다 이를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도 명확지 않다고 판단해 9월 17일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10월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는 담당 판사가 “(차명계좌) 이야기를 전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밝힐 지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차 청문회’에서는 2009년 8월 진압작전을 놓고 “조 전 청장(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진압 자제’ 지시에 ‘항명’해 공권력을 투입했다”며 야당 의원들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그래서일까. 조 전 청장은 인터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면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고, 자칫 말실수라도 하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였다. 몇 차례 설득 끝에 10월 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그의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꾹꾹 눌러서 말하는 화법,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카락, 주먹을 쥐면 툭 튀어나오는 정권(正拳)은 그가 무골 기질임을 잘 보여주었다. 홍삼 드링크를 건네는 그에게 근황을 물었다.

    “예정대로라면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공부하러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으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갈 수가 있어야죠. 요즘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특강하고 있어요. 10월 말에도 학부생 특강이 예정돼 있고요.”

    ▼ 전임 경찰청장은 특강하면 강의료를 두둑히 받습니까?

    “그 뭐(웃음). 무료봉사하는 데도 있고요, 50만 원 주는 곳도 있더라고요.”



    ▼ 불러주는 데가 많은가보네요.

    “경찰 대상 특강도 있고요, 청소년폭력예방재단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고문을 맡고 있으니 그쪽에서 초청하기도 해요.”

    “짧게 하자”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돼 5시간가량 이어졌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체로 짧고 분명하게 답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얘기 좀 더 할게요’하며 부연설명을 했다. 언론에 비친 그의 모습은 딱딱하고 긴장한 듯 보였는데, 의외로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면이 있었다. 하긴, 경찰이 언론에 등장할 때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일이 생겼을 때가 아니던가.

    그는 9월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 청문회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청문회는 쌍용차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고, 인력감축안 발표 후 22명의 근로자와 가족이 스트레스성 질환과 자살로 사망한 사태 해법을 알아보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조 전 청장에 대해 “폭력진압으로 쌍용차 사태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공격했다.

    ▼ 쌍용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죠?

    “네. 거기서 느낀 건 ‘참 암담하다’였습니다.”

    ▼ 암담하다?

    “환노위 전체 분위기는 ‘쌍용차가 구조조정 근거로 삼은 생산성지수가 회사와 삼정KPMG에 의해 조작돼 부당하게 정리해고했다’ ‘경찰이 폭력진압했다’ 이거였습니다. 3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사실을 이렇게 왜곡해서 비난하는데 참 답답하더라고요. 새누리당 의원들도 이완영, 최봉홍 의원 외에는 동조하는 분위기였고요. 선거를 의식해 사측을 비난하고, 논란이 될 때마다 경찰을 (국회로) 불러낸다면 누가 소신 있게 경찰력을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가면 대선이 끝난 내년에는 더욱 심각할 겁니다.”

    ▼ 어떤 근거로 그렇게 예측합니까?

    “보세요. 지금 대선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복지를 확대하고 비정규직 철폐 같은 공약을 말합니다. 국민 눈높이를 잔뜩 올려놓고 있어요. 그런데 내년 우리 경제는 유럽발 경제위기 등으로 올해보다 더 어려워진다고 하잖아요? 만약 내년에 개별 기업이 정리해고하면 (노조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누가 당선되더라도 그런 갈등 상황이 올 건데 그런 상황에서 경찰은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겁니까?”

    2009년 7, 8월 쌍용차 사태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그해 1월 9일 경제위기로 인한 판매부진과 낮은 생산성 등으로 파산위기에 놓이자 쌍용차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사태는 시작된다. 4월 8일 전체 직원의 36%에 달하는 2646명을 구조조정한다는 회사 계획이 발표되자, 노조는 5월 21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은 직장폐쇄 조치를 단행하며 맞불을 놨다. 6월 8일에는 정리해고 대상자 976명을 해고하는 강수를 두며 노조를 밀어붙였다. 사측 직원들이 공장에 진입해 충돌이 시작됐고, 노조원들은 인화물질이 보관된 도장2공장으로 들어가 ‘옥쇄파업’을 벌였다. 새총으로 볼트, 너트를 쏘는 등 77일간 쌍용차 평택공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노사 양측은 해고자 974명의 처리 문제를 놓고 협상을 계속하다가 8월 2일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경찰은 8월 4, 5일 강제진압에 나서 농성파업 거점지역인 도장2공장을 장악했고, 다음 날 노사는 합의안을 도출하고 해산했다.

    “청문회는 암담했다”

    ▼ 폭력진압이라는 지적이 있었죠?

    “그게 참 어이없더군요. 경찰은 77일간 중상자 22명을 포함해 143명 다쳤어요. 경찰에 의한 노조 부상자는 5명입니다. 작전을 하던 2009년 8월 5일 오전 8시 7분부터 15분까지 8분에 걸쳐 중상자 1명, 경상자 4명이 전부입니다. 그 8분간 또 다른 5명은 도망가다가 다친 거고요. 합쳐서 총 10명이죠. 당시 노사(勞使) 충돌로 인해 사측 직원은 158명, 노조 직원은 11명 부상했고요. 노조 측 공격으로 12.5kg의 타이어 휠에 찍혀 인대가 절단된 직원도 있었어요. 노조 측은 쇠뇌박격포에 쇠파이프, 쇠도리깨, 6각형의 대형표창, 사제 총 등을 사용했고요. 이건 살상무기 아닙니까?”

    ▼ 당시 공권력 투입 요청도 많았습니까?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평택 지역사회는 물론 회사와 협력업체 임직원들이 수없이 요청했죠. 언론은 경찰이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고요.”

    그는 테이블에 놓인 홍삼 드링크를 들어 단숨에 마시더니,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갔다.

    “7월부터 파산 얘기 나옵니다. 7월 29일 협력업체들이 파산 결의를 했고, 8월 5일에는 11개 협력업체가 이미 파산 절차에 들어갔어요. 한상균 쌍용차 노조지부장이 60% 정리해고안(핵심 쟁점이던 해고자 974명의 처리를 놓고 고용관계 유지 40%, 정리해고 60%를 골자로 한 안)을 받아들이기로 구두 합의를 합니다. 그런데 강경파가 반대하니까 한 지부장은 반대로 총고용 보장을 주장해요. 번복한 겁니다. 그래서 8월 2일 협상이 결렬돼요. 이러니 사측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경찰이 안 들어가면 우리가 들어간다’고 흥분합니다. 언론에서도 ‘위험하다고 경찰이 손을 놓고 있으면 되겠느냐’는 지적이 많았고요. 국가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였죠.”

    ▼ 외부세력의 반대라면?

    “8월 2일 협상 결과를 번복한 것은 한 지부장 개인이 책임질 문제라고 봐요. 정갑득 금속노조위원장과 한상균 지부장이 참석해 구두합의를 했으니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었죠. 그러나 사태해결에 77일이 걸린 이유는 분파별 현장조직이 각 단체 지시를 받고 의견을 듣다보니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게 커요.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비교적 합리적이었지만, 각 하부조직과 외부 단체가 개입하다보니 내부적으로 의견 일치가 어려웠어요(당시 검찰은 농성을 지휘하는 외부 세력 숫자는 5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 테이저건(전기충격기) 사용은 과잉진압이란 지적이 있는데.

    “조합원 얼굴에 테이저건을 사용했다고 폭력진압이라고 하던데요, 언제 사용한 줄 압니까? (2009년) 7월 22일 저녁시간에 특수부대 출신 노조원 80여 명이 기습 공격하면서 화염병을 던졌는데, 경찰 2명이 화염에 휩싸였어요. 이 중 1명에게 집단으로 쇠파이프를 휘둘렀습니다. 부하 순경이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 팀장이 구하려고 테이저건을 사용했어요. 어떻게 된 게 사용하게 된 상황은 설명하지 않고 이후 단계만 말합니까. 그 순경은 2도 화상을 입고 22일간 입원했어요. 손가락 봉합수술도 받았습니다. 테이저건은 비살상장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장비입니다.”

    ▼ ‘항명’하고 진압작전 들어갔다는 주장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것도 그래요. 8월 4일까지는 강희락 경찰청장에게 다 보고해 1차 작전을 했어요. 5일은 새벽 5시에 작전을 하려고 3시에 인력과 장비 동원을 끝내기로 했어요. 그런데 시위대가 새까맣게 모여 주요 길목에서 점거시위를 하면서 이동로를 차단했죠. 4시 조금 지나 강 청장에 전화 보고를 했습니다.”

    ▼ 뭐라고 했습니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작전 시간(5시)이 조금 늦어진다고 했어요. 아무 말 없었습니다.”

    ▼ 이후에 전화가 왔나요?

    “네. 5시 되기 얼마 전에 ‘작전 그만둬라. 위험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안전하게 잘하겠다’고 했어요. 도장공장의 인화성 물질 8400L는 2중 시건장치가 된 공간에 밀폐 보관돼 있었어요. 노조집행부에 미리 알리고, 공장 일부만 들어가면 극단적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고 보고했어요. 그래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 그래서요?

    “‘도장공장을 폭파하겠다’는 말이 나도는 상황이었는데, 객관적인 정보를 가진 현장 지휘관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죠. 국가공무원법에도 이의신청은 할 수 있어요.”

    ▼ 청와대에 이의신청을 했나요?

    “30분 정도 고민하다가 BH(청와대)에 상황을 설명했어요. 그랬더니 오전 6시 반 조금 안 돼 강 청장이 전화를 해서 “주의해서 작전을 하라”며 번복지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작전을 했고요. 어디까지나 지시를 받고 한 작전입니다. 이의신청을 한 게 어떻게 항명입니까.”

    ▼ 농성 노조원들의 식수와 의약품 반입 차단 조치는 과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청문회에서 사과하라는 질책도 들으셨죠?

    “사과라는 게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진심이어야 하지 않나요? 77일간 노조 측은 살상무기를 동원했고, 경찰은 143명이 부상했는데 우리가 먼저 사과를 하라는 게 온당합니까. 먼저 쌍용차 전 노조 측에서 사과를 하고, 폭력 부분에 대해선 서로 사과하고, 이렇게 접근하는 게 맞지 않나요?”

    9시간 청문회서 10분도 말 못해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청문회 무용론을 꺼냈다.

    “2009년 당시에는 국민이 잘했다고 칭찬했고, 당시 국감 후 야당 국회의원 2명은 나에게 잘했다고 응원했어요. 3년 지났다고, 선거 앞이라고 이렇게 바뀌면…. 그리고 청문회는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듣는 자리 아닙니까? 한쪽은 온갖 얘기 다하고, 한쪽은 말 못하게 하고 창피를 주는 게 청문회는 아니잖아요? 청문회 경험하면서 ‘아, 이건 아니구나’하고 생각했어요.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 혹시 정치를 하겠다는 뜻입니까?

    “국회의원에 출마하든, 뭐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겁니다. 낙선하더라도 국민에게 알릴 수 있으니까요.”

    ▼ 청문회에서 몇 분 발언했습니까?

    “오후 2시 시작해 11시 정도에 끝났는데, 내가 얘기한 시간은 다 합쳐서 10분도 채 안 됐어요. 말을 잘라서 얘기를 못했어요.”

    ▼ 그렇다면 두 달 이상 사측과 협력업체, 언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공권력 투입을 자제한 이유는 뭡니까?

    “정리해고에 대해 나도 생각이 많아요. 쌍용차 입장에선 구조조정이 없으면 추가자금 지원을 못 받아요. 그리고 남게 된 직원들과 1~3차 협력업체 직원 10만 명의 생존권도, 국가 정체성 문제도 중요하고요. 그래도 신자유주의 경제론자들처럼 쉽게 얘기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두 달 욕먹어가며 지켜본 것도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더 고용보장 받고, 퇴직금 더 받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구조조정 관련법 정비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은 중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죠.”

    의문의 10만 원 수표 20장이 단서

    기자는 이즈음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조 전 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지난 2010년 3월 서울청 소속 5개 기동단 팀장급 464명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2009년 5월 22일) 계좌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거액의 차명계좌가, 10만 원짜리 수표가…특검을 하려고 하니까 권양숙 여사가 민주당에 특검을 못하게 한 겁니다”라고 발언해 노 전 대통령 유족으로부터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당했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09년 5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 관련 혐의를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면서 ‘역사적 진실은 수사 기록에 남겨 영구 보존될 것’이라고 했다.

    조 전 청장은 5월 검찰 조사에서는 “권양숙 여사의 여비서 2명에게 우리은행 삼청동 지점에서 개설한 10억~20억 원 계좌가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발언에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폈지만, 검찰은 “그런 계좌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 기소됐습니다.

    “네. 예상치 못했어요. 검찰 공소장에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전날 발견된 계좌는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청와대 여행정관 2명 명의의 거액 계좌도 없다는 거죠.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차명계좌가 서거 전날 발견됐다면 노 전 대통령께서 그 내용을 실시간으로 알았다는 말이 됩니다.”

    ▼ 말씀하시죠.

    “내가 서류를 보니까, 2008년 11월 박연차 사건 수사가 시작됐고, 결정적 단서는 수사 초중반에 확인했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차명계좌 발견 시점은 서거 전날이 아니라 이전이 되겠죠. 검찰은 내가 말한 ‘서거 직전’에는 없었다는 거고요. 나에게 말한 분의 말을 그대로 특강 때 말했는데, 공소장을 보니 ‘그건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발견된 차명계좌 내용을 서거 전날 들었다면 말이 됩니다. 수사 기록에도 10만 원권 수표 20장의 이상한 돈 흐름을 발견해 계좌추적을 했다고 돼 있거든요. 20장. 검찰은 차명계좌 추적의 단서가 된 수표 20장을 얘기하는 거 같아요. 그건 단서일 뿐이죠. 그걸 바탕으로 10일 정도 계좌추적을 했다는데, 그러면 (차명계좌) 발견된 시점은 그전으로 봐야죠.”

    “계좌 발견 서거 전날은 아니란 뜻”

    ▼ 20장 얘기는 언제 들었습니까?

    “전 20장이 있는지 200장이 있는지 몰랐어요. 검찰 소환조사(2012년 5월 9일) 이후 언론을 통해 알았습니다.”

    잠시 지난 5월 채널A 보도를 살펴보자.

    “2009년 초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계좌를 전방위로 추적하던 대검 중수부가 의심쩍은 10만 원짜리 수표 20장을 발견했다. 대통령 퇴임 후 부인 권양숙 여사가 사용한 수표로, 비서의 계좌에서 발견됐다. 권 여사가 생활비로 건넸는데 비서가 자신의 계좌에 넣어놓고 카드로 사용하다가 자금 추적에 포착됐다. 검찰 관계자는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이 관리했던 차명계좌는 존재했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에 발견된 것은 이 수표와 계좌뿐’이라고 말했다.”

    당시 검찰 수사기록은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밀봉(密封) 조치됐다.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조 전 청장은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차명계좌와 10만 원권 수표 얘기를 처음 꺼냈다. 특강에서는 ‘여 행정관’과 ‘우리은행 삼청동 지점’ 얘기는 없었다. 특강 이후에 들은 내용을 발언의 진실성을 강조하고 기소를 피하기 위해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을 수 있다. 검찰은 조 전 청장의 발언 중 ‘노 대통령 서거 직전’과 ‘여 행정관 계좌’에 포커스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 검찰은 조 전 청장이 ‘뻥튀기하고 있다’고 본 거네요. 한편으론 몰랐던 사실 하나가 알려진 셈이고요.

    “검찰이 이미 2009년 초 10만 원권 수표를 추적했어요. 그게 단서가 돼 차명계좌를 추적한 것 아닐까 생각해요. 특강에서 ‘여 행정관’이나 ‘노 전 대통령 계좌’라고 얘기한 적 없어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듣진 않았어요. 노 전 대통령이 부담을 가질 만한 사안, 가족이라든지, 그런 사람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고 들었거든요.”

    ▼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그 얘기는 안 할 겁니다.”

    ▼ 검찰 수사팀 관계자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는 한동안 오른쪽 검지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 뭔가를 생각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찰의 핵심 수사라인 2명과 많은 정보를 아는 인사 A씨에게서 들었습니다. 2명에게는 직접, 1명에게는 간접적으로 들었고요.”

    ▼ A씨는 누구입니까?

    “현 정부 고위층을 두루 잘 아는 정보가 빠른 분입니다.”

    ▼ 수사 상황을 잘 아는 사람입니까?

    “그럴 수도….”

    ▼ A씨가 한 차명계좌 발언을 2010년 특강 때 전했고요.

    “네. 저녁식사를 하면서 들었습니다.”

    ▼ ‘여 행정관’ ‘우리은행’ 얘기는 결국 검찰 수사라인 2명이 한 이야기인가요.

    “그중 1명은 직접 수사했던 사람인데, 2010년 12월에 그 얘길 했어요. ‘조 전 청장을 수사하라’는 피켓시위 모습이 TV에 방영되자 흥분해서 먼저 얘기를 했다더군요. 10만 원짜리 수표와 여 행정관에 대해서요. 여 행정관 계좌를 추적했더니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고 했습니다.”

    ▼ 전해 들은 내용인데 법정에서 밝히면 되지 않나요.

    “그래서 사람을 시켜 물어봤더니 ‘내가 발언한 적 없다’ ‘녹음된 게 있느냐’고 했다더군요.”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선 여러 차례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기자는 질문을 계속했다.

    “이인규 중수부장 발언 의미심장”

    ▼ 또 한 명은 누구입니까?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입니까?

    “흠…. (인터뷰) 그만하시죠.”

    ▼ 이 전 중수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조 전 청장을 알지도 못한다. 수사팀에게 들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그 양반은 내 말에 대해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상한 돈 흐름이 발견됐으면 (차명계좌라는 게) 틀린 것도 아니지 않냐’고 인터뷰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뭡니까?”

    이 전 중수부장은 서거 전날 차명계좌가 발견됐다는 주장에 대해 “그 얘기는 틀리다”고 말해 그전에 발견됐음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조 전 청장은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그는 미안한 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변호인이 판사 출신인데, 판사들은 정치적으로 판결하지 않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법정 얘기 꺼내 괜히 판사 심기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나한테 불리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 소를 취하시킬 노력은 하지 않았나요?

    “노력했어요. 취하하려는 사람도 있었는데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 안 됐죠. 뭐, 있는 사실 제대로 다할 만큼 다하고 기다려봐야죠. 이유 불문하고 노 전 대통령과 유족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은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나는 역사를 평가할 때 단세포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공과(功過)를 같이 봅니다. 노 전 대통령처럼 소외받는 계층을 보듬으려 했던 대통령이 없잖아요? 이번 일로 노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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