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새누리당, 4대 惡法 재개정 약속 안 지켜
- 운동권 개방이사 개입 등 독소조항 그대로
- 사학법인聯 “사학이 운동가 먹잇감으로 전락”
- 최근 정책포럼 개최… 대선 후보에 공약 채택 요구
사립학교 법인들이 “이명박 정부에 결국 속았다”면서 들끓고 있다. 2007년 대통령선거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을 약속했다. 사학계는 사학법을 개정하거나 사학진흥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사립학교 경영자와 사학재단은 현행 사학법을 악법(惡法)이라고 규정한다.
사학법은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 개정됐다.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현 민주통합당) 주도로 개정된 사학법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사학재단, 기독교계 등이 반발하자 2007년 7월 임시국회에서 재개정이 이뤄졌으나 “독소조항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사학계는 주장한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사학법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사학 관련 단체들은 독소조항을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권과 진보 교육단체는 사립학교 규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쪽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는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사학법 개정 이슈는 대선 쟁점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독소조항 없애야”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대학총장협회,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는 10월 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사학의 자율성 신장을 위한 국제비교 정책포럼’을 공동으로 개최했다. 10월 7일엔 서울 중구 장충동 앰버서더호텔에서 해외 전문가를 초청한 기자간담회도 열었다.
오정석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동래학원 이사장)은 “사학법에 담긴 독소조항 탓에 사학이 운동가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사립학교는 서구식 교육을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데 선도적 구실을 했다. 기독교 학교를 중심으로 국민계몽을 이끌었고,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가의 산실 기능을 했다. 6·25전쟁 이후 국토가 폐허가 되자 독지가들이 교육입국 정신으로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웠다.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데 사학이 공헌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길을 걸어온 사학이 잘못된 사학법 탓에 편향된 이념을 가진 운동가들의 먹잇감이 돼버렸다. 사립학교에서 구성원 간 편 가르기,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임시이사가 사학을 장악한 예도 있다. 좌파가 학교를 탈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건 아니다. 바로잡아야 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개방형이사를 기업의 사외이사와 동일한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외이사는 주주가 선임한다는 점에서 개방이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학사운영, 인사관리를 비롯한 사학 운영 전반에 법적 심의권을 갖는 교원인사위원회가 법인 이사회의 고유 권한을 무력화하고 있다. 개방이사로 들어온 교육운동가, 시민운동가가 분란을 일으키면 막을 방법이 없다. ‘사고 법인’으로 지목되면 임시이사가 파견된다.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감시·감독기관에서 파견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기존 권위를 깎아내리고 있다.”
박근혜, 53일간 장외투쟁
사학계는 2005년, 2007년 사학법 개정을 개악(改惡)으로 규정한다. 사학법의 13개 조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규정한 헌법 정신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 특히 개방형이사제, 교장 임기 제한, 교사가 참여하는 교원인사위원회의 임면권 등을 독소 조항으로 지적한다.
1963년 제정된 사학법은 2005년 12월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이 개정안을 직권상정한 뒤 열린우리당 주도로 강행 처리했다. 사학법 개정은 노무현 정부가 집권 직후부터 내세운 이른바 ‘4대 개혁 법안’(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과거사법 및 신문법 제정) 중 하나다.
제1야당 대표이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사학법 강행 처리와 관련해 127명의 국회의원을 이끌고 거리로 나갔다. 국회 등원과 예산 심의를 거부하고 53일 동안 장외투쟁을 벌인 것. 박 후보는 2007년 1월 16일 사학법 무효투쟁 대전 본부 발대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사학법 투쟁은 한나라당과 나라를 위해 중요하다. 여권이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있다. 사학 비리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내놓은 법안이 더 엄격한데도 정부와 여당이 날치기를 강행했다. 학교를 정치와 이념의 장으로 만들어 전교조 손에 넘기려는 것이다. 이상한 체제가 들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나라당이 국민과 함께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은 우리의 의무다.”
여야는 극한 대립 이후 물밑협상을 거친 뒤 사학법을 재개정하기로 합의하고 2007년 7월 재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재재개정’을 약속하고 집권했으나 보수와 진보 간의 극단적 시각차 탓에 좌고우면하면서 이 법에 손을 대지 못했다. 개정 의지도 거의 없었다.
진보 세력은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등장하면 사학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교조 위원장 출신인 정진후 무소속 의원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교조 등과 다섯 차례의 토론회를 열고 사학법 개정안을 만들고 있다. “적어도 2005년 수준으로 사학법을 되돌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0월 8일 열린 사학발전을 위한 정책포럼은 일본 중국 독일 벨기에의 교육 전문가를 초청한 국제학술대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외국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사립학교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사학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과제와 해법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의 행사였다. 이날 행사에는 강창희 국회의장 등 정치권 인사를 비롯해 사립대 총장과 사립 초중고등학교 교장 및 교직원 등 1800여 명이 참석했다. “사학의 자유와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사학 구성원의 뜻과 의지를 모으는 자리였다”고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설명했다.
10월 7일 서울 장충동 앰버서더 호텔에서 열린 사학 단체 주최 기자간담회.
사립학교 경영진과 교직원들은 이날 사학 발전을 위한 자정 노력과 교육 당국의 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사학법을 개정해 개방형이사제와 학교장 임기 제한, 교원인사위원회 및 대학평의원회의 심의 기능을 폐지해야 한다” “법인회계와 학교회계를 통합해 사학의 자율성을 국제적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결의문에 담겼다. 정책포럼에 참석한 사학 단체들은 이 결의문을 여야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한 뒤 공약에 반영해줄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김병묵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전 경희대 총장)은 기조강연에서 “사학법은 악법인 만큼 수정 또는 폐기돼야 한다. 여야 대선 후보들은 사학법 관련 견해를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책포럼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사립학교는 설립할 자유는 있지만, 부모의 학교선택권과 사학의 학생선발권이 없다. 자유를 제한하는 각종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한국은 중등사학의 자율성이 특히 제한돼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자율성, 다양성을 토대로 무섭게 발전하는 선진국 교육을 따라잡기 어렵다. 한국의 학교 교육은 상당 부분을 사학에 의존하면서도 대부분의 사학이 자율성을 빼앗기고 공립학교와 차별성이 없는 ‘무늬만 사학’인 상태다.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줄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나 선택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사학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제공하는 교육에 적합한 학생을 입학시켜 교육시키고자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인정되지 않거나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많은 학생이 해외로 조기유학을 떠난 것을 보면 맞춤형 교육을 원하는 학부모와 학생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특수중학교나 특목고 또는 자율형 학교의 설립과 운영이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는 또 사학법인이 건학이념을 교육과정에 원활하게 반영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학교법인을 설립해 사립학교를 경영하도록 하고 있다. 사학재단이 설립 이념에 따른 교육을 학생에게 제공하려면 그에 걸맞은 교직원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재단이 학교 경영과 관련해 효율적인 조직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사학법은 다양한 방법으로 학교법인이 건학이념을 교육과정에 투영시킬 통로를 제한하고 있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관계자는 “사학의 자율성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현행 사학법은 사학을 지원·육성하는 법이 아니라 규제하는 법이다. 조항 몇 개를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사립학교를 규제·감독 대상이 아닌 진흥·지원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사학의 자율적 운영과 발전은 교육을 선진화하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된다. 사학이 다양한 건학이념에 따라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할 수 있게끔 국회와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원 부족으로 존립 위기
오정석 회장의 설명이다.
“기업이나 공장을 가진 법인은 사정이 다르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된 학교일수록 가난하다. 학교법인이 보유한 수익용 재산은 임야나 전답 같은 저수익 자산이 대부분이다. 광복 이후 교육 수요가 팽창할 때 정부가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 기준을 낮게 규정했다. 학교법인 처지에서 보면 법령이 정한 설립기준에 맞춰 인가를 받고 학교를 세웠는데, 이제 와서 돈을 충분히 내놓지 못한다고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나라가 학교 세울 돈이 부족할 때 국가가 사학의 도움을 받았다. 정부가 학교법인의 공적을 인정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수익용 기본재산이 20억 원이 되지 않는 곳이 전체 사립학교 법인 중 64.7%인 533곳에 달한다. 사학법인연합회 관계자는 “사립학교 법인들이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동시의 정부가 재정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 교수는 “국·공립학교와 동일한 납입금을 받으면서 운영되는 사립 중고교에 투입되는 공교육비가 더 적다. 이는 사립학교들이 학교법인의 희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재정 지원에 있어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 차별이 있어선 곤란하다. 학교법인은 사학을 설립해 운영하는 시설물 법인이지 수익을 얻고자 활동하는 영리법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학생을 돕기만 하는 장학법인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수익사업을 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건 오히려 폐해만 낳을 뿐이다. 교육 사업과 관련한 권한은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수익사업을 하라고 강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사학도 운영을 더욱 투명하게 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사학법 개정안에 학교법인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을 의무로 하는 조항이 담겨야 한다.”
벨기에 틸뷔르흐대의 얀 드 흐로프 교수는 정책포럼에서 “사학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사립학교를 신뢰하고 그들에게 자율적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며 부모들이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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