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버드대 신학부 카렌 L 킹 교수가 최근 ‘예수의 아내 복음서(The Gospel of Jesus’s Wife)’라는 파피루스 문헌의 파편 하나를 공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예수의 결혼 여부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주류 기독교를 통해 독신으로 알려진 예수가 실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고, 일부에서는 예수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는다. 예수의 결혼을 둘러싼 다툼의 논거를 통해 진실을 찾아봤다.
카렌 킹 교수는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와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등의 책을 낸 인물로, 콥트어로 된 4세기 나그 함마디(Nag Hammadi·이집트 지방 케나주의 도시) 문서 및 영지주의 연구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킹 교수는 이 문서의 ‘아내’는 다른 뜻으로 이해될 수 없고, 말 그대로 ‘아내(wife)’를 의미한다고 했다. 또 파피루스 전문가들에게 조회해본 결과 이번에 발견된 문헌이 인위적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그는 문서 자체는 4세기의 필사본이지만, 내용은 본래 기원후 150년경 그리스어로 작성된 것이라 본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하버드대 신학부 홈페이지(www.hds.harvard.edu/faculty-research/ research-projects/the-gospel-of-jesuss-wife)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 포함된 복음서에서나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복음서에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특별히 가까운 관계라는 표현은 여러 번 나오지만 ‘나의 아내’라는 언급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이 문서의 발견으로 예수의 결혼 문제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필자는 2001년 발간된 ‘예수는 없다’(현암사)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소상하게 다룬 적이 있다. 예수가 결혼했던가 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의됐다. 그러다가 60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 의해 많은 사람이 예수의 결혼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그 소설에 의하면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유복자까지 두었는데, 그 딸이 후에 프랑스에서 왕가를 이루었다. 소설에서는 예수의 결혼이나 딸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교회가 그것을 비밀로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예수의 결혼 여부를 밝히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예수가 결혼했을 것이라는 주장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 심지어 예수가 동성애자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서로 엇갈려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세 가지 주장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이런 토의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알아보기로 하자.
“예수는 결혼했다”
우선 예수가 결혼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피스대의 종교학 교수였던 윌리엄 E 핍스는 ‘예수는 결혼했던가’라는 책에서 예수가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핍스를 비롯해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에세네’라는 극단의 금욕주의 종파 사람을 제외하면 멀쩡한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한 뒤 “생육하고 번식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따라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는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됐다. 종교적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모두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말이 성경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데, 당시로서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결혼한 사실보다 더 특별한 일이기에 정말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부각해서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둘째, 복음서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가 보통 이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다녔다. 당시 유대 사회의 관습으로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제자로 삼을 수 없고, 여자에게 가르침을 줄 수도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장거리 여행을 비롯해 예수가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것은, 보통의 남녀 사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핍스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부인이었으며,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가출해 ‘막달라’라고 하는 갈릴리 해변의 조그만 어촌, 한국으로 말하면 기지촌 같은 문란하기로 악명 높은 동리로 가게 됐을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예수가 그를 다시 데리고 와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고’ 부인 겸 제자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한다.
셋째, 사람들이 예수를 ‘랍비(선생)’라고 불렀는데, 랍비는 보통 결혼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라는 설명도 있다. 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다. 예수가 결혼하지 않고 가르치려 했기 때문에 일부 사람이 반발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결혼을 해야 선생으로서 가르칠 자격을 얻었다.
넷째, 성서학자 중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요한복음2:1~11)가 예수 자신의 결혼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예수와 제자들이 함께하는 혼인 잔치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특히 포도주가 떨어지자 자기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도 손님이 하기엔 지나친 일로 보인다는 점에서다. 유대 관습에 따르면 잔칫집에서는 신랑과 신랑의 어머니, 그리고 연회장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마리아와 예수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등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다. 특히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통해 포도주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자 그것을 맛본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고 했다고 하는데, 이때 ‘신랑’이 바로 예수가 아니었던가 하는 주장이다. 물론 예수를 신랑으로 명기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예수가 신랑이었다고 주장하는 성서학자들은 성서 편집 과정에서 예수의 결혼을 은폐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다섯째, 성경 ‘마가복음’에는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두었다가”(16:1)라는 대목이 나온다.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 명단이 나올 때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언제나 처음으로 거론된다. 여기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남자의 시체에 향을 바르는 일은 오로지 부인이나 식구들에게만 허용된 일이었는데, 막달라 마리아가 이 일을 하러 갔다는 사실이다.
“가나의 잔치는 예수의 결혼식”
여섯째,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복음서인 ‘빌립복음서’를 보면 “구주의 반려자는 막달라 마리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녀를 모든 제자보다 더 사랑하고 자주 그녀의 입에 입 맞추었다. 다른 제자들이 이런 일을 불쾌하게 여겨 그에게 말했다. ‘왜 우리 모두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시나이까?’ 구주께서 대답하셨다. 왜 내가 그대들을 그녀처럼 사랑하지 않는가? 장님과 눈이 밝은 사람이 어둠 속에 있으면 둘 다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빛이 이르면 눈이 밝은 사람은 빛을 볼 것이지만 장님은 그대로 어둠 속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63-63)라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였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짐작하는 이들이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또 다른 견해도 들어볼 만하다. 놀랍게도 예수가 분명 동성애자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대표적인 학자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성마리아교회 교구장 몽피오르를 들 수 있다. 몽피오르는 1967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교역자들을 위한 연설을 하면서 “남자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결혼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가갈 여자가 없는 것인데, 이 두 가지 다 예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예수의 경우 전도자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그것도 말이 안 된다. 그가 이런 사명감을 갖게 된 것은 나이 서른에 세례를 받으면서일 터인데, 그전에 결혼 못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몽피오르에 의하면 결론은 단 한 가지, 예수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드라는 신학자는 한술 더 떠서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한다. 예수가 말하기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마태복음19:12)고 했는데, 이것이 성(性)에 대한 예수의 혐오감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증거라고 했다. 자기가 왜 이토록 성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됐는지 모르던 예수는 제자들이 생기고 그중 특히 ‘사랑하는 제자’와 관계를 갖게 되면서 동성애적인 성향에 눈뜨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제야 자기가 성 자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혐오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성 간의 성에 대해서만 그러함을 알게 됐다는 주장이다.
“예수는 동성애자다”
가드의 주장은 계속된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동성애는 금기였기 때문에 예수는 이런 충동을 억제하고 부정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억제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자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을 줄을 뻔히 알면서도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장의 돈줄에 해당되는 환전상의 상을 뒤집는 등 소란을 피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발견한 미국 청교도 젊은이가 자신의 처지가 너무 무섭고 혐오스러워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 군대에 지원하고 가장 위험한 임무에 스스로를 내던지던 행위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물론 예수가 결혼하지도 않았고, 동성애자도 아니라고 하면서 지금껏 열거한 사실들을 논박하는 학자도 있다. 존 밀러라는 캐나다의 신학자 겸 심리학자는 ‘30세의 예수’라는 책에서 위의 주장을 모두 논박하고 종래까지 정통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옹호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가 동성애자가 아닌 가장 큰 이유는 동성애 남자의 경우 부성(父性)적인 요소를 싫어하는 것이 보통인데, 예수는 “아버지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는 식으로 ‘아버지’ 하느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소설 ‘다빈치 코드’`는 이 그림에 예수의 결혼 사실이 표현돼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 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일찌감치 ‘신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특별한 사명을 인식하고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 그러기에 보통 사람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결혼을 해서 아내와 자식을 돌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가복음10:45) 하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한다.
‘빌립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예수의 결혼을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는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구주의 반려자’라는 말로 쓰인 ‘koinonos’라는 단어가 영어로 ‘companion’ ‘partner’ 정도이지 ‘wife’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또 막달라 마리아가 정말 예수의 아내였으면 예수가 그의 입에 키스를 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불쾌하게 여겼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그가 예수의 아내가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단 그녀가 다른 사람과 달리 빛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특별한 제자였기에 그를 더욱 사랑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면서 신인 존재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서 제자 요한에게 “엄마를 부탁해!”라고 한 것도 또 다른 증거로 제시된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의 아내였으면 “내 아내도 부탁해!”라는 말을 했을 터인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아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킹 교수 자신이 밝힌 것처럼 이번에 공개된 이 파편에 의해 예수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더욱이 댄 브라운의 소설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기원후 2세기에 벌어진 예수를 어떻게 이해할까 하는 논쟁에서,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고 믿기로 한 주류의 흐름과 달리 예수가 결혼했다고 믿은 일부 그리스도인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첫 자료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정통 그리스도교에서는 왜 예수가 결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까? 초대 교회 이후 점점 성(性)을 불결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런 경향 때문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일생 성과 연관 없이 ‘영원한 처녀성’을 유지한 여인으로 묘사됐다. 이른바 마리아의 ‘무염(無染)’ 설이다. 이런 흐름 때문에 예수가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 특히 가톨릭의 경우 예수를 본받아 독신생활을 하는 사제에게 예수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은 어느 면에서 당혹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를 살펴보자. 킹 교수에 의하면, 기독교 초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결혼을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하는 문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다가 기원후 200년이 돼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하는 문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활동한 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인 중에는 결혼이 마귀가 세운 간음행위라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고, 스스로도 사람들에게 예수를 본받아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10년에서 20년 후 신학자 터툴리아누스가 나타나 예수가 “결코 결혼하지 않았다”고 단언하고 그리스도인들도 결혼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보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을 신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교리에서는 예수를 ‘진정으로 인간(vero homo)’‘진정으로 신(vero Deus)’이라고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인간적인 면보다 점점 신적인 면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신으로서의 예수는 인간과 같으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스스로 고자’가 돼 결혼생활 같은 것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천국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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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예수가 꼭 독신으로 살았다고 고집해야만 할까? 붓다처럼, 공자처럼, 소크라테스처럼 결혼했으면 안 되는가? 사실 예수가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다. 단 이런 논쟁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예수의 인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를 신으로만 취급해 그가 마치 하늘에서 온 외계인처럼 지구에 잠깐 다녀간 것으로만 믿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를 인간의 뜨거운 고뇌나 유혹과는 아무 상관없는 분쯤으로 생각하려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고, 예수를 다시 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성경에 의하면 예수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히브리서4:15)다. 그러면서 우리와 그렇게 다르신 분, 여기에 그의 위대하심이 있고, 그러기에 우리가 그를 따르고 그에게서 배울 점이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그의 결혼 여부가 아니라 그가 인류를 위해 보여준 위대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