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호

“대북정책에 ‘개방’ 쓰면 북한은 알레르기 반응”

‘김정일 死後 10개월’ 북한서 지켜본 박상권 평화車 사장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입력2012-10-22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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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은‘김정은=완결된 수령’모시는 분위기
    • 와병說 김경희, “안색 많이 나빠 보여”
    • 장성택은 주변 잘 이끄는 특출한 인물
    • 김정은 “두 눈으로 세계를 보라” 인민에 요구
    • 105층 유경호텔 엘리베이터 못 구해 전전긍긍
    “대북정책에 ‘개방’ 쓰면 북한은 알레르기 반응”


    9월 7일 북한 고려항공 비행기가 중국 선양(瀋陽)을 떠난 지 1시간 만에 평양 상공에 들어섰다. 이달에만 두 번째 방북. 외장 공사를 마무리한 유경호텔이 햇볕을 받아 빛났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북한에서 자동차조립공장, 호텔을 경영한다. 이탈리아 자동차 피아트(Fiat) 모델을 조립해 ‘휘파람’ ‘뻐꾸기’ ‘삼천리’라는 브랜드로 판다.

    “북한을 19년간 오갔는데 뭘 모르겠어요. 사람 사는 걸 모르겠소. 마음껏 돌아다니는데 뭘 모르겠소.”

    평양을 들락거린 지 19년째다. 방북 횟수가 206회에 달한다. 지난해 북한에서 자동차 1872대를 팔았다. 올해는 9월 현재 1500대를 팔았다고 한다. 평화자동차 400명, 보통강호텔 600명, 세계평화센터 20명을 비롯해 1000명이 넘는 북한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그는 남북 합영기업 경영자다. 19년간 거의 매달 한두 차례씩 평양을 찾았다.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북한 출입이 자유롭다.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후에도 거의 매달 방북해 북한의 변화를 눈으로 들여다본 유일한 한국계 인사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김경희 노동당 비서(김정일 국방위원장 여동생),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주규창 기계공업부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비롯한 북한 인사를 올해 평양에서 만났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인터뷰 때수시로 “이 대목은 쓰면 안 된다”면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구했다.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데 그것 참,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게 그게 아닌데…”라면서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에 엉터리가 많다고도 했다.

    거의 매달 평양 방문

    그는 북한 체류 경험이 한국계 인사 중 가장 많으며 지금도 수시로 북한을 드나든다는 점에서 민간 인사 중 최고의 북한통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비즈니스 이해가 남북관계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발언의 행간을 읽어야 할 대목도 있을 것이다.

    ▼ 북한에서는 김정은을 어떻게 호칭하나.

    “최고사령관 또는 원수라고 칭한다.”

    ▼ 김경희, 장성택 부부는?

    “장성택 부위원장, 김경희 대장 혹은 비서라고 부른다.”

    김경희는 2010년 9월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노동당 비서를 겸직하고 있다.

    ▼ 경제 사정은 어떤가.

    “경제 사정? 질문이 잘못됐다. 식량 사정이 어떠냐고 물어야 한다.”

    ▼ 식량 사정이 나아졌나. 중국 지원 덕에 과거보다 낫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에선 경제문제가 곧 식량문제다. 해결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지 않겠나 싶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가난은 나라님도 어쩌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수많은 사람이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제재 탓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1987년 착공해 지금껏 완공하지 못한 105층 높이의 유경호텔은 추락한 북한 경제의 상징 같은 존재다. 7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으나 경제난으로 완공 시기가 늦춰졌다. 2008년 다시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외부 공사를 마무리했으나 내부공사는 진척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베이터를 구할 수 없는 게 문제다. 핵 문제로 인한 경제 제재 탓에 세계 어느 회사도 북한에 초고층용 엘리베이터를 주기 꺼리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갖춰야 건물에 사람이 입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북한은 하부 25층을 먼저 개관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선 뒤 경제문제와 관련해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늘어난 노력의 강도와 제재의 강도 중 어떤 게 더 강할 것 같나? 미국 지원도 거의 없고, 남쪽은 밀가루 조금 보내고 끊어버렸다. 제재가 풀려야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정책을 세우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 경제의 미래를 낙관했다.

    “지금도 북측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금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화자동차가 돈을 벌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개발연대에 이룬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부를 축적하는 기업가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경제발전엔 지정학적 요소, 기후 등도 중요하다. 북한은 지하자원 매장량이 많다. 교육 수준도 높다. 경제대국인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다 남쪽도 발전해 있지 않은가. 북한 시대가 머잖아 올 것이다.”

    중국 대규모 투자하지 않아

    “대북정책에 ‘개방’ 쓰면 북한은 알레르기 반응”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9월 7일 장성택(오른쪽)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중국과 공동개발하고 있는 황금평에 남측 인사들도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다.

    ▼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잘되고 있나.

    “남측과의 협력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 아닌가. 중국이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중국이 크게 투자해봐야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숫자가 올라간다기보다 중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동북3성의 북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국경을 통한 무역이 활성화하면서 달러가 오가고 있다. 또한 북한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 아리랑 공연(8월 1일~9월 29일) 기간에 중국인이 많이 찾아왔다. 남측이 떠난 금강산도 중국인이 어느 정도 채우고 있다.”

    ▼ 북한이 테마파크를 연상케 하는 놀이공원, 물놀이장을 개장했던데, 가봤나?

    “아직 시간이 없어 못 가봤다. 4월 태양절(김일성 생일) 기간에 새로 문을 연 조선인민군무장장비관에는 가봤다. 군인의 무장, 그러니까 신발, 장갑부터 탱크, 미사일까지 전시한 곳이다. 안내하는 군 장성이 나와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4월 15일 100주년 기념 때 아버지를 모셔 보여드리려고 준비했는데, 못 보여드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고 말하더라. 또 아버지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갖고 전시관을 준비한 것에 인민 모두가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선중앙동물원에 가봤는데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기증한 동물과 물고기가 많았다. 동물원을 자주 현지지도 한다고 했다. 최근에 민속공원도 개장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정은 성형수술 얼굴 아니다

    ▼ 김정은을 가까이서 보면 몇 살로 보이나.

    “실물을 보면 서른다섯 살가량으로 느껴진다. 20대 후반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패기, 진취성을 갖고 뭔가 잘하려고 노력하는 젊은 남자 이미지다.”

    김정은은 1984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 악수할 때 느낌은….

    “뭐랄까…. 장례식 때는 김정은 제1비서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와서 악수를 했다. 일전에 따로 편지를 보낸 적도 있어선지 아주 친근하게 대하더라. 악수하면서 느낀 것은,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슬픈 표정이면서도 뭔가 준비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 김일성과 닮았다.

    “성형수술을 했니 어쩌니 소문이 많던데 수술한 얼굴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할아버지 닮은 손자는 모두 성형수술을 한 건가?”

    그는 평양 사람들이 김정은의 얼굴, 행동, 표정에 열광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 때 김정은 비서가 운구차를 맨 앞에서 호위하며 걸어서 영결식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현장에서 봤다. 기온이 영하 20도였다. 북측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겠는가. 북한 사람들이 보는 김정은의 모습에는 그들이 흠모하는 김정은 비서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오버랩돼 있다. 그뿐 아니라 김정숙(김정일 생모)·강반석(김일성 생모) 여사의 이미지도 연결돼 있다. 김일성 가계(家系)의 조상에 대한 인민들의 흠모와 사랑을 이 한 사람이 다 가져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평양의 분위기는 완결된 수령을 모시는 느낌이다.”

    ▼ 평양만 그런 것 아닌가. 지방에 가면….

    “북한은 평양공화국이다. 평양이 곧 북한이다.”

    ▼ 김정일 장례식 때 김정은 뒤에 서 있던 여성은 누구라고 하던가?

    김정은의 이복누나 김설송 설, 누이동생 김여정 설이 있었다.

    “나도 궁금해서 물어봤다. 여동생이라고 하더라.”

    그는 9월 7일 장성택 부위원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났다.

    ▼ 어떤 얘기를 나눴나?

    “중국과 황금평 공동개발을 하고 있는데 남쪽 사람들도 황금평 개발에 참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장 부위원장이 김 통전부장에게 박 사장도 참여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해보라고 말하더라.”

    ▼ 장성택은 어떤 느낌인가.

    “장성택 부위원장은 책임감이 강해 보였다. 주변 사람을 잘 이끌어가는 특출한 리더십을 가진 것 같았다.”

    ▼ 반말로 지시하던가(장성택, 김양건은 각각 1946년, 1938년생이다.)

    “그러지 않았다. ‘~하세요’라고 했던 것 같다.”

    김경희 건강해야 북한 안정

    “대북정책에 ‘개방’ 쓰면 북한은 알레르기 반응”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 때 박상권 사장의 조문을 받고 있다.

    ▼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관련해 건강이상설이 나돌고 있다. 일부 언론은 9월 27일 ‘김경희 싱가포르 병원 입원설’을 보도했는데 10월 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정일의 노동당 총비서 추대 15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김정은과 함께 참석했다.

    “4월 국가만찬 때 만났는데 안색이 많이 안 좋았다. 김경희 비서가 건강해야 북한이 안정된다.”

    김경희는 북한의 이른바 ‘혁명 가계’에서 현재 최고의 ‘어른’이다.

    4월 15일 김일성 생일 열병식 때 김정은은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밝혔다. 4월 19일자 노동신문은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 해결을 선결 과제”로 제시한 김정은의 담화를 실었다. 김정일은 ‘우리식’으로 경제 관리 방식을 개선하려고 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일부 내·외신 매체는 김정은이 6월 28일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제 확립에 대하여’(6·28 방침)라는 제목의 경제방침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개혁 조치의 윤곽을 드러낸 것” “개혁이 아닌 계획경제 정상화 노력”이라는 엇갈린 분석이 따라붙었다. 김정은이 과연 개혁, 개방에 나설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북정책에 ‘개방’ 쓰면 북한은 알레르기 반응”

    9월 8일 보통강호텔에서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북한 선수들을 위한 행사가 열렸다. 금메달리스트들과 기념촬영을 한 박상권 사장.

    ▼ 6·28 방침은 실제로 시행되고 있나.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내놨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북측 인사들에게 물었더니 못 알아듣더라. 언론 쪽에서 만들어낸 게 와전된 것 같기도 하고, 예전부터 항상 내놓고 추진해가는 계획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조치가 나왔다면 사람들이 그것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지시들이 따라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 일부 농업 생산단위의 경영 자율권 확대, 협동농장에서 가족단위 분조제를 도입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분조제를 시작했다고 언론이 보도하던데, 그것 역시 공식 방침으로 나온 것은 없다. 북한 지도자가 지금 할 일 중 중요한 것이 식량문제 해결 아닌가. 사회주의 국가의 틀, 주체사상 국가의 기본 틀을 허물지 않는 범위에서 텃밭을 둔다든지, 여유 있는 땅에 농사를 짓게 한다든지 그런 노력은 다하지 않겠는가 싶다.”

    ▼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잘했다고 하면 북측에서 욕먹고 못했다고 하면 남측에서 욕먹을 텐데….”

    그는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말했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남북문제에선 생각보다 구호가 중요하다. 북한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이라는 것을 내걸었다. 이 구호에 담긴 내용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핵을 포기하면 1인당 소득 3000달러를 만들어주겠다는 아주 좋은 내용이다. 문제는 ‘개방’이라는 단어를 구호에 넣은 것인데 처음부터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용어로 접근했던 것 같다.”

    北, ‘개방’이란 단어 터부시

    ▼ 개혁·개방을 요구하지 않는 대북정책은 의미가 없지 않나.

    “구호 하나를 잘못 내놓아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거다. 북측이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뭔가?

    “개방하려고 정상회담을 한 게 아니라 개방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압박 정책만 구사한 것으로 잘못 아는데, 이런저런 대화 노력을 많이 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안 될 얘기인 줄 알면서 정부 쪽에 비핵개방3000에서 ‘개방’을 빼야 한다고 조언한 일도 있겠나. 북한에서 비핵개방3000에 담긴 내용에 동조하는 사람도 개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탓에 남측과 협상해보자고 제안할 수가 없다. 검토해보자고 얘기하는 순간 ‘개방을 하자는 것이냐?’는 질타와 공격을 받게 마련이다. 북한에서 개방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은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버리고 자본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개방은 또한 외세의 간섭을 의미한다. 북한은 주체의 나라가 아닌가. 사회주의 옷을 벗고, 주체사상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하라, 그러니까 북한 처지에서는 체제를 바꿔야 돕겠다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려면 개방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

    ▼ 김정은 시대에도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터부시하나.

    “개혁이나 개방이라는 말이 있으면 어떤 제안도 못 받아들인다. 특히 개방은 북한에서는 훨씬 나쁜 낱말이다.”

    ▼ 중국식 개혁·개방이란 단어는….

    “북한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주체를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중국식으로 하라, 베트남식으로 하라는 것 역시 주체사상 내지는 수령 절대주의에서 한 발짝 물러서라는 뜻이다.”

    그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종교에 빗대 이렇게 설명했다.

    “김일성 주석을 중심으로 주체사상이 나왔다. 주체사상을 근거로 김 주석이 어버이가 된 것이다. 다른 어떤 주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본주의가 자기네에게 아무리 큰 선물을 안겨주더라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상의 문제가 무엇과 같으냐면 60년 동안 기독교를 믿어온, 하나님과 예수만 믿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예수를 버리고 불교신자가 된다든지 유교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체사상이 일종의 종교 성격을 갖고 있고, 그걸 바꾼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람들의 개종과 같다. 하나님을 믿은 우리 역사도 생각보다 길지 않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주체사상으로 개종하라면 누가 하겠는가. 죽었으면 죽었지 못한다고 발 뻗고 드러누울 것이다. 그런데 남쪽 사람들은 저쪽이 주체사상을 간단히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북한이 개방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2009년 8월 이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제 친구 동생이라 비핵개방3000 구호를 북에서 안 좋아하니 쓰지 말라고 했는데 안 믿더라고요.”

    “세계를 보라”가 김정은 어젠다

    ▼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후 눈으로 보기에 변한 게 있나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무엇이 어떻게 변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평양에 처음 발디딘 19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변했다.”

    그는 김정은 체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김정은 1비서 체제는 잘될 것으로 본다. 평양에 내걸린 구호를 보면 북한 당국이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지 알 수 있다. 북한은 어젠다를 내놓고 행동해가는 사회다. 지금껏 그래왔다. 김정은이 가장 먼저 내건 구호가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컴퓨터수치제어)다. 국가를 CNC화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기술과 IT 개발로 ‘과학기술강국 건설’이 눈앞에 왔다고 선전하고 있다. CNC는 후계자 시절 김정은의 업적으로 간주된다.

    “대북정책에 ‘개방’ 쓰면 북한은 알레르기 반응”

    김정은 비서는‘세계’를 강조하고 있다고 박상권 사장은 말했다.

    “지금까지 구호판에 영어가 등장한 걸 본 적이 없다. CNC가 처음이다. 영어로 글을 썼다는 것도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CNC 다음으로 나온 게 ‘세계를 향하여’다. 그전까지는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지 않았나. 그다음 나온 게 ‘두 발은 조국에 붙이고, 두 눈은 세계를 보라’다. 최근에 나온 구호는 ‘세계가 조선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조선이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세계와 연결돼 있는 사람이다. 지극히 세계 지향적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런 의식이 굳어져 있는 사람이다. 세계를 지향해서 나가겠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희망적이다. 부인(이설주)과 함께 공개 석상에 등장한 것도 상징적 사건이다. 부인과 팔짱을 끼고 걷는다는 것은 세계 속에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버지가 유학을 가라 했는데도 김일성종합대라는 훌륭한 대학이 있는데 무엇하러 유학을 가느냐면서 평양에 남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들은 스위스에서 공부시켰다. 자식이 아버지보다 잘되기를 바라는 게 부모 마음 아닌가. 김정은은 아주 부유한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7년을 지냈다. 지도자의 폭발적인 저력, 카리스마가 나오면서 북한이라는 국가가 발전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루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함께 카자흐스탄 개혁·개방을 이끈 방찬영 키멥대 총장은 신동아 10월호 기고문에서 주체사상을 버리고 김일성 부자 공과(功過)를 재평가해야만 북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개혁보다 앞서 정치개혁을 완수해야 북한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걸 안다 한 적 없다”

    ▼ 주체사상을 버리지 않고 경제발전이 가능하다고 보나?

    “경제발전이 이뤄지고 나라가 부자가 되더라도 북한은 주체사상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북한이 주체사상과 바꿀 수 있는 대가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경제발전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어떤 학자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나는 견해가 다르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 아닌가. 북한이 핵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면 6자회담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핵을 포기하게끔 하는 대북정책도 모두가 쓸데없는 일이다. ‘50%의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북핵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은 핵을 가지려고 할 수도 있지만 조건에 따라 버릴 수도 있다. 어떤 조건일 때 북한이 핵을 버릴 것인가.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는 게 중요하다.”

    올해 4월 최고인민회의가 개정한 북한 헌법 서문에는 “김정일 동지가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 북한이 과연 핵을 버릴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혹자는 나더러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북한을 들락거렸는데 나무를 못 보겠는가? 숲을 못 보겠는가? 수많은 간부를 만나면서 북한을 느끼고 배웠는데 뭘 모르겠나. 그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 적은 있지만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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